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고난주간 나흘째입니다.
새벽기도를 가고, 금식을 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함으로
고난주간을 지키는 자가 아니라,
일상에서 진심으로 주님께 연합되는 자 되어
그 낮아짐과 섬김으로 주님을 드러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참으로 바라고 원하는 이 삶을 살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저의 상한 마음을 덮으사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본문 주해)
14~16절 : 이날은 유월절 준비일이고 때는 육시(낮 12시)였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조롱하는 예수를 그들의 ‘왕’으로 부르며 오히려 그들을 조롱한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외친다.
그것은 ‘자기를 스스로 왕이라고 하는 자를 놓아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다’(12절)라는 말로 빌라도를 협박하는 말이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그들이 믿는 하나님까지 저버리는 말이기도 하다.
이들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가증한 자임을 스스로 밝힌다.
이에 빌라도는 결국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내어주게 된다.
17~18절 : 본문에 해골의 히브리말은 골고다이고, 라틴말이 갈보리이다.
해골 곳은 성문 밖에 있다. 왜냐하면 성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드시 성 밖에서 처형을 한 것이다.
십자가에 함께 달린 두 강도에 대해 요한복음은 비교적 간단하게 적고 있다.
그런데 왜 강도 두 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처형했을까? 그것은 예수가 그들과 같은 동류(사53:12)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이다.
19~22절 : 예수 그리스도의 죄패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내용으로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의 죄패에 적힌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을 거부하고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란 말로 고쳐쓰게 함으로 예수를 미친 자 취급을 하려 하였다.
하지만 빌라도는 이들의 요청을 단번에 거절하였다.
이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집요하게 요청한 유대인들에 대한 모욕이거나 복수일 수 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빌라도가 깨달음 없이 썼어도,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이다.
이 팻말이 히브리말과 로마어 그리고 헬라어로 쓰여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왕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다.
(나의 묵상)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을 만들어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붙인다. 그것은 당시 예루살렘으로 모여온 수많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팻말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달라고 요구하지만 빌라도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한다. 하나님의 주권적 강제집행이 빌라도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유대인의 왕’이란 다른 말로 하면 ‘선민의 왕’이다.
선민 즉 택한 백성의 왕은, 그들을 택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왕이시라는 말이다.
그런데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은 무리와 함께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새번역) 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사실 이것이 그들의 본심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달고 살았지만, 마음으로는 돈과 권력의 세상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이사가 바로 돈과 권력을 상징하는 세상 왕이 아닌가?
오늘날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만 그 마음이 세상을 향해 있는 자가 바로 가이사만이 우리 왕이라고 외치는 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해골, 골고다 언덕,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가 섰다.
사람들이 피해 다니고 싶은 그 장소에 예수님을 못 박은 그 십자가가 섰다. 그것도 두 강도 사이에.....범죄자 중에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며(사53:12)....
이렇게 가장 처참한 곳에서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죽은 예수님을 분명히 볼 수 있도록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가이사가 왕이라고 외치고 사는 유대인들을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세상 속에 빠져 사는 교인들을 거룩한 자, 구별된 자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이 고난과 죽음에 내어주신 것이다.
이제 이 세상은 십자가 아래에서 두 부류로만 나누인다.
여전히 머리를 흔들며 십자가의 주님을 조롱하는 자들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을 고백하는 백부장과 같은 자들이다.
그래서 주님의 영이 임한 자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처참한 십자가로 이끌리게 되어 있다.
세상 한가운데서 세상 것에 취해 살던 주님의 백성을 주님은 십자가로 끄집어내어 ‘나의 왕 예수님’을 외치게 하신다.
그리고 십자가에 연합되어 살게 하심으로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리니, 과거 그토록 좋아하던 이 세상이 바로 피해 가고 싶은 해골이요, 골고다요, 갈보리인 것을 알게 된다.
(묵상 기도)
주님,
십자가가 선 골고다 언덕,
못 박혀 죽으신 주님을 바라봅니다.
가이사를 왕으로 삼았던 죄악 된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제게 새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서 왕이심을 고백합니다.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에 빠져 나와 십자가에 연합되어 사는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