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을 필자의 등단작입니다. 1차 등단은 2026년에 했는데 "문학할 깜이 못된다는 필자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타의반 자의반으로 등단한 지라 도광의 은사님 빽으로 등단 한 것 같아, 제 자의로 새로 <에세이 21>에 응모하여 등단한 작품입니다. 마음 먹고 묘사에 집중해서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내 본 글입니다. 글 자랑이 아니고 묘사에 집중하라는 안내이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설명을 금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할 수만 있다면 묘사를 하라는 뜻)
혹자는 말합니다. "자기 글이나 열심히 쓸 일이지 남의 글에 뭔 그리 관심이 많으냐" 는 것입니다. 문학은 인류를 아름답게하여서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세상)를 만들어 가는 데 그 생명이 있습니다. 지 혼자서 아무리 잘 써도 세상이 아름다워지지 않습니다. 1천 만 수필인이 매일 한편씩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작품을 써내면 남북 통일도 되고 진짜 선진국이 되고 동방의 빛나는 등불이 됩니다.
꽃이 고독하게 한송이만 피어 있는 들판은 오히려 더 삭막하고 비참합니다. 만화방창 해야 아름다운 정원이 됩니다. 그 때문에 이렇게 용 쓰고 있는 것입니다. 꽃을 그리려고 애를 쓰는 동료들 부터 사랑하세요. 같이 격려하고 같이 배우며 같이 걸어가세요. 풀이 시들면 꽃도 시든답니다. 시들기 전에 열매를 그리고 씨앗을 남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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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없는 것들/정임표
오래 전에 고향 들을 감싸 안고 십리제방이 생겼다. 황소가 오줌만 싸도 금호강이 넘쳐 홍수가 난다는 들판이었다. 모처럼 고향을 찾아 둑길을 걷다가 내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왜 전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을까? 나는 뒤늦은 회상에 젖어 십리 둑길을 하릴 없이 걸어 보았다.
우선 생각나는 게 보리밭이었다. 그렇게도 먹기 싫던 보리밥이었으니 당연한 순서인지도 모르겠다.
보리밭이 없어지니 보리밭 속에서 아물아물 피어나던 아지랑이도 없어졌다. 종달새도 없어졌다. 종달새는 보리이랑에다 둥지를 튼다. 보리가 애들 허리 키만큼 자라면 이랑이랑 사이로 종달새들이 내려 앉아 쪼르르르 굴러 간다. 하교 길에 종달새를 잡으려고 보리밭을 헤집고 다녔지만 녀석은 결코 자기 집을 들키지 않았다. 하늘 높은 곳에서 멈춰 파라락- 파락- 날개 짓을 하다가 수직으로 떨어진 곳이 종다리의 집인 줄 알고 달려가 보지만 그곳은 종달새의 집이 아니다. 제 집과는 전혀 엉뚱한 곳에 날아내려 빠르고 잽싼 걸음으로 요리조리 기어가 버리니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보리 베기가 끝나면 종달새를 잡으리라 벼르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빈 둥지였다.
금빛 모래도 없어졌다.
비단물살을 품고 있던 보드라운 백사장도 함께 사라졌다. 고층빌딩 콘크리트 속으로 다 실려 갔다.
백사장이 없어지니 물새도 사라졌다. 강변에는 물새들이 덱데구루루 달리고 있었다. 물감을 묻혀 도화지에 찍은 듯 모래사장에는 앙증맞은 발자국들이 줄지어 있었다. 물새들은 큰물이 지나간 후에 쌓이는 자갈무지 속에다 제 몸집만한 구덩이를 파고 서너 개의 알을 낳는다. 그 둘레에는 콩알 같은 잔자갈들이 알을 호위하듯 정연히 둘러 있었다. 물새알은 작은 자갈을 닮아 있어 쉽게 드러나질 않는다. 물새알을 주우면 어미물새가 안타까이 돌무지 주변을 맴돌았다. 아이들은 물새 속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알을 깨보기도 하고 계란 맛이 나는지 혀를 대보기도 하였다. 부화가 시작 된 물새알은 노란 자위에 핏빛이 성기어 있었다. 생명이 잉태가 된 알은 먹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 같은 게 있었다. 물새와 종달새가 달리기 시합하면 누가 이길지 모르겠다고 입씨름을 하기도 하였다. 작은 것들은 모두가 재빠르다. 힘이 없으니 재발라야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배추꽃도 없어졌다.
덩달아 배추나비도 없어졌다. 배추밭에 가면 배추꽃보다 더 많은 나비가 날았었다. 이제는 모든 종자는 종묘상에서 가져오기 때문에 나비가 사라져도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
사라진 것들은 또 강변에 지천으로 널린 풀이었다. 풀들은 촉촉한 습기를 먹고 늘 푸릇푸릇 하였다. 늘 푸릇하니 풀이라 불렸는가? 아이들은 소를 풀어 꼴을 뜯기고는 모래밭과 풀밭을 마음껏 뛰 놀았다. 변변한 운동화 한 켤레 없었지만 신발은 필요가 없었다. 돌보는 이 없어도 풀처럼 싱싱하였다.
포플러 숲도 없어졌다. 토사유출을 막기 위해 심어둔 포플러 숲은 한 여름 그늘을 만들어 쉼터를 주던 곳이다. 포플러 잎사귀 보다 많던 매미들이 울면 멀리까지 더위가 달아났었는데 이제는 매미 울음마저 기운이 떨어졌다.
한줄기 소나기가 땅을 식힌 후 산자락 끝에서 나타나던 무지개도 사라졌다. 요즈음은 무지개가 아예 뜨지를 않으니 지금 아이들은 무지개가 어찌 생겼는지도 모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경지정리를 하면서 크고 작은 물웅덩이도 죄다 사라졌다. 웅덩이가 사라지니 잠자리 애벌레가 살 곳을 잃어 잠자리마저 그 수가 많이 줄었다. 소 치던 아이가 암소 등을 타고 달음질하여 마당으로 들어서면 멍석 위 네모난 하늘에는 잠자리가 때지어 몰려들어 비행을 하곤 했었다. 빨간 고추잠자리도 있었고 왕잠자리도 있었다.
벼메뚜기도 사라졌다. 여물어진 벼이삭에는 벼메뚜기가 이삭보다 많이 붙어 있었다. 덩치 큰 암놈이 작은 수놈을 업고 있었다. 휘어진 줄기를 차고 후루룩 후루룩 뛰는 모습은 꼭 장대높이뛰기 선수 같았다.
사라진 것들은 그것들만이 아니고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초겨울의 달빛이 부서지던 해랑 개여울도, 초가지붕 처마 밑에 깃들어서 쇠죽 끓이는 내 모습을 갸우뚱갸우뚱 내다보던 까만 머리 참새 때들도 저녁연기와 더불어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작고 아름다운 것들만 죄다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게 보드랍고 재발랐던 것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또 그 작은 것들에게 꿈을 주던 무지개는 왜 이제는 보이질 않을까? 아무도 꿈을 꾸지 않는 탓일까? 누가 그들을 내 곁에서 데려갔을까? 가난일까? 모두가 떠나고 비어가는 고향마을을 보니 가난이 면해진 것도 아닌데 힘없고 가냘픈 것들만이 애꿎게 사라지고 없었다. 행복해 지지도 못하였으면서 소중한 것들만 다 잃어 버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사라지고 없는 것들은 모두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끔찍이도 나를 사랑해주던 것들이었고 내가 그들의 사랑 속에 있을 때에는 그것들이 있는지 조차도 느끼지를 못했던 것들이었다.
들판은 온통 비닐하우스로 덮여 있다. 저 멀리 하우스 한쪽이 찢어져 펄럭이는데 비닐지붕에서 반사되는 햇살이 냉정하다. 사라지고 없는 것들이 이리 많으니 고향에 와도 고향이 아닌 듯하다. 400년을 이어온 따뜻한 인심이나마 지켜질지 모르겠다. (원고분량 200자 원고지 13.8매)
첫댓글 묘사는 대화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정임표 선생님의 이 글이 그렇다는 뜻은 절대 아니니 오해 없으셨으면 합니다.)
수필 창작에서 묘사를 강조하려거든 고경숙의 '귀소'를 꼭 한번 찾아 읽어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저는 등산을 두발로 걷지 않고 네발로 걷습니다. 오체투지 하듯 기어서 가는 분도 있고, 케이블카로도 가는 분도 있으니 방편에 억매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수필의 강점이 무형식의 형식미에 있다는 점은 독자님들이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점은 모든 문학장르가 부러워하는 점입니다. 고경숙의 '귀소'를 한번 올려 주시지요. 귀소나 귀천은 문학에서 많이 노래한 주제로 친근감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