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참된 걸 알아보는 마음
성전 경비병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갔지만 그분 말씀을 듣고는 그냥 돌아왔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요한 7,46) 수석 사제들 명령을 받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갔지만 그분 말씀을 듣고는 그들 중 아무도 그분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 귀한 것, 보물이나 문화재를 흰 장갑을 끼고 만지는 거처럼 그들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성함을 그분에게서 본능적으로 느꼈을 거다.
예수님 시대 문맹률은 거의 90%였다고 한다. 그들은 회당이나 다른 곳에서 성경과 율법을 듣기만 했지, 읽을 수는 없었다. 반면에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엘리트 계급으로 성경과 율법을 읽고 쓰고 연구했다. 그런데 그것들이 가리키고 있는 바로 그분이 눈앞에 나타났는데도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고, 오히려 “율법을 모르는 저주받은 자들”인(요한 7,49)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반쯤 알아본 거였다. 지식이 도움이 아니라 오히려 걸림돌이 된 거다.
그렇다고 해서 군중이 다 예수님을 알아본 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돌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치기도 했다. 사이비 종교에 걸려들어서 몸과 마음을 다치고 재산까지 다 잃은 이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허황하고 어처구니가 없는 교리를 어떻게 저렇게 믿을 수 있을까 싶은데, 사람이 그렇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 우리도 ‘재림 예수’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 영으로 내 안에 그리고 우리 가운데 살아계신 예수님을 알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었다.
성경과 교리 지식도 필요한데, 그보다는 진리를 향해 열린 마음과 참 하느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조국과 백성을 사랑했지만, 그들에게 쓴소리,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다. 그래서 미움을 받았는데 그들과 맞서 싸우지 않고 그 복수를 하느님께 맡겼다.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주소서.”(예레 11,20) 예수님은 거기에 더해 그들의 무지와 무딘 마음을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하느님께 순종하려는 마음, 자기 보호는 물론이고 변호까지 하느님께 다 맡긴 영혼을 속이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맞서 싸울 수 없는 아기를 그 부모가 아니어도 어른이면 누구나 보호하는데 우리 하느님이 그런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실 리가 없다. 그런 영혼은 참된 게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을 거다.
예수님, 큰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면 작은 오해와 억울함을 참아 받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감히 주님 마음에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제 영혼을 완전히 아버지 하느님 손에 맡겨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입만 아니라 마음도 침묵할 수 있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