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시야가 죽고 여호람[Jehoram, 요람(Joram)]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12년 동안 통치하게 되는데(1절), 이때의 남왕국 유다는 여호사밧 제18년이 되는 해입니다. 열왕기하 1:17에는 이스라엘의 여호람이 왕이 될 때는 남왕국 여호사밧 왕의 아들 여호람이 다스린지 2년째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여호사밧(Jehoshaphat)이 그 아들 여호람(Jehoram)을 왕으로 세우고 섭정(攝政)하는 시기였기에 여호사밧을 기준으로 하면 여호사밧 제18년이고, 여호람을 기준으로 하면 여호람 제2년이기에 둘 다 맞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여호람(요람) 왕은 자기의 부모인 아합이나 이세벨처럼 악하게 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선한 왕은 아니었다고 기록합니다(2절, 4절). 아합은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을 섬기면서 그들의 신전(神殿)을 만들고 그 우상들까지 만들어 적극적으로 섬기는 악행을 행했는데, 여호람(요람)은 바알의 주상(鑄像)은 없앴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3절에서는 여호람(요람)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여로보암(Jeroboam)처럼 죄를 지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율법에 따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보다는 자기 생각과 의도에 맞게 신앙적인 제도들과 의식(儀式)들과 절기들을 교묘하게 변형시켜서 비슷하게 행하도록 하였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온전한 진리와 신앙 안에 살아가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열왕기상 12장, 13장 참조). 즉 여호람(요람)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악하게 행한 왕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모압은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었습니다(4절). 그런데 아합 왕이 죽자 모압 왕 메사(Mesha)가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고 조공 바치는 일을 멈추었습니다(5절). 그러자 이스라엘의 여호람(요람) 왕은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에게 사신(使臣)을 보내어서, 함께 연합군을 만들어 모압 족속을 치자고 제안하였고, 여호사밧은 이를 흔쾌히 수락합니다(7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람(요람)과 남왕국의 여호사밧 왕은, 북쪽으로 향하여 모압 족속에게 가는 길보다는 에돔의 북쪽을 지나 모압의 남쪽으로 향하는 길로 향하기로 하고 모압 족속에게 진군(進軍)합니다(8절). 아무래도 그 당시에 에돔이 유다 왕국의 속국(屬國)이었기에 암몬 왕도 합세하여 모압 족속을 치는 것이 나을 것이란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남왕국 유다의 왕, 그리고 에돔의 왕까지 합세하여 함께 진군하는데, 칠 일 만에 군사들과 가축들에게 먹일 물이 부족한 상황이 되었습니다(9절). 아직 모압과 전쟁도 치르지 않았는데 상황이 좋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은 한탄합니다(10절).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딪히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하는데, 그저 한탄만 하는 이스라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하나님께 물어 하나님의 뜻을 알려줄 선지자가 있는지 묻습니다. 이러한 여호사밧의 질문에 이스라엘의 신하 중 한 명이 엘리사 선지자를 소개합니다(11절). 그러자 여호사밧은 엘리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다른 왕들과 함께 엘리사에게 나아갑니다(12절).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묻고 행하길 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마땅히 모든 일에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해야 합니다. 내가 맞닥뜨린 상황 앞에서 혼자 고민하고, 뭔가 묘안을 찾아내려고 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에돔 왕이 함께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먼저 묻고자 하는 유다 왕 여호사밧이 있어서 이러한 난관(難關)을 헤쳐 나갈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상황을 맞닥뜨릴 때 하나님께 향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태도입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