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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08
#1. 강화군수 집 앞 / 낮
군졸 하나가 끌고 오는 죄인 호송 수레. 군수 집을 둘러싸고 있는 군졸들..
대문이 열리며 한 떼거지가 부여잡고 끌고 나오는 최영. 손목 발목을 굵은 쇠사슬로 칭칭 감고 있다.
최영은 대충 별로 힘쓰지 않고 있는데. 그를 잡아 이끄는 자들은 최영이 두려워서 긴장하고 있다.
마악 수레에 태우려는데 천음자가 멈추게 하더니 최영의 몸을 다시 수색한다.
발목을 손으로 훑어내다가 숨겨진 단도를 찾아낸다.
천음자 : 또?
최영 : (고갯짓으로 등 쪽을 가리킨다)
천음자가 최영의 등을 훑어 내리다가 허리춤에서 또 하나의 단도를 찾아낸다.
최영 : 이제 끝.
최영이 천음자에게 싱긋 웃어준다.
천음자도 최영을 보고 웃는다. 천음자가 물러선다.
최영이 수레에 태워지면서 힐끗 보는 곳.
천음자 옆의 부하가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판. 그 위에 천음자가 막 찾아낸 단도를 얹는다.
그 판 위에는 이미 최영의 다른 몇 개의 단검과 함께 최영의 귀검이 올려져 있다.
(스승에게 물려받은, 매희의 두건 끈이 달려있는)
#2. 사랑채
침상 위에 숨져 누워 있는 경창의 시신.
기철이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화고독으로 인해 안에서부터 부풀어 익어간 가슴이며 팔목의 흔적.
그리고 목을 옆으로 돌려 최영이 찔렀던 부분도 살핀다.
뒤로 물러서는데 언짢은 표정.
문이 열리며 천음자가 들어선다. 최영의 검을 들고 있다.
돌아보는 기철에게 최영의 검을 건네며.
천음자 : 최영의 검입니다.
기철이 검을 받아 살펴본다.
기철 : 이것이 귀검인가.
천음자 : 적월대 대장이 최영에게 물려주었다는 그것입니다.
기철이 검을 빼어 휘둘러보며 무게 등을 가늠한다.
그러다 다시 휘둘러 뻗은 검이 경창의 시신을 찌를 듯 나아가다 멈춘다.
기철 : 최영을 먹이라고 준 독을 이 아이가 마셨다.
천음자 : 최영이 먹인 것이겠지요.
기철 : 그렇지. 그래야 맞지. 지 살기 위해서라면. 인간이라면.
천음자 : 그런데 아닙니까?
기철이 불쾌한 얼굴로 검을 검집에 넣는다.
기철 : 의선은?
천음자 : 사매가 옆에 있습니다.
#3. 다른 방
창문가에 기대 선 화수인이 구경하고 있다.
그 앞에 방안을 정신없이 오락가락하며 혼자 애가 타서 생각에 잠겨 떠들고 있는 은수.
은수 :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역사가 그렇지가 않다구. (갑자기 화수인을 보며) 이성계 알아요?
화수인 : 이성계.. 내가 알아야 되나?
은수 : 모르죠? 아직 유명하지도 않죠? 그봐. 최영 장군이면 나중에 이성계 하구 그 뭐냐.
위화도 회군, 이런 거 할 때까진 살아있어야 된다구.
내 기억에는 최영이 아주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살았거든요.
그러니까 이번에 죽을 리가 없어요. 안 죽을 거야.
화수인 : 정말로.. 앞일을 다 아는 거요? 하늘에서 온 분이라서?
은수 : 기록에 다 나와 있다구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국사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는 건데.
암튼.. 공민왕. 노국공주. 기철. 고려시대. 다 맞다면 그 사이코. 이렇게 빨리 안 죽어요.
화수인 : 나도 나오겠네. 하늘에 있다는 그 기록에 나, 화수인의 이름.
은수 : (멈칫해서 보는)
화수인, 장갑을 빼더니 오른 손을 들어 보인다. 그 손에 모이는 붉은 기.
손을 나긋하게 뻗어 옆의 창호문에 대자 한지가 후루룩 타버린다.
화수인 : 뭐라 되어있어요? 화공의 고수 화수인? 아니면..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뭇 사내들의 가슴을 태워버린 여인?
재미있다고 웃는데 은수는 굳었다.
은수 : 좀... 뭔가.. 이상하긴 해요. 뭔가 아주 조금씩.. 내가 아는 역사하고 달라..
(망설이다가) 최영 그 사람. 이대루 끌려가면 어떻게 되요?
화수인 : 대역 죄인으로 끌려가면? 죽어야죠. 그것도 능지처참.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포를 뜨듯 살점을 베어내는데,
한꺼번에 많이 베어내면 안되죠. 한 번에 죽지 않도록 조금씩 조금씩.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게..
은수 : (완전 얼어서 보다가. 목이 말라 겨우 말하는) 재판 같은 거 안해요? 나 증인 할 수 있는데.
그 사람, 칼로 사람은 베구 다니지만. 그니까 살인범일지는 몰라두 역모는 안했어요.
내가 옆에서 봤거든요.
화수인 : 나한테 말구 우리 사형한테 말해봐요.
은수 : 사형이면.. 그..
화수인 : 임금님은 못 살려도 우리 사형은 살릴 수 있을 걸.
은수 후딱 돌아서더니 문 쪽으로 이동한다. 문을 열려는데 어느새 다가온 화수인이 문을 가로막고.
화수인 : 잘 좀 해봐요. 그 잘난 사내 죽어버리면 나도 서운하거든.
은수 : (망설이다가) 팁 같은 거 없어요?
화수인 : 팁?
은수 : 댁에 사형, 약점이라든가..
화수인 : 약점을 알았으면 내가 벌써 주워 먹었지.. (빙긋)
이거 한 가지만. 절대로 약하게 보이지 말 것. 우리 사형. 약자는 벌레처럼 밟고 싶어 하니까.
#4. 군수 집 대문 앞
수레에 들어앉은 최영. 쇠사슬에 묶인 채 꿈지럭거려 편한 자세를 찾아 앉는데.
그 옆으로 다가서는 군수.
군수 : 우달치 최영.
최영 : (돌아보는)
군수 : 나, 너무 원망하지는 말게.
최영 : 내 발로 덫까지 기어들어온 주제에 남을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군수 : 그래. (끄덕이다가) 아. 내가 미처 말해주지 못했지.
나라의 녹을 대대손손 먹기 위하여 중요한 세 가지.
최영 : 그것을 가르쳐주려고 굳이 오신 겁니까?
군수 : 뭐..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들어보시겠나?
최영 : 경청하겠습니다.
군수 : 중요한 세 가지. 그 첫째. 힘이 있는 자를 가려내라. 둘째. 어떻게든 그 자에게 붙어라.
셋째. 이것이 특히 중요하다네.
최영 : 듣고 있습니다.
군수 : 이러는 내가 옳다고 믿어라. 무조건.
최영 : (웃는) 그 대대손손이란 거, 역시 성가신 것이네요.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최영, 웃다가 보는 곳. 저 앞 대문으로 나오는 일행.
기철과 양사가 먼저 나서고 있고, 그 뒤로 은수가 나서는데 화수인과 천음자가 양쪽에서 지키고 있다.
최영의 미소가 사라진다.
군수가 인사를 드리러 부지런히 달려가고.
먼저 나온 기철이 대기시켜놓은 말 옆에서 은수를 기다린다.
다가서는 은수. 말 옆에서 머뭇거리는데 기철이 은수가 말에 타도록 돕는다.
말에 올라탄 은수. 그 옆의 말에 올라탄 기철이 은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뭐라 말하는 것이 보인다.
기철의 말에 끄덕이며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던 은수가 최영을 발견했다. 최영과 눈이 마주친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최영을 보는 은수. (그렇게 수레에 포박당한 최영은 상상하지 못했다)
은수의 시선에 이쪽을 돌아보는 기철. 미소 짓더니 출발신호를 보낸다.
기철의 무리가 출발하며 은수도 함께 출발한다.
은수와 기철을 중심으로 양사 화수인 기철. 그리고 그의 수하들이 우루루 출발해간다.
말을 달리는 은수가 한 번 더 이쪽을 돌아본다.
그 모든 것을 수레 창살에 기대앉은 채 말없이 보고 있는 최영.
#5. 노국공주 정원 / 낮
노국이 정원 쪽으로 나서다가 멈춘다.
노국의 옆을 수행하는 최상궁이 조용히 아뢴다.
최상궁 : 전하를 지키던 우달치군은 시방 병영에 감금된 상태입니다.
노국 쪽에서 보는 정원. 회랑.
공민이 있는 쪽 방향에는 주루루 지키며 서있는 낯선 제복의 금군들.
그 사이사이를 오가는 기철의 사병 제복을 입은 자들도 보인다.
최상궁 : 이제 전하를 지키는 것들은 금군인데요. 저 금군들 사이에 못난 제복들 보이십니까?
저것들은 덕성부원군의 사병입니다. 일개 사병 나부랭이들이 순군의 이름으로
궁 안에까지 침범을 했으니 참으로 통탄 개탄할 일입지요.
노국 : 그러하면 전하는 지금 감금되어 계신 것이구나.
최상궁 : 그리 봐야 합지요. (분해서 자기 가슴을 쾅 치더니) 분하지만 그러한 실정이옵니다.
노국 : 전에 내가 기철의 집으로 가겠노라 궁을 나섰을 때 나를 공격한 자들. 역시 기철의 사람들이었나.
최상궁 :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낮게) 우달치 애들 생각엔 그런 듯 하답니다.
노국 : 기철은 내 목숨을 파리의 그것처럼 보고 있구나.
최상궁 : 마마.
노국 : 전하는 날파리보다 못한 왕비를 가지셨고.
최상궁 : 어찌 말씀을 그리 험하시게..
노국 : 그래서 지금 전하는 혼자 계시겠지.
최상궁 : (노국의 눈치를 살피는) 어찌.. 안에 고할까요? 왕비마마께서 전하를 뵈러 간다고.
노국 : (눈물이 글썽해있다) 전하는... 바보다.
최상궁 : (놀라서) 예?
노국 : 전하는 참으로 참으로 바보다.
휙 돌아서더니 자신의 처소 쪽으로 걸어간다.
최상궁이 어쩔 줄 모르고 따른다.
#6. 강안전 내 공민왕 집무실
공민이 탁자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심경을 대변하듯 빠르고 거친 손놀림.
문득 멈추었다가 붓을 던져버리더니 그리던 종이를 구겨서 던져 버린다.
일어서서 빠르게 문 쪽으로 간다. 문을 벌컥 열어본다.
문 앞에서 보초를 서던 낯선 금군들이 공민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숙여 보인다.
회랑으로 나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회랑에도 간격을 두고 서 있는 금군들.
다 차가운 낯으로 공민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는데 시선은 공민을 살펴보고 있다.
그들 사이로 열려져 있는 회랑.
공민 그 회랑을 향해 한걸음 나서는데. 그 앞으로 막아서는 기원.
기원 : 전하. 가실 곳이 있으시면 미리 하명해주십시오. 그리하면 저희들이 지켜 수행하겠습니다.
공민. 그렇게 말하는 기원을 물끄러미 보다가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힌다.
방안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이 공민 혼자다.
#7. 병영 앞
굳게 닫혀진 대문.
대문 밖에 엑스자로 못 박혀있는 널빤지. 그 위에 둘러쳐진 길다란 천. 위에 쓰여진 글자. 禁.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금군들. 어라 해서 돌아보는 곳.
거기 더기가 작은 수레를 끌고 오고 있다.
금군 하나가 나서며.
금군 : 병영은 출도 입도 금지다. 돌아가.
더기가 알아들을 수 없는 기성으로 뭐라뭐라 떠들어대며 막무가내로 수레를 끌고 온다.
그런데 수레가 가까이 올수록 근처의 금군들이 엄청 고약한 냄새에 난리가 난다.
수레에 쌓인 마른 풀에서 나는 냄새인 듯.
금군들이 막아서자 더기는 수레의 풀을 가리키고 병영 내부를 가리키고
이 건초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떠들어댄다.
금군들이 더기를 잡아끌려다가 더기에게서 나는 냄새에 기겁을 하고 피하고.
멀리에 있던 보초들은 뭐냐고 다가오며 시끄럽고.
더기가 화를 내며 수레를 돌려 가는데.
그 수레에서 떨어진 건초들이 독한 냄새를 피우며 바람에 여기저기 흩날리고.
저거 치워라. 니가 치워라. 난리가 나는데.
그 와중에 빈틈을 타고 병영의 옆쪽 담으로 소리 없이 다가서 붙는 대만. 슬쩍 대문 쪽을 살핀다.
거기 더기 때문에 정신없는 금군 보초들.
대만이 암벽 클라이밍을 하듯 빠르게 담 위로 기어 올라간다.
저만치의 보초 중에 하나가 이쪽을 돌아보았을 때 이미 대만은 담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더기도 유유히 수레를 끌고 가버리고 있다. 냄새나는 건초를 풀풀 날리며.
#8. 병영 내부
장교 홀에서 달려 나오는 충석.
그 앞에 다른 우달치대원들에게 둘러싸여 오는 대만.
대원들이 대만이 반갑다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데려오고 있다. (갑옷. 무기 아무것도 없는 상태)
충석 : 너 혼자 들어온 거야? 주석이는.
대만 : 전하를 만나야 한다고 강안전 쪽으로 갔습니다.
충석 : 지가 전하를 왜 만나. 어쩔라고.
대만 : 대장이 전하께 꼭 전하라는 말이 있댑니다.
충석 : 대장은 무사하신 거지. 같이 안 왔어? 어케 된 거야.
돌배 : (대만을 쥐어 흔들며) 빨랑 좀 말해봐아. 속 터져.
대만 : 아 좀 놓구. (뿌리치고는) 근데 전하는 금군하구 기철이네 사병놈들이 완전 꽁꽁 싸고 있어서요.
도대체가 뚫고 들어갈 수가 없구요. 그리구 대장은..
덕만 : 대장은 뭐! 왜!
대만 : 우리 대장은 잡혔다는 소문이..
하는데 충석이 대만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충석 : 대장이 왜 잡혀.
대만 : 강화도에서 잡혀서 끌려오는 중이래요.
충석 : 누가 그따우 쉰소리를 해.
대만 : 아씨 다 그래요. 다 그렇게 떠든단 말이에요.
충석이 충격에 말문이 막혔는데. 덕만이가 울상이 돼서.
덕만 : 대장이 잡히믄.. 우린 어케 되는 거요.
돌배 : (울컥) 어케 되긴 뭐가 어케 돼. 저 놈의 대문. 부시고 나갑시다.
내 한방이면 부서지는 놈의 대문. 열구 나가서 우리 대장 구해내자고.
덕만 : 그래. 그러면 되겠네.
충석 : 대장 구해내면. 그 담은.
돌배 : 이깐 놈의 나라 떠버리는 거지요 머. 어차피 역적으로 죽을 거. 국경지대 가서 판 벌립시다.
국제적으루다가 화적떼가 돼서리..
충석 : (돌배의 머리통을 쥐어박아 조용히 시키고) 임마. 갑옷도 무기도 다 뺏긴 주제에 뭘로 싸워.
그러나 둘러선 이들 저마다 한마디씩 흥분해서 떠든다. 아 왜요. 못 할 게 뭐 있소.
그래 우리 실력이면 무서울 거 없어.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화적 좋지. 까짓 거 이참에 나라 하나 먹어버려. 등등 떠드는데.
충석만 걱정이 돼서 궁 쪽을 돌아본다.
#9. 전법옥 앞
언부의 간수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다. [讞部]라고 쓰여진 깃발들이 보이고.
#10. 언부의 감옥 전법옥
중죄인들을 가두는 특별감옥. 그 안의 독실.
팔목과 발목에 철컹철컹 채워지는 쇠팔찌. 그에 걸리는 쇠사슬.
최영이 우뚝 서서 자기 발목 팔목에 사슬을 채우는 간수들을 참아주고 있다.
주변에는 두 명의 간수가 창을 겨누고 있고. 두 명은 최영의 눈치를 보며 사슬을 채우는 중.
뒷벽에 박은 네 개의 고리에서 이어진 긴 사슬이 최영의 발목과 팔목을 묶은 셈.
채우는 것을 끝내자 끝까지 최영을 견제하며 문 밖으로 물러가는 간수들.
옥문이 닫히고 절그럭 소리를 내며 잠긴다.
무뚝뚝한 얼굴로 우뚝 서있는 최영. 문득 고개를 돌려본다.
옥의 한 구석에 두어 마리의 쥐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혼자 남겨지자 그동안 무표정으로 버텨왔던 감정이 무너지며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이 된다.
들리는 경창의 소리.
경창소리 : 덕성부원군이 가르쳐줬어. 어찌하면 널 살릴 수 있는지.
미칠 것 같은 마음이 돼서 두리번거린다.
최영소리 : 기철.. 그자가 왔었습니까? 그놈입니까?
#11. 회상 7부 #46 군수 사택 사랑채
최영 : 그 놈이 먹인 겁니까. 마마께 그놈이 독을..
경창 : 난 어차피 오래 못 사는데. 그자는 그걸 몰랐어.
(억지로 웃는) 그래서 이 독. 영이에게 먹이라 했어. 근데 내가 뭐하러 그래.
최영 : (울컥) 그래서 저 대신 마마께서.. 드신 겁니까?
#12. 전법옥
우뚝 선 채로 최영이 고통에 눈을 감는다. 숨이 가빠진다.
최영소리 : 많이.. 아프십니까?
경창소리 : 아프다 영아.
#13. 회상 7부 #46 군수 사택 사랑채
경창 : 너무 아프다.
최영 : 이제 아프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마마. (후두둑 눈물이 떨어진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경창 : 그래.. 그래줘. 너무 .. 아파.
최영 : (칼을 들지 않은 한손으로 경창을 더욱 깊이 안는다)
#14. 전법옥
최영이 짐승같은 신음소리가 폐부 속에서 새어 나온다. 통한스러워 견딜 수가 없는데.
그런 시간을 버텨내다가.
#15. 회상/ 7부 # 22 폐가내부
은수 : 그러면서 아픔을 똑바로 쳐다보는 거에요. 그리고 이렇게..
(양희은투) 니가 그렇게 날 아프게 하고 싶다면 좋아. 받아주갔서.
#16. 전법옥
잠시동안 미동없이 서있던 최영이 문득 고개를 들고 그동안 내쉬지 않았던 듯한 숨을 내쉰다.
두 번 세 번. 한숨을 토하듯 숨을 내쉬더니 그제야 자기 손목에 묶여있는 사슬을 내려다본다.
사슬을 당겨 길이를 재보더니 사슬 길이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편하게 앉는다.
차가운 바닥이지만 나름 괜찮다.
문득 옷 안쪽을 뒤진다. 천음자에게도 들키지 않게 감추어두었던 것을 꺼낸다. 아스피린 약병이다.
병을 잠시 보다가 뚜껑을 열고 안의 것을 꺼내본다. 남아있는 약 위에 넣어두었던, 이제 시들어가는 꽃.
#17. 회상/ 7부 #37. 군수 사택 후원
은수 : 자요. (하며 꽃을 최영에게 내민다)
최영 : 뭐요.
은수 : 꽃 받으시라고. 선물.
#18. 전법옥
최영이 시들어가는 꽃을 다시 병 안에 챙겨 넣는다. 그러는데 들리는.
은수소리 : 여기 기대서 좀 자요.
최영 기억에 귀를 기울이듯..
#19. 회상 7부 #20. 폐가내부
은수 : 이제부터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눈 좀 붙이라구요.
#20. 전법옥
최영 어설프게 웃더니 병을 품에 챙기고 아예 드러눕는다. 편하게 팔다리를 뻗고. 그리고 눈을 감는다.
평안히 잠들려고 했는데. 들리는 소리.
은수소리 : 피냄새..
#21. 회상/ 8부 #4. 군수 집 대문 앞
기철이 은수가 말에 타도록 돕는다. 말에 올라탄 은수.
그 옆의 말에 올라탄 기철이 은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뭐라 말하는 것이 보인다.
기철의 말에 끄덕이며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던 은수가 최영을 발견했다. 최영과 눈이 마주친다.
얼어붙은 표정으로 최영을 보는 은수.
#22. 전법옥
최영의 눈이 떠진다. 그대로 물끄러미 천정을 보고 있다.
#23. 기철의 집 전경 / 낮
보초를 서거나 순찰을 돌고 있는 사병들. 삼엄한 분위기.
#24. 별채 내부
은수가 주위를 둘러본다.
별채 안은 저번과는 다르게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 차 있다.
휘장이 늘어진 침대며 탁자세트. 주위에는 문갑 위에 늘어져 있는 각종 자기들.
화려한 화병들에는 흐드러지게 늘어져 있는 꽃들.
그러나 닫혀져 있는 창문.
창문으로 가까이 가서 열어보려고 하는데. 뒤의 입구 문이 열리는 소리. 얼른 돌아본다.
문이 열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잠깐 환상처럼 보이는 기억.
#25. 회상/ 5부 #64. 기철 집안 별채
어두컴컴한 별채 내부가 열린 문으로 환해진다.
그 내부 저 안. 눈이 부셔서 눈을 가리던 은수가 손을 내리며 이쪽을 본다.
거기 최영이 서있다.
#26. 별채 내부
열린 문, 거기 서 있는 천음자.
천음자 : 기다리고 계십니다.
은수 잠자코 걸어간다. 문을 나서려다가 문득 방안을 돌아본다.
휘릭 지나가는 기억 한 장면.
#27. 회상/ 6부 #4. 기철 집안 별채
화수인이 은수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순간 최영이 방패를 휘릭 돌려 화수인과 은수의 사이를 막으며 터엉 땅을 찍는다.
#28. 회상/ 6부 #7. 기철 정원 누각
은수가 쭈뼛거리며 잔을 잡으려는데 그 잔 위에 손을 얹어 덮는 최영.
최영 : 제가 먼저.
잔을 들더니 단숨에 마셔버린다.
#29. 기철 정원 누각 / 현재
은수가 누각으로 들어서다가 멈춘다.
전과 같은 탁자에 차려져 있는 다과상. 저번과는 달리 꽃장식이 화려하다.
기철이 기다리다가 일어선다.
은수. 침이 마른다. 그러는데 건너편 난간에 걸터앉은 화수인이 보인다. 은수를 향해 한눈을 찡긋해 보인다.
기철 : 시장하셨지요? 간단한 상을 준비했습니다.
하며 건너편의 의자를 가리키는데.
은수. 몰래 심호흡을 하더니 탁자로 다가간다.
기철이 가리킨 의자를 발로 턱 차서 빼내고 그 위에 발 하나를 터억 올리는데
잠깐 삐끗해서 모양이 좀 빠진다. 그러나 더욱 턱을 세우고.
은수 : 이상하네. 저번에는 여기서 날 보구 (기철 옆의 양사를 보며) 이년 저년 그러질 않나.. 응?
내 모가지를 잘라서 어디 걸어놓겠다 그러질 않나. 생지랄들을 하셨잖아요.
근데 오늘은 뭐야. 밥에.. 독 들어있어요?
기철 : (웃는) 제가 의선을 죽일 생각이면 독은 안 쓸 겁니다. 하늘의 의원에게 독을 써봤자 뭐하겠습니까.
은수 : 그럼 어떻게 죽일 건데요.
기철 : 우선 앉으시죠.
은수 : 앉지 않으면 죽일 거에요?
기철 : 방문을 잠가 놓아서 노여우셨습니까?
은수 : 내가 할 말이 있다구 했잖아요. 강화도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백번쯤 말했잖아요. 말 좀 하자구.
근데 완전 개무시해놓고, 종일 방에 쳐박아 놓고, 이제 와서 뭐요.
양사 : (참다못해) 참으로 겁이 없는 여인네. 간이 부어도..
기철이 손을 들어 양사를 조용케 하고.
기철 : 의선께 청이 있습니다.
은수 : 아하.. 청이 있구나. 그래서 갑자기 비즈니스 페이스가 되셨다.
내가 또 비즈니스 딜이라면 쫌 하죠. (의자에 앉으며) 나도 청이 하나 있는데. 우리 거래해보자구요.
기철 : (앉는)
은수 : 먼저 카드를 꺼내보시죠. 카드. 패.
기철이 빤히 은수를 살피듯 본다.
은수는 지금 억지로 강한 척 하고 있는 중이다.
턱을 쳐들고 기철을 보고 있지만. 탁자 밑으로 감춘 손에는 땀이 배고 있다.
슬그머니 무릎에 손바닥의 땀을 닦는다.
기철이 싱긋 웃더니 양사에게 신호를 보낸다.
양사가 영 못마땅하지만 탁자 위에 펼쳐놓는 것. 은수의 수술도구다.
은수.. 알아보고.
은수 : 이거 내꺼잖아요. 내가 전의시에 두고 온 건데 이게 왜 여기 있어요. 훔쳐 온 거에요?
기철은 은수를 계속 살피듯 보고 있고, 양사가 또 하나의 가죽 보를 펼친다.
거기 화타의 도구들이 드러난다. 녹이 슬었지만 은수의 것과 거의 흡사한.
은수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도구들을 살펴본다.
은수 : 이건..
기철 : 알아보겠습니까?
은수 : (놀라 하나씩 들어서 살펴보며) 이거 어디서 났어요. 이런 게 어떻게 여기... 내가 갖고 온 게 아닌데.
하며 들어서 본 메스 하나. 녹이 슨 손잡이 쪽에 새겨져 있는 영어로 된 제품 이름.
은수 경악을 해서 기철을 본다.
은수 : 이거.. 뭐에요.
기철 : (은수를 살피고 있는)
은수 : (버럭) 이거 뭐냐구.
#30. 강안전 공민왕 침전 앞 회랑
보초를 서는 금군들이 돌아본다.
거기 장빈이 약원과 또 한명의 의생을 데리고 걸어오고 있다. 의생은 주석이 변장한 모습.
주석은 약사발이 담긴 쟁반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다.
기원이 그 앞을 막는다.
기원 : 어의가 강안전에 무슨 일이오.
장빈 : 전하께서 어약을 드실 시각입니다.
기원 : 약이라니. 들은 바 없는데.
말하며 기원이 주석 쪽을 본다.
주석은 약사발을 높이 들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이들은 전에 한번 부딪힌 적이 있음)
장빈 : (슬그머니 주석의 앞으로 이동하며 시선을 가리며)
전하를 지킨다는 분들이 전하께서 진맥하셔야 할 시각. 어약을 드실 시각도 모른단 말입니까.
기원 : (망설이는)
장빈 : 약원.
약원 : 예.
장빈 : 생초들이시라 무엇을 몰라서 무엇을 물어보아야하는지도 모르는 모양이네.
전의시에 관련한 전하의 하루 일과. 문서로 정리하여 보내드리게.
약원 : 그리하겠습니다.
기원이 기분이 언짢아서 보고 있다.
장빈이 덤덤하게 기원의 어깨를 치며 지나쳐간다.
#31. 강안전 내 공민왕 집무실
공민의 탁자 근처에 구겨서 버린 종이뭉치들이 그득하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던 공민이 고개를 든다.
거기 열린 문을 들어서고 있는 장빈. 그를 수행하는 약원과 변장한 주석.
공민 : (놀라서) 장어의.
장빈 : (예를 올리며) 전하. 어약 드실 시간입니다.
공민 : (장빈 뒤의 열린 문 밖에서 기웃거리는 기원을 의식하며) 맞아. 벌써 그리 되었는가요.
약원이 조용히 문을 닫아 버린다.
문이 닫히자마자 주석이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주석 : 전하.
공민 : (뭔가..해서) 그대는..
장빈 : (재빨리 문 쪽을 돌아보며) 전하. 이 자를 가까이 불러 하문하십시오. 소리를 낮춰서.
공민 : 가까이.
주석 :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더니 이마를 바닥에 박으며) 우달치 주석이옵니다.
공민이 기웃하여 얼굴을 살피며.
공민 : 우달치는 전부 감금되었다 들었는데.
주석 : 소인. 어명을 어기고 홀로 강화도의 대장을 보러 갔었습니다.
공민 : 그렇다면 네가.. 그 우달치였는가. 부장의 명으로 대장과 내통하러 떠났다 했던.. (표정이 차가와진다)
주석 :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공민 : 최영을 만났는가.
주석 : 만났습니다.
공민 : 무엇을 하고 있든가.
주석 : 경창군 마마와 의선을 모시고 산속에서 도피중이셨습니다.
공민 : 도피.. 산속에서. 왜.
주석 : 함정에 빠졌다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공민 : 함정이라..
주석 :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민 일어서더니 주석을 빤히 내려다본다.
주석. 그 눈길에 불안해진다.
공민 : 최영이 잡혔다고 들었다. 관군에 의해서.
주석 : 소인과 헤어진 뒤에 그리 되신 듯..
공민 : 너는 최영이 잡히고 나서야 나를 찾아왔다.
주석 : 더 일찍이 찾아 뵈오려 했으나 금군들이..
공민 : 그러면 너는 최영이 잡혔을 때를 대비한 대책인가?
주석 : .. 예?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공민을 보는)
공민 : 그래 무어라 하든가. 자신이 꾀하는 바가 실패하게 되면 나를 찾아가 이르라 하든가.
이 모든 것은 함정이다. 최영은 죄가 없다.
주석 : (미치겠는) 그게 아닙니다. 대장은 그런 게 아닙니다.
공민 : 그러면 힘도 없고 속도 없는 왕은 혹시 다시 내 편이 되어줄까 해서
반가워라 맞아줄 것이다 그리하든가.
주석 : 전하..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제발..
순간, 공민이 한 바퀴 돌며 서탁 옆에 걸려있던 검을 빼어 그대로 주석의 앞 바닥에 꽂는다.
공민 : 어명을 어기고, 역모를 꾀한 자와 내통한 너.
장빈이 긴장해서 본다.
주석도 자기 앞에 꼽힌 검을 본다. 아직 바르르 떨리고 있는 검.
공민 : 니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그러니, 죽어라.
순간, 주석이 검을 잡는다.
거의 동시에 장빈이 날렵하게 움직여 공민의 옆으로 다가선다.
어느새 부채를 빼들고 있다. 공민을 지키려는 움직임인데.
그 앞의 주석이 검을 빼더니 휘릭 돌린다. 검날을 자신의 목에 대더니 공민을 보며.
주석 : 대장이 전하께 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만 전해 올리고 제 목숨 거두겠습니다.
공민 : (차갑게 등을 보이며 돌아서는)
주석 : 대장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죽기 직전, 손이 떨리고 있고 어쩔 수 없이 공포를 느끼지만 애써 의연하게. 한마디한마디)
우달치 중랑장 최영, 아직 전하께서 내리신 임무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주석. 더 이상의 말이 없다.
장빈이 공민의 기색을 살핀다.
돌아섰던 공민, 천천히 주석을 향해 돌아선다.
공민 : 그게 전부냐.
주석 : 전부 전하였습니다. 그럼 전하. 부디 내내 강녕하시고, 이 나라 고려의 성군이 되어주십시오.
절도 있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더니 자기 목에 댄 칼을 깊이 밀어 든다.
순간. 장빈과 공민의 시선이 마주친다. 공민이 시선을 받는 장빈.
주석이 칼을 주욱 내리그으려는 순간.
장빈이 뻗어낸 부채가 주석의 검 자루를 밑에서 막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주석이 검 자루로 부채를 쳐내고 다시 그으려는데 장빈이 부채로 검을 막고 말아서 비껴나가게 만든다.
주석이 후딱 공민을 본다.
공민 : 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전반부의 분노는 어느 정도 진심이었으나 이제 공민은 주석을 테스트한 뒤의 냉정함을 찾고 있다.
#32. 기철의 부유고
어둠에 잠겼던 방.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온다.
기철이 호롱불을 들고 들어서며 뒤따라오는 은수를 안내하고 있다.
은수가 들어오자 기철은 문을 닫는다.
둘만 남은 실내. 은수가 겁에 질려 아직 어두운 내부를 둘러본다.
기철이 여유 있게 이곳저곳의 불을 밝히며.
기철 : 이곳은 제 스승께서 부유고라 이름 지은 곳입니다.
부는 화타의 이름. 화타의 유물을 보관하는 곳이란 뜻인데 스승께서는 은밀한 연구실로 쓰셨지요.
돌아서던 은수가 흠칫 놀란다. 바로 눈 앞, 불빛에 드러나는 것.
이상한 내장들. 눈알 같은 것들이 보관되어 있는 유리병들.
기철 : 스승께서 화타의 유물이다.. 일러 주셨을 때.. 솔직히 반은 믿지 못하였습니다.
하며 탁자 위에 올려놓은 보를 주룩 펼친다. 녹슨 수술도구들이 드러난다.
은수 : 그러니까. 화타가 이걸 남겼다구요? 지금부터 수백 년 전에?
기철 : 이거 말고 두 개가 더 있습니다.
은수 : 보여줘요.
기철 : (보는)
은수 : 보여 줄라고 나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 아니에요?
기철 : (계속 말없이 은수를 보고만 있다)
은수 : (불편해지면서) 왜요. ..뭐요.
기철 : 고백할 게 있습니다.
은수 : 어머.. (당황스러운데)
기철 : 실은 의선을 두고 주상전하와 내기를 했습니다.
은수 : 내기.
기철 : 내가 일곱날 안에 의선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내기의 내용이었습니다.
은수, 어이없어 보다가 옆의 의자를 끌어내고는 털썩 주저앉으며.
은수 : 그래서요. 이기면요.
기철 : 내가 이기면 의선을 내가 갖게 되는 것이지요. 내가 지면 의선은 그대로 전하의 것이구요.
은수 : (어이없어 웃는다. 웃다가) 아 진짜 나리나리 개나리들. 민증 먼저 까라 그러구 싶네.
기철 : ...의선?
은수 : 계속하세요. 그래서요?
기철 : 오늘이 다섯 번째 날입니다. 의선의 마음..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은수 : 내 마음이야 나한테 있죠.
기철 : 내게 주겠습니까?
은수 : 싫은데요.
기철 : (웃는) 싫다. 덕성부원군인 내 앞에서 싫다.
은수 : (탁자에 놓인 수술도구를 가리키며) 이게 뭔지 알고 싶지요?
기철 : (보는)
은수 : 두 개 더 있다면서요. 그것들이 뭔지도 알고 싶은 거죠?
기철 :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겁니까?
은수 : 그 두 개가 뭔지 몰라도 이것들하고 같이 남겨진 거라면 당연히 내가 알죠. 내 세상의 것들인데.
가르쳐 드려요?
기철 : 알고 싶다면?
은수 : 우달치 최영. 살려줘요.
기철 : (보다가 소리 내어 웃는다) 우달치만 의선을 연모하는 것이 아니라
의선 또한 그 자를 마음에 두고 계셨습니까?
은수 : 그건 내 프라이버시니까 댁이 알 거 없고. 거래 할래요 말래요.
기철 : 거래 품목이 틀렸습니다. 의선이 내 사람이 된다면, 화타의 유물 따위야 당연히 설명해주겠지요.
그러니 이렇게 거래를 해야죠. 의선. 마음을 내게 주어 내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럼 최영, 목숨은 살려보지요.
은수, 말이 막혀서 기철을 본다.
기철, 녹슨 도구들 중에 메스를 하나 들어 만지작거리면서 은수를 보고 있다.
#33. 전법옥
기원이 들어서고 간수 둘이 안내를 한다. 최영이 갇혀있는 옥 앞에 도착한다.
옥 안을 들여다보는 기원과 간수들.
기원 : 아직도?
간수 : 예.
기원 : 계속?
간수 : 예에.
옥 안에는 최영이 대자로 누워 자고 있다.
간수 : 어제 들어온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안 깨고 자고 있습니다. 먹지도 않고 싸지도 않고 계에속..
문득 최영이 이쪽으로 돌아눕는다.
구경하고 있던 기원과 간수들이 움찔하는데
이쪽으로 돌아누운 최영은 아주 깊은 잠에 빠져있다.
그렇게 잠든 최영의 얼굴에 부친 최원직의 소리..
부친소리 : 아직 못 찾았느냐.
#34. 최영의 꿈 / 호수
얼어붙은 호수가 아니라 여름의 맑은 호수다.
그 호숫가에 최영이 혼자 서있다.
무거운 갑옷을 겹겹이 차려입고 있다. 겨울 꿈에서 입었던 그 무거운 갑옷이다.
최영이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다 저만치 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은 부친을 본다.
부친은 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부친이 최영을 돌아본다. 미소.
부친 : 지금쯤은 찾았어야지.
최영 : (멍한 기분) 아버지.
부친 : (혀를 차며) 아직도 못 찾았어?
최영 : .. 제가.. 뭘 찾고 있었지요?
하며 부친 쪽으로 두어 걸음 옮기는데. 그대로 밑으로 빠져든다.
#35. 최영의 꿈 / 물속
물속이다. 최영이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 물 속으로 빠져든다.
허우적대고 있다. 갑옷이 너무 무거워 물 위로 떠오르질 못한다.
숨이 막혀가며 갑옷을 벗느라고 쩔쩔맨다. 결국 꼬르르 가라앉아 가는데..
#36. 최영의 꿈 / 호수
땅에 엎어진 최영이 캑캑거리며 숨이 막혀가며 허우적대다가 문득 멈춘다.
여긴 물속이 아니라 땅 위다. 자기 옷을 만져본다. 젖은 데 없이 말짱하다.
멍해서 고개를 드는데 바로 앞에 쭈그려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부친.
부친 : 무얼 하고 있느냐.
최영 : (어리벙해서 주위를 둘러보며) 언제 얼음이 녹았습니까.
부친 : 무슨 소릴 하는 게야.
최영 : 여기 이 호수. 모두 얼어붙어 있었잖아요. 근데 언제 이렇게 다 녹았습니까?
부친 : 녹긴 무엇이 녹아. 이 호수는 아직껏 한 번도 언 적이 없는데. 보아라. 여긴 늘 이랬잖느냐.
최영이 둘러보는 호수. 맑은 물. 그 위의 청명한 하늘.
#37. 전법옥 안
눈이 번쩍 떠지는 최영.
옥 안. 쇠사슬로 묶인 자신의 팔다리. 차가운 바닥. 쥐 한 마리가 최영의 팔을 지나 기어간다.
최영, 그대로 천정을 보며 누워있다.
#38. 궁안 회랑
공민왕이 걸어오고 있다. 그 뒤는 안도치가 따르고 주위는 지키는 금군들.
공민왕은 혼자 생각에 잠겨있다.
주석소리 : 우달치 중랑장 최영, 아직 전하께서 내리신 임무를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공민왕이 멈춘다. 안도치가 눈치를 보며 선다. 금군들도 선다.
공민 : 내가 준 임무를 다하지 못하였다...
#39. 회상/ 3부 #44 강안전 (공민왕 침전)
최영 : (품을 뒤져 봉서를 하나 꺼내 내용을 펴서 두 손으로 바친다)
공민 : (무언가 해서 받아 펼쳐보는) 무엇인가.
최영 : 선왕이신 경창부원군께 받은 것입니다. 원에서부터 전하를 모시고 오는 것이 저의 마지막 임무라는 것.
전하를 무사히 개경으로 모시고 오면 우달치 직을 사임하고 궁을 나가
평민으로 살아도 좋다는 허가서입니다.
#40. 궁 회랑
서있던 공민이 다시 걷기 시작한다. 모두가 따른다.
그러다가 아.. 하며 서는 바람에 모두 멈춘다.
#41. 회상/ 3부 # 47 강안전 (공민왕 침전)
공민 : 내가 주는 임무를 하나 더 완수하면 (손에 든 허가서를 흔들어보이며) 그때 가서 이것을 생각해보지.
최영 : 전하. 그게 선왕이신 경창 부원군께서..
공민 : 그대는 지금 선왕과 현왕. 누구의 명을 따르겠다는 건가.
#42. 회랑
공민이 갑자기 돌아서더니 안도치의 옷깃을 움켜잡는다.
안도치가 놀라서.
안도치 : 전하.
공민 : 그 자는 선왕이 아니라 내 명을 따르고 있었어.
어리둥절한 안도치를 놔두고 공민이 빠른 걸음으로 대전을 향해 걸어간다. 어쩐지 환해진 얼굴.
공민 : 그랬어. 그랬던 거였어.
#43. 선인전 (편전)
중신들이 가득이 모여 있다. 조일신과 자운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기철은 보이지 않는다.
삼삼오오 숙덕거리느라 장내가 소란한데 옥좌 쪽에서 들리는 소리.
안도치소리 : 주상전하 드십니다.
중신들이 분분이 일어선다.
빠른 걸음으로 옥좌로 다가오는 공민. 그 뒤를 우루루 따르는 금군들이 뒤쪽으로 주욱 포진하는데.
공민은 앉지도 않은 채.
공민 : 말씀하세요.
뭔 소린가 해서 당황하는 중신들.
조일신이 헛기침을 하며.
일신 : 전하. 조정 대신들이 한마음이 되어 상의한 바..
공민 : 앞에 말 건너뛰고 본론만 하세요.
일신 : ..역도 최영의 일이옵니다. 자고로 대역죄가 발각이 났을 경우에는
천둥처럼 엄중하고 벼락처럼 빠르게 처리하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야 역도들이 증거인멸이나 도주를 하기 전에 발본색원해서 훗날에..
공민 : 합시다.
일신 : .. 전하.
공민 : 천둥처럼 엄중하고 벼락처럼 빠르게 친국을 하지요.
일신 : 친국입니까? 전하 그것은 아무래도..
- 자막 친국(親鞫] : 임금이 중죄인을 친히 국문(鞫問)하는 제도
공민 : 왜요. 과인이 친국 정도 거행치 못할만큼 무능해보여서요?
일신 : (얼른 조아리며) 당치도 않습니다.
소신이 우려하는 바는 전하께서 그런 사악하고 거친 놈을 직접 대하신다는 것이..
공민 : 과인은 그런 사악하고 거친 놈에겐 상대가 안되보여서요?
일신 : (쩔쩔매며 더욱 조아려) 전하 어찌 그리 망극하오신 말씀을..
자운 : 전하. 우달치 역도의 문초라면 언부에서 준비하고 있사옵니다. 전하께선 그저 하명만 해주시면..
공민 : 하명하고 있잖아요 지금. 내가 하겠습니다. 역도 최영의 친국.
하더니 대신들 사이를 빠르게 걸어간다.
일신이 당황해서 쫓으며.
일신 : 전하 어디 가십니까.
공민 : (빠르게 걸으며) 잘되었군. 참리가 안내하세요. 역도 최영이 지금 있는 곳.
자운 : 전하아.
자운이 급히 공민의 앞을 막아설 기세이자.
공민 : 왜요. 중신들이 모두 모인 이 자리에서 과인을 막아서기라도 할 생각입니까?
자운 : (어쩔 수 없이 옆으로 피하며) 망극하옵니다.
공민 : 갑시다. 친국하러.
공민은 놀라고 있는 중신들 사이를 지나 대전 문을 제 손으로 활짝 열더니 긴 회랑으로 나서고 있다.
저 뒤에 포진했던 금군들도 우왕좌왕 쫓아 나오고 있다.
#44. 전법옥 앞 언부
간수며 관리들이 다급하게 뛰어나온다. 기원이 앞장을 서고 있다.
공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그 옆과 뒤를 부지런히 따르고 있는 일신. 자운. 안도치, 금군들..
기원 : 전하. 어찌 이 험한 곳까지..
그러나 공민은 기원의 옆을 지나쳐 문으로 간다. 일신이 급히 따르며
일신 : 전하. 나라에는 국법이 있고, 언부에는 형법이 있사옵니다.
친국을 하시려면 그에 걸맞는 법도를 따라 일시를 정하고 형장을 갖추고 그리고..
그러나 이미 공민은 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45. 전법옥 내부
최영이 갇혀 있는 옥 앞. 당도한 공민이 멈춘다.
창살 너머 그 안에는 가부좌를 틀고 벽에 기대 앉아있는 최영.
공민이 도달하고 그를 따르는 일행이 우루루 소란스럽게 들어왔는데도 눈을 감은 채 꿈쩍도 않고 있다.
일신 : 전하아.. 이것이 아니옵니다. 전하.
그 소리에 눈을 뜨는 최영. 옥 창살 밖에 서 있는 공민.
최영이 일어선다. 요란하게 소리가 나는 사슬.
최영이 공민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다.
공민 : 문을 열라.
일신 :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저 흉악한 자를 어찌 가까이서 보시려 하십니까. 전하.
공민 : 저렇게 사슬로 묶어놓았는데?
(기원을 보며) 얼마나 부실한 사슬을 사용했으면 우리 참리가 이리도 펄쩍 뛰시는가.
기원 : 덕성부원군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습니다.
죄인 최영은 내공을 익힌 자라, 일반 사슬로는 안심이 안된다..
하여 특별한 강금으로 만들어진 사슬로 묶어놓았답니다.
공민 : 특별한 강금이라.. 믿어도 되겠는가요.
기원 : (후다닥 옥안의 한쪽 벽에 걸려있던 사슬을 가져 오며) 만져보시옵소서.
연경의 일류 대장장이가 만든 것이온데 일반 사슬보다 강도가 열두배 세다 하옵니다.
공민 : (받아들어 만져본다) 뭔가 다르긴 하오.
기원 : 그러하옵니다. 이 사슬로 말씀올립자면..
공민 : 그럼 이제 옥문 정도는 열어도 되지 않겠는가.
최영, 말없이 그들을 보고 서있다.
기원이 얼른 간수에게 신호를 보내고 간수가 옥문을 연다.
순간 공민왕이 옥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아버린다.
일신 등이 기겁을 해서 옥문으로 달려들며 전하아.. 부르는데.
공민은 안에서 들고 있던 사슬로 문을 감아버린다.
기원이 절컥절컥 문을 당겨보지만 꼼짝도 않는다.
공민이 밖에서 떠드는 이들을 향해.
공민 : 조용히 하시오. 내 이제부터 친국을 할 것이니 다들.. 조용히.
공민이 최영의 앞으로 겁도 없이 다가가자, 일신이 기절하기 직전으로 소리 지른다.
일신 : 멈추십시오. 전하. 위험합니다. 그 흉악한 놈이..
그러나 거리낌 없이 최영의 바로 앞까지 다가서는 공민.
일신을 비롯한 주위 인물들이 숨을 멈추고 보는데.
최영이 절도 있게 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린다.
그런 최영을 공민이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누르며 보고 있다가. 낮게 묻는다. (옥 밖의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공민 : 내가 준 임무를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했나요?
최영 :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공민 : 그 말은. 내가 준 임무를 아직 수행하고 있다는 뜻.
최영 : 그렇습니다.
공민 : 내가 준 임무는 두가지였어요.
#46. 회상/ 3부 #47. 강안전
공민 : 증거를 찾아오세요. 선혜정에서 독살당한 중신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리하였는지. 증거를 찾아와요.
#47. 전법옥 안
최영 : 독살당한 증거라면 이미 찾아 올렸습니다.
공민 : 그럼 그 두 번째.
#48. 회상/ 3부 #47. 강안전
공민 : 내가 누구와 왜 싸워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줘요. 그게 현 왕인 내가 내리는 임무입니다.
#49. 전법옥 내부
최영 : 그 증거에 따라 누구와 싸우셔야 하는지는 이미 아실 것입니다.
허나.. 전하께서 왜 싸워야 하는지는 신이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공민 말없이 최영을 본다.
// 옥 밖에서 귀를 창살에 대고 공민과 최영의 이야기를 엿들으려고 애쓰는 기원. 옆의 일신에게.
기원 : 들립니까? 전하께서 뭐라시는지. 최영이 저 놈이 뭐라는지 좀 들려요?
그러나 일신은 질투와 분노로 떨며 공민을 보고 있다.
일신의 시각에서 보이는. 최영의 앞에 바싹 다가 서있는 공민.
그 앞에 한 무릎을 꿇은 채 공민을 올려다보고 있는 최영.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듯한 그들.
그들 뒤에서 자운이 빠른 걸음으로 옥을 나가고 있다. 기철에게 보고를 하러 가려는 것.
// 옥 내부
공민 : 내가 준 임무를 다 마치면 궁을 떠날 수 있게 해주겠다. 그리 언약했었지요.
최영 : 그러셨습니다.
공민 : 그러니 내가 왜 싸워야 하는지를 알아내기 전까지, 그대는 나를 떠나지 못해. 그렇지요?
최영 : 그것이 전하께 드린 저의 언약이었으니까요.
공민 : 그래.. 그랬어. 그대는 그렇게 언약을 지키는 사내였어. (어리려는 눈물 삼키고) 우달치 최영.
최영 : 예 전하.
공민 : 나는 내가 왜 싸워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
최영 : ... (담담) 그러십니까.
공민 : 나는, 내가 왜 싸워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그러니 그대는 나에게 어찌 싸워야 되는지 가르쳐주겠어요?
최영 : (난처해서) 전하 그것은..
공민 : 그래. 내 언약을 어기는 거에요. 나도 알아요. 알지만 묻는 거야. 내 옆에 남아 주겠어요?
최영 : (웃는) 저는 대역죄인으로 옥에 갇혀 있는 몸입니다.
공민 : 그대는 이대로 역적이 되어 죽어버릴 생각이야? 그게 원하는 건가? 그럼 끝난다는 거야?
최영 :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인다)
공민 : 나에게 가르쳐줘. 어찌 싸워야 되는지. 내가 그대를 구해낼 수 있게.
최영 : (여전히 고개 숙인 채)
공민 : 나는 여기에 이렇게 올만큼 그대를 믿는데. 그대는 아직 나를 믿지 못하는 건가?
아직도 고개 숙이고 있는 최영.
그런 최영을 안타까워 보다가 공민이 최영의 어깨에 손을 짚어 더 가까이 하여..
공민 : 의선을 덕성군에게 보낸 건.. 그것만이 의선의 안전을 지키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랬어요.
내 옆에 있으면 그 분이 다치니까. 내가 힘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어서..
그제서야 최영이 고개를 들어 공민을 본다. 가까이서 서로 마주보는 최영과 공민.
최영 : 그분.. 그 집에서 안전하십니까?
공민 : 확인해볼 방법이 내겐 없어요.
#50. 기철 집안 별채 앞 정원
자운이 부지런히 들어선다. 별채 문으로 이동하려는데 그 앞을 가로막는 천음자.
자운 : 부원군 나리께 급히 보고 드릴 게 있소이다.
천음자 : 그 어떤 급한 일이 있어도 방해를 말라.. 하셨습니다.
자운 : 허지만 이것은..
천음자 : 사랑채에 가서 기다리시지요. 때가 되면 부를 것이니.
자운 답답해서 별채를 본다.
#51. 별채 내부
기철이 어이없어서 보고 있다. 그 옆에 화수인도 어이없어 웃으며 보고 있다.
탁자에 둘러앉은 기철과 화수인. 그리고 은수.
탁자에는 술상에 거하게 차려져 있다.
은수가 서서 폭탄주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큰 술잔 세 개를 주루루 늘어놓고. 작은 잔도 세 개 주루루 늘어놓고
술병 하나를 들어 작은 잔에 능숙하게 따르며.
은수 : 그러니까 이게 제일 독한 술이다 이거죠.
화수인 : 독하죠. 내가 불 낼 때 가끔 쓰기도 하니까.
은수 : (다른 술병 들며) 요건 좀 순한 거고.
화수인 : (턱까지 괴고 재미있어서) 애들도 가끔 소화제로 마시는 거.
은수 : 오케이 그럼..
순한 술은 큰 잔에 능숙한 솜씨로 따르더니 작은 잔들을 큰 잔 속에 퐁당퐁당 넣는다.
둘러보고 옆에 장식된 잎사귀를 내프킨 대신으로 컵에 덮더니 노련하게 돌리며.
은수 : 회오리..를 보여드리고 싶은데 유리컵이 아니라서 안 보이네.
뭐 아쉬운대로 제조된 폭탄주 되겠습니당. 자 한잔씩. (술 나눠주고)
그리고 법도에 따라 첫잔은 원샷에 파도타기입니다. 나 먼저.
하더니 자기 잔을 다 마셔버린다.
은수 : 크으.. 죽인다. 다음. 거기 언니.
화수인이 웃더니 자기 잔을 원샷한다. 으으.. 독하다. 콜록거리며 기침을 한다.
은수 : (기철을 보며) 아저씨, 아니지. 나리. 뭐해요.
기철이 말없이 은수를 보고 있다가.
기철 : 술이 아니라 마음을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은수 : 자꾸 마음마음 하시는데요. 사람의 마음이란 게 무슨 명품 백이 아니잖아요.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이 가진 거 강제로 뺏어봤자 지 것이 되는 게 아니라고. 안 그래요?
(떠들면서 자기의 두 번째 폭 탄주 제조) 치어스. (하더니 또 주욱 마신다)
화수인 : 뭐야. 의원이 아니구 술꾼이었어? (웃는)
은수 : (기철에게) 나리. 내 마음 갖고 싶대매. 그러면서 내가 준 술도 못 받으면 안되지.
기철 : (보다 술을 들어 단숨에 마신다)
은수 : 오오케이. 술잔 줘요. 내가 두잔까지는 서비스로 말아준다.
하며 화수인과 기철의 빈 술잔을 거둬 가는데. 그 손목을 잡는 기철.
기철 : 상대가 왕이든. 하늘에서 온 의원이든. 나를 가지고 장난치는 건 내가 못 참습니다.
그런 건 평생 용납해본 적이 없어요.
은수 : 이하동문. 나 역시 내 마음 장난으로 누구한테 못 줘요.
내 마음이 갖고 싶으면 그만큼 노력을 하시라고.
기철 : 그래서 그 노력이란 게 술을 마시는 거다.
은수 : 머리 나쁘고 실력 없는 애들이 똑같은 말 여러번하게 만드는 거에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설명해줄게요. 나같은 여자의 마음을 갖고 싶으면
우선 일주에 한번 이상은 같이 술을 마셔야 되요. 오가는 술잔 속에 싹트는 소통. 몰라요?
기철 : (대체 어찌 상대해야 될지 몰라 보는데)
은수 : 손목을 잡는 건 한참 뒤라니까... 요.
기철 .. 소리내어 껄껄 웃으며 은수의 손목을 놓아준다.
#52. 전법옥
이제 모두 가버린 옥 내부. 몇 명의 간수들만 남아서 몇은 한쪽 구석에서 장비를 손보고 있고.
한명의 간수가 기웃해서 옥 안을 들여다본다.
거기 혼자 벽에 기대 앉아있는 최영.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시선을 돌리고 동료들에게 가려다가 간수가 어라..해서 다시 본다.
최영의 한쪽 팔목으로 피가 주르르 새어나오고 있다.
간수1 : 뭐야 저거.
다른 간수가 돌아본다.
간수2 : 뭐.
간수1 : 저거 피 아냐?
그 말에 다른 간수들도 옥 안을 본다.
최영의 팔목에서부터 흘러내린 피가 바닥에 흐르고 있다.
간수2 : 저거 팔목 땄다. 팔목 딴 거야.
간수1 : 아씨 죽으면 안되잖아. 그럼 우리가 죽어. 문 따. 열쇠.
소란을 떨며 간수들이 문을 열고 옥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서도 미처 최영의 가까이로는 가지 못하고. 문가에 몰려서서.
간수2 : 죽은 거 맞아?
간수1 : 죽으면 안된다니까.
간수2 : 누가 좀 가봐.
간수1 : 사슬 잡아. 당겨봐.
간수들이 우루루 나뉘어져서 사슬을 네 방향으로 잡아당긴다.
남은 간수1이 창을 겨눠들고 조심조심 최영에게 다가서는데.
순간 고개를 드는 최영. 똑바로 간수1을 보고 있다. 살아있다.
당겨어. 소리지르며 기겁을 해서 사슬을 잡아당기는 간수들.
두 팔과 다리가 당겨져 벌어지는 최영. 입가에 슬쩍 미소가 지나가는가 싶더니 진기를 일으킨다.
두 손에서 모아진 전기. 뇌공. 지직지직.
두 손에서 시작해서 쇠사슬을 타고 뻗어가고 두 다리로 이어져 사슬로 이어진다.
사슬을 부여잡고 있던 간수들. 강한 감전 현상을 보이며 부들부들 떨다가 기절해서 쓰러진다.
간수1. 기겁을 해서 돌아서 도망치려는데.
최영이 휘릭 날린 사슬이 그의 목을 감아 당긴다.
히엑.. 놀라 돌아보는데 그의 목을 감싼 최영이 조용히 이른다.
최영 : 미안하네. 잠시들 쉬고 있어.
급소를 짚었는지 간수1이 기절하며 무너져 내린다.
최영, 간수의 허리춤을 뒤져 열쇠를 꺼내더니 손목의 사슬을 푼다. 절컹 풀려서 바닥에 떨어지는 쇠사슬.
최영이 팔목을 털자 옷소매에서 굴러 떨어지는 죽은 쥐. 피는 쥐의 것이었다.
#53. 전법옥 앞
문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간수 두 명. 문 안쪽에서 두들기는 소리.
간수 중에 하나가 뭔가 해서 문 쪽으로 가까이 간다.
반쯤 문이 열리며 안에서 어떻게 했는지, 간수가 문 안 쪽으로 기우뚱 사라진다.
남은 간수가 이상해서 기웃해서 본다.
문 안 쪽에서 수욱 나오는 손. 간수의 목덜미를 움켜잡는다.
다른 손이 목의 맥을 짚어서 소리도 못 지르고 질질 끌려들어간다.
잠시 후 활짝 열리는 문. 최영이 나서는데 잠깐 햇살이 눈부시다.
#54. 기철의 집 대문 앞
사병들에 의해 대문이 활짝 열리고 있다.
기철과 은수가 나온다. 그 뒤를 호위하며 따라 나오는 천음자와 사병들.
은수가 뒤를 돌아보며 총총 기철을 따라 걸으며.
은수 : 이게 아닌데.
기철 : (즐거운 얼굴) 하늘 여인의 마음을 잡기 위해선 이렇게 데...
은수 : 데이트.
기철 : 그걸 해야 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은수 : 데이트란 건 원래 둘이만 하는 거에요. 저렇게 줄줄 누가 따라다니면 안되지.
기철 : 안됩니까.
은수 : 저렇게 보는 눈이 많으면 진도를 나갈 수가 없잖아요.
기철, 미소로.. 은수의 속을 가늠하며 보는.
은수 : 아니 뭐. 내가 진도를 나가겠다는 건 아니고. 법도가 그렇다구요.
기철이 뒤를 향해 손짓을 하여 따르는 자들을 멈추게 한다.
천음자가 맘이 안 놓여서 앞으로 나서는데. 기철이 고개를 저어 멈추게 한다.
은수와 나란히 걸으며.
기철 : 개경 저자거리 구경을 하고 싶다 하셨지요.
은수 : 그렇죠. 관광은 일단 시내부터 하는 거니까.
기철 : 저자로 가는 길을 좀 돌아가겠습니다. 물과 꽃이 있는 곳으로.
은수 : (자기 딴에는 몰래 주위를 살피며..) 물.. 꽃.. 좋죠.
기철, 그런 은수의 기색을 다 읽고 있다. 웃으며 손을 뻗어 방향을 안내한다.
// 이만치 지붕 위의 먼 시선에서 보이는 그들. 최영이다.
묵묵히. 지붕 골에 들어 선 채 기철과 은수를 보고 있다.
최영의 시선에서 보이는 그들. 대화의 내용은 들리지 않으나 은수가 기철에게 뭔가 재잘재잘 떠들고 있고,
기철은 즐거운 듯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55. 야외 호숫가. 혹은 연못가 언덕 위 / 저녁
노을이 물드는 호수를 배경으로 저 멀리 아래 보이는 기철과 은수. 나란히 걷고 있다.
이만치 언덕 나무들 사이. 그들과 평행으로 같은 속도로 걸어가고 있는 최영.
뭔가 얘기하고 있는 은수의 모습이 지나쳐 가는 나무에 가려져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56. 호숫가
기철이 은수를 돌아보며.
기철 : 왕이 없다.
은수 : 없어요.
기철 : 그럼 누가 백성을 다스립니까.
은수 : (계속 주위를 살피고 있다. 도망갈 루트 찾는 중) 대통령이요.
기철 : 그건 어떤 왕입니까.
은수 : 왕하고는 다르죠. 왕은 지 아버지가 왕이면 그 아들이 왕. 이런 거잖아요.
그런데 대통령은 몇 년에 한번씩 모든 백성이 뽑는 거에요.
그냥 똑같은 백성들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사람으루요.
기철 : 백성들이 어찌 압니까. 누가 왕의 재목인지 지들이 어찌 알아서..
은수 : 그러니까 선거유세란 걸 하는 거죠. 난 이런 인간이다. 날 대통령으로 뽑아주면
여러분을 위해서 이런 걸 할 거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설명도 하고 공약도 내걸고..
기철 : (소리 내 웃는)
은수 : 왜 웃어요. 혹시 술에 취하면 자꾸 웃는 타입이신가.
기철 : 수십 수만의 사람들이 저마다 내가 왕을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떠들어대는 꼴을 생각해봐요.
참으로 우습지 않습니까.
은수. 고개를 돌리다가 멈칫. 저 앞에 한 무리 피어있는 꽃. 저도 모르게 다가선다.
강화 군수의 집에서 최영에게 꺾어 주었던 그 꽃이다.
기철이 그새 눈치를 채고 묻는다.
기철 : 이 꽃을 좋아하십니까.
은수 : 그냥.. 아는 꽃이라서요..
#57. 언덕 위
최영이 내려다보는 저 아래. 은수가 꽃 앞에 서서 꽃을 내려다보고 있다.
최영이 기웃해서 보다가 문득 보면 자기 발아래 옆에도 그 꽃이 피어있다.
#58. 호숫가
기철이 꽃을 꺾으려고 허리를 숙이다가 문득 멈춘다. 기척을 느꼈다. 돌아본다.
저만치 말을 달려오는 자운. 기철이 그쪽으로 간다.
은수 혼자 남았다. 얼른 주위를 둘러본다.
#59. 언덕 위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최영이 본다.
은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기철 쪽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멀어지고 있다.
불안하다.
은수에게서 떨어진 기철은 말에서 내리는 자운과 만나고 있다.
순간 은수가 냅다 도망쳐 달리기 시작한다.
최영, 한심하고 불안해서 본다. 저도 모르게 움직여 그쪽으로 가려다가 옆의 나무 뒤로 얼른 숨는다.
저 아래 기철이 은수를 돌아보고 있다. 은수는 이미 코너를 돌아 달리고 있다.
기철이 딱해서 은수가 가는 쪽을 본다.
#60. 호숫가 언덕길
은수가 달리고 있다. 언덕 위로 달려 올라간다. 달리며 뒤를 돌아보지만 기철은 아직 쫓아오는 기색이 없다.
헉헉대며 넘어질 뻔 하며 가파른 길을 올라간다.
#61. 호숫가
아직 자운과 함께 서 있는 기철. 은수의 도망을 알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기철 : 주상이 제 발로 옥까지 가는 동안 궁에 넣어놓은 순군들은 뭘 하고 있었는가.
자운 :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미리 계획이라도 해놓으신 듯 창졸간에 벌이신 일이라..
기철 :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자운 : 듣지 못하였습니다.
기철 : (생각해보는) 둘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자운 : 혹.. 전하께서는 최영 그 자를 놓아주려 하시는 게 아닐까요.
기철 :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자운 : 그럼 최영이 탈옥이라도 할 생각일까요.
기철 : ... 그렇게 되면 끝이라는 걸 그자도 알 것이야.
어명으로 가둔 옥에서 탈옥이라니. 그럼 마지막 명분도 없어지는 것.
자운 : (기철의 뒤를 흘낏거리며) 그런데 저기.. 의선께서 더 멀리 도망치시기 전에..
기철 : 잡아드려야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며) 그대는 상상이나 해보았는가.
저런 예측불허의 여인을 말이야.
자운 : 아무래도 땅에 속한 분이 아니시라..
기철 또 소리 내어 웃는다.
#62. 언덕길
은수가 달리고 있다. 뒤를 돌아보느라고 또 넘어질 뻔 한다.
// 이만치 평행으로 달리며 은수를 보는 최영. 은수가 넘어질 뻔하자 움찔.
결국 엎어지는 은수.
// 억지로 일어난 은수가 절뚝거리며 언덕을 기어 올라간다. 울고 싶은 심정.
두리번두리번. 여기가 어딘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올라가는 언덕의 끝. 그 밑은 가파른 비탈길인데 은수는 주위를 둘러보느라 못 보고 있다.
뒤를 돌아보며 진행하는 은수. 그리고 비탈길에 발을 헛딛는다.
비명을 지르며 미끄러져 내리는 순간. 바람처럼 뒤에서 다가선 그림자가 은수를 잡아 채 올린다.
은수는 그가 기철이라 생각하며 돌아볼 생각도 없이
잡은 손을 뿌리치고 그냥 도망치려 하다가 또 넘어질 뻔 한다.
다시 은수의 허리를 잡아채어 당기는 손, 그대로 뒤에서 안고 있다. 최영이다.
은수 : (가쁜 숨. 겁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지만) 놔요.
뒤는 소리가 없다.
은수 억지로 빠져나가려 하지만 더 굳게 감싸는 팔. 돌아보지도 못하게.
은수 : 이봐요 나리. 난 그냥 어디까지 도망갈 수 있나 해본 거에요. 미안해요. 그니까.. 놓으라구.
잠시 후 은수의 허리를 감았던 손이 떨어져 나간다.
은수가 가쁜 숨을 내쉬다가 쭈삣거리며 돌아본다. 이미 뒤에는 아무도 없다. 어라.. 하는데.
다른 방향에서 들리는 소리.
기철 :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은수가 놀라서 돌아본다. 거기 다가오고 있는 기철.
은수. 이해할 수가 없어서 다시 뒤를 돌아본다. 뭔가 이상하다.
그런 은수의 기색을 귀신같이 눈치 채는 기철.
은수의 발밑을 본다. 거기 맨땅이 드러난 부분. 기철이 다가와 쭈그려 앉아 살핀다.
은수의 발자국과 함께 찍혀져 있는 사내의 발자국.
기철이 은수를 본다.
기철 : 누가 왔었습니까?
은수.. 그 질문에 깨달아지는 익숙한 느낌.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 찾아본다. 아무도 없다.
#63. 기철의 집 대문 앞 / 늦은 저녁
말이 달려온다. 말에는 기철이 은수와 함께 타고 있다.
사병들이 급히 대문을 연다. 그 대문으로 계속 말을 달려 들어가는 기철.
#64. 기철 집 중앙 마당
말에서 뛰어내리는 기철.
안에서 달려 나오는 기원. 양사. 천음자.
기원이 호들갑스럽게 고한다.
기원 : 그 놈이 탈옥을 했습니다. 간수놈들을 죄 기절시키고 그놈이..
아직 말에 앉아있는 은수는 아랑곳없이 기철은 빠르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기철 :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나.
양사 : 궁에 넣은 애들 빼고, 순찰 보낸 애들 빼면..
기철 : 바로 집합시켜. 당장.
양사 : 알겠습니다. (이동하려다가) 어디로 보내실 겁니까?
기철 : 내가 그 놈이라면.. 부하들을 데리러 갔겠지. 우달치 병영이다.
#65. 우달치 병영 내 / 밤
대문이 밖에서부터 벌컥 열린다. 열림과 동시에 우루루 뛰어 들어오는 사병들.
기원이 지휘하고 있다. 그러다 멈칫 선다.
그들 앞에 우달치 병력이 정연하게 열중쉬어로 늘어서 있다.
맨 앞에 서 있는 충석. 무기를 꼬나들고 들어서는 사병들을 같잖다는 듯 보고만 있다.
기원 : 내부 수색을 할 것이니 그동안 누구도 꼼짝도 해선 아니될 것이다.
사병 중의 일부는 우달치군들에게 활을 겨누고 나머지는 사방으로 흩어져 들어간다.
#66. 강안전 앞 회랑/ 밤
장빈과 약원이 향로 같은 것이 담긴 쟁반을 각각 받쳐 들고 오고 있다.
강안전을 지키고 있는 금군들. 익숙한 일이라 그저 보기만 하고 막지 않는데.
장빈과 약원은 걸어오며 스윽 목에 둘렀던 두건을 위로 올려 입과 코를 막는다.
장빈과 약원이 향로의 뚜껑을 스윽 연다. 모락모락 향로에서 피어져 나오는 연기. 사방으로 퍼진다.
금군 중에 하나가 이상해서 돌아본다.
금군 : (나서며) 그건 뭐요.
장빈 : 양금화에 초오와 유향. 제조비법은 비밀.
장빈이 대답하며 향로를 묻는 금군의 코 앞으로 스윽 밀어 보여준다.
장빈 : 효과는 이와 같습니다.
들여다보던 금군이 스르르 정신을 잃으며 주저앉는다.
이미 회랑 가득이 퍼져나가고 있는 향.
어라.. 돌아보던 다른 금군들도 하나씩 둘씩 주저앉는다.
그들 사이를 덤덤하게 걸어가는 장빈과 약원.
잠시 후 후드?를 내려쓴 최영이 그 뒤를 따른다.
최영을 따르는 대만. 둘 다 입과 코를 두건으로 막고 있다.
금군 중의 하나가 미처 약기운에 혼절하지 않고 꿈틀거리자,
대만이 지나가는 길에 머리통을 쳐서 확실히 기절시킨다.
#67. 강안전 (공민왕 침전) 내부
문 옆에 붙어선 주석이 문을 연다. (안도치와 주석은 안에서 공민을 지키고 있었다는 설정)
그 문으로 들어서는 장빈과 약원. 그리고 뒤이어 들어서는 최영.
주석이 울컥 반가워서 본다.
최영은 안쪽을 본다. 거기 탁자 앞에 공민왕. 최영을 보고 있다.
최영 : (낮게 주석에게) 밖을 지켜라.
주석 : 예 대장.
주석이 소리없이 나가고. 밖에 남은 대만이 문을 닫아주고,
최영이 조용히 공민에게 다가서 예를 올린다.
최영 : 전하. 우달치 최영이 뵈옵니다.
공민 : (벅차서 웃는) 이거야 원. 대역죄인이란 자가 드나들지 못하는 곳이 없구려.
최영 : (온화한 미소) 송구하옵니다만 한가지를 여쭙고 한가지를 답하고자 왔습니다.
#68. 우달치 병영 밖
말에 앉은 채 기다리는 기철과 양사. 천음자. 안에서 나오는 기원.
기원 : 최영이구 뭐고 뭐 이상한 게 없는데요. 우달치 놈들 무기가 될만한 건 이미 죄다 압수해놓았습니다.
해서 지금은 종이호랑이들이라..
양사 : 언부에 이르고 금오위에 전하겠습니다. 전군을 다 풀어 이 놈을 잡으라.
아니 감히 전법옥에서 탈옥을 꾀하다니. 발견 즉시 사살감이다. 그리 명을 전하겠습니다.
기철 : 주상이다.
양사 : 예?
기철 : 빌어먹을. 이 놈. 주상께 갔어.
하더니 그대로 말을 박차 달려간다.
#69. 강안전 (공민왕 침전)
공민왕과 마주한 최영. 둘 다 진지하다.
주위에서는 장빈과 안도치 등이 긴장하여 그들의 대화를 보는 중.
최영 : 감히 여쭙겠습니다. 전하께선 왜 싸워야 하는지 이미 알았다 하셨습니다. 왜.. 싸우려 하십니까?
공민 : 왕이 되기 위해서요.
최영 : 이미 왕이지 않으십니까.
공민 : 최영. 그대도 나를 왕이라 여기지 않으면서 그리 말하면 참으로 허무하지.
최영 : (잠시 보다가) 저보고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달라 하셨습니다.
공민 : 그랬어요.
최영 : 그 답을 올리겠습니다. 왕은 싸우는 분이 아닙니다.
공민 : 그 말은..
최영 : 왕은 가지는 분입니다. 한두명을 가지는 왕이 있고. 수천수만을 가지는 왕이 있을 뿐이지요.
우선 저를 가지십시오. 그러면 ... 싸움은 제가 하겠습니다.
#70. 강안전 회랑
기철이 좌우에 천음자 양사, 뒤에는 기원과 사병들을 거느리고 빠르게 온다.
코너를 돌자 거기 드러나는 모습.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져서 자고 있는 금군들. 심지어 코를 고는 자도 있다.
기철의 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71. 강안전 (공민왕 침전) 앞
안도치가 다가오는 기철을 보고는 놀라서 막아서는데. 그를 밀쳐내며 진행하는 기철.
안도치 : 전하아. 덕성부원군께서..
고하려는 안도치를 벽으로 밀쳐 꼼짝 못하게 하는 천음자.
그 앞에서 기철이 벌컥 문을 열어버린다.
#72. 강안전 (공민왕 침전) 내부
기철이 안을 본다.
내부에는 공민왕이 혼자 앉아 두루마리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나중에 쓰일 교지)
공민 : 이제야 오는 거요.
기철 : (방안을 둘러본다. 누가 숨어있을 공간은 없다)
공민 : 밖에 금군들. 덕성군께서 배치했다 들었는데. 맞습니까?
잠시 시험해봤는데 보세요. 저래서야 나를 어찌 지키겠습니까? 바꿔주세요.
하더니 계속 글을 쓴다.
보던 기철. 불끈하지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며.
기철 : 조처하겠습니다. 헌데 혹시.. 밖의 아이들을 저리 만든 것. 최영. 아니었습니까?
공민 : 최영이라니. 지금 옥에 들어앉아있는 그 자 말이오?
그대의 아우가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설마 무슨 사고라도 있었던 겁니까?
#73. 전법옥 내부
벽에서 흔들리고 있는 횃불.
기철이 혼자 들어선다. 내부에는 아무도 없다.
기철이 천천히 걸어와 옥 앞에 선다.
옥 안에는 최영이 편한 자세로 벽에 기대 앉아있다. 쇠사슬이고 뭐고 없이.
옥 창살 앞에 서는 기철.
기철 : 우달치. 최영.
최영 : 덕성부원군 나리.
기철 : 그러지 말지 그랬나.
최영 : (물끄러미 보는)
기철 : 그대 정도의 영민함이라면 이미 알았을텐데.
이 모든 것. 내가 그대를 아끼고 또 아껴서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
최영 : 이 모든 것이라 함은. 나를 대역죄인으로 만들고, 내 부하 아이들을 무장해제시켜 가두고,
... 경창군 마마께 독을 준 것을 말하는 겁니까?
기철 : 자네가 어느 쪽 왕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자네에게 고르라 한 것이었는데.
아.. 참 묻고 싶었어. 그래서 결국 경창군에게 독을 먹인 것은 자네였는가?
최영 : ... (보기만)
기철 : 내일쯤 자네의 역모죄 벗겨주고. 다음달 쯤에는 금군을 다 맡겨볼까 했다네.
좀 진득하게 기다리지. 어쩌자고 여인네를 찾아가니 어린 왕을 찾아가니 경거망동을 했어.
최영 : ...
기철 : 덕분에 며칠 더 골 아프게 되었어. 절차가 복잡해졌거든.
최영 : ...
기철 : 의선도 간곡하게 부탁을 하던데. 자네.. 어서 데려나오라고.
최영 : ...
기철 : 그러니 밀고 당기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세. 그럼.. (돌아서 가려는데)
최영 : 나리.
기철 : (보는)
최영 :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살아간다고.
근데 사실은 그게 아니지요. 난 죽어가는 거죠. 어차피 죽을 그날까지. 하루하루.
..그래서 말입니다. 난 되도록 조용하게, 점잖게 죽어가자고 마음먹고 있었거든요.
근데.. 나리께서 이렇게 착하고 말 잘 듣는 나를 자꾸 쑤셔댔단 말입니다.
잠 깨라고. 일어나라고. 살아보라고.
기철이 최영을 본다. 최영이 기철을 본다.
기철은 웃음기가 없는데. 최영은 시익 웃는다.
#74. 강안전 (공민왕 침전) / 밤
공민왕의 옆에서 안도치가 옥쇄를 내민다.
공민왕이 받아 방금 쓴 교지에 찍는다.
안도치가 다음 교지를 올려놓는다. 또 찍는다.
#75. 곤성전 (노국공주 침전) / 밤
문이 열리며 최상궁이 다급하게 고한다.
최상궁 : 주상전하 드십니다.
노국이 일어서 맞는다. 뜻밖이라 굳은 얼굴.
거기 공민왕이 들어서고 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서는 안도치.
안도치는 두 팔에 옷상자를 안고 있다.
노국 : (고개 숙여 보인다)
공민 : 야심한 밤에 찾아왔소.
노국 : ...
공민 : 청을 하러 왔습니다.
노국 : (고개 들어 보는)
공민 : 난 이제부터 용기를 내려 합니다. 얻고 싶은 자가 있어서요.
그 자를 가지려면 내 용기를 보여주는 게 먼저인 거 같아서요.
노국 : ....
공민 : 왕비께서 도와주셔야 이룰 수 있는 용기입니다. 도와주겠습니까?
노국 : (그저 빤히 보는)
공민 : 내가 밉고.. 한심하고.. 우습겠지만. 나도 이제 정면돌파라는 것을 해보려 해요. 도와주겠습니까?
노국.. 고개를 돌려 옆의 안도치가 들고 있는 상자를 본다. 다가서더니 상자의 뚜껑을 열어 본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 촤악 펼친다. 고려 식의 왕비 옷이다.
#76. 선인전 (편전)
가득 모여 있던 중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본다.
거기 문으로 들어서고 있는 기철과 은수.
은수는 기철의 옷과 비슷한 컨셉의 옷을 입고 있다. 희고 화려한 문양의.
그 둘이 들어서자 중신들 사이에 낮은 감탄이 흐르며 숙덕거림이 일렁인다.
기철이 은수를 안내하여 중앙의 그의 자리로 간다.
기철이 은수에게 고개를 기울여 뭔가를 속삭인다. 굳은 얼굴의 은수가 말없이 듣고 있다.
안도치소리 : 주상전하 드십니다.
모두가 앞을 향해 일어선다.
들어서는 공민. 옥좌의 앞에 가 선다.
공민의 시선이 은수에게 간다. 은수 난처해서 그 시선을 받는다.
공민이 기철을 본다. 기철이 여유있게 웃으며 슬쩍 고개를 숙여 보인다.
공민이 모두를 둘러보더니.
공민 : 이제 과인이 이 자리에 모인 중신들께 몇가지를 이를 것입니다.
그대들은 잘 보고 잘 듣고 각자 맡은 자리로 나가
각자가 맡은 백성 들에게 보고 들은 그대로 전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그 첫째.
하더니 공민이 갑자기 입고 있던 원나라 왕의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한다.
용포를 벗어 던지고. 모자를 들어 팽개치고. (몽타주)
중신들이 놀라 전하.. 이게 무슨.. 소란을 떨지만
아랑곳없이 옷을 다 벗어던지는 공민. 이제 하얀 속옷만 남았다.
그 때 뒤에서 나서는 안도치와 내관들이 각자 옷을 들어와 공민에게 입혀준다. (몽타주)
고려의 왕 조복이다. 황룡포를 입히고. 머리에는 익선관을 씌운다.
대신들이 놀라 우왕좌왕하는 사이.
소리 : 왕비마마 드십니다.
옆에서 최상궁 등이 모시고 나오는 노국. 고려 왕비의 옷을 제대로 차려입고 있다.
공민의 옆에 와서 선다.
일신이 앞으로 나오며 소리 지른다.
일신 : 사관은 기록하시라. 고려의 왕과 왕비께서 원의 호복을 벗어던지시고. 고려의 옷을 입으셨느니라.
왕께서는 황룡포를 입으시고 익선관을 쓰셨느니라.
기철이 자운을 보고 눈짓을 한다. 자운이 앞으로 나서며.
자운 : 전하. 어사대부 자운이 감히 아뢰옵니다.
공민 : (버럭) 과인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잖은가. 대신들은 잠잠하시오.
일순 조용해진 대전.
공민 : 그 두 번째. 지난 십년, 떠나 있어 알지 못했던 내 나라 고려의 실상을 은밀히 조사시키고 처리해 왔는 바.
그 임무를 시행해온 자들에게 그에 걸맞는 포상을 내리고자 합니다. 그들을 들게 하라.
대전 뒤의 문이 활짝 열린다. 모두 뒤를 돌아본다.
기철과 은수도 돌아본다.
활짝 열린 문 뒤로 주욱 뻗은 회랑. 그 회랑의 저 끝에서 그들이 오고 있다.
맨 앞에 최영이 서고. 그 양 옆을 충석과 주석이 모시고.
그들 뒤로 우달치의 대원들이 정규제복을 깔끔하고 위용있게 차려입고 저벅저벅 발을 맞춰 걸어온다.
놀란 은수가 그들을 본다.
최영과 그 부하들이 다가오고 있다.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