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가 같은 父子주례사
김정헌
2015년 1월 5일 아침 7시 30분경이었다. 업무를 보려고 컴퓨터를 켜려는데 휴대 전화 벨이 울렸다. 제수(사촌 동생 처)씨였다. “여보세요? 제수씨,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동생도 잘 지내고 작은아버님도 안녕하시며 조카들도 잘 지내고 있겠죠?” “예, 시 아주버님! 안녕하셨어요? 급한 말씀 좀 드리려고 이른 아침 전화 드렸어요.” “무슨 일인데요? 천천히 말씀하세요.” “큰조카(내 큰아들) 결혼식에서 큰아버님께서 주례하시는 모습을 좋은 인상으로 보셨다면서 제 딸(소영, 자신의 손녀) 결혼식에서는 아버님께서 주례를 보시겠다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얼마 전에 갑작스럽게 침해 기운이 생기셨어요. 어제 낮에는 신촌에서 주민 신고가 들어와서 모시러 갔었을 정도에요. 그래서 저녁에 큰아버님께 전화 드려 상황을 말씀드리고 주례 부탁을 올렸더니 시 아주버님을 추천하시네요. 1월 10일 14:00시인데 가능하시겠어요? 죄송해요. 갑자기 부탁드려서” 이런 사유로 결혼식 날짜 5일을 앞둔 때 소영(조카)의 결혼식 주례로 지명?을 받고 지난 1월 10일 주례를 선 일이 있다.
다른 얘기부터 하면 2009년 4월 아버님께서 큰손자(내 큰아들) 결혼식에서 주례로서 덕담을 하셨고, 얼마 전(2015.3.8.)에는 작은 손자(내 작은아들) 결혼식에서도 아버님께서 주례말씀을 해 주셨다. 두 손자 각각에게 결혼식 주례로서 덕담을 해 주신 아버님도 뿌듯해 하시고 가족과 일가친척들도 감사드리면서 흡족해 했다.
본고에서는 작은아들 결혼식 얘기와 조카의 주례를 섰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3월 8일 작은 아들 결혼식은 한학을 하신 90세 어르신(신랑의 조부님)을 주례로 모시고 현재 tv브라운관 등 각종 매체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가수 겸 탤런트(지현우 군)가 사회를 보았다. 게다가 2000년 전후 왕성하게 활동했던 the nuts 싱어(박준식 군)의 축가를 들으며 결혼식을 진행하였으니 고전과 현대문이 융합하는 모습처럼 자연스럽게 신․구세대의 소통을 연출한 결혼식이었다고 하겠다.
나는 시골 노인이신 아버지께서 강남 한복판 역삼동에 자리한 결혼식장에서 식장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힘찬 음성으로 손자와 손부에게 진정어린 말씀으로 덕담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여러 생각을 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지난 3월 8일 식장에 축하객으로 오셔서 신랑 할아버지께서 주례 말씀을 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신 분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60대 어른들은 신랑이 할아버님을 주례로 모신 것을 보니 효손이고 효자라며 칭찬하였고, 50대 중년층은 식장 입구에 화환 대신 친조부께서 직접 지으신 결혼 축하 한시 족자를 걸어놓은 것이 신선했다고 하였으며, 20-30대 젊은 층은 친 할아버지께서 한복과 두루마기를 입고 주례 서시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신랑이 탤런트처럼 잘생긴 미남이라고 신랑의 외모까지 칭찬하는 등 좋은 말씀들로 덕담을 해 주셔서 듣기 좋았고 고마웠다.
다음에 아버님과 나의 주례사를 적어 보았다.
□ 아버님의 주례 말씀
祝 孫兒禹經巹儀順成
嗈嗈鳴雁自然因이요
和氣融融百福新이라
婦順夫圓元理定이요
父慈子孝一門親이리라
奉先睦族宜當事요
安分修身總是眞이라
吉日良辰傳數語하노니
言忠行篤德名伸하라
乙未元月十八日 祖省庵金敎昌稿
□ 나의 주례사
(주례사에 앞서 신부 할아버지이시고 제 작은아버님께 신부 김소영 조카와 조병남 조카사위 주례를 보도록 허락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고 토요일 오후 바쁜 일정을 미루시고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하신 하객 여러분께 양가의 혼주를 대신해서 고마운 말씀을 올립니다.)
먼저 신랑 조병남 군과 신부 김소영 양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주례인 저는 신부가 어릴 때에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떨며 큰 사랑을 받던 예쁜 모습이 엊그제 본 것처럼 생생히 떠오릅니다. 또한 초․중․고 시절 다소곳하면서도 야무지게 생활하던 모습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그렇게 예쁘고 귀엽기만 하던 어린 소녀가 이렇게 어엿한 신부가 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고 자랑스럽습니다.
신부와 신랑은 중학교 때 같은 선생님 밑에서 함께 공부를 했던 동창생으로 중학교 졸업 후에 서로의 전공을 갖고 각기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생활하다가 훌륭한 신랑, 아름다운 신부로 만나 백년가약을 맺는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습니다.
결혼을 하는 자리이니, 오늘은 주례로서 어른이 되는 신랑, 신부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화목한 삶’을 이루어가기를 당부합니다.
과거에는 결혼을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반쪽과 반쪽의 결합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만 현대에는 온전한 사람과 또 다른 한 사람의 만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성장과정의 환경적 차이에서 오는 다소간의 다름을 당연시하고 인정하며 언행 하나하나에서부터 상호 존중하고 배려하며 시간을 갖고 서로 저절로 닮아가도록 노력하는 성숙한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화목은 서로 뜻을 맞춰 살아가면서 얻는 정다움이고 또한 노력하는 만큼 더 돈독해지는 것이 화목이니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하여 조화로운 한 가정을 만들고 신랑은 처가부모님께, 신부는 시가부모님께 각별한 마음을 쓰면서 ‘화목한 삶’을 이루어가기를 바랍니다.
둘째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랑으로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기를 당부합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행복하고, 조건은 수시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조건 없이 주는 사랑을 하는 것이 한 없이 아름다우며 함께하는 서로를 행복하게 합니다.
행복은 단 1%를 더 갖거나 약간의 좋은 것 1%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수녀 시인 이해인의 ‘1%의 행복’이라는 시에서도 ‘저울에 행복을 달면/ 불행과 행복이 반반 즉 50%:50%이면 저울이 움직이지 않지만/ 불행이 49% 행복이 51%이면/ 저울이 행복 쪽으로 기울게 되어서’ 결국 1%를 통해 우리가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니 두 사람이 서로서로 마음을 모아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셋째 부부가 합심하여 ‘창조적인 삶’을 만들어가기를 당부합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서 여러 형태의 관계를 형성하고 그 만남은 창조의 기회를 얻는다고 합니다. 특히 오늘 결혼하는 신랑․신부는 특별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기에 그 만큼 아름답고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더 훌륭한 창조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가에서 지켜오는 아름다운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은 이어받고 승화시킬 것이며 서로 다르면서도 좋은 부문이 있으면 수용에 두려워하지 말고 조화롭고 지혜롭게 받아들여 발전시키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창조적인 삶’을 만들어가기를 당부합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고 부모님의 은혜에 효도로 보답함은 물론 ‘한 가문’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는 가족의 일원이 되기를 충심으로 바라면서 주례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주례)
나는 막연히 아버님과 나의 주례사 내용이 꽤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실제로는 아버님의 결혼 축하 시(주례사)와 내가 조카부부에게 한 주례사의 내용은 유사했다. 평소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매우 다른 부자지간일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는데 주례사를 접하며 DNA는 속일 수 없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우리 아버님과 나(父子)의 주례사는 물론이고 주례석에 선 모습까지도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주례사를 할 때 가슴으로 파고드는 짠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여 식장 안의 분위기를 약간 엄숙하게 만든 것이 그렇고, 둘째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음에도 쉽게 자제가 안 되어 훈계 내용으로 마무리 한 것이 그랬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주례 서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누님은 ‘동생은 주례로서의 인품과 품위를 갖추었고 주례사 내용과 음성까지 좋았다’고 팔이 안으로 굽는 말씀을 하며 나에게 당신의 아들 결혼식 주례를 예약한다는 마무리 말씀까지 했다.
♡100번을 말해도 더하고 싶은 소리! 아들-며느리야! 조카-조카사위야!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남이 부러워할 만큼 좋은 가정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라!
온 누리의 모든 신혼부부시여! 결혼준비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설계하던 초심을 간직하고 소망했던 꿈들을 하나씩 이루어가며 아들딸 많이 낳아 오순도순 행복하게 백년해로하기를 축원한다.
첫댓글 벌써 5년이란 세월이흘렀구나~ 정헌이 차남 결혼식때 정헌이 아버님께서 주례의 덕담을 해주셨던 때가. 그저 옛날로 기억이 되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 아들 딸 혼례를 다 치르지 못한 친구들도 있습니다.
아직도 복규 아들이 혼자 생활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주례사를 다시 읽어보니 새삼 그 때가 선연히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