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나비가 꽃을 향해 날아들듯, 아름다운 여자에겐 늘 멋진 남자들이 몰려드는 법이다.
파란머리의 여우와 빡빡머리의 여우가
' 당당함' 이라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길을 걷자
그 당당함에 매료되어 버린 늑대들이 하나 둘씩.. 그녀들의 곁으로 몰려 들었다
하지만, 절대 쉽게 넘어가 줄수는 없는 법!
콧 웃음을 내비추며 오로지 앞만 보며 걸어가는 두 여우.
그러나.. 가장 괜찮은 남자 두명을 앞에 두고서
희야가 의미 심장한 표정으로 재경을 향해 물었다
" 어때?! "
재경은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인가 싶어
" 뭐? "
되물었다
자신의 귀를 후벼파는 제스츄어를 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
희야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남들에겐 자신의 웃는 모습을 여간해선 잘 보여주지 않는 희야가
낯선 남자들을 향해 웃고 있다니.. 드문 일이였다
희야의 반응에 용기를 얻은 남자들이
희야와 재경을 향해 마구 추파를 던지며 들이대기 시작했다
" 추운 데 계속 길을 걷지만 말고, 안으로 들어가는 게 어때요? "
" 그래요 우리가 맛있는 거 사줄께 ~ "
서툰 작업.
지한얼 작업남과 김동현 작업남의 능력에 비하면
세발의 피..
애송이들이였지만, 그들의 작업 능력도 그럭저럭 꽤 쓸만하긴 했다
그치만.... 문제는 그게 아니 잖아 - !!!!!!
" 재경아.. "
" 응? "
" 우리도 하자 "
" 뭘? "
" 바람..... 피자 우리도.. "
샤락.. 샤락..
희야의 음성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재경의 귓가를...
재경, 자신의 귀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자아내 주었다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미아한 말이지만, 눈 앞의 늑대 두마리는
이미 그녀들의 머리 속에서 잊혀져 버린지.... 한참이 되었다
슬금 슬금, 옆으로 물러나 버린 늑대들이
조금은 불쌍하게 느껴졌어야 했지만
그런 것 까지 일일히 신경써 줄 만한 여유따윈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재경은 희야에게서 고개를 돌린채, 희야는 재경앞에서 고개를 숙인채
한동안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희야가 내 뱉았던 가슴 속 응어리의 한이..
메아리가 되어 돌고 돌아 계속해서
재경의 머리 속을, 마음 속을, 몸 속을 회오리 치듯 세차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근처의 까페로 자리를 옮겨 자리를 잡고 앉았다
떨리는 손으로 잡은 물잔 안의 물을 벌컥 벌컥 들이마시고
간신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재경이 물었다
[ 바람피자.. 우리도.. ]
우리도의 도란 녀석의 정체를 애써무시하며
단순히 바람피자 라는 말이길 바라며,,
" 권태기냐? 갑자기 왠 바람? "
설마.. 모르겠지... 모를꺼야..
희야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깍지 껴 머리 뒤를 받치고 다리를 쭉 펴서
느긋하게 등을 소파 등받이에 기댔다
난감한 듯한 표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고정시켜
애꿎은 빨대 끝만 연신 물어대는 재경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했다
" 이러기야? "
" 뭐.. 뭘.... "
자신을 똑바로 보는 희야의 시선을 외면해버리고 마는 재경..
작게 한숨을 내쉬며 희야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 다 알잖아 너도... 이젠.. "
이젠의 정체는 또 뭐야
넌 나보다도 훨씬 먼저 알고 있었다고, 그렇게 해석하는게 맞는 거야?
그래.. 유희야?!!!!
재경의 눈이 놀라움을 담은 채 희야를 다그쳤다
" 바람 피자 우리도.. "
" 유희야... "
" 왜.. 안돼? "
" 희야야 .. ! "
희야를 부르는 재경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어쩜 이러니... 넌 대체..
어딘가 모르게 좀 멍청해 보이고
어딘가 모르게 좀 덜떨어져 보이고
그랬지만 가끔은…… 이렇게 종종 사람을 놀래켜버리기도 했다
그게 한재경이 유희야에게 반한 이유기도 했지만
이런식으로 사람의 뒷통수를 쳐버리는 행동,
재경은 질려버렸 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 지한얼도 피고, 김동현도 피고, 다 피는 데 .... 난 피면 안돼? "
" 대체... 언제, 어떻게 안거야 너 "
" 언제까지 도망칠 순 없잖아
재경이가 모른다면 모를까.. 재경이도 알아버렸는 데 이젠..
무서워도 내가 감당해야만 한다면 받아들여야지.. 나도 이젠 애가 아닌 데 "
무섭다..
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뭐야 그럼 다 연기야?
종종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었던 것도,
어딘지 모를 곳에 갔다고 헛소릴 하던 것도
다 연기야??
화내고 묻고, 그러고 싶었는 데 ... 그러나 재경은 차마 희야를 닥달해 댈 수가 없었다
얼마나 힘겹고, 아팠고, 싫었으면
그 슬픔을 없애려 그렇게 까지 발악했을 지..
알면 알 수록 더 모르겠는 유희야
단순해 보이면서도 복잡한 유희야를 알기엔..
3년이라는 시간조차도 너무 짧았던 걸까?
" 헤어져라 그냥.. "
재경이... 자신의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힘겹게 자신의 말을 토해냈다
" 싫어 "
" 왜 !!! "
" 난 괜찮아.. 재경인 그래도 나 두고 바람 안필꺼잖아 "
" 그게 문제가 아니 잖아 !!!!!!!!! "
" 힉 - , 설마.. 재경이도 나 버릴꺼야? "
너는 상대가 널 조금 알았다 싶으면..
안... 그만큼 딱 그만큼 뒤로 한발 더 물러나지??
늘 그래... 그치??
니가 하는 수 많은 말들의 의미를 난 도저히 모르겠어
아무 생각 없이 내 뱉는 것 같이 보이는 말 하나하나에도
다 뼈 있는 의미 심장함이 담겼다는 건 알겠는 데
난 도저히 해석 불가다 희야야..
--
자신의 말을 이해 못할 재경임을 안다
그래서 희야는 처음으로 재경을 위한 답안지의 해석을 선보였다
지한얼은 그치만 유희야를 가장 좋아해
유희야는 그래도 지한얼을 가장 좋아해
지한얼은 ( 여자가 많아 ) 그치만 ( 그 중에서 ) 유희야를 가장 좋아해
유희야는 ( 지한얼 에게 여자가 많다는 걸 알아 ) 그래도 지한얼을 좋아해
그래서 버릴 수가 없어
가족이고 친구고 애인이고
이미 소중해져버린 존재는.... 안보고는 절대 살 수가 없어
어떤 이유로든 지한얼을 보긴 봐야하는 데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친구가 될 순 없잖아
아파서.... 어떻게 얼굴을 봐
지금도 충분히 아파서.. 지금보다 더 아픈 건 생각만으로도 끔찍해..
그래도 다행이야..
재경이가 있잖아 난..
재경이도 이젠 알잖아. 내가 아프단걸 알아 주잖아
재경인 그래도 나 두고 바람 안필 꺼잖아
늘 곁에서 내 걱정 해 줄 거잖아.. 든든한 내 빽이 되어줄 꺼잖아..
재경은 희야를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그치만 노력은 단지 노력에서 그칠 뿐이였다
희야가 자신의 말에 담긴 의미들을 풀어서 해석 해주자
재경의 머리 속은 오히려 더 많이 복잡해져서... 뻥 -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치만 그러는 와중에도 떠오르는 결론은 오직 하나였다
이런 착한 녀석에겐 그딴 못된 자식은 어울리지 않다는 거.
유희야에겐... 다른 남자가 필요할 꺼라는 거..
그것은 반드시.. 지한얼을 뛰어넘을 만큼 멋진 사람이여야 한다는 거..
두 사람은.. 헤어져야 한다는 거
" 넌 정말 3년을 알아 왔어도 모르겠다 "
" 그럼 딱 3년만 더 알아봐 "
" 으이그.. 말이나 못하면.. "
" 약속해.. 재경인 절대 나 안버릴 꺼지? "
한얼이에게 말하지마 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애써 힘겹게 이어온 자신의 평화를 깨뜨리지 말아달라.. 부탁하는 것임을 안다..
그치만, 그게 정말 너를 위하는 거니?
난 왜 자꾸 니 부탁을 거절하고 싶을까..
재경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재경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묵묵히 희야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아
희야의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아 주는 것 뿐이였다
" 약속하라구..... 약속해.. 재경아.... 응?? "
" .... "
" 약속했다???? 약속 한거다??? 알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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