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9-10)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은 믿음의 의로움, 즉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거듭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입술의 고백과 마음의 믿음이다.
'고백하고'로 번역된 '호몰로게세스'(homollogeses)의 원형 '호몰레게오'
(homollogeo;confess)는 '함께', '동시에'란 뜻을 지닌 '호무'(homu)와 '말함'
이란 뜻이 있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문자적으로는 '함께 말하다',
'동시에 말하다'라는 뜻이 있고, 실제로는 주로 법정 서약과 약속 혹은 고백 행위를
나타내는 데 쓰인다. 이러한 고백은 공개적 성격을 갖는다.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서원하다'라는 뜻의 '나다르'(nadar), '맹세하다' 라는
뜻의 '샤바'(shaba)등의 역어로 나타난다. 사도 바오로는 '호몰레게오'
(homollogeo)를 '공개적으로 고백 또는 진술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9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공적으로
고백하고 진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고백이 가지는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주님'으로 번역된 '퀴리오스'(kyrios)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퀴리오스'(kyrios)는 일반적 경칭으로 영어의 'Sir'이나 독일어의 'Herr' 의 의미가
있다. ② 로마 황제의 일반적 호칭이었다. 즉 황제를 신으로 여기고 숭배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③ 그리스 신들의 이름 앞에 붙여, 인간과 다른 영역에 있는 신을 나타낸다.
④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70인역(LXX)에서 하느님의 명칭인 야훼의 역어로
사용되어 유일신을 지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누가 예수님을 '퀴리오스'(kyrios)라고 공적으로 진술한다면, 그는 예수님을
황제, 더 나아가 신적 존재 혹은 유일신 야훼와 동일시하는 것이며, 이것은 곧 자신의
삶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그분께 드리는 것이 된다.
즉 이러한 칭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과 그 주권(主權)을 인정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유일한 구세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을 주님을 고백하는 것은 믿음의 시금석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Dominus)으로 시인할 때, 우리는 그분의 신성(神聖)과 존귀하심, 그리고
믿는 자 자신이 그분께 속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 성도들 사이에 이것은 신앙 고백의 신조(credo)로 사용되었고,
세례의식에서 고백의 문구로 사용되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또 한 가지의 조건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것이다. 즉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공개적 진술과 함께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써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원'을 얻는 데에 두 가지 모두 필수이지만, 굳이 논리적 순서를 따진다면 '믿음'이
'고백'에 우선한다.
여기서 '믿으면'으로 번역된 '피스튜세스'(pisteuses)는 '피스튜오'(pisteuo)의
부정 과거 가정법이다. 특히 여기서 과거의 일회적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시제인
부정 과거형을 사용하여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 믿음임을 보여준다.
이 믿음은 앞에 나온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라는 신앙 고백의 근거가 된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에서 요구되는 믿음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단정짓는데, 이 부활에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부활 모두를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믿음은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심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보증해 주셨다는 확고한 확신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서약이기도 하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0)
로마서 10장 10절은 로마서의 주제인 믿음으로 의로움(구원)에 이르는 원리를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보여주는 구절이고 가장 많이 알려진 구절이다. 9절의 말씀이
순서가 바뀌어 서술되고 있고 9절 내용의 반복이다.
인간 구원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의로움'을 회복하고 내면에서부터
변화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이며, 거기에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 자신의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음으로'로 번역된 '카르디아'(kardia; heart)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흔히 '마음'으로 번역하는 이 단어는 고전 그리스어 문헌에서 인간
전체의 지적, 영적 중심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리스어 구약 성경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히브리어 '레브'(leb)와 '레바브'
(lebab)의 역어로 나온다.
구약 성경에서도 이러한 단어는 인간의 영적, 지적 생활의 자리, 곧 인간의 내적
본성이며, 책임의 자리를 나타낸다.
따라서 마음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내면 전체의 인간적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카르디아'(kardia)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는 자리이며, 그곳에서 맨 처음에
하느님께 순종할 것인지,거부할 것인지의 문제가 결정된다. 그것은 불신앙의 자리도
되고, 신앙의 자리도 되는 것이다.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 믿음은 감상적 충동이나 추상적 사상으로만
인정받을 수 있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의 믿음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믿음'과 '믿음의 고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10절에서 그 결과로 제시하고
있는 '의로움'과 '구원'은 동일한 의미이다.
또한 여기서 '믿어'에 해당하는 '피스튜에타이'(pisteuetai)나 '고백하여'에 해당하는
'호몰로게이타이'(homollogeitai)가 모두 현재 수동태 3인칭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3인칭 단수형은 믿고 고백하는 주체가 각 개인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형이란 사실은 이러한 믿음과 고백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수동태로 되어 있다는 것은 믿음과 고백의 주체가 개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일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개인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기보다는 신적 의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은총의 차원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