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초 에디슨에 의해 영사기, 곧 활동사진기가 발명된 이후,
영화는 무성영화, 흑백영화시대를 거쳐 바야흐로 오늘날 입체영화시대까지 맞이할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해 왔다.
필자는 지금까지 상당한 량의 영화를 극장과 TV를 통하여 보아왔던 바
기억에 남는 명화를 꼽으라 한다면 웅혼한 맛의 홍해바다가 갈라지는 영상을 보여주었던 십계,
독수리 한마리가 사막의 상공을 가르는 영상으로, 뭔가 심원한 포스가 시작 단계에서부터 느껴지는 서부영화 마케나의 황금,
고대 로마제국의 전성기, 박진감 넘치는 전차경기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웅장한 벤허이다.
한편, 1970년대에 환상과 꿈을 우리에게 불어 넣어준,
특히, 드완이라는 여성(여배우가 몬로이상으로 아름다웠으나 이름을 모르겠다)을 사모하여,
당시 102층짜리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수십기의 팬텀전투기를 손바닥으로 쳐서 격추시키는 씬을 보여주다 쓰러져간 괴물 고릴라, 킹콩이 있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등장한 터미네이터, 가위손 같은 영화는 비록 로봇이 등장한 영화 였지만
첨단기술을 동원한 리얼한 현장감을 구현하는 데 조금의 어색함도 없었다는 데서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있었다,
미래전사 터미네이터는 스토리나 발상이 기발하고
자칫 기계문명을 소재로 한 공상과학영화가 흔히 그렇듯 유치한 흐름이나 분위기가 될 수 있었을 터인데도 그것을 잘 극복했다.
우선 컴퓨터 그래픽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뛰어난 영상처리능력 및
이야기가 갈수록 비장하게 흐르는 시나리오의 덕을 톡톡히 본 영화라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로봇이 등장한 영화라 해서 모두가 그렇게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 가운데 인간적 휴머니티를 찾는 것은 아니다.
조네뎁 주연의 가위손은 컬트영화였음에도 후에 나온 비슷한 구성인 타이타닉 이상의 진한 감동과 여운이 있는 영화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을 너무나 많이 닮기는 햇지만 조경용 로봇이라는 애잔한 서글픔을 간직한 조니뎁의 연기는
가슴을 후벼오는 절절함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가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타이타닉이 어린 손녀딸에게 회고담을 이야기하는 어느 할머니의 비장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랑 이야기라면,
가위손은 오프닝단계와 엔딩부에서 눈 내리는 날로 시작해 눈 내리는 날로 닫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현재에서 과거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재로 나오는 방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타이타닉이 엄청난 제작비와 물량을 자랑하는, 다이나믹한 분위기 및 전개 방식인데 반해,
가위손은 조용하고 나직하며 뭔가 섬세하고 미묘한 떨림이 손끝에서부터 가슴깊은 곳으로 전해져 오는 영화다.
타이타닉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또다른 가슴저림이랄까, 뭔가 독특한 울림이 있다.
나는 적막하고 아늑한 밤에,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기회가 있다면,
그래서 은은한 달빛 내리는 창가에서 다시 보고픈 영화가 있다면, 서슴없이 가위손을 꼽으리라.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영화는 따로 있다.
개인적으로 무술영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나는 무엇보다 이소룡이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생전의 이소룡이 찍었던 영화는 총 네 편에 불과하다.
이소룡이 등장하는 영화는 여타 무술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과장이 별로 없고 실제 현장감이 팍팍 느껴진다.
영상미가 일반영화에서는 쉬이 접할수 없는 무술영화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을 물씬 풍긴다.
그야말로 무술영화라고 하는 장르를 하나의 위대한 예술영화로 정착시킨 것이 바로 이소룡 영화 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이소룡은 오늘날도 갈수록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icon)으로 자리잡아 우리들 가슴에,
아니 요즘 젊은이들의 가슴에서도 영원한 우상으로 살아 있는지 모른다.
언젠가 20세기를 지배한 세사람의 늙은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컴퓨터그래픽으로 재현되어 세계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그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을 도발한 아돌프 히틀러와,
20세기 최고의 섹시 스타 마릴린 몬로,
그리고 동양인 출신으로 불세출의 무술영화 배우 부르스 리(이소룡의 영문 이름)였다.
이소룡을 일컫는 말 중에 일찍부터 이런 말도 있다.
서양을 정복한 동양인이 두사람 있는데 그것은 징기스칸과 이소룡이다.
징기스칸이 무력으로 서양을 정복했다면 이소룡은 문화로, 정신으로 서양을 정복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소룡은 또 단순한 영화배우가 아니라 종래 세계의 무술, 예컨대, 중국의 쿵후, 일본의 가라데, 태국의 무에타이 등에서
실전에 적합한 것만 골라 새로이 절권도라는 무술을 창시한 실제 무예가로서 진정한 무술인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이소룡이 더 빛나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이소룡 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적과 대결시에 아비요!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그의 뛰어난 권법과 발기술에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악당들이다.
영화 용쟁호투에서는 동남아를 배경으로 마약조직과의 혈투를,
당산대형에서는 노동자를 착취한 악덕기업주와의 대결을,
정무문은 일제시대 중국을 침략한 일본무술 가라데와의 대결을 통해 중국인의 자존심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소룡이 직접 감독하고 시나리오까지 각색했다는
맹룡과강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상인들을 괴롭히는 조폭들을 물리치는 이야기이다.
언뜻보면 이야기자체는 그리 대단하지 않아 보일수도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어딘가 구식티를 벗지 못한 촌티냄새가 많이 난다.
그런데도 이소룡 영화가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의 영화만이 갖는 영상미, 예술성 때문이다.
이소룡은 영화 용쟁호투에서 홍금보와 대련 시,
공중잽이로 발차기하는 절묘한 테크닉은 참으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할 만한 그 무엇이 있다.
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결투도 그렇다.
수십개 거울 방에서 벌어지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익사이팅한 모든 씬이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무술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 정무문에서 보여주는 일본 가라데및 검도계의 고수가 일본도를 꺼내들자 이소룡은 허리춤에서 쌍절곤을 꺼내 대치한다.
쌍절곤은 사실 힘을 위주로하는 중국 북파권법인 쿵푸나 우슈에서 필수적으로 연마하는 무예종목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 대결에서 일본도의 살인적인 날카로움이 현란한 기술의 쌍절곤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어디 그뿐이랴! 맹룡과강에서도 콜롯세움에서 벌이는 라스트 씬 또한 이소룡영화의 압권이라 할만하다.
무술영화의 예술성이 돋보이는 이 영화는 과연 이소룡이 어떠한 배우인가를 잘 말해준다.
관객들을 의식하여 약간의 화장을 한듯한 그의 용모, 머리를 짧게 커트한듯한 헤어 스타일,
그리고 쿵푸 바지에 근육이 울퉁불퉁한 상체를 드러내고 상대방역을 맡은 서양 가라데계의 전설 척 노리스와,
일대일 결투를 벌이는 이소룡의 모든 포즈나 매력넘치는 모션, 액션등이 참으로 멋이 철철 넘친다.
이소룡은 뛰어난 무술실력을 바탕으로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참 영화인이라는 생각이 이영화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진다.
물론 정무문이나 당산대형도 라스트씬이 박진감 넘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본 무술영화가운데
가장 예술적인 장면은 바로 맹룡과강에서 보여주는 로마 콜롯세움을 배경으로한 마지막 결투씬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여담이지만 우리나라 출신으로서 국제무대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은
일찍이 일본에서 활약한 세계적 레슬러 역도산이 있었고 가라데(공수도)에서는 일본 가라데계를 놀라게 한 극진회 총재 최배달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소재로 영화도 나왔다.
필자가 미처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지는 않았지만 최배달을 소재로 한 영화가 2000 년대 초에 나온 바람의 파이터라 한다.
풍설로는 최배달이 이 영화에 실제 출연 했다고 하는데
이 무렵에 나온 영화라면 짐작컨대 최배달의 나이가 이미 고령의 노인일텐데 그 실력이 얼마나 발현될 수 있었을지 의구심이 있다.
그런데 우리 영화 넘버3에서 영화배우 송강호의 대사속에도 나오는 인물이지만 최배달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도 궁금해 지는 것이 있다. 이소룡 못지않게 세계적 무예가로 이름이 높다는 최배달이
과연 중국 쿵푸의 대가 리샤오룽(이소룡)과 한판 대결을 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함이다.
이소룡의 실력은 영화 화면을 통해 익숙한 터이지만 최배달 선생은 만화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실제영상은 보지 못했기에 왠지 전설같은 카리스마가가 있다.
말하자면 일본 북해도 불곰과 대결하여 발차기로 곰을 물리쳤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메리카 바이슨과 대결하여 맨손으로 수도 공격(손날치기)을 하여 황소뿔을 동강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또 손가락으로 동전을 구부렸다는 얼핏 차력사를 연상시키듯한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이러한 많은 이야기가 난무하는 것으로 보아 최배달 선생의 무공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 진다.
최배달은 원래 전북 김제 사람이라 하는데 일찍부터 일본에 건너가 활동을 했다 한다.
그는 당시 일본 토박이 가라데계의 도전을 많이 받았는데 다 물리쳤다고 하며 세계각처의 격투가들을 찾아 결투를 신청하여
스스로 무술실력을 시험해 봤으며 일본에서 따로 극진가라데라는 문파를 창설했다 한다.
즉,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가령 태권도 같은 경우 두개의 큰 문파로 많이 나뉘어 진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오도관과 청도관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처럼 일본에서는 본토가라데 말고 조선인 최배달이 말하자면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한,
극진회라는 가라데 단체를 만들어 그 최고 관장이 되는 그런 경우인데 그것을 바로 '극진 가라데' 라고 일컬었다.
세계적으로 극진가라데는 200여곳의 지부를 두어 최배달의 노력으로 한때 아주 많이 보급되었다고 하는데
특히 유럽에서도 기존 쿵푸를 눌렀다고 하며 그의 수제자로는 일본인 아시와라 히데유끼가 있다 한다.
이소룡을 주제로 영화이야기를 하다보니 어쩌다 최배달의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지만,
최배달과 이소룡! 이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분위기와 역량, 매력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점수를 매긴다는 것은 어쩐지 맞지 않는 일인 것 같다.
왜 이들은 영원히 신화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그 본연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급우가운데 늘 책가방 가운데 도시락 넣는 홈이 있는데 거기에다 쌍절곤을 숨겨 가지고 온 급우가 있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은근 슬쩍 가방안을 펼쳐 보이며 자랑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슬며시 미소와 함께 당시 가지고 다니던 수십장의 이소룡 사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