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밤 꿈 속에서
아련히 들리는 목소리.
엄마.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시고 다정하게
부르신다. 엄마 어디계셔~~.목소리 쫓아 허우적 거리다 잠에서 깨버렸다.
내 나이 스물 셋 가을.
엄마가 돌아가셨다.
지금 나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젊은 나이 셨던가.
감히 엄마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
매년 이맘때(우란분절을 앞두고) 가 되면 언니는 엄마의 천도제를
본인이 다니는 절에 올린다.
나도 몇 번 참여 해 본적있다
그런데 제를 지내고오면 불편한 맘이 며칠을
날 괴롭힌다.
물론 그립고 안타까운맘으로 엄마를 위한
기도를 올리는 행사가 의미는 있겠으나,
나이들어 갈 수록 엄마에게 제를 올리는 행위 조차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뭐라고 말 할수없는 죄스러움에...
위로 언니와 오빠, 아래로 여동생과 남동생. 내가 딱 가운데, 말 그대로 센터다.
일찍 시집간 언니, 공부를 뛰어나게 잘해서 서울유명대를 다니던 오빠,
그에 못지 않게 공부 잘하며 학업 중이던 동생들...잠시 어려움을 겪고 계시던 아버지.
집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던 사람은 나 하나였다.
남매들 모두 내게 미안해하고 최소한의 책값 정도만 손 내밀었지만
그때의 내 벌이로는 벅차고 또 그 상황이 힘들었다.
클 때도 늘 센터에 끼여서 치이고 살았었는데,
친구들과 여름휴가 한 번, 좋아하는 옷 한벌 맘 놓고 못 사입어봤다.
있던 집도 팔 정도가 되어 허름한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하고 며칠 지나 엄마께서 내가 근무하는 회사로 찾아오셨다.
돈을 좀 해달라셨다. 꽤 큰돈을 말씀하셨다.
워낙 깔끔한 성격이시라
이사한 집의 가재도구를 장만 할 목적으로 며칠을 망설이시다 회사까지 찾아오셨다.
난 그때 성질을 부렸다. 그동안 참아 온 설움을 엄마에게 모두 터뜨렸다.
왜 나에게만 돈 달라고 하냐고, 오빠에게, 동생들에게 내가 적금 들어둔거 다 털어주고,
이사한 집이 엉망이면 어떻냐고 그냥 늘어놓고 살으라고.있는 성질 없는성질을 다 부렸다.
그래 놓고도 결국 돈은 드렸다.
그리고 일년도 정도지나 엄마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고 난 뒤 그 일이 가슴 사무치게 후회 될 줄 몰랐다.
크게 엄마 속 섞힌 적 없었던 내가 왜 그랬을까...
힘들게 일하는 나에게 그런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맘은 어떘을까.
결혼 하고 아이 낳고 난 뒤까지 아무에게도 그 얘기를 못 했다.
얼마전 언니에게 털어 놓았다.
언니는 엄마에게서 들어 알고 있었단다.
남매 중 몸이 제일 약해 설겆이 한 번 시켜보지 않았던 딸이..
하고싶은 거 많을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성질성질 부리더란다.
그러면서도 돈은 해 주더란다.
그 말 하면서 우시더란다.
지금도 내 성질을 그대로 받고 돌아서 걸어가시던
엄마의 뒷 모습이.입으셨던 블라우스와 긴 치마 신발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왕 드릴거면 힘든 엄마 위로라도 해 드리며 곱게 드릴걸.
그 더운날 처진 어깨로 돌아서시던 엄마 .....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
평생 속죄 해도 모자랄...
아픈기억 하나.....
잠깨서.. 그리움에 흘린눈물 한방울도
죄스러워진다.
첫댓글 우리들 대부분이 살며 그런 시절과 상황을 겪어보았을 거 같습니다.
제 큰누나가 그랬습니다.
아버지 사업 실패로 살림이 어려워,
하고 싶은 공부도 더 못하고 서울로
돈을 벌로 갔었지요. 번돈 대부분을 집에 보내고 남는 돈 쪼개어서 야간 공부를 했는데 작은누나가 서울 따라 올라가 공부 욕심 내는 바람에 야간 공부도 포기하고 작은누나를 지원해주었지요.
한번은 제가 만화 빌려오다가 어머니께 혼 난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 저를 혼내시며 '누나가 서울가서 애써 벌어 보내 준 돈인데 그 돈으로 만화를 빌려! 철 좀 들어라~'. 종아리 아픔만큼 그날 철이 더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커쇼님, 참 효녀였습니다.
꿈에라도 어머니 만나시거든 꼭 안아 드리세요~
큰 오라버니처럼 푸근하게 느껴지는 마음자리님의 첫 댓글보고 더 눈물이 나서 종일 답댓글을 달기 힘들었습니다.큰누님분도 아쉬운 마음 많으셨겠어요.꿈에보이시면 의식되려나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나의 아버지가 나 14 살 중학교 2학년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건강이 약한 분이었지만 너무 일찍 돌아가시니 어린 나이에 많이 슬펐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호인 이었구 직장에서도 일 잘하던 분 이었습니다
너무 이른 죽음은 유가족에게 못할짓 이라는거를 느끼곤 하게 됩디다
위의 글을 읽으니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 나서 꼬리글을 달았습니다
충성
감사합니다.
기대수명 백세 얘기들 하는 요즈음생각하면 너무 일찍 가셔서 더 맘이 아파요.
충성 입니다.
커쇼님이 새벽부터 저를 울리시네요.ㅠㅠ
그시절에는 대부분 그랬던거 같아요..
효녀인 커쇼님 만나면 손 꼭 잡아보고 싶습니다..ㅠ
눈물이 멎지않아요.ㅠ
죄송해요. 혼자 울고말걸.. 그시간에 언니에게 전화해서 찔찔 짜기도 그렇고해서 올린글이 엉뚱한 분들 울적하게 만들었네요.
그래도 이런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고 있어요.
월팝때 꼭 뵈어요. 손 잡아 주세요.~~~
잘 읽고 갑니다.
식구들 모두의 처지가 이해되네요.
기댈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게 마련이니까요.
애 많이 쓰셨겠어요.
이젠 그런 사정을 함께 나눠야 할 테고요.
네 어쩌면 잠시라도 기댈 수 있었던
건강한 제가 있어서 다행이었는데 그땐 왜 그걸 몰랐던지..
형제들과 잘 지내고있고 더 잘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울컥하네요.
'감히 엄마를 입에올리지 못한다' 는 구절에 한참 머물렀어요.
그 마음 함께 합니다, 커쇼님.
감사합니다.
평생을 엄마라는 두글자는 가볍게 제 입으로 말 하지 못 할것같아요.
읽고 함께 맘 나눠주셔서 힘이됩니다.
편한 밤되세요.
아, 우리시대의 서민들 어머니들은 왜 그리
서럽게만 살다 가셨을까요.
자식에게 손 벌리는 부모 심정을 다 알 수는
없으나, 평생 힘들게 살다 가신 내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그러게요.나라도 가난했고, 힘들때 태어나신 우리 부모님들. 오래라도 사셨으면 자식들 효도 제대로 받으셨을텐데 제가 너무 철이 없던 때라.
댓글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길 바래봅니다.
무심결에 읽어 내려가다 가슴이 저며옵니다.
자책으로 남은 듯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나마 성질 한 번 부리신 것은
잘 하셨단 생각이 듭니다.^^
커쇼님의 쌓인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셨을 테니까요...
휴.....비는 왜 이리도 세차게 내리는지......^^
제가 그래요. 속에 못 담아 두다보니
상대는 힘들다는데..굳이 그때엄마께 그래야 했었나.. 제 맘 알아 주시는듯해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잊어 버리십시요.
나 그 때 못 됐었다.
이렇게 접수 하시고요.
어머니 마음도 아셨으니까.
훌훌 털어도 될 듯 합니다.
고생 많으셨네요.
몸과 마음으로요.짠해서 울컥했습니다.
엄마 맘을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ㅡㅡ이란 후회도 털어버러야겠죠.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울컥하게 해드려 죄송해요.
편한밤 되세요
엄마란 이름 앞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엄마가 되어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될때는
이미 곁에 안계시니까요
살아 계실때 더 잘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죄책감이 들때가 많지요
힘든 딸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도 많이 아프셨을겁니다
이제 그 아픈 기억도 내려 놓으시길..
제가 좋아하는 꽃이시네요.
네 엄마란 이름앞에 그 누구도 당당하고 자유로울수 있겠어요.
한가지쯤은 모두 불효가 있을테죠.
그렇게 이해하고 내려놓으려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안을 대들보 같은 든든함으로 지켜내신 커쇼님.
커쇼님 양보와 배려로
지금은 형제 자매분들 다 자기자리에서 안정적인 삶을 사시고 계실테니
보람으로 뿌듯하실거에요.
별이 되신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속 마음 다 헤아리시며
괜찮다 내 딸아...
하실거에요.
다들 잘 살아요.
제가 힘들었던거 겨우 몇년 이었는데
유난을 떨었던것 같아요.
괜찮다고 용서 하셨겠죠.
감사합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행복한 날들 되세요.
친정 엄마를 모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같이
살면서 좋은 기억, 슬픈 기억들이 많아요
요즘도 잠자리에 눕거나 길에서 노인들을 보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잘한 일보다 못해 드린 것만 생각나서
한참 괴로웠어요
이 생각들은 제가 죽을 때까지 가져갈 것 같아요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럴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루루님...
내가 달 못 해드린것만 왜 더 기억에 남는지.
충분히 공감이 되네요.
행복하세요.
좋은일들만 늘 가득하시고.
음..
그렇습니다..아프지요...
그래도 커쇼님은 열심히 성실히 살았고..
효녀였습니다.
말씀하신
말할 수없는 아픔..불효 아닌 불효..
누구나 있습니다..뼈 아프게 사무치지요...
하지만 커쇼님은 효녀입니다..마음의 평화 기원합니다!
효녀란 말씀 과찬이세요.
그냥 잠시 그랬었는데...
용기 주시는 말씀으로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커쇼님,
잊을래야 잊어지지 않겠지만,
생각지 마셔요.
어머님에 대한 연민은
누군들 없겠습니까.
이제는 커쇼님,
행복하신 것 같아요.
아직도 살기에 급급한 세월이라면,
다급해진 일이 바빠서 생각할 새가 아무래도...
다 어머님이 주고 가신 복으로 생각하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건강하게 지내셔요.
네 사지멀쩡히 주신것 만으로도 감사히 생각합니다.
남들보다 뒤쳐지지않게 키워 준 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따뜻한 위로 말씀 너무감사해요.
잊혀지진 않겠지만 좀더 밝은 맘으로 승화시켜보도록 할게요
말씀에 감사 또 감사 드립니다.
https://youtu.be/IbRRzXFB_9M?si=tzp0_NnOpMLiqf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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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영혼의 손 마주잡고 웃을수 있겠네요
한사람의 엄마
한 사람의 딸
정말 웃을 수 있을까요?
그러길 바라고 이 자리에 터 놓았던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죙일 답글 달 수없을 만큼 슬펐는데
이제야 제대로 읽고 답 달 수있을 만큼 편해 집니다.
노래 감사합니다.
https://youtu.be/RawE7mwXTa4?si=x9qwbJpiHd1EdZj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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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머님께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항상 괴롭습니다,
제나이 22살 대학2학년때 어머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참으로 부모님을 생각할때마다
죄책감으로 항상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아주 오래전 일 인데도 그 맘이 있으시군요.
평생을 잊을까요....
그래도 너무 슬퍼 말라고 들 하시네요.
읽고 공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시길바랍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하고
후회를 하게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쇼 님은
정이 깊은 착한 딸이셨어요.
개인적으로 저는 커쇼 님이
부럽기도해요. 왜냐면 엄마가
스물 세살 까지 계셨잖아요.
아 나무랑님은 어머님과 함께하신 세월이
짧으신가 봐요.
위로를 전합니다.
말씀처럼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지 제 잘못을 깨닫기 전에 가셔서...
울 남매들 중 막내가 제일 불쌍 하다고 우리끼리 말합니다.
엄마사랑을 가장 짧게 받았으니...
감사합니다. 흐린 날 일텐데 밝고 건강한 하루 되시길요...
아니요 커쇼님
너무 잘 하신거예요 .
어머님은 커쇼님 맘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
우리도 자식들에 대해 그렇잖아요.
저도 그맘때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정말 엄마한테 해 드린게 없답니다 .
힘들때는 힘들어서 엄마가 생각났고
좋을때는 해 드리고 싶어서 엄마 생각이
납니다 .
커쇼님이 수필방에 오셔서 좋아요 ㅎㅎ
네. 그나마 돈을드렸으니. 하고 위안 삼아보지만 그래도 늘 죄송스러워요.
저도 멀리계신 아녜스님과 글로나마 소통하니 좋아요.
자주 글 올려주세요.
커쇼 님 심정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이제는 담담하게 커쇼 님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저도 엄마 생각하면
가슴부터 아파오곤 했어요.
먹는 약 덕분에 이제는 모든 일에
덤덤해 졌습니다.
커쇼 님은 충분히 효녀였으니까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오늘 아침에는 손자가 늦게 일어 나네요.
그래서 좀 여유롭게 글 한 편
잘 읽었습니다.
손자도 보시고. 무슨 약인지 드신다니 조금 걱정되지만 행복하고 편한 느낌은 듭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여러분들 덕분에 또 밝게 생활 해 나갈 수있어 감사합니다.
엄마는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해두구요.
집안의 기둥이요 효녀 이셨네요.
지나간 일 항상 그립고 섭섭하고
여러가지 감정이 응집되어 추억거리가
되는 모양입니다.
솔직 담백하고 애잔한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기둥 까지는 아니었구요. 그때 잠시 어려워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젊은 시절의 저를 회상 하면서
말씀대로 추억이라 생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