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6
756이란 숫자를 아는가?
6.25한국전쟁의 쉼을 위해
만난 횟수라고 한다.
남과 북이었으면 좋겠지만
북과 미가 만난 횟수이다.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씨가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겼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전쟁 당사국 자격이 없어서다.
전쟁 당사국이 아니므로
휴전 당사국도 아니다.
삼팔선 판문점 근처에 천막을 치고
양쪽 대표들이 모여 756번이나
회담을 한 끝에 마련된 것이
휴전조약이었다.
그 때의 정보자료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북한이 이익을 균등하게 나눌 수 있는
지점을 찾을 때까지 만남을 계속할 것이다.
조바심 가질 것도 걱정할 것도 없이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라 했다.
어제 (2019.4.22.16~18시)<북녘의 교회를 가다>, <북녘의 종교를 찾아가다>
두 권의 책 출판기념회에서 지은이인
최재영목사가 한 말이다.
출판기념회에 서평을 맡아달라고 해서
참석했는데 앞으로 여러 책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목사신분으로 수없이 많은 횟수를
방북하고 북한의 실태를 잘 알고 있어보여서
북한 선교사역자라로 표현했더니
자기는 선교한 적이 없다며 미리보낸 서평을 보고
의견을 보내와서 현장에서 소개했다.
북한 사역,북한 선교,북한 선교사역을
구분해서 표현하는 기법을 익혔다.
기독교,불교,가톨릭에서 각 한 명씩의 서평자를
초대해서 북토크형식으로 진행한다고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책에는 평양의 광법사,정릉사,사리원
성불사방문기를 싣고 금강사,신계사이야기가
살짝 실었다.
최재영목사나 서평자인 우예현목사의 질의에
변진흥박사와 최재영목사의 대답에 약간의
보태기를 하기도 하였다.
북한의 종교자유를 말할 때 법률과 실제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에 관해 나라와 민족과
역사에 어떻게 작용하였는가를 따지는
경향이 짙다는 것을 말했다.
'가톨릭이 당시 반공이념에 짙게 기울었고
일제시대에는 일제보다 더 일제같은 일을
저질렀다. 뮈텔주교 등이 안중근의사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해 민족입장에서
복권한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말에 대해
가톨릭교구도 없어진 나라처럼 독립적이지
않아서 일본교구에 예속되어 있었음과
기독교는 연합 교단이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통합의식이 없었던 점,불교는 내선일체를
도모하다 조선인 승려가 일본에서처럼
제2계급으로 급상승하는 것을 싫어해
중단한 이야기를 하였다.
6.15행사로 북한에 갔을 때 삼대혁명기념탑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놓고 한국정부의
의견을 기다리고 있다가 종교별로 판단해서
참,불참을 결정했었다.
차 안에서 어느 교무께서 '스님들이 정말
부럽다.우리는 가면 가고,안 가면 안 가는데
가고,말고를 자율로 한다.'하기에 '승려는
개개인이 정부 수반이다.'는 말로 응수했는데
조계종 스님 한 분이 '아,부모 말도 듣지 않고
집 나온 우리가 누구 말을 듣것소!'하여
박장대소한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출판회
대중들도 폭소가 터졌다.
금강산 신계사이야기를 금강산교회편에서
다뤘다. 복원불사도감으로 현장에 있었던 조계종 제정스님이야기에서 조계종 하나만 파견해서
아주 잘한 것이라 해서 기독교처럼 우후죽순은
아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신계사 복원은 처음 현대아산에서 불교 전체기구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국장인 나하고 상의해서
결정적논의를 위해 회장종단인 조계종총무원장에
소개했더니 전체사업을 조계종 독단으로
진행하였다는 이야기를 했다.
북한의 스님들은 종파는 조계종이라 하고
가사는 붉은 색의 홍가사를 수해서 종파이름은
조계종이 좋아하고 가사는 밤색이 아닌
붉은 색을 수하는 태고종에서 좋아한다.
홍가사이지만 전통을 따르지 않은 곧
전통에서 홍가사의 필수인 일월광을 붙이지
않은 비전통가사를 수하고 있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북한스님들의 홍가사를 한국불교에서
만들어주어서 수하고 있지만
조계종에서 주도했기에 일월광첩을 붙이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다.
백두산 천지평야에서 세웠다는 천불교종법사의
이야기는 자료에서 보았지만 새롭다.
일제가 망하는 것 하나만을 주제로 기도하며
아흔아홉칸 사찰을 지어 활동한 근거가 있으니
복원해야 한다는 우룡스님과 최재영목사의
이야기다.
시간관계상 내용서평보다는 인상서평과
뒷이야기와 흐름에 관한 이야기만 했기에
지은이와 서평자,객석참석자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우룡스님,박교일씨,정강주씨 등의 불교인들도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