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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35대 총무원장 설정스님] 걸어온 길
종단 어려울 땐 통솔력 발휘…수습되면 다시 수행자로
2017-10-13 홍다영 기자
理事 두루 겸비…운수납자 표상
칠순 넘어서도 ‘선농일치의 삶’
“마부정제, 거울삼아 원력다해”
종단발전 위한 헌신 의지 주목
설정스님이 제35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설정스님은 종단 위기 땐 언제나 부름에 응해 난제를 해결하고 나면 ‘선농일치’의 본분납자로 돌아가곤 해 존경을 받아왔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설정스님이 제35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서 당선됐다. 설정스님은 종단 위기 땐 언제나 부름에 응해 난제를 해결하고 나면 ‘선농일치’의 본분납자로 돌아가곤 해 존경을 받아왔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다섯 살 때부터 주역의 대가인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운 설정스님은 열네 살에 출가했다. 1954년 아버지의 생신불공을 위해 수덕사에 들렀다가 그대로 출가했다. 1955년 혜원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1년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그동안 덕숭총림 수덕사 주지와 조계종 중앙종회의장을 지냈다. 설정스님은 과거 행정 소임을 보면서도 참선 수행을 놓지 않아 이(理)와 사(事)를 겸비한 대표적인 스님으로 꼽힌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엔 안거 때마다 전국 선원에 방부를 들이는 등 철저한 수행으로 운수납자의 지남이 되고 있다.
설정스님은 특히 1994년 종단개혁 당시 개혁회의 법제분과위원장을 맡아 개혁입법을 진두지휘했다. 종단 정상화와 교육을 통한 승가의 질적 향상, 포교 활성화, 재정투명화라는 입법기조에 따라 총무원장 권한을 분산하고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또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제11대 중앙종회의장 소임을 맡아 종단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안으로는 문중과 계파를 떠나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데 힘썼고, 이를 통해 종도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종단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설정스님은 원담스님이 입적한 다음 해인 2009년 덕숭총림 4대 방장으로 추대됐다. 이때부터는 문중화합과 후학지도에 힘썼다. ‘무슨 일이든 정성스럽게 잘하면 된다’는 선사들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젊은 후학들과 함께 하루 여덟 시간 정진하며 선농일치의 삶을 살고 있다. 스님 스스로도 일 하는 것 자체가 “정말 좋다”고 자부하고 있다. 스님은 자서전 <어떻게 살 것인가>를 통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살아나 덤으로 사는 거니까 죽을 때까지 쉽고 편하게 살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면서 “내가 농사를 지어 열매 맺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흐뭇하다. 노동의 의미를 일부러 느끼지 않으려 해도 쾌감이 있다”고 밝혔다.
평소 자상하고 인자함이 묻어나는 스님이지만, 불의 앞에서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는 강단진 면모를 지녔다. 1980년 10·27 법난 때 대전 보안대 지하실로 끌려가서는 자술서를 쓰라는 강요와 협박에도 사흘 동안 단식 좌선으로 버텼다. 이후 신군부가 주도한 ‘관제’ 법회에서는 “전두환 정권이 국민 화합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니 10만 병력을 동원해서 스님들을 잡아넣고 불교를 탄압했다. 이게 과연 국민화합인가”라고 사자후를 토했다.
종회의장을 마친 직후인 1998년 췌장암에 걸렸을 땐 “내가 다시 산다면 결코 편하게 살지 않겠다”며 참회 정진으로 병을 극복했다. 수술을 받고 몸조리를 하면서 기도로 병을 완치한 일화는 자서전에도 잘 나와 있다. “‘만약 죽지 않고 살면 반드시 진정한 수행자로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은 어떤 위기 앞에서도 용기를 내면 살 길이 열린다. 그때 그런 용기를 내지 않았으면 점점 몸이 가라앉아 죽었을 겁니다.”
세계적인 작곡가 고(故) 윤이상 선생의 천도재를 지내준 일화도 유명하다. 1995년 독일로 가서 윤이상 선생의 49재 추모법회를 봉행한 것. 독실한 불자였던 윤이상은 냉전시대 ‘동베를린 사건’에 연루돼 남한에선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힌 인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비전향 장기수 현안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세가 강력했던 때였다. 다들 쉽사리 엄두를 못 낼 때 불교의식으로 장례를 치르기를 원했던 유가족의 절절한 소원을 풀어줬다. 이념과 국경을 뛰어넘는 자비실천이었다. 49재를 진행하며 고인의 묘비에 ‘처염상정(處染常淨, 진흙탕 속에 피어나도 더러운 흙탕물에 묻히지 않는다)’이라는 경구도 써 주었다. ‘깨달음은 말이나 글로 전하지 않는다’는 불립문자 전통을 따르는 스님이지만 법문은 굉장히 쉽다. 한문을 많이 인용하기보다 일상의 언어로 법문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현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법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설정스님은 수행자로서의 삶과 인생의 영원한 화두인 ‘어떻게 살 것인가’를 놓고 약 한 시간 동안 법문했다. 이어 200여 청중들은 신도들과 허심탄회하게 질의응답을 주고받으며 불교를 폭넓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설정스님은 지난 12일 제35대 총무원장 당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마부정제의 뜻을 거울삼아 신심과 원력을 다해 종단 발전에 쉼 없이 진력할 것”을 다짐했다. 향후 설정스님이 이러한 원력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사부대중의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불교신문3337호/2017년10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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