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1366
가족이라는 의미
백운 곽 영 석
(kbm0747@daum.net)
“가족이란 무엇입니까?”
며칠 전 재판정에서 원고와 피고에게 묻는 것을 들었다.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아닐진대 판사는 그 의미를 다시금 물었다.
나 자신에게 되물어보아도 갑자기 그 의미가 생소하게 느껴졌다.
결혼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갈라서는 당사자들에게는 좀 더 숙려기간을 두고 생각해보라는 말이겠지만,
신혼여행지에서부터 다투며 지내 온 아이들에게는 물과 불처럼 차가운 말뿐이었다.
“숙려기간이 꼭 필요한가요? 우리 잠자리도 하지 않고 각방을 쓰다가 지금은 따로 살고 있어요.
저를 징그러운 뱀처럼 대하는 시댁 식구들과 이제 얼굴 맞대고 살 수 없습니다.”
판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삶은 둘이서 가꿔가는 공동체입니다.
3개월 동안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하고, 과연 결혼이 의미 없는 것이었는지 생각해보세요.”
최근 결혼과 재혼의 통계를 보면 결혼 커플의 27%에 이르는 숫자이다.
시부의 정당 이력이 문제가 되어 처음에는 ‘정치인도 아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정치 이야기.’를 한다는 말로
비웃다가 집안 식구들만 있는 자리에서 큰소리가 났던 모양이다.
며느리가 예쁘면 걷는 발뒤꿈치까지 예쁘게 보인다는 말이 있다.
말 한마디, 웃는 얼굴이 인형처럼 예쁘고 싱그러워 집안에 목련꽃이 피어 있는 것 같다는 분도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모여 사는 가족 중심체의 기장도 있는가 하면
대부분이 부부 단독으로 구성된 가정이 많아 홈드라마처럼 3대 4대가 모여 사는 경우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각자의 생각을 격의 없이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에게 자기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해서 TV 리모컨을 집어 던질 정도로 격분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광적인 집착이다.
미혜 씨는 꽃이 좋아 남양주에 귀촌하여 꽃 농원을 가꾸고 있다.
그동안 1만여 평의 야산에 집을 짓고 280여 종의 꽃나무를 심었다.
해가 갈수록 그 가짓수가 늘어나더니 인근의 유치원 아이들이 소풍을 올 정도로 소문이 나고
동네 사람들은 농원의 입구에 식당과 찻집까지 냈다.
어느 날, 작은 아이 결혼 상대로 미술을 전공하는 아이를 소개한다며 친목회 회원들을 음식점으로 초대하였다.
구례 군청이 운영하는 야생화 농원에 근무하던 공무원인데 압착화(壓搾華) 표구 작품을 한 점씩 선물해서 미혜 씨의 농원을 이어받을 자식으로 손색이 없다고 칭찬을 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압착화(壓搾華)’라는 이야기도 생소했고,
우리는 문풍지를 바를 때 가을꽃을 몇 송이 따거나 예쁜 나뭇잎을 덧발라 창호지에 압착 해 바르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액자에 표구하는 재주가 남달라 꽃이 개화한 모습이나 색상까지 그대로 표현하고 있어 이것만으로 재산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회원들은 집주변의 풀꽃이나 돌연변이종의 야생화를 보면 캐다 주어 농원의 한쪽을 장식하게 하였다.
늘 화사하고 행복해하던 미혜 씨가 며느리 때문에 하소연하는 일이 있었다.
모두가 행복한 투정이라고 웃어넘겼는데 하루는 며느리와 다투고 나왔다며 시내에 나와 회원들과 술까지 마신 모양이었다.
“나는 꽃이 좋아 꽃이 봉오리가 맺히고 피고 지는 것을 보는 게 낙인데 이 아이는 꽃이 피기 전에 자르거나 꽃이 지기도 전에 꺾는 거야. 아이가 이렇게 모질고 영악스러운지 몰랐어.” 한다.
생태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스러짐을 보는 것을 취미로 하는 분이 많다.
위의 일처럼 고부간의 갈등이 관찰자와 작품으로 보는 이의 견해 차이로 다투는 일은 마음의 고통이 더 크다.
그 옛날, 집안 어른의 기침 한마디로 싸우던 이웃이 두툼을 멈추고 슬프고
기쁜 가정 대소사가 평정되던 시절은 지났다. 그만큼 생활 방식도 달라졌고,
소득 수준도 높아져 각자의 눈높이도 달라져 목소리도 커지고 반목하는 일도 많아졌다.
이제 어른이라는 사람도 간섭으로 비치지 않도록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도 조심하고 주의하며 살아야 할 시절이다.
아무리 각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라 하더라도 틈은 있고 갈등의 틈새는 있기 마련이다.
그 골을 메꾸는 이해와 상생의 비약이 바로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이다.
새해 들어 두 아이가 이혼의 아픔을 가졌다.
직장에서 간부로 일하던 아이라 씩씩하게 제 할 일을 하고 있지만,
인연으로 만나 사랑의 증표로 얻은 아이를 데리고 편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아이의 모습이
장차 또 다른 자기 아집과 독선적인 가족 형태를 만들어 가는 씨앗을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저녁 무렵에 지난달에 결혼한 영춘이와 경선이가 인사차 방문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잠실에서 고등학교 때 만나 10여 년 가까이 사귀다가 결혼에 골인한 아이들이다.
내가 자기들의 삶의 표본이라고 하는데 나는 인생 잘못 살아온 표본 같으니 그것이 짐이다.
마음만 분주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