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1-27
그때에 21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2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27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임신부님 강론
연중 제22주 9월 3일, 마태오16, 21-27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16,23)
+찬미예수님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더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합니다. 좋은 직업의 조건은 흔히 개인의 적성과 흥미 그리고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과 보수에 기준을 둡니다.
누구나 개인적 적성과 흥미를 만족하면 그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면 그 일에 몰입하게 되고 일을 통해 자신을 성장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회적 가치가 없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인류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일은 그 가치로서 훌륭하고 보람된 일입니다.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의 졸업 축사가 화제가 되었는데 “항상 배고프게 갈망하고 바보같이 우직하게 살아라.” (stay hungry, stay foolish)였습니다. 뭔가를 연구하고 개발하고 자신의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젊은이들이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며 의미 있는 개발적인 직업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고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 얼마큼 보수를 주는 것에 관심만을 보일 때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미국 정보회사의 조사에 의하면 가장 의미 있는 직업으로 1순위가 성직자이고 둘째는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 10위 내 직업에는 남을 구하고 도와주는 소방관이 뽑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직업에는 하느님과 연관된 직업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봉사의 숭고한 의무를 지고 사람들을 영적 선함으로 이끌어 주고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많은 젊은이가 이런 일에 매력을 느끼고 보람을 찾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16,23)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할 수만 있다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느님 일과 사람의 일을 구분하는 기준은 있다면 사랑과 헌신적인 봉사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라는 말처럼, 사람은 떠나도 사랑의 흔적이 사람들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를 통해 타인을 이롭게 하거나 만족스럽게 함으로써 서로 간의 유대감을 만들어 내고 그럴 때 기쁨과 평화와 안정을 줍니다.
사람을 크게 이타적 인간과 이기적 인간으로 구분합니다. 이 둘 중에 누가 끝까지 살아남는가? 라고 물으면 이타적 인간이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서구 문명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 중 하나는, 인간이 협력적이고 타인을 기꺼이 돕도록 타고 나지만 나중에 사회가 이들을 타락시키는 것인가(예컨대 루소), 아니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기적이고 타인을 도우려 하지 않지만, 나중에 사회가 이들을 이타적이고 협력적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것인가(예컨대 홉스)이다. 모든 대논쟁이 늘 그렇듯이 두 가지 주장은 각각에 딱 들어맞는 진실들을 지니고 있다.”(마이클 토마셀로,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
저는 루소의 입장이 마음에 듭니다. 인간은 타고나면서 남을 돕도록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당신 사랑을 심어놓으셨다고 생각하지만, 사랑과 교육으로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가정하는데 이 합리성은 바로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기적인 인간이 손해를 안 보고 살아남을 것 같지만 사회적 관점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합리적 경제인은 이기적 인간이지만 그런데 이 합리적 인간이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가장 불합리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경제학자 최정규 교수가 지은 “이타적 인간의 출현”이라는 책에서 말하길 “자본주의라는 현실에서도 이타적 인간이 이기적 인간을 이길 확률이 더 높고 효율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조차도 이타적 인간과 호혜적 인간이 있어야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결론적으로 말하길 때론 사람들이 물질적, 금전적 유혹으로 인해 이기적으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이타적인 행동을 통해서만이 서로 믿고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물질적, 금전적 유인보다도 규범, 관습과 제도가 사람들의 행위를 인도하는 나침반이 됩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좋은 규범과 관습, 제도가 사람들을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 발전시키고 더 좋은 공동체를 형성시키는 것입니다. 그 규범과 관습이 바로 신앙인의 행위 안에서 발견되는 사랑과 희생 봉사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에서 말씀하시길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며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12,1-2)
그리스도인은 이타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만을 아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이 넘쳐날수록 세상은 더 어렵게 되고 결국은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이타적인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공동체에 봉사하실 사목, 재무 위원님들께 딱 들어맞는 하느님 말씀은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로마12,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2년 동안 봉사하실 사목 재무 위원님들께 하느님의 축복을 빕니다.
사람들이 남을 도와주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는, 도와주어야 할 이유를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랑하고 서로 협력하고 도와주도록 인간 마음과 정신 안에 당신의 말씀을 심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이는 행복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말씀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아멘
무태성당 이민락 라우렌시오 신부
첫댓글 + 찬미예수님
아멘 감사합니다 !!
+ 찬미예수님
"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
( 마태 16/ 27) 하시는
말씀이 살아 온 날들에 대한
성찰과 ,남은 날 해야 할 바른
사고와 행위를 깊이 있게
생각 해 보게 합니다.
"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인간의 일만 생각 하느냐 ?"
시며 지금도 꾸중하고 계십니다.
인간 위주 가운데 나만의
것이 아닌 이타적인 생각을
함으로서, 위타인간 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심어 주신 사랑과
말씀안에서만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자기 주장에 빠져 우선
눈앞에 보이는 내 주장
내 고집에만 묶이지 말고
서로를 배려하고 나눌 줄
아는 이타적 호혜적 삶을
살 수 있으려면,항상
바른 것을 추구 함으로서
내가 좀 덜 가지게 되더라도
이웃과 나눌 줄 알고
내가 손해 보는 듯 하고
내가 가질 것이 좀 부족해도
이웃에게더 많이 나누어
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의
마음으로,
" 배 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소크라 테스가 되라. "
고 한 말을 늘 기억하며,
말씀안에서 살 수 있을
은총을 간구 드립니다.
아멘.
신부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직업은 너무도 다양하고 무엇이 좋다라는 기준은 사실 더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치의 기준이 변하고 돈과 명예를 갈망하고 쉽고 편리함을 추구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진실은 그일을 하는 그사람의 가치 기준에 가치가 천양지차가 됨을 보며 놀랍니다.
그 가치를 하느님께 두어 현세에 동화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인 무엇이 선한지 사랑하고 협력하고 도우도록 심어 주신 말씀따라 자신을 변화시켜 정신 새롭게 살게 하소서.
가난한 이웃의 돌봄에서 주님뵙게 하시고
저희의 그 착한 행실에
빛을 비추시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던지 감사하며 은혜롭고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로 살게 하소서.
항상 겸손된 마음으로
묵묵하고 성실하고 참되고 진실되이 살게하시고
봉사와 헌신으로 하늘나라를 살게 하소서.
저희를 그리스도의 지체로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