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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늘 청춘이다.
연애하듯 사는 사람은 늘 향기롭다.
시간이 지나도
젊음을 잃어도
아름다움을 잃어도
여전히 사랑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당신은 왜 오늘을 살고 있으며 -안병욱
왜 내일도 살기를 원하는가
당신을 사랑하고
또 당신을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있어서
내일도 그를 보고 싶고
그와 함께 있고 싶고
그를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일 외에
우리가 살아야 할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 괴태의 명시집
우리는 어디서 태어났는가?
사랑에서.
우리는 어떻게 멸망하는가?
사랑 없으면.
우리는 무엇으로 자기를 극복하는가?
사랑에 의해서.
우리는 무엇으로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가?
사랑에 의해서.
오랫동안 울지 않고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에 의해서.
우리를 항상 결합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
밥만 먹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
인간은 사랑이시라는 분이
그렇게 창조한 사랑덩어리이다.
있는 그대로 반겨주는 사랑
나의 모든 부족과 연약함
못남을 알고도 여전히 사랑해 주시는 사랑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고
더욱 간절해지고
더욱 사모하게 되는 사랑이 있을까?
그것이 하늘의 사랑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이야기는
그 사랑을 향해 피어난다.
하늘은
봄날 돋아나는 새싹을 통해
피어나는 꽃들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한없는 사랑을 고백한다.
그래도 무딘 우리를 위해
봄에는 딸기로
여름에는 참외와 수박으로
가을에는 사과와 배
겨울을 준비하는 견과류들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사랑을 고백하신다.
그래서 사랑에 우둔한 우리를 위해
결국 영원한 사랑의 러브레트
66권으로 이루어진 긴 사랑의 편지를 쓰셨다.
그래도 사랑에 우둔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직접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우리의 모든 슬픔, 저주, 죄, 아픔을
다 도맡아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무덤을 깨트리고 부활하셔서
하늘을 향한 새길을 열어놓으셨다.
하늘의 사랑보다 더 한 사랑은 없지만
그 사랑을 연습하게 하는
조선(朝鮮) 숙종(肅宗) 때의 한 사랑이야기를 소개한다.
부모를 어린 나이에 여의고, 친족들의 도움도 받지 못해 외롭게 떠돌고 있는 가련한 한 젊은 이가 있었다. 비록 명문 가문의 자식이라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목구멍이 포도청인걸!
밀양 땅에 이르러서는 생계를 위해서 남의 집 머슴을 살게 되었다. 비록 머슴살이를 살고 있고, 학문이 짧아서 무식했으나 사람됨이 신실(信實)하였고, 언변(言辯)에 신중하였고, 인격(人格)이 고매(高邁) 하였으므로 대하는 사람마다 그를 존중하여 주었으며, 사람들은 그를 "고도령(高道令)" 이라고 불러주었다.
그 마을에는“박 좌수(朴座首)”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박 좌수”는 관청을 돕는 아전 (衙前)들의 우두머리였지만 박봉(薄俸)이었고, 중년의 나이에 상처(喪妻)를 한 후에는 가세(家勢)가 매우 구차(苟且) 하였는데, 효성(孝誠) 스러운 딸 하나가 있어 정성껏 아버님을 모셨으므로 가난한 가운데도 따뜻한 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고유(高裕)”는 그 마을에서 달을 넘기고 해를 보내는 가운데 어느덧 그 처녀의 효성과 현숙(賢淑)한 소문을 듣게 되고
먼빛으로 보고 그 처녀를 바라보며 아름다운 처녀에게 연모(戀慕)의 정을 품게 되었다. “내 처지가 이러하거늘 그 처녀가 나를 생각해 줄까? 그 처녀와 일생을 더불어 산다면 참 행복할 텐데!
벌써 많은 혼사(婚事)가 오간다 하는데, 한 번 뜻이나 전해보자. 그래, 부딪혀 보자고!” 그러던 노을이 곱게 밀려드는 어느 날에 "고유”는 하루의 일을 마치고 “박 좌수”의 집으로 찾아갔다.
본래 “박 좌수”는 장기를 좋아하여 장기판 부터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실없는 말처럼, 젊은 가슴을 진정시키며 품었던 말을 꺼냈다. “좌수어른! 장기를 그냥 두는 것보다는 무슨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요?”
“이왕할 바에는 좀 큼직한 내기로 합시다. 이러면 어떨까요? 제가 지거든 좌수댁의 머슴살이를 삼 년 살기로 하고, 좌수님이 지거든 제가 좌수님 사위가 되기로요!”
“박 좌수”는 그제야 “고유”의 말이 뼈가 있는 말임을 알았다. "예끼 이 사람아!
금지옥엽(金枝玉葉) 같은 딸을 자네같은 머슴꾼에게 주겠는가? 어찌 자네 따위나 주려고 빗발치는 청혼(請婚)을 물리치고 스무 해를 키웠다던가?”
“고유”는 “박 좌수”에게 무안을 당하고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되돌아갔다. 그런데, “고유”가 돌아간 뒤에 "박 좌수”와 '고유'가 말다툼 하는 것을 방에서 듣게 된 딸이 물었다. “아버님께서 뭣 때문에 고도령을 그렇게 나무라셨습니까?” “그 사람이 글쎄 나더러 자기를 사위로 삼으라는구나. 그래서 내가 무안을 줘서 보냈다! 감히 넘겨볼 것을 넘겨다 봐야지, 감히 우리 귀한 딸을 어찌 감히 바라봐!”
다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하면서 딸의 고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님, 그이가 어때서 그래요? 지금은 비록 빈천(貧賤)하나, 본래는 명문 사족(士族)이었고 또 사람이 듬직하고 그렇게 성실한걸요!”
오히려 “박 좌수”의 딸은 처녀의 수줍음 탓에 얼굴은 불그스레 해졌지만, 얼굴 두 눈에 가득히 좌수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자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와서 좌수에게 혼인을 지내도록 하라고 권하여 마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 집안의 일인 양 우겨대자 좌수도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물 한 사발 떠 놓고 젊은 청년과 처녀의 혼례(婚禮)가 이루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모은 돈으로 술동이를 받아 놓고 고기와 과일을 먹고 마시며 그들 한 쌍을 축복해 주었다.
화촉동방(華燭洞房)의 밤은 깊어지고 "고유“와 신부는 촛불 아래서 부부의 연(緣)인 초야(初夜)를 치뤘다. ”고유“는 가난하였으나 행복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 뿐이었다. 그러나 색시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서방님! 글을 아시나요?”
“부끄러우나 배우지를 못하였소!”
“글을 모르시면 어떡하시나요?
대장부가 글을 알지 못하면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도 공명(功名)을 얻을 길이 없는 법입니다!” 색시는 고유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앞으로 십 년을 작정해서 서로 이별하여 당신은 글을 배워서 과거(科擧)에 오르기로 하고 첩(妾)은 길쌈을 하여 세간을 모으도록 해요!
그렇게 한 뒤에도 우리들의 나이가 삼십이 되지 않으므로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닙니다. 우리 부부가 헤어지는 것은 쓰라리지만 훗날을 위해 고생하기로 해요!”
색시는 “고유”의 품에 안기어 눈물을 끊임없이 흘렸다. “고유”의 두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그는 색시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긴 세월 접어두었던 학문의 길을 깨우쳐 주는 색시가 어찌 그리도 사랑스러 운지!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다.
아직도 동이 트지 않은 새벽녘에 “고유”는 짧은 첫날밤이 새자 아내가 싸준 다섯 필 베를 짊어지고 입지출관향(立志出關鄕) 했다. 그는 그렇게 떠나서 어느 시장에서 베를 팔아 돈으로 바꾸고 스승을 찾았다.
돈을 아끼려고 남의 집 처마 밑에서도 자고, 빈 사당(祠堂) 아래서도 밤을 새워가면서 스승을 찾아 발길은 합천(陜川) 땅에 이르렀다. 고유는 인품과 학문이 높아 보이는 듯한 사람에게 예(禮)를 올리고 글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청했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 학동들과 함께 천자문을 처음 배웠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시작 했으나, 오륙 년이 지난 후에는 놀라움 속에서 “고유”의 글은 실로 대성(大成)의 경지에 도달했다. 스승도 탄복하면서 칭찬을 하였다. “네 뜻이 강철(鋼鐵)처럼 굳더니 이제는 학문이 일취월장(日就月將) 하였구나! 너의 글이 그만하면 족히 과장(科場)에서 독보(獨步) 할 만하다. 나로서는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올라가서 과거나 보도록 하여라!”
“고유”는 그동안의 신세를 깊이 감사하며 그곳을 물러나서는 해인사로 들어갔다. 그는 거기서 방 한 칸을 빌린 다음 사정을 말하여 밥을 얻어먹으면서 상투를 매어 달고 다리를 찌르며 글을 익혔다.
어느 해, 드디어 기회(機會)가 찾아왔다.
숙종대왕(肅宗大王)이 정시(庭試)를 보이라는 영(令)을 내렸다. 뜻은 헛되는 법이 없었다. “고유”는 처음 치루는 과거에서 장원급제(壯元及第) 하였다.
그 후에 “고유”는 조정(朝廷)에서 왕을 모시게 되었다. 왕을 가까이 모시던 어느 날, 소나기가 쏟아져서 처마에 그 소리가 요란하였기에 왕은 대신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숙종(肅宗)은 혼자 말을 하였다.“신료(臣僚)들 소리가 빗방울 소리에 방해되어 알아 들을수가 없구나!”
그것을 고유는 초지(草紙)에 받아쓰기를,
“처마에서 나는 빗방울의 소리가 귓가에 어지러우니 의당 상감께 아뢰는 말은 크게 높여라!” 하니 모두 글 잘한다고 칭찬하였다.
왕은 쓴 글을 가져오라 하여 본 다음에 크게 기뻐하여 물었다. “너는 누구의 자손이냐?” “신(臣)은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의 현손(玄孫) 이옵니다!”
“허! 충성된 제봉(霽峰)이 손자도 잘 두었군! 그래 고향 부모께서는 강령하시더냐?”
“일찍 부모를 여의었습니다.”
“그럼, 처자(妻子)가 있겠구나!”
“예, 있사옵니다!”
그날밤, 숙종대왕(肅宗大王)은 “고유”를 따로 불러서 그의 사연을 사적(私的)으로 듣고 싶어 하셨다. “고유”는 감히 기망(欺罔) 할 수가 없어서 떠돌아 다니다가 밀양 어느 마을에서 머슴을 살게 된 이야기며, 거기서 장가를 들었고, 첫날밤에 아내와 약속을 하고 집을 떠나서 10년 동안 공부를 한 그의 이력을 모두 아뢰었다.
“허허! 그러면 10년 한정(限定)이 다 되었으니 너의 아내도 알겠구나!” “모를 줄 믿사옵니다. 과거에 급제한 지가 며칠이 안되어 아직 통지를 못했습니다.”“음, 그래?” 왕은 그 자리에서 이조판서(吏曹判書)를 불러들여 현(現) 밀양(密陽) 부사(府使)를 다른 고을로 옮기고 “고유”를 밀양 부사로 임명하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다시 고유를 바라보면서, “이제 내가 너를 밀양 땅으로 보내니 옛날 살던 마을에 가서 아내를 만나되 과객처럼 차리고 가서 아내의 마음을 떠봐라! 과연 수절(守節)하며 기다리고 있는지, 아니면 기다리지 못하고 변심했는지 그 뒷이야기가 나도 궁금하구나!” “고유”는 큰 절을 하고 물러 나왔다.
그는 왕이 명(命)한대로 하인들은 도중에 떼어놓고 홀몸으로 허술하게 차린 다음에 옛 마을을 찾았다. 그러나, 집터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이었고 사람의 그림자도 없이 버려진 채로 수년의 세월이 지난 것으로 보였다.
“고유”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못 믿을 것이 여심(女心) 이라던가? 첫날 밤에 맺은 굳은 언약이 가슴속에 사무치건만!”
마침 가까이 소를 끌고 가는 노인을 보고
“박 좌수” 집 형편을 물으니 늙은이는 아는 대로 일러 주었다. ‘박 좌수‘ 어른이요? 그러니까 그것이 3년 전이었군요. 병으로 죽었지요. 그에겐 딸이 하나 있지요.
벌써 10년 전에 이 마을에서 머슴을 살았던 고도령에게 시집을 갔는데 첫날밤에 신랑이 자취를 감추어 버려 혼자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첫날 초야에 아들이 하나 생겼어요. 참 똑똑하지요. 그 여자는 현숙하고도 어찌나 부지런했던지, 남편이 없었는데도 크게 가산을 일으키더니 땅과 살림이 무수하고 건너편 산 밑에 백여 호가 넘는 대촌을 이루어 놓았어요!”
“고유”는 너무도 기뻤다. 가산을 이뤄놓은 사실이 아니라, 사랑의 언약을 지키면서 자신을 기다려줬다는 사실 때문에! '고유'는 노인에게 사례하고 자신을 따르는 군속들에게는 주막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고유”는 십년동안 헤어졌던 아내를 한시라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 꿀떡같았다. 그런데 그녀의 진심을 알고 싶어 거지꼴로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집을 떠나서는 뜻을 이루어보려 하였으나 운수가 사나워서 베를 판 돈은 도적을 만나 빼앗겨 버리고, 이리저리 유리걸식(遊離乞食)하여 다니 자니 글을 배울 힘도 나지 않았거니와, 서당이 있어 글을 배우려 해도 돈이 없으니 가르쳐 주려는 사람도 없었소! 세월만 허비하고는 글은 한자도 배우지 못하고 이렇게 비렁뱅이가 되었소!”
그러나 부인은 조금도 원망하거나 민망해 하는 빛이 없이 사람의 궁달(窮達)은 모두 운수에 있다고 하면서 자기가 벼를 수천석 추수를 장만해 놓았으니 우리에게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좋은 의복과 음식을 들여 놓으면서 도리어 남편을 위로하여 주었다.
“고유”는 음식상을 앞에 두고 부인이 주는 옷으로 갈아 입었다. 그런데, 부인의 눈길에 남편의 겉옷은 거렁뱅이의 옷차림이지만 속옷은 새하얗고 깨끗하였으며 허리춤에는 관리들이 차는 명패가 흔들거리고 있었으니 놀랐다.
“서방님! 사실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나와 동행하던 사람이 있으니 그들도 불러들여 함께 먹어야 하겠소!” 부인이 하인을 시켜 그사람을 사랑방으로 모셔 들이라 하였다. 하인이 나가서 문 밖에 서 있는 과객을 보고 들어가자고 하자, 그는 들은척도 않고 대로에 나가더니 품에서 호적(號笛)을 꺼내어서 높이 불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 십여명의 관속들이 달려와 안으로 들어가서는 도열하였다. 그리고 박씨부인을 향해 문안 인사를 올리는 등 야단이었다. 문 밖에 서있던 과객은 "고유”의 지시를 받은 군관이었다.
“고유”는 그제야 박씨 부인에게 말했다.
“우리 부부의 사연을 들으신 상감마마께서 지시하신 것이라오. 당신의 마음을 떠보려고 한 것이 결코 고의가 아니었소!”
군속이 관복을 가져오니 갈아입고 박씨 부인 앞에 당당하게 선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인의 기쁨은 어떠하였으랴! 그 이튿날부터 3일간 크게 잔치를 베풀어 동리의 남녀노소를 불러모아서 실컷 먹고 마시게 하였다. 박씨 부인은 그동안 모아 놓은 전답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고유”는 얼마 안 있어 벼슬이 경상감사에 올랐다가 이조참판에 이르렀으니, 숙종(肅宗)과 영조(英祖), 正祖(정조) 등 3대를 모시면서 영화로움이 말할것도 없고, 박씨 부인도 나라에서 지정한 “정부인”이 되어 늦도록 복록(福祿)을 누렸다고 한다.
사랑이야기는 언제나 아름답다.
우리는 기다리는 님이 계신다.
다시오실 그 약속을 믿고, 신부의 세마포를 정결히 준비하자.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 19:7-8)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37-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