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본받읍시다 (마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시간에 “그리스도를 본받읍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을 드리기 전에 미국 시카고대학의 재미있는 결과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미국의 시카고대학은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입니다. 그렇게 된 동기가 있는데 1929년에 총장이 모든 학생들에게 고전 100권을 읽도록 한 후에 모델이 될 사람을 선정하여 그와 같은 삶을 살도록 유도하였습니다. 그러한 결과로 지금까지 71명이나 노벨상을 받는 학생들을 배출하는 대학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것을 모델로 삼고 노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히12:2에서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고, 고전11:1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신앙의 원본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서 무엇을 본 받을까요?
1. 그리스도의 온유를 본받읍시다.
본문 29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그랬습니다. 온유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인데 하나님께 적용했을 때는 말씀 잘 듣고 순종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우리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에 한 번도 아니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고후1:19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예만 하신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자녀가 되시기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순종하는 자녀가 하나님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 때문에 항상 기뻐하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도 아니오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빌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5-8)
온유는 성령의 열매이기도 하고 훈련을 통해서도 이루어집니다. 거친 야생마도 훈련시키면 기수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명마가 될 수 있듯 잘 길들여진 마음을 온유라고 합니다. 특히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온유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카페를 운영하다가 몇 사람이 악플을 단다고 카페를 폐쇠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온유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모세가 위대한 사역자가 되었던 것은 온유했기 때문입니다. 민12:3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말씀합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얼마나 악했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하나님께 여쭈었고 자기 감정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다윗은 그의 군장 요압과 아비새 아사헬 등 그 형제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삼하3:39에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 목숨 바쳐 충성하면서도 자기 주관이 너무 강해서 다윗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아랫사람들이 지나쳐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순종을 주제로 하여 두 주간 동안 부인들을 훈련을 시켰습니다. 두 주 동안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하도록 하는 숙제가 주어졌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의 말이라도 그리고 말 같지 않은 것이라도 그리고 도저히 순종할 수 없을 것 같은 것이라도 순종하라고 숙제를 주었습니다.
두 주간이 지난 다음 그들의 가정에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먼저 남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가 안하던 짓을 하니까 놀랐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짓을 하니까 놀랐고, 그래서 남편들이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남편들이 변했다는 것입니다. 늦게 들어오던 남편이 퇴근하고 일찍 집에 들어왔고, 교회 가겠다고 말로만 약속하고 지키지 않던 남편이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읍시다.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겸손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겸손함은 성육신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면서도 영광스런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실 때 하늘 임금의 모습으로 천사들을 대동하고 오시지 않으시고,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비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삼하3:1에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무엇 때문입니까? 사울이 처음에는 겸손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몇 번의 전쟁에 승리하고 자신의 자리가 견고해지자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교만하여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않고 맘대로 하였습니다. 반면 다윗은 실수한 적도 있으나 선지자의 지적을 겸손하게 받아드렸고 진실로 회개하였습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는 말했습니다. “좋은 연주자는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째는 자신감이고, 둘째는 겸손함이다” 자신감도 있어야 하지만 난 아직도 부족하다는 겸손함이 없이는 정상에 머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만하여 하루만 연습하지 않아도 자기가 알고 사흘을 안하면 남이 알고 모두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하루 한 시간만 자만해도 안 됩니다.
자기 부족을 알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런데 골2:18에 꾸며낸 겸손이 있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서 겸손한 체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위치에 맞게 행동하며 충성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아버지 사랑으로 택함 받고 속량함을 얻은 그 은혜를 받은 자임을 한 순간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탈무드에 보면 한 스승이 제자들을 두 부류로 나누고 각각 십자가 하나씩을 주면서 목표지점까지 그것을 지고 가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 팀은 십자가가 가벼운지 가푼하게 지고 빠른 속도로 목표지점에 도착했지만, 다른 한 팀은 십자가가 무거워 기진맥진하다가 늦게 겨우 도착하여 왜 우리는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주셨느냐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같았습니다. 다만 다른 것은 마음의 차이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쁨으로 진다면 주님의 말씀은 조금도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3. 그리스도의 경건을 본받읍시다.
눅22:39에 “예수님이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라” 했습니다.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는 것은 기도가 몸에 밴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때는 밤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밤에 기도하셨습니다. 막1:35에는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이처럼 새벽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문제를 앞두고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는 이 기도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교인을 둘로 나누면 기도하는 교인과 기도하지 않는 교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도해야 능력을 받습니다. 기도해야 구하는 것을 얻습니다. 기도해야 역동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의 한 도시 스프링스는 목회자들의 무덤이라 불릴 정도로 사역이 어려운 곳이었다고 합니다. 테드 해거드 목사가 이곳에서 목회할 때, 칼로 찌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마다 협박전화가 걸려오고, 사단 숭배자들이 죽은 개나 고양이의 머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테드 목사는 물러서지 않고 영적 전쟁을 벌였습니다.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번호부를 다섯 명 단위로 오려 그 이름을 불러가며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부동산의 매물이 나오면 그리스도인이 주인이 되도록 기도했고, 미국의 많은 선교단체가 이곳으로 이사 올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 지역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역이 복음화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기도대로 현재 선교단체가 본부를 두고 있는 가장 능력 있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요16:24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하셨습니다. 기도해서 손해볼 것 없습니다. 구하면 기쁨이 충만할 일이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 에녹 노아 아브라함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다니엘 베드로 바울 요한, 마리아 마르다 에스더 도르가 드보라 등 우리의 모델은 많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롤모델로 삼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영생을 얻고 더욱 풍성히 얻어 가장 위대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