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Definition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근데 이제 아이유를 (많이) 곁들인
길을 잃었다, 어딜 가야 할까 – IU, 분홍신 中
지금은 2021년 10월 31일 오전 12시 59분. 마감기한이 오늘인데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하는 중. 소재부터 결정하기 힘들었다. 처음부터 길을 헤맨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스물셋, 거울 나라의 앨리스, 레드퀸, 다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기-승-전-앨리스가 되어서 그냥 앨리스를 중심으로 모두 적기로 했다.
세상의 모서리, 구부정하게 커버린 골칫거리 outsider – IU, Celebrity 中
치히로와 앨리스. 그 둘만 놓고 보자면 난 앨리스에 가깝다. 적어도 앨리스는 원더랜드를 꿈꾸지 않았는가. 갑자기 이상한 마을에 온 치히로와 다르게. 치히로는 이름과 가족을 되찾으려고 했지만 난 둘 다 벗어나고 싶었다. 치히로 세계관에 비유하자면 스스로 센이 되고자 했었다. 그런데 치히로는 진짜 이름을 돌려받은 것일까? 애초에 치히로가 자신의 의지로 지어진 이름도 아니고, 센이 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결말 속 치히로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치히로가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으면서 주어진 이름을 재정의했다고 본다.
반면 앨리스는 세상을 말도 안 되는 것(Nonsense)라고 표현하며 원더랜드를 꿈꾸다가 원더랜드로 가는 꿈을 꾸게 된다. 나도 내 삶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기도만 했는데 진짜 이뤄진 경우니까 나는 앨리스다. 학창시절 막연히 제주에 오고 싶다는 생각만 했는데 지금 여기 있다. 그리고 상상했던 것보다 만족도가 높다.
세상이 원래 불공평해 So 더럽게 재미있지 – IU, 코인 中
내가 유독 디즈니 영화 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불쌍하고 예쁜 공주님이 주인공이 아니라서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전형적인 결말을 띠지 않고 무엇보다 권선징악의 요소가 없는 게 제일 매력적이다.
미친 모자 장수는 시계를 멈추기 위해 시계를 고장내어 버리고, 실수로 하얀 장미를 심어버린 카드 병정들은 빨간 장미를 만들기 위해 빨간 페인트를 꽃잎에 입힌다. 크로켓 시합은 언제나 여왕의 승리고 아무리 터무니 없는 말도 여왕이 말하면 사실이 된다. 여왕 말이 곧 법이니까.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이상한 나라에서 벌 받지 않고 잘만 살아간다.
우리는 종종 착하면 상을 받고 나쁘면 벌을 받는다는 착각을 한다. 증명되지 않는 세상의 법칙을 맹신하며 슬퍼하거나 두려워한다. 혹은 분노하기도 한다.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모든 것은 바른 대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나는 사필귀정을 믿고 싶지 않다. 만약 사필귀정이 사실이라면 난 굉장히 죄가 많기 때문에 큰 벌을 받아야할 것이다. 그래서 사필귀정이 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나름 정의를 추구하고 살았던 이들 같아서다.
이처럼 나는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이 재미있다. 예측 불가능한 일들 덕분에 삶이 다채로워진다. 현실과 다른 세계를 그렸지만 세상과 너무 닮아 있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뭐든 한쪽을 골라 색안경 안에 비춰지는 거 뭐 이제 익숙하거든 - IU, 스물셋 中
이상한 나라는 이상하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이다. 이상한 나라가 평범하다면 그게 이상한 거니까. 흔히 이상(異常)이라는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상’은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다를 이, 항상 상. 그저 항상 다른 것이다. 다름은 다름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무언가를 ‘이상하다’고 정의하는 게 기분 나쁘지 않다. 심지어 타인이 나에게 쓸 때도.
나는 이상하게도 아이유의 챗셔 앨범이 좋았다. 지나고 보니 좋은 게 아니라 딱 발매 당시 듣자마자 ‘이건 인생 곡이야!’ 싶었다. 챗셔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고양이다. 자꾸 형체를 감추고 의미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말들로 앨리스를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유의 앨범 ‘챗셔’는 정말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타이틀곡인 ‘스물셋’은 마치 아이유가 챗셔가 된 것처럼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주며 무엇이 진짜 아이유인지 맞춰보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곡이 공개되고 나서 많은 대중은 분노했다. 가사와 뮤직비디오에 함축된 의미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일 많이 언급되었던 단어가 ‘영악’과 ‘소아성애’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한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심한 인신공격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대중의 반응조차 음악의 일부인 것 같다. 우리는 챗셔 아이유가 만든 세계에 초대된 앨리스였고,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챗셔를 영악하고 비정상적인 아이로 낙인찍었다.
Oh Red Queen – IU, 레드퀸 中
디즈니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아이유의 앨범 ‘챗셔’에서 가장 다르게 묘사한 인물은 붉은 여왕, 레드퀸이다. 이상한 나라의 붉은 여왕은 무시무시한 독재자다. 반면 레드퀸의 붉은 여왕은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모습과 달리 굉장히 사랑스러운 인물로 나타난다. 그리고 얼마 전에 레드퀸 콘서트 영상을 봤는데 설리를 추모하기 위해 일부를 개사하여 불렀다. 요약하자면 ‘그를 동정하지 말고 이제 보내줘.’였다. 이렇듯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관찰자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정의는 다를 수 있다.
Hello stuP I D,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beep – IU, 삐삐 中
우리는 때로 잘못된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틀린 정의를 내리는 이유는 편견이 크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이상한 나라의 꽃들은 앨리스를 뜨내기 풀꽃, 잡초라 불렀다. 꽃들의 눈에는 치마가 꽃잎으로 다리가 줄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향기도 없고 못생긴 꽃은 씨를 못 뿌리게 해야 한다면서 꽃밭에서 내쫓는다. 새는 앨리스가 길다는 이유로 뱀으로 오해한다. 그러면서 새알(egg)을 먹냐는 질문에 먹는다는 앨리스를 뱀으로 확신한다. 이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 사물을 왜곡하게 된다.
여전히 무수한 빈칸들이 있지, 끝없이 헤맬 듯해 – IU, Unlucky 中
이곳은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이상한 세상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시선에서 다른 세계를 만들고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어떻게 세상을, 타인을, 나를 정의하는가를 고민하는 학문이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조금 모난 부분이 있어도 각자의 세상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을 정의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재밌는 이야기를 구상하느라 마감까지 밀어붙인 게 아닐까 싶네요. 각자의 세상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그래요. 그런데 그 출발은 자신에게서부터가 되어야 할 거예요. 세상을, 너를 그대로 받아들일게. 그런 게 잘 안 된다고, 원래 말로만 그렇지 실제로는 못한다고 말하는 너, 그리고 세상을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여줄게. 그리고 나도 액면가로 받아들여줄래? 우리는 대개 먼저 요구하고, 나중에 값을 치러주려고 해요.
교수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먼저 수용하는 자세를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내가 받아들여줬으니 너도 받아들여야지 왜 안 받아줘?'같은 마음도 경계해야겠습니다. 상대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나와 같길 바라는 것 또한 먼저 요구한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부끄럽지만 교수님께서 치히로의 부모님이 값을 치르기 전에 음식을 먹는 장면에 대해 설명해주실 때까지 문제를 인식하지 못 했습니다. 평소 무언가를 얻으려면 알맞은 값을 치뤄야한다는 강한 나머지 제 기준대로 지불하고 대가를 바란 경험이 있습니다. 직접 요구사항을 밝히기보단 은연 중에 속내를 내비친 적이 꽤 있었는데 듣는 이에게 부담스럽고, 때로는 폭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안 해주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으니까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