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루살렘 여행1 - 야파문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 다윗의 탑을 보다!
4월 13일 아침에 선배님 부부와 우리 부부등 일행 4명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 아바시
팰리스 Abbasi Palace Hotel 에서 미리 예약한 택시를 타고 서쪽으로 달립니다.
우리 차는 시가지를 빠져 나간후 산등성이를 돌아 드디어 계곡을 내려갑니다. 초목이 끝나면서
황량한 언덕이 보이더니...... 곧 다시 수목이 보이면서 차를 멈추기로 어리둥절 합니다?
도로변에는 Dead Sea - Sea Level 이라고 적혔으니..... 우리가 사해 가는
길에 해발 제로에서 멈춘거네요, 그럼 여기가 바로 지중해 바다 높이라?
1시간후 요르단 국경사무소에서 출국 스탬프를 받은후 킹후세인 다리를 건너 이스라엘 사무실로
이동해 너무나도 깐깐한 입국 심사를 거친 후에 다시 택시를 타고 올리브 동산에서 멈춥니다.
전망대에서 깊은 계곡을 건너 저 건너편에 자리한 육중한 성벽 안에 자리한 예루살렘성과 황금돔
사원을 바라보고 다시 출발해 아래로 내려가서는 만국교회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갑니다.
예루살렘성 밖에 위치한 야파(자파) Jaffa Street 24번지, 그러니까 시온광장 Square
Zion 에 있는 Jerusalem Hostel 에 체크인을 하는데.... 옛날에 이스라엘 전국
일주를 위해 처음 예루살렘에 왔을때는 메노라호텔이었는데 그럼 주인이 바뀐 모양입니다?
*** 오래전 겨울에 찾은 시온 광장의 메노라 호텔 앞에서 ***
우리 부부와 선배님 부부등 일행 4명은 예루살렘 신시가지 야파거리의 예루살렘 호스텔에
체크인후 샤워를 하고는.... 마눌이 주방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서 먹고는 밖으로 나옵니다.
호스텔 앞이 시온 광장 Zion Square 인데, 예전에 왔을 때는 마침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밤이라 이스라엘 청년들이 광장에서 원을 그리며 춤추는걸 구경하다가.....
흥에겨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발을 꿈적거렸던 것일까? 청년들이
잡아끄는 바람에 원에 들어가 손에 손을 잡고 흥겹게 돌았던 생각네요!
그 와중에도 주변에는 모자도 쓰지 않은 이스라엘 여군이 총을 들고 경계 를 서고 있었는
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겨울인데도 노숙자가 누워자는걸 본적이 있었으니.....
우리가 투숙한 호텔이 자리한 고아장 이름인 시온 Zion 이란... 다윗이 수도로
삼고 법궤를 옮겨 정치적, 종교적인 중심지로 삼은 장소를 말한답니다.
후에 다윗왕의 아들인 솔로몬왕이 야훼의 성전과 거대한 궁전 을 건설하여
유대 민족의 생활과 신앙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시온이란 말은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전 이스라엘을 상징 하는 용어가 되었고...
가나안에 잃어버린 조국을 다시 건설하는 시오니즘 이라는 말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시온의 딸” 이란 말은 예루살렘 시민을 가리키는 말이며, 신약성서에서는 시온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도성의 상징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는데,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네요!
어쨌든 시온은 유대인들의 마음의 고향 이니..... BC 1,250년경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쳐들어가....
기존의 주민들과 숱한 전투를 치른 끝에 12 지파에게 땅을 분배 했다지만!
모두 다 차지한 것은 아니고, 예루살렘은 여부스인들이 굳건히 지키고 있었으니
다윗이 아브라함이 묻힌 남쪽 땅 헤브론 에서 BC 1000년경 즉위해서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필리스테(블레셋) 인들에게 사울왕이
패배한 후유증을 극복하고 세력을 길러서는.... 7년후
예루살렘을 공략하여 250여년만에 성궤를 옮기면서 시온 이라 이름했던 것이라!
야파 거리 를 따라 천천히 걸어서 예루살렘성으로 가는 데.... 건너편에 요르단에서
알랜비 다리(킹 후세인 다리) 를 건너 입국할 때 보았던 일본애들이 지나갑니다!
“ 곤니찌와! ”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 걔들도 반가운지 손을 흔들고 난리니 이건 장난도
아닌데.... 이역만리 머나먼 땅에서 같은 "동양인" 을 만나니 어찌나 반가운지?
그러고는 러시아 정교회 교회에 이르니 옛날 지도가 있는데 세상의 중심은 예루살렘이요
서쪽은 Ev(u)ropa 의 로마, 남쪽은 아프리카 그리고 동쪽은 아시아 Asia 인데....
아시아 는 다시 북쪽이 아르메니아, 서쪽은 시리아, 남쪽은 아라비아, 동쪽이 페르시아
와 인디아 이니 그럼 당시 중국은 몰랐던 것일까? 그들의 세계관을 엿볼수 있네요!
여기 러시아 정교회의 야자수와 수목이 우거진 정원이 무더운 열사의 땅
예루살렘에서는 정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오아시스 처럼 느껴집니다.
모자이크된 형형색색의 돌사자 를 지나 모퉁이를 도니..... 전면에
거대한 돌로된 예루살렘성 이 당당히 버티고 서 있습니다.
특이한 검은 복장을 차려 입은 유대인 정통파교도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
야자수와 종려 나무며 올리브 나무가 서 있는 성벽을 따라 돕니다.
저 멀리 야파문 Jaffa Gate (야포, 자파, 욥바) 이 보이고 다비드 탑
( 히브리어로는 다윗 탑 )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역시나 모자를 쓰지 않은 군인들을 비켜지나 수레에 실은 갖가지 빵들을 구경하며 성벽에
걸린 히브리어, 영어, 아랍어 로 된 다윗탑 역사 박물관을 선전하는 현수막을 봅니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느님께 번제드린 모리아산으로 BC 1000
년경 다윗이 여부스인들의 시온성을 함락하고 수도를 옮겨 소규모의
다윗성 을 쌓았고 이후 솔로몬왕 때 예루살렘성이 완성 되는데 그후
3천년간 스무차례 넘게 주인이 바뀌었으며.... 10여차례 완전히 파괴 되었답니다!
여기 예루살렘성에는 성문이 8개 가 있는데 북쪽에는 무슬림지역으로 통하는
다마스커스문 (다마섹문) 을 중심으로 왼쪽에 기독교지역으로 가는
새 문 New Gate 과 오른쪽에는 옛날 궁전이 있어 붙여진 헤롯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라이언문 이라고도 불리는 순교자 스데반문, 그리고 옆에 황금문이 있는데
회개의 문으로 메시아가 오는날 열린다는데 실은 오스만 터키에서 닫았으며 그리고
남쪽에는 오물을 내어간 Dung Gate 와 시온산 으로 향한다고 해서 붙여진 시온문이 있습니다.
솔로몬 사후 북부 10부족은 이스라엘로 독립해 나가고 2개 부족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국으로 존속하는데,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때는 유다왕국은
예루살렘성이 포위되자 앗시리아 왕에게 황금등 조공을 바쳐서 당시는 온존했으나....
그후 BC 586년 시드기야왕 때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에 멸망당해 바빌론으로 끌려간후
70여년만에 페르시아 고레스왕의 큰 은전으로 귀국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그리스인들에 의해 점령되고 잠시 독립한후 로마에 점령되어 재차 파괴된후
BC 37년 헤롯대왕이 재건하기도 했으나 AD 70년 로마 티투스장군에 의해 점령되고,
135년에는 바르코바의 혁명을 집압한 하드리안 장군이 철저히 파괴하여 유대인들을 추방시킵니다.
그후 AD 326년 헬레나 방문이후 638년에는 이슬람 칼리프 오말에 의해 점령되고 1099년에
십자군이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으나 88년후 하틴의 전투 패배로 살라딘에 의해 쫃겨납니다.
십자군 발리앙이 예루살렘은 무엇이냐 물으니 살라딘 이 말한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전부다” 란 말은 평범한 도시지만 우리가 알수없는 모든 것이 존재한다는 뜻이라!
즉 전부란 말은 천지창조 부터 현재까지 신의 존재, 존엄성, 종교 신앙 관습과 문화
전부를 아우러는 것으로 성서에서 말하는 신은 알파요 오메가 (시작이고 끝이다) 란 말이니!
세월이 흐르고 1538년 오스만 투르크의 슐레이만 대제가 점령하여 성벽을 다시 쌓았으니
지금 우리가 보는 웅장한 성벽과 건물들은 그때 축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야파 Jaffa Gate ( 현지 발음은 욥바 ) 문은 성의 서쪽문으로 60km 서쪽의 지중해 도시
야파(욥바)로 통하는 문이라는 뜻이라는 데..... 마치 모스크바 시내에 상트
페테르부르크 가는 기차 출발역을 상트 페트르부르크역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뜻이네요!
몇년 전에 이스라엘 전국 일주 배낭여행을 할 때, 텔아비브 남쪽 야파에 들러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모셔갔다는 가죽 무두장이 시몬의 집 을 찾아갔던 생각이 납니다!
또 이 문은 예전에 십자군이 웅거한 곳으로 살라딘에 점령된후 3차 십자군시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 가 지중해 야파에서 60km 불모지대를 행군해 이 문까지 왔다가는.....
프랑스군과 불화로 단독 공략은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맺고 발길을 돌렸던 곳으로!!!
아랍인들은 바브엘카릴(헤브론문) 이라 부르며, 그 뜻은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 ) 라는데 1538년
오스만의 슐레이만이 축성한후 1917년 영국의 알렌비 장군이 야파문을 통해 입성했답니다!
우리나라 국보 1호가 남대문 인 것은 일제 시대에 조선총독부가 보물 1호로 남대문을
정한 것을 독립후 총독부가 정한 수백개의 보물을 국보로 이름만 바꾼 것인 데....
그 전에 조선 총독부가 서울의 도시계획을 위해 도로를 내려고 남대문을 헐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인 상공회의소장이 남대문은 임진왜란시 "가토 기요마사" 가 입성한 역사적인 장소
라고 반대하니! 도로는 남대문 옆으로 비뚜름히 뚤렸는 데... 이후 조선총독부가 보물
( 국보는 일본 본토에 있는 것만 한정함! ) 을 정할때 그 뜻을 기려서 보물 1호로 정한 것입니다!
성문을 들어서니 기념품 가게가 늘어선 자그만 도로 건너 다비드 탑이 보이는데,
원래 중간에 성벽이 있던 것을..... 1898년에
이 문을 통과한 독일제국 카이저 빌헬름 2세 마차를 위해 허물고 길을 냈답니다!
탑 안에는 역사박물관이 있어 예살 예루살렘성의 축소모형등을 볼수 있지만 전에 보았기로
오늘은 그냥 지나치는 데, 왼쪽 골목에는 아랍인 게스트하우스 가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이 아닌 오른쪽으로 성벽을 따라 시온문에 이르는 자그맣게
나있는 길을 걷는 데, 이곳이 바로 아르메니안 구역 입니다.
예루살렘은 성벽으로 둘러쌓인 구시가지 Old City 와 북쪽 아랍인 구역
동예루살렘 및 서쪽 유대인의 신시가지 서 예루살렘등 세곳으로 나뉘어 집니다.
1948년 독립시 유엔에서는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동예루살렘은 요르단 땅 그리고
2만명이 거주하는 예루살렘성 (구시가지 내) 은 국제도시 로 분할했으나....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시 이스라엘 이 모두 점령하였는 데.... 성 내에는 아르메니아,
기독교, 유대인, 모슬렘(이슬람) 그리고 성전산의 5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
|
첫댓글 어느 곳 하나 빼놓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장면들입니다.
처음 마주했을 때의 놀라움과 설렘은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지요.
참 멋진 여행의 추억입니다.
드디어 고도 예루살렘성 입니다.
처음 왔을때 보다는 설레임이 덜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