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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으로 성령역사로 성장
1 기별 - 비록 교회가 가난하고 교육이 없는, 무명의 인사[보통의 일반인]들로 구성되었다고 할지라도, 만일 저들이 믿고 기도하는 성도가 된다면, 저들의 감화력은 이 때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감동을 줄 것이며, 저들이 단순한 믿음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말씀의 허락(許諾:약속의 은혜)들을 신뢰(信賴:참되게 믿고 의지)한다면, 저들은 큰 사업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저들이 빛을 발한다면, 저들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하늘왕국의 사업은 발전할 것이다. 저희가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책임을 자각(스스로 깨달음)한다면, 저들은 활동할 기회들을 찾을 것이며 세상을 위한 빛으로서, 저희 빛을 발할 것이다. 따라서 저들은 영혼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수행함에 있어서, 성실성과 열정의 모본을 보이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비록 가난하고 무식(무지)할지라도, 만일 저들이 선택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될 것이며,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참된 지혜를 가르치실 것이다. 온유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심과 참된 경건과, 참된 신앙을 가진 이의 생애는,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감화력이 효과적[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의 모본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도 저들의 책에서 얻은 지식을 더욱 의뢰하는 경향[지식 쪽으로 기울 림]이 있다. 때때로 저들은 은밀[홀로 조용한 곳에서의 간절]한 기도로써, 하나님과 더불어 열심히 씨름[‘야곱’같은 혼신의 노력]하여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지식을 탐구(깊은 말씀연구)하려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허락의 말씀들을 붙잡지 않는다.
신령한 종교적 열정을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를 찾을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저를 아는 것이 영생이 되게 한(요 3:17참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기회를 엿볼 것이다. 저들은 산 편지들이 될 것이며, 인류에게 세상의 빛이 되시는 주님을 증거 할 것이다.(1SM 265.1)
셋째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경솔함과 농담과 경박한 행동으로 흔히, 하나님의 사업에 손해를 준다. 나는 이 같은 악(죄악)이 우리의 대열(행렬)에, 편만[두루 가득 차 퍼져 있게]해 있는 것을 보았다. 주님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은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1 증언 - 사람에게 칭찬받기를, 하나님께 불쾌히 여김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천사는 말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심판하고 연약한 그대들의 생명의 줄을 끊어 버리심으로, 심판을 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로, 무덤[죽음]에 내려가지 않도록 그대들의 마음을 정돈[생전에 믿음의 순종을 준비]하라.
그대들이 하나님과 즉시 화평의 관계를 이루지 않고, 그대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무덤속에 침실[잠자리 방]을 마련(준비)하게 된다면, 그대들의 마음은 더욱 굳어지고, 그대들은 거짓된 도움 곧 가상적[거짓상상의 생각]인 준비에 의존하게 되고, 그대들의 잘못을 너무 늦게 발견함으로, 건전한 기초[진리] 위에 세워진 소망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1T 133.3)
모든 믿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에 선봉(앞장서는 역군)이 되어야 한다. 세 천사의 기별 가운데는, “안식일” 진리를 소개하여야 할 사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 기별 속에 있는 다른 진리들과 함께 이 “안식일” 진리를 전하되, 주목하여야 할 가장 위대한 중심인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긍휼과 진리가 서로 사귀고 공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 곳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죄인으로 하여금 반드시 ‘갈보리’의 “십자가”를 쳐다보도록 인도하여야 하며, 죄인은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으로써, 구세주의 공로를 의지하며 그의 자비하심을 믿고, 그 의를 받아들여야 한다.(LHU 161.2)
4 증언 - 우리 중 어느 누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인가 할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열렬히 그것을 부여잡고 최대의 열심을 다하여, 그분과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믿음을 매우 혹독(酷毒:아주 독)하게 시험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바로 그 시련들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더욱 더 가깝게 인도하도록 계획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의 모든 짐들을, 그분의 발 앞에 내려놓고 그분께서 그것과 교환하여, 우리에게 주실 평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이다. 그대는 새로운 회심(悔心:뉘우치는 회개의 마음)을 필요로 한다. 그대는 진리를 통하여 성화되고, 어린아이와 같은 정신을 가져야 하며, 온유하고 겸손하고, 그대의 구속주로서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할 [절대적인]필요가 있다.
그대의 교만과 독립[고집]은 하나님의 성령의 복된 감화에 마음을 닫고 있으며, 마음이 딱딱하게 다져진 대로(大路:아주 큰 길)처럼, 감수성(感受性:감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무뎌지게 될 것이다. 그대는 아직도 여전히 믿음의 큰 공과를 배워야 한다. 그대가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굴복시킬 때,
그대가 예수에게 떨어져 완전히 깨어질 때, 그대는 승리, 즉 그대가 결코 경험한 적이 없는 그 승리의 기쁨을, 상급[약속의 보상- 영생복락]으로 받을 것이다. 그대가 명확한 안목으로 과거를 회고해 볼 때, 생애가 오로지 당혹뿐이요 무거운 짐뿐인 것처럼 보이던 바로 그때, 예수께서 친히 그대 가까이 계셔서 그대를 빛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노력하고 계셨음을 볼 것이다.
그대의 아버지께서는, 그대 곁에 계셔서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그대를 굽어보고 계시며, 제련자(製鍊者:기술자)가 귀한광석을 정련(精鍊:다듬질)하듯이, 그대의 유익을 위하여 고통[시련과정]을 주고 계시다.
그대가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해 왔을 때, 그분은 위로하고 붙들어 주시기 위하여, 그대 가까이 계셨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예수님을 좀처럼[믿음의 은혜로] 보지 못하며, 그분이 우리를 돕고자 하시는 대로, 그분의 도움을 받아들일[믿음의 순종이] 준비가 결코 되어 있지 않다.(4T 220.1)
구호봉사(救護奉仕) - 우리들의 행동들은 비열[천박]하다거나 혹은 높은 도덕적 가치를 가진 성질의 행동이라고, 판정(결정) 짓게 하는 것이 그 행위의 동기[마음의 결정]이다.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찬양하는 큰 것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가장 귀중한 것으로 간주하라는 것은 아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수행(순종)한 작은 의무(직분완수)와, 남에게 보이지 않게 드린, 적은 예물과 인간의 안목(눈으로 보이는 대로의 판단)에는 무가치하게 보이는 것이, 흔히 하나님 보시기에는 가장귀한 것이 된다. 믿음과 사랑이 있는 마음이, 가장 값진 예물보다 하나님께는 더욱 귀중하다. 가난한 과부는 그가 드린 적은 예물을 드리기 위하여, 그의 생활비[전부]를 바쳤다.
그는 사랑하는 사업에 이 두 푼을 드리기 위하여, 자신의 음식[식사비용]을 희생(헌납)하였다.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의 큰 필요를 모른 체하시지 않으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이 일을 행하였다. 구주의 칭찬을 받은 것은 이 이기심 없는 정신과,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었다.(WM 204.2)
그리스도를 나타내자 - 우리는 예수께 더욱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우리 자신을 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원을 주께 말하도록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성이 필요하며, 그분의 부요(풍족)하심과 인자하심과 사랑에 따라, 그분이 우리의 필요를 만족시키리라는 것을 믿을 필요가 있다.
주께서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고 말씀하신다. 만일 그대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킴으로 그 사랑을 보여줄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RC 79.2)
그리스도인의 마음과 품성과 인격 - 만일 성경이 인간의 이해력에 모호(애매)하게 되어, 가장 분명한 진리조차도 깨닫지 못하는 지경[마지막 경계지점]에 이르지 않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배우고자 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 그리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상태에 대한 깨달음은 자신을 겸비하게 하도록 우리를 감동시켜야 하며, 우리는 그분의 면전(보좌 앞)에 들어가듯이 거룩한 경외심을 가지고 말씀을 펴야한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이성은 그것보다 우월한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마음과 지성은 위대한 자존자(창조주)께 머리를 숙여야 한다.(1MCP 91.4)
자기를 잊는 것은 참된 위대함의 토대[근본바탕 자세]—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그 나라(하늘나라)의 성질에 대해서, 교훈을 받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나라의 원칙에 그들을 조화롭게 해 줄 마음의 변화[성화: 거룩함]였다.
예수께서는 한 어린아이를 부르시고, 그를 제자들 가운데 세우신 후 그 어린이를 자기 팔로 친절하게 안으시면서,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말씀하셨다.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 자기 부정, 신뢰하는 사랑은 하늘이 가치 있게 여기는 속성[거룩한 품성]들이다. 이 속성들이 진정한 위대함의 특성들이다.—소망,437 (1898).(1MCP 276.1)
예수님처럼 - 그대는 어린아이처럼 그날에 필요한 것들을, 매일 받게 될 것이다. 매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주 기도문 참조]해야 한다. 내일을 위하여 넉넉하게 소유하지 못할지라도 낙담(실망)하지 마라.
그대는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시 37:3)라는 그분의 약속의 보증을 가지고 있다. ‘다윗’은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乞食:밥을 얻으려 다님)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37:25)라고 말한다.(BLJ 11.2)
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단순히 말씀을 잘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맡긴다면, 그들은 성경에서 교육의 과학을 발견할 것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그리스도에게서 배우려고 그분의 학교에 들어갈 때, 고등교육에 대해 지성적으로 말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과학의 본질을 깨닫게 할 수 있는 지식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하기 때문이다.(BLJ 126.3)
말씀과 능력 -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말씀대로 이뤄짐을 신뢰함]으로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자는,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신성의 참여자가 된다.— 헤럴드,1892.11.29.(FLB 55.6)
그리스도를 나타내자 -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함으로, 원수가 우리를 이용할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된다.... 오직 우리가 자신을 기꺼이 맡기는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주께 맡기고 훈련과 징계(시련과 고통의 인과응보)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영광이 되는 그릇으로 사용하실 것이다.(RC 261.8)
말씀과 능력 - 그대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할 질문은, “나는 그리스도인인가?”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단지 그 이름이 교회녹명 책에 기록된,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확고한 신뢰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단순한 믿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독생자의 이름과 공로를 통하여,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 어린아이처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계명이 하나님의 교훈이며, 그분의 품성의 사본이고 하나님의 품성이 더 이상 변경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좋아하는가? 그대는 여호와의 율법을 존경하고 사랑하는가? -청년지도자,1893.5.18.(FLB 130.4)
1 기별 - “그대가 자기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지혜를 버리고, 그리스도에 대하여 배울 때,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허락을 받게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전적이며 무조건적인 항복[굴복의 순종]을 요구하신다. 생애의 질서, 인격의 도야, 품성의 형성을 위하여 그대의 생애를 주님께 맡겨라.
그대의 목에 주님의 멍에를 메라. 주님의 인도를 받고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복종하라. 그대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우라.”(1SM 110.2)
그 때에 그대들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며, 주님의 발아래 꿇어 엎드려 탄원자(歎願者:진심으로 자복하고 회개하며 간구하는 자)로서, 그들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내려오시게 하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갈 필요가 없으며, 주님을 올라오시게 하기 위하여 땅 속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다.
그리스도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셨다. 만일 우리가 허락(許諾: 믿음으로 무조건 순종)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기꺼이 영혼의 성전[마음]을 그분의 소유(所有:성령임재의 성전]로 삼으시려고 하실 것인가!
주님께서는 마음문 밖에 서서 기다리시며, 문을 두드리는 분으로 그분 자신을 상징(비유)하셨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는 들어오시지 않고 계신가? 그 까닭은, 죄에 대한 사랑[사단에 잡혀버림]이 마음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완전히 포기하기로 마음먹자마자, 우리의 범죄를 인정하는 순간에, 인간의 영혼과 구세주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장벽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성령의 즉각적인 사역의 시작으로 성령인도 받음] 것이다.(1SM 325.3)
기도 -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중보자로 나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 수 있다.(Pr 182.5)
높은 부르심 -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과 애정에, 그리스도가 반드시 융합[교류연합]되어야 한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업에서, 매일의 봉사의 가장 사소한 세부(細部:세세한 부분)에까지 그분이 모방(주님같이)되어야 한다. 인간 지식에 의지하거나 세상의 철학에 순응하는 대신, 우리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그분의 말씀을 열렬히 구하고 그분에 대하여 배우며,
“주님, 주님은 나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하게 될 때, 우리의 타고난 독립심[이기심]과 자기과신[교만함], 그리고 강한 완고[자기고집과 반대]는 어린아이와 같은, 복종하고 배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권위[창조주 위엄과 구속주의 공로]가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에 대한 불문[무조건적]의 순종을 요구하시는, 그의 주장(명령)을 인식(깨달아 순응)하게 될 것이다.(OHC 99.4)
예수에 대한 불신과 믿음의 결핍(부족)과 같은, 모든 것들을 제거하여 버리자. [지금 즉시] 다 같이 단순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의지하고 느낌[자신의 생각과 사상]에 의존하지 말고, 믿음에 의뢰하는 생애를 시작하자.
그의 보배로운 허락들을 의심(부정)함으로써, 예수를 모욕(侮辱:욕되고 수치스럽게)하지 말라. 그분은 우리들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써, 그분을 믿기를 원하신다.(OHC 119.3)
산상보훈 -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 기도하라.”(마 6:6).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아이와 같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 그 어떤 사람도 중보자로 나설 필요가 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마음 문 열어 완전히 바칠]수 있다.(MB 84.2)
성화된 생애 - 온유한 사람의 말씨는, 거만한 사람의 말씨와는 결코 같지 않다. 그들은 어린 ‘사무엘’처럼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9)하고 기도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으로서 가장 높고 명예스러운 지위에 앉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을 대항(전투)하였다. 그의 마음은 위대한 사명에 대한 고상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하늘의 기별을 통고받고서 그는, 지시를 받기 위하여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은 입장에 두었다.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수 5:14)라고 한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후에 ‘바울’이 처음으로 한 말은, “주여 내게 무엇을 행하시려 나이까?”(행 9:6)였다.(SL 15.1)
주님을 첫째로 높이자 - 하나님과의 친교(성령교류)는 각 개인을 위한 것이며, 직접적인 것이다. 성령의 지도 아래 있는 심령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타오를 것이다. 그들은 단순하게 신뢰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공로(인간적인 공로)를 바라시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오직 그들이 자신을 받아들이고, 구주의 멍에를 메는 법을 배우고, 그분의 짐을 지게 되기를 바라신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동역자임을 하늘이 알게 하기 위함이다. 왜 모든 영혼들이 그분께서 주시는 도움과 휴식을 필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음으로 인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가? 그들에게는 빛과 생명[주의 은혜와 사랑]이 있다.(LHU 221.6)
매력의 큰 중심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셋째천사의 기별에서 빼놓아서는 안 된다.... 죄인은 항상 ‘갈보리’(십자가)를 쳐다보아야 하며,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공로[희생제물의 십자가 속죄] 가운데서 안식을 찾아야 하고,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며, 그분의 자비를 믿어야 한다. —복음전도,184.(LHU 309.8)
하나님의 참 일꾼들은,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 씨름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지극한 열성을 보인다. 그들은 말과 행동으로써, 자아를 찬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히 영혼을 구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순결한자, 가장 온유한 자, 가장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을 그분을 위한 최선의 일꾼, 영혼들을 위하여 일하는 강력한 자라고 선언하신다. 하늘의 지적존재[천사와 우주의 모든 생명의 존재]들은,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는 남녀들과 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예가 돌아가게 할 모든 영광을, 즐겨 돌리는 자들을 위하여 일할 것이다.
신성한 지혜의 필요를 가장 깊이 느끼는 사람과, 하늘의 능력을 간구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친교를 위해 나아갈 것이며, 저들의 죄악 중에 멸망해가는 영혼과 더불어 대화(전도)하려고 할 것인데, 이는 그가 주님의 영(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까닭이며, 그는 학문이 있는 목회자가 실패한 곳에서 성공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제자들의 의무에 대해서, 모든 중요한 교훈들을 주셨다. 아무도 흑암(黑暗: 캄캄한 죽음과 죄악의 고통)속에서 있을 필요가 없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살아 있는 편지가 되어, 모든 사람이 읽고 알게 될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LHU 358.3)
하늘 -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함으로 순종을 선택함—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사랑을 사람들 가운데 거하는, 택한 백성들에게 베푸신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의 [십자가]보혈의 값으로 구속(救贖:죄를 속하여 구원)하신 백성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끄심에 응답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탁월한 은혜를 통하여 순종하는 자녀로서, 구원받도록 택하심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 곧 그분께서 베풀었던 사랑이 제시된다. 누구든지 자신을 어린아이와 같이 낮추며,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 가운데 들 것이다.—ST 1893.1.2.(Hvn 87.3)
설교와 강연 - ‘바울’은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어른의 상태로 성장했으나 어린아이의 틀을 벗어나 성장하지 못하고, 그들의 종교적 경험에 어린이의 생활의 결함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1SAT 301.1)
우리는 영적사물에 있어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 가운데,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방금 받아들인 자들처럼, 우리 자신들을 표현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기도와 권고는, 우리가 진리를 경험하는 가운데 전진한 만큼 지적[영적]으로 자라나야 한다.
열 살 먹은 아이가 여섯 살 먹은 아이처럼 말한다면, 정상이 아닌 것처럼 장년기에 도달한 사람의 지적 능력이, 어린 아이와 같은 수준에 있다면 얼마나 듣기가 거북할 것인가!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의 연령이나 기회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지적능력을 그로부터 기대하게 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어린 아이가 자라나면서, 그 연령에 적합하게 그의 성장에 따라 그에게 기대하는 것처럼, 우리도 은혜와 경험 가운데 자라나는 그리스도인을 보도록, 기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SD 330.2)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편의와 기회를 주셨는데, 이 마지막 큰 날이 이를 때 우리는 우리가 획득했어야 할 것을 보게 될 것이며,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도움의 손길을 붙잡고 우리가 은혜 가운데 어떻게 성장해 왔는가를 알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바라보시는 이런 사물들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지 못함으로 실패한 것을 보고, 우리는 더욱 열렬히 사모할 것이다. —서신 16,1886.(SD 330.3)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초심자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그는 정신수양과 분명한 식별력의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의 사업에 필요하다. 그는 그대들이 사다리의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하기를 바라시며, 그럴 때에 하나님의 나라에 발을 디디게 될 것이다.(SD 330.4)
안식일학교 사업에 관한 권면 - 성령께서 그대들의 마음에, 임재하시기를 기도하라. 그러면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의 짐을 지고, 점점 자라나 예수님과 완전히 하나로 연합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견해는 너무나도 좁다. 우리들에게는 사업의 요구를 충당시키기 위하여, 더욱 넓은 시야[하나님의 무궁한 세계를 바라보기]가 필요하다.(CSW 67.2)
이 사업에 가장 필요한 것은, 사업의 발전을 위해 개인적 책임을 느끼며, 세계의 도덕적 암흑[죄악의 흑암]에 빛을 비추기 위하여, 거룩한 능력에 협력할 헌신한 청년 남녀들인 것이다.(CSW 67.3)
진리효과 -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사 28:10, 13) 심령에 감명을 끼친 진리의 원칙들은, 올바른 행실을 자아낼 것이다. 성경에는 어른, 청년,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 이생의 투쟁을 지나, 하늘나라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하나님의 면밀(자세한)한 금언[말씀]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기도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 이다.”(요 17:17)하는 것이었다. 청소년들이 아무리 성경 연구를 통하여 계발되었다고 하여도, 그들이 아는 진리를 일상생활에 활용[순종]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향상시키려 하고 고상하게 하려는 모든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갈 성질의 것이 된다.
부모들에게는 안식일학교 교사들과, 협력하여야 한다는 엄숙한 책임이 지워져 있다.(CSW 68.1)
교육 - 종자가 싹이 트는 것은 영적생명의 시작을 나타내고, 나무의 자라남은 품성의 향상을 표현한다. 자라남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나무는 자라나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해야 한다.
식물의 성장과 마찬가지로, 품성도 사람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무언(은연)중에 항상 성장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의 생명이 성장의 각 단계에서 완전하다고 할지라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완성될 때에는, 그보다 더한 지속적(계속적인)인 성장이 따를 것이다.(Ed 105.3)
식물은,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마련하신 것을 받아서 자라난다. 이와 같이, 영적성장은 하나님의 힘과 협력함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식물이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뿌리를 내려야 한다. 마치 식물이 햇빛과 이슬과 비를 받는 것처럼,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언제나 그리스도에게 향해 있으면, 성령은 마치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실”(호 6:3) 것이다. 마치 의로운 해처럼 “치료하는 날개(난외주석-해당책장밖에 적은 해설서)”(말 4:2)를 가지고 우리 위에 떠오를 것이며, 우리는 “백합화같이” 필 것이며 “곡식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호 14:5, 7) 것이다.(Ed 106.1)
식물이 알아차릴 수 없게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자라듯이, 품성의 성장도 그와 똑같다. 발달의 각 단계에 있어서, 우리의 생애가 완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다면, 끊임없는 진보[무한한 성장단계]가 있게 될 것이다.—교육,95.(CG 162.3)
4 증언 - 내가 육신적, 정신적, 도덕적인 면에서 사람의 현재상태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낮은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에 놀라게 되었다. 사람은 그의 살아 계신 머리,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날 수 있다. 그것은 한 순간의 사업이 아니며, 일생의 사업이다.
날마다 신령한 생애 가운데서 자라남으로써, 그는 유예[성숙하는 마지막단계]의 시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의 충만한 상태를 성취하지 않을 것이다. 자라남은 계속적인 일이다. 불타는 정욕을 가진 사람들은, 자아와 계속 투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힘들수록, 승리와 영원한 상급은 더욱 영광스러울 것이다.(4T 366.3)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남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16:8).(RC 259.1)
많은 사람들은 저희 혼자서, 무슨 일을 좀 하여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저희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하였으니, 이제는 저희 자신의 힘으로 옳은 생애를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실패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셨다.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자라나는 것이나 우리의 기쁨이나, 우리의 유용성(有用性:유효함)은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여부(與否:참여와 부인함의 선택)에 달렸다.... (RC 259.2)
그대들은 모든 것— 마음과 의지와 봉사 —를 바칠 것이니, 그의 모든 요구를 응하기 위하여 그대 자신을 그에게 바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 곧, 그대의 마음 안에 계셔서 그대의 힘과 그대의 의와 그대의 영원한 돕는 자가 되시는, 온갖 축복이 충만한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서, 하나님을 순종할 힘을 얻어야 한다.(RC 259.3)
믿음은 의심과 두려움과의 싸움을 통해서 자라남— 주께서는 우리가 더 큰 노력을 발휘하도록 자극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빈번히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하신다. 그분의 섭리로 특별한 어려움이, 우리의 인내와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발생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뢰의 공과(과제)를 주신다.
그분은 시련의 때에 우리가 도움과 힘을 얻기 위해, 어디를 찾아야 할지 가르치실 것이다. 그와 같이 하여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뜻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얻으며, 그것은 우리의 인생 경험에서 대단히 필요한 것이다. 믿음은 의심과 두려움의, 열렬한 싸움을 통해서 자라난다.—증언4권,116,7(1876).(2MCP 476.2)
그대의 감정이 격동(감응)되고, 그대의 정신이 진리로 말미암아 감동함을 받았다하여, 그대가 그리스도인이란 참된 증거는 되지 못한다. 문제는 그대가 산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가?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대의 생애에 나타났는가? 하는 그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은혜를, 좀 더 사모하도록 하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마음에 언제나 작용[성령사역]하는바, 그것을 받아들일 때에는 그 받은 증거가, 그것을 받은 자의 생애와 품성에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영적생애란, [성령을 통하여]마음속으로부터 자라남이 [생애에서]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언제나 영적생애를 증진시켜 영적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각자는 개인적인 구주가 필요 되는바 그렇지 아니할 때에는, 우리가 죄 가운데서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우리의 산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 자라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향상된 지식을 얻고 있는가? 우리는 밭에 있는 식물들이 자라나는 것을 보지는 못하나, 분명히 그것들이 자라나고 있음은 확신한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의 영적 힘과 자라남에 대하여, 우리가 알지 못해도 좋은가?(TMK 163.2)
주님의 소원은 그의 추종자들을 은혜 가운데서 자라게 하는 것이며, 그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게 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칭찬과 영광을 받게 하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자라남이 있고 열매를 맺을 것이나,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자라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적상태는, 난쟁이가 되고 병에 걸리어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할 것이다.
자라나고 과실을 맺음으로써만이,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 우리가 많은 과실을 맺기 위하여, 우리의 특권들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야만 한다. 우리는 힘을 얻기 위하여 우리에게 제공된 모든 기회들을 사용해야 한다.... (TMK 164.2)
높은 부르심 - 은혜 속에서 자라남이란 것은, 하나님이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신다는 것이 밖에서 열렬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은 장래의 영광을 위한 열렬함이니, 하늘의 정신을 품고 이 땅에서 역사하는 것이다.(원고,13,1884년).(OHC 72.4)
우리는 하나님 없이, 이 시대의 시련들을 대처(對處:대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저들이 처하였던 환경가운데 놓여 지기까지는, 옛날 순교자의 용기와 충성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각각 매일의 긴급사태[사탄유혹을 이기기]를 위하여, 매일의 은혜의 공급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과 은혜 가운데서 자라남으로써, 만일 핍박이 우리에게 오거나 예수의 믿음과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감옥에 우리들이 갇혀야 한다면,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신 33:25)하신 허락을 믿을 것이다. 핍박이 있는 반면에, 참된 영웅심을 보여 영혼에게 모든 힘을 발휘하도록 은혜가 주어질 것이다.(OHC 125.4)
성화는 안과 밖이 거룩하고 주님의 것을 남김없이 모양으로만 아니요, 진리로써 거룩하게 되는 상태인 것이다. 모든 불순한 생각들과 모든 육신의 정욕들은,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킨다. 대개 그리스도께서 그의 결함을 덮기 위하여, 죄인에게 그의 의의 두루마기를 결코 덮을 수 없으시다.
죄악을 정복하는 개선(변화함의 노력)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품성을 반사하고 선한 동정심이 발휘되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빛 가운데서 걸어야 되는데 이는, 점점 빛나서 완전한 광명에 이르게 함이다. 이것이 참되고 실제적인 자라남이니, 결국에는 남녀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는 데 도달된다.(편지,12,1890년).(OHC 214.5)
하나님에 의해 자라남 - 생명이 그러한 것처럼 자라남도 또한 그러하다. 꽃봉오리를 피게 하고 꽃이 열매 맺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씨가 발육되어,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막 4:28)을 이루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지자 ‘호세아’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하기를, “저가 백합화같이 피겠고...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호 14:5,7)라고 하였다. 또 예수께서도 이르시기를,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눅 12:27)하셨다.
모든 초목과 꽃들은, 저희의 염려나 걱정이나 노력으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나님께서 저희의 생명을 위하여 공급하시는 것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무슨 염려나 자기의 힘으로써, 저희의 키를 조금이라도 늘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대들도 그대들의 염려나 노력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자라날 수 없는 것이다. 초목이나 어린아이는 저희의 주위에 있는 것들에게서, 저희의 생명을 위하여 공급되는 것들—공기, 일광, 영양—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이다.... (LHU 70.4)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남 - 침체가 아니요, 향상하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다. 우리의 정신과 모든 육체의 법칙은 향상이다. 천연계의 사물들도 이 법칙을 순종한다. 들에는 맨 처음 입사귀가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은 열매가 가득 찬 곡식이 나타난다. 육적생애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생애에 있어서도 자라남이 있어야만 한다.(HP 183.4)
충성은 비상사태[시련고통의 싸움과 인내]와 함께 자라남— ‘계시록 14장’에서, ‘요한’은 다른 장면을 본다. 그가 한 백성을 보고 있는데, 하나님 나라의 율법에 대한 그들의 충성이 비상사태와 함께 자라난다. 하나님의 율법에 가해지는 경멸(경시와 멸시들)은, 그 율법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더욱 강화[믿음을 굳건하게]시킬 뿐이다.(원고 163,1897).(7BC 9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