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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돌아왔다
글쓴이 주윤정 / 등록일 2024-11-19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당선은 많은 이들을 당혹하게 했다. 그의 당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인가? 아니면 반이민 정서, 혐오의 확산, 여성의 유리천장의 존재,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의 부상 혹은 민주당 엘리트와 노동자 계급의 괴리 때문인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이 지속적으로 분석을 할 일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시기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보호무역주의로 국가 간 장벽이 높아지고 포용적 민주주의와 기후위기 등 미래를 대비하는 정치가 위기에 처한 것은 분명하다. 이는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극단적 정치, 불안과 분노를 자양분으로
대선 이후 미국 영화 〈존 큐〉(2002년)가 떠올랐다. 철강 회사의 노동자인 존 큐는 작업량 감소로 비정규직이 되었고, 이에 따라 보험 혜택도 축소되었다. 이 사실을 모른 채 그의 아들은 심각한 심장병으로 긴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지만, 보험 자격의 문제로 인해 수술을 받지 못한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 존 큐는 병원을 점거해 인질극을 벌이고, 결국 자신은 자살을 택하며 아들은 수술을 받게 된다.
이 영화는 러스트 벨트의 자동차, 철강 산업이 동아시아로 이전되는 세계화 시기에 미국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해졌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 하바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은 이번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의 선거 전략에 대해 조언하며, 단순히 여성의 재생산권 보호 중심의 캠페인과 트럼프의 악마화를 통해서는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바이든 정부의 경제 지표가 개선되었더라도, 국민이 느끼는 박탈감과 불안, 치솟는 물가, 그리고 일상적 무력감을 외면한다면 민주당은 승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샌델은 트럼프 지지층을 적대시하지 말고, 그들의 분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조언이 실제로 반영되었는지는 선거 결과가 말해준다.
인권 연구자의 입장에서, 나는 왜 사람들이 혐오와 분노의 정치에 쉽게 선동되는지 늘 고민한다. 나치는 유대인을, 한국에서는 빨갱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통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극단적 정치의 이면에는 불안이라는 사회적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기술 발전으로 불확실성이 가속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불안과 분노는 사회적 정서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분노와 불안을 동원할 줄 아는 정치인들은 언제나 등장하며, 이들은 적을 만들어 불안과 분노를 배설할 출구를 마련한다.
실리콘 밸리 사는 친구 말로는, 미국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의 기준을 “해고로 집에서 쫓겨났을 때 몇 달간 재워주고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고 한다. 이는 해고, 주거 불안, 의료 접근의 어려움, 그리고 치솟는 물가로 인해 미국 사회의 불안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의 정치는 이런 불안을 자양분 삼아 쑥쑥 자랐고 사람들의 분노를 이민자에게 돌렸다. 그는 불안과 분노에 귀 기울이는 척, 최악의 해결책을 최선인 것처럼 포장했다.
책임있는 정치, 불안을 해소하고 분노에 응답해야
한국 역시 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며 분노를 야기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 가계대출 증가, 물가 등 민생 문제 뿐 아니라, 불평등, 지역 격차, 높은 자살률과 산재 사망률, 저출산과 고령화, 성장동력의 둔화, 공급망 질서의 재편 같은 구조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게다가 기후위기와 AI 전환 등 충격에 대한 사회적 대응도 지체되어 미래의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있다. 20세기의 누적된 문제와 미래의 충격이 동시다발적으로 강타하고 있는데, 이에 우리의 현실 정치는 응답하고 있는가?
정권의 무능과 불통에 분노한 국민들 사이에서 탄핵과 임기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지금은 과거 촛불시민의 열망이 충분히 반영되고 실현되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시간이다.
촛불 광장에서 터져 나온 다양한 목소리와 염원이 과연 진보적 정책과 사회 변화로 연결되었는가? 아니면 특정 세력에 의해 광장의 정치가 독점되었는가? 기성정치는 촛불의 요구에 충분히 응답했는가? 촛불 이후 정치의 공과 과는 무엇인가?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충분히 반성하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동원하는 또 다른 ‘트럼프’는, 혹은 점술사를 국정 제일 조언자로 삼는 기괴한 정부는 언제든 등장한다. 이를 막기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책임있는 정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원칙과 상식,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며, 또한 분노를 상대진영에 대한 적개심으로 소진하지 말고 정의와 공공성의 언어로 조직해야 한다. 구체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불행한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할지 질문을 던지고 방향성을 찾아 길을 만들어갈 때이다.
■ 글쓴이 : 주 윤 정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저서]
『보이지 않은 역사 : 한국시각장애인의 저항과 연대』, 들녘출판사, 2020.
『동물의 품 안에서 : 인간-동물 관계 연구』(공저), 포도밭출판사, 2022.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 연대』(공저), 한울아카데미, 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