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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 반말, 음슴체 금지 |
신해철이 무덤까지 가져갈 노래 베스트 11
- 2011.12.2 ~ 12.3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 특집방송
잡지에 가끔 그런 질문있죠? '당신이 무인도에 2주일을 가게 된다면 가지고 가고 싶은 노래는 무엇이냐' 뭐 이런 것들이요.
제가 염라대왕 만날 때, 현재의 시점에서 싸짊어지고 가고 싶은 열개의 노래. 뭐 이런 식이겠죠.
쑥쓰럽지만 골라와봤습니다.
공동 11위 : 절망에 관하여
정글스토리 OST, 1996
뜨겁던 내 심장은 날이 갈수록 식어 가는데
내 등뒤엔 유령들 처럼 옛 꿈들이 날 원망하며 서있네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자욱씩 떼어 놓지만
갈 곳도 해야 할 것도 또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
그러다보면 늙고 병들어 쓰러질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
내 목을 졸라오는 올가미처럼 그 시간이 온다
내 초라한 삶의 이유를 단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며 어쨌든 사는 날까지 살고 싶어
그러다 보면 늙고 병들어 쓰러질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냥 가보는 거야
Crom's comment: 이 노래는 되게 날림으로 만들었어요. 중간에 간주 부분도 그렇고 이
노래를 공들여서 녹음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큰 줄기만 쿵 쿵 쿵 이런 식으로 녹음을 했는데, 뭐.. 어떤 때는
정교하게 구석구석 일일히 살피는 것 보다는 딱 큰 맥락만 잡을 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때가 있잖아요. 글쓰기도 그렇고,
심지어는 사람 관계도 그렇고, 우리 사는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이상한 잔생각에서 벗어났을 때 답이 나오는 경우도 있구요.
어쨌든 들인 정성에 비해서는 꽤 잘 나온 곡입니다.
그리고 이 노래가 저의 기존 노래들과 다른 점은 영화에서 배역을 맡은 배우처럼 아예 노래하면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이에요. 사실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연기거든요. 배우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연기를 하는 것 처럼 노래도 그렇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낳아요. 적어도 외형적으로 보기에 '아 노래 잘 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쉽구요. 그런데 제가 그 방법을 되게
싫어해요. 노래가 남들한테 못 부르는 것 처럼 들려도 좋으니까 억지로 연기하는 것 처럼 하는 것 보다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는주의....랄까?
게다가 저의 악습관 중 하나는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기 직전에 가사를 만드는 습관인데요. 이게 잘못 전달이
되서 제가 굉장한 문재(文在)인것 처럼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감사하게도. 사실은 그게 아니구요. 평소에 그 내용을 계속
생각하면서 '이 노래는 이럴 것 같아' 이러면서 문장들을 머릿 속에 담아뒀다가 노래 부르기 직전에 '글자 수'를 맞추는거에요.
근데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제가 발표한 노래들은 거의 예외없이 녹음 전에 한번도 연습을 한 적이 없다라는..ㅋㅋㅋㅋ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데요. 이 노래는 그 전과는 다르게 제대로 연습을 거치고, 감정잡고 연기하는 것 처럼 하고 호흡 조절하면서 몰아쳐보자
하면서 했던 노래입니다.
후반부에 나오는 합창은.. 웅장하게 들리셨나요? 세명으로 오바더빙 한거에요. 현대 녹음기술의 힘이죠.
공동 11위 : The dreamer
N.EX.T 2집 "The Being", 1994
그녀의 고운 눈물도 내 마음을 잡지 못했지
열병에 걸린 어린애 처럼 꿈을 꾸며
나의 눈길은 먼 곳만을 향했기에
세상의 바다를 건너 욕망의 산을 넘는동안
배워진 것은 고독과 증오뿐 멀어지는 완성의 꿈은
아직 나를 부르는데
난 아직 내개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속에 묻어 버릴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이제는 쉽게 살라고도 말하지
힘겹게 고개 젓네 난 기억하고 있다고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눈물과 기도 속에서 아직도 날 기다리는지
이제는 이해할것도 같다며 나의 길을 가라 했었지
영원히 날 지켜봐줘
사랑해
Crom's comment: 이 곡도 당시 상황이 열악해서 진짜 피아노가 아닌 키보드를 사용했고, 하모니 부분도 제대로 신경을 못 썼어요. 나중에 제대로 만들고 싶어서 진짜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서 불렀는데.. 이 당시의 이 느낌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냥 '신해철'이라는 느낌을 가장 잘 담은 노래가 아닐까해요.
마지막에 나오는 "사랑해"라는 내레이션은 상업성을 획득하고자 일부러 했던 것은 아니고요. 좀 간지러워 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전 되게 심각하고 우울한 '사랑해'였단 말이에요. 그게 잘 표현이 안된것 같기도 하고..(소심)
그리고 이 노래의 전주 부분에 기우뚱 하는 화음의 코드는 앨범의 인트로인 첫 곡과 같은 코드이고, 같이 수록되어있는
Life Manufacturing이라는 연주 곡과도 같은 코드에요. 곳곳에 연결되는 지점들을 엮어서 노래 한 곡 한 곡이 따로
노는 앨범이 아닌, 설계자가 건축을 하기 위해 나사와 볼트를 연결하는 것 처럼 유기적인 앨범을 만들고 싶었고, 곡들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나온 곡이 바로 이 곡이에요.
9위: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2집 "My Self", 1991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Crom's comment: 이 곡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노래에요. 중간에 말이 랩이지, 염불이나 마찬가지인 부분을 보면(ㅋㅋ)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를 시작으로 상당히 계면쩍은 단어들이 나오잖아요. 고흐라든가 니체라든가. 당시엔 이런 이야기들 하면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진지한 얘기를 노래에 담으면 '대학 나왔다고 되게 설치네' 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때 였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가 사랑받은 이유는.. 크게 허세떨지 않는 수준에서의 고민들과 이야기를 진짜로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이 노래를 무대에서 부를 때, 무슨 종교 단체처럼(ㅋㅋㅋ) 랩 부분을 중얼중얼 거리며 따라 부르는 사람들의 눈동자와
표정들이 인상적이었어요.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묘했거든요. 이 노래가 쌓이고 쌓여서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이 노래의 중간 부분을 따라부르다가 내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약간 황당하기도 하고 계면쩍기도 하면서 감사하기도 하고요. '아, 이게 내가 만들었다고 해서 내 노래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제목처럼 〈나에게 쓰는 편지〉는 〈해철이가 해철이에게 쓰는 편지〉 였지만 이제 누구에게나 쓸 수 있는 편지가 됐죠.
그리고 제 인생도 많이 바뀌었어요. 제가 만든 곡들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는 느낌이란, 사람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보람 중
가장 고귀한 것이라는 깨달음. 그리고 '내가 운이 좋게도 그런 세계에 들어왔구나' 라는 생각이 오늘날까지 저를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8위: Into the Arena
붉은악마 공식 앨범 "꿈★은 이루어진다", 2002
Crom's comment: 월드컵 때 응원곡으로 실제 붉은 악마의 목소리를 넣어서 만든 곡이에요.
천장이 높은 극장을 빌려다가 붉은악마 500명을 모아놓고 마이크를 높이 설치해서 녹음했었어요. 500명을 가지고 몇 만명의
소리를 만드려면 500명이 열심히 소리를 질러줘야하는 것도 있고, 매번 녹음할 때 마다 마이크도 다른 기종으로 바꿔줘야 하고,
현장에서 녹음할 때 찌그려트리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가지 복잡한 음향적인 과정을 통해서 떼(?)소리를 만들기 위해 무지 고생했었어요.
쿠쾅쾅하는 북소리도 100~200명의 붉은 악마들이 각자 다른 북을 가지고 난타하는 소리를 녹음해서 컴퓨터로 작업했죠. 모노크롬 때의 경험이 많이 도움됐어요. 국악을 꾸준하게 공부하게 해줬고, 나름 최전성기 시절에 남의 나라에 가서 외로운 생활을 하며 얻었던 것들이 이 노래 한 곡에 들어갔고, 월드컵 때의 좋은 추억들도 담겨있구요.
여담이지만 "대~한민국"하고 외치는 소리들 있잖아요. 이 소리를 참 많이 샘플들을 하셨어요. 특히 대기업에서. 저는 비교적 제 음원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후배들에게도 그렇고 관대한 편이거든요. '좀 씁시다' 하고 가져갔으면 별 말 안했을텐데, 되게 얄밉게 슬쩍 피치를 조정해서 제 목소리가 아닌 것 처럼 해서 사용하셨더라구요.
아주 짜증나갖고.(ㅋㅋㅋㅋ) 미리 말했으면 공짜로 쓰시라고 하거나, 뭐 저작권 협회에서 절차 상 필요한 비용만 내시라고
했을텐데. 나중에 제 매니저한테 걸려서 거의 100배 이상씩 사용료를 토해낸 곳이 다여섯군데 정도였으니까요.
글쎄요, '음향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려고 유학을 다녀온.. 자만심이랄까, 자부심이랄까. 왜, 사람들 그런거 하나 쯤은 있어야 살잖아요. 저 역시 술자리에서 "대기업에서 내가 '대~한민국' 소리 만든거 서로 쓰려고 쩔쩔맸었다"하면서 잘난척 하는 용도로 가끔 써요.(웃음)
7위: Here, I Stand For You
N.EX.T 싱글 "Here, I Stand For You", 1997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and Love.
I still belive in these words.... Forever.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 똑같은 일상도
한해 또 한해 지날 수록 더욱 힘들어
등불을 들고 여기서 있을께,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 와
인파 속에 날 지나칠때, 단 한 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 볼수 있어, 단 한 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난 나를 지켜가겠 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 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영원히..
Crom's comment: 제가 데뷔할 당시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당시엔 발라드가 아니면 사랑받기 힘든 구조였어요. 저도 발라드 덕을 보고 소년 아이돌 스타로 뜬게 맞단 말이에요? 그래서 발라드, 특히 러브송을 작정하고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 당시, 이 곡을 싱글로 발매했는데요. 이런 스토리도 있었죠. 외국 보면 싱글이 있잖아요. 노래 한 곡이 맘에 들면
싱글을 사는 제도인데, 우리나라에선 노래 한 곡이 좋아도 앨범 전체를 샀어야 했단 말이죠. 얼마나 불합리해요. 그래서 유명 뮤지션이 싱글 시장을 개척하는게 맞다고 보고 싱글을 발매했는데... 6~7000원 정도의 가격을 바라고 발매했더니 12000원에 판매되더군요.
그 때 레코드 도소매 연합인가, 아무튼 그 분들과 법정 투쟁까지 가겠다고 했더니 "우리는 가수의 등급을 보고 팔지, 담겨있는 곡의 분량을 보고 팔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전국 모든 레코드가게에서 넥스트의 앨범은 받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는 바람에 제 계획은 무너졌죠. 뭐... 싱글 시장이 만들어지는데 협조를 안 해서 소비자들이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받다가, 나중에 MP3가 등장했을 때 한 방에 그 쪽 산업이 멸망하는 꼴을 보고나니... 통쾌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씁쓸했어요.
이 노래 녹음할 때 복근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벨트 세개를 차고 노래를 했거든요. 벨트가 하나씩 터져나가는 걸 보고 일본 스탭들이 거의 엽기에 가까운 표정으로 저를 쳐다봤던 기억도 나네요.
6위: 불멸에 관하여: The Ocean
N.EX.T 2집 "The Being", 1994
바다, 검푸른 물결 너머로 새는 날개를 펴고
바다, 차가운 파도 거품은 나를 깨우려 하네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거친 욕망들도
저 바다가 마르기 전에 사라져 갈텐데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처음, 아무런 선택도 없이 그저 왔을 뿐이니
이제 그 언제가 끝인지도 나의 것은 아니리
시간은 이렇게 조금씩 빨리 흐르지만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후회는 없으니
그대 불멸을 꿈꾸는 자여
시작은 있었으나 끝은 없으라 말하는가
왜 왜 너의 공허는 채워져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처음부터 그것은 텅 빈 채로 완성되어 있었다
Crom's comment: 제가 삶에 대해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뭉뚱그려 만들어 집어넣은 곡이에요. 가사 한 줄 한 줄에 설명을 달자면 밑도 끝도 없이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제 딴에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으려고 했는데, 딱히 그런 설명들 없이도 제가 말하고자 하는 느낌들은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요.
아마 제 곡들 중 온도 차가 가장 심한 곡이 아닐까 싶네요. 신해철의 오랜 팬이나 지속적으로 저의 노래를 좋아하지 않는 분은 아예 모르는 곡일테고, 저를 아는 분들 가운데서는 최고 중의 최고로 꼽히는 곡이죠. 제가 어렸을 때 부터 들었던 아트록이라든지, 신디사이저 소리라든지, 제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들어있는 음악이구요.
그리고... 넥스트가 첫번째 앨범을 만들고 두번째 앨범을 만드는 사이에 과도기가 있었어요. 저는 감옥도 갔다왔구요.
그러다보니 멤버들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서 참 힘들었죠. 레코딩 중에 제가 정말 분신처럼 생각하면서 의지했던 기타리스트 정기송씨가
저의 박덕함으로 팀을 떠나기도 했구요. 상당히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녹음을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쩔 수없이 베이스기타, 기타 일부, 건반의 전부를 제가 직접 연주를 했구요.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네요.
5위: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N.EX.T 2집, "The Being", 1994
부모가 정해논 길을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
각본대로 짜여있는 뻔한 인생의 결론 향해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긴다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왜 왜
Fight ! Be free !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Fight ! Be free !
The destruction of the mind !
껍질속에 나를 숨기고
fight.. fight.. be free..
생각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은 정해져 있고
다른 선택의 기회는 없는가
끝없이 줄지어 걷는 무표정한 인간들 속에
나도 일부일 수밖에 없는가
**
몸부림치면 칠수록
언제나 그 자리일뿐
뛰어도 돌아도 더 큰 원을 그릴 뿐
(세상의 모든 고통과 좌절과 분노를 내게 다오
영원히 마르지 않을 눈물을 갖게 하고
고독의 늪에서 헤매이게 하라
그럼으로써 내가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 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다가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말하게 하라)
**
언젠가 내 마음은
빛을 가득 안고 영원을 날리라
Fight !
Crom's comment: 가제는 <차력사의 애정행각>이었어요.(ㅋㅋㅋ) 사실 이 노래는 제가 꼽은 10개의 노래 중에 1위여도 돼요. 어떤 의미에서 그러냐면, 저는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 중에서도 뭐가 되고 싶었냐면 야구나 축구처럼 같이 동료의식을 느낄 수 있는 밴드를 하고 싶었어요. 특히 헤비메탈 장르로요. 당시 남자 청소년들의 로망이었던 헤비메탈은 고음이 '삐약삐약' 올라가야만 하는 장르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전교에서 목소리가 가장 낮은 아이였죠. (웃음)
모니터 스피커 위에 발을 올리고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찢어지게 고음을 올리는 헤비메탈의 싱어 정도라면 해 볼만 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라면, 난 그냥 기타리스트가 되서 밴드의 리더가 되고 싶지 보컬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제가
보컬이 되었고 제가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밴드를 하게 되었죠. 제가 차선으로 생각했던 것들, 그러니까 음향 엔지니어가 되서 음악
하는 사람들을 돕고 뭔가 창조적인 일을 하는 것, 디제이가 되서 남이 만든 음악을 내 관점에서 들려주고 생각을 나누는 것. 이런
것들은 다 이루었지만 최선으로 꿈꿨던 것들은 꿈으로 남겨둬야 했죠.
그 당시 이 노래는 가요톱텐에 올라간다거나 하는 히트곡은 아니었지만, 중고생들 사이에서, PC통신에서, 이 노래를 모르면
간첩이었고 촌스럽다는 취급을 받았는데요. 이 곡이 10분 짜리에 아트록과 헤비메탈을 결합한 노래잖아요. 완성도가 어찌됐든간에요. 거기에 초반에 보컬의 한계점이 딱 보이던 친구가 공백기 끝에 앨범을 내놓고, 첫 곡에 남자 아이들의 자아를 무한정 확장시킨 것 같은 직진 헤비메탈로 느닷없이 음악이 바뀌었고, 후반부에 고음으로 확 점프를 해버렸단 말이죠.
저를 아껴주던 팬들은 제가 성장하는 것들을 보면서 자식키우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지금도 전 그때 제가 한계를 뚫고 나가는 것에 대해서 제 입장에서 공감해주면서 자기 일 처럼 기뻐해주었던 팬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요. 껍질의 파괴, 한계를 갖고 있던 아이가 껍질을 부수고 나간다는 설정이 '고음 안되는 애가 고음이 되기 시작한다'는 포인트와는 다른 얘기였을텐데, 마침 그런 포인트가 우습게 맞아 떨어졌죠. (웃음)
제 목소리 톤은 테너도 아니고 바리톤이에요. 제가 이 정도의 고음을 내는 건 뭐 콘트라베이스에서 바이올린으로 갑자기
올라가는 셈이죠. 타고난 것을 억지로 점프해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창법으로 콘서트에서 노래를 계속하다 보면 두개골에 압박이
느껴져서 눈의 실핏줄이 터지기도 하고, 밤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잘 못 자요. 그래도 제 입장에선 충분히 가치있는 대가를 치르는거죠.
저한테는 '차선의 차선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주변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게요'라며 그냥 멀리멀리, 포기하면서 밀어냈던 꿈. 제 입장에선 정말 소중했던 꿈들을 산 넘고, 물 건너, 모터 보트 타고, 기름 떨어져 다시 넣고, 뭐 그런 과정 끝에 염원하던 지역에 도달하기 해준 곡이에요. 뭐 유치하다고 하셔도 상관없어요. 이게 저의 도달점이었던 것 같아요.
4위: 재즈까페
신해철 2집 "Myself", 1991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피자 발렌타인 데이
까만 머리 까만 눈의 사람들의 목마다 걸려있는 넥타이
어느 틈에 우리를 둘러싼 우리에게서 오지 않은 것들
우리는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빨간 립스틱 하얀 담배연기
테이블 위엔 보석 색깔 칵테일
촛불 사이로 울리는 내 피아노
밤이 깊어도 많은 사람들
토론하는 남자 술에 취한 여자
모두가 깊이 숨겨둔 마음을 못 본 체하며
목소리만 높여서 얘기하네
흔들리는 사람들 한밤의 재즈 카페
하지만 내 노래는 누굴 위한 걸까
사람들 돌아가고 문을 닫을 무렵
구석자리의 숙녀는 마지막 메모를 전했네
노래가 흐르면 눈물도 흐르고
타인은 알지 못하는 노래에 담긴 사연이
초록색 구두위로 떨어지네
Crom's comment: 하드록과 헤비메탈과는 별개로 전 미디음악의 1세대인데요. 미디가 딱
실용화 되기 시작했을 때, 저와 제 동료들이 미디와 시퀀스를 이용한 음악을 하기 시작했어요. 재즈까페의 드럼 비트 같은 경우는
당시 우리나라의 드러머들이 전혀 연주를 할 수 없는 비트여서... 이런 것들이 다 인프라잖아요? 레코딩 기술이 발전하고, 거기에
맞춰 전문가의 연주실력이 상승하고, 한 국가의 음악 산업이 발전하고.. 이런 구조가 되는건데요. 이런 것들을 다 기다렸다가 음악을
하면 전 할아버지가 되버리는거잖아요.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기계를 통해서 임시로라도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미디가 활성화 되면서 우연히 맞아 떨어졌던거죠. 그
당시에는 이게 또 가장 럭셔리한 음악으로 받아 들여졌던 아이러니한 점도 있구요. 왜이렇게 잉글리쉬를 믹싱해서 스피킹하게 되죠?
(ㅋㅋㅋㅋㅋ)
'진지하고 무거운 가사들을 노래에 탑재시키고 싶다' 라는 점은 데뷔 초부터 꾸준한 저의 소망이기도 했구요.
3위: 그대에게
N.EX.T 5.5집, "Regame?", 2006 (최초발표는 88년 대학가요제)
숨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린 서로 이렇게 아쉬워하는 걸
아직 내게 남아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내가 사랑한 그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그대를 포기할 수 없어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나는 그대 숨결을느낄 수 있어요
내 삶이 끝나는 날까지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 있겠어요
내 삶이 끝날 때 까지
언제나 그댈 사랑해
Crom's comment: 많은 분들이 〈그대에게〉를 1위로 생각하시겠지만, 뭐. 순위 자체는 숫자에 불과한거니까요. 〈그대에게〉는 워낙 여기저기 뒷 얘기들이 많이 알려진 편인데요. 대학가요제에 나가기 전에 신디사이저를 갖고싶었지만 형편이 안 되서 문방구에서 멜로디언을 샀고,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 이불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만들었던, 그런 곡이에요.
이 곡에는 상당히 전략적인 관점이 많이 들어가있는데요. 그런 것들을 전 창피해하지 않아요. 이제 막 음악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주면서 "
우리나라에서 음악을 하면서 한 손에는 악보를, 다른 한 손에는 계산기를 드는 것은 의무지 창피한 상황이 아니다. 우리보다 음악적
환경이 더 나은 다른 나라 뮤지선들도 그러한 방법을 쓴다. 양 손에 계산기만 들고 음악 한다고 설치는 사람들이 미운 모습을
보이는거지, 다른 한 손에 악보를 들고 있다면 괜찮다"는 얘기를 해주곤 해요.
제가 대학가요제 전에 강변가요제에 출전했다가 떨어졌었거든요. 그 때의 경험들을 미루어 여러가지 전략을 세웠어요. 열 몇 개의 팀이 출전하는 그 지루한 행사에, 다들 유행이니까 발라드를 부를게 뻔하잖아요. 그럼 우리는 반대로 빠르고 경쾌한 노래를 가지고 가면서 전주에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맨 마지막 부분에 여운을 남기며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고, 뭐 이러이러한 것들을 해야되겠구나 하고 전략을 짰죠. 그게 동시에 맞아떨어지면서 대상을 수상하고 데뷔를 하게 됐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제가 데뷔 했을 당시에, '무한궤도'는 사회적으로 화제를 일으켰지만 〈그대에게〉 자체는 그렇게 히트곡이 아니었어요.
워낙 힘들게 녹음을 하기도 했고 초반 사운드는 환경적으로도 못 들어주는 수준이었죠. 그래서 전 이 노래가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런데... 제가 이십년 활동을 하면서 계속 히트곡을 내는데도 이 노래가 안 사라지는거에요? 무한궤도로
정식 데뷔를 했을 때, 이 곡은 대학가요제에 소속되어 있고 제가 새로 계약된 회사에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회사에서
죽이려고 노력했던 곡이거든요. 전혀 PR을 하지 않았구요. 그런데 이 노래가 점점 더 유명해지더니 지금은 이 노래가 무한궤도나
신해철 노래인건 몰라도 응원가 〈그대에게〉는 다 아는 그런 상황이 됐잖아요. 즐거운 상황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작곡가에게 있어서 누가 부르고 작곡했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이 그 노래를 아는 상태. '어, 나 이 노래 알어! 이
노래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그런데 이 노래 누가 쓴거라고?' 이렇게 되는 상태가 가장 영예로운 상황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2위: 민물장어의 꿈
"락(樂) and Rock" 프로젝트 앨범, 2001 (발표는 1999 Homemade Cookies &99 Crom Live)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Crom's comment: 이 노래는 제 고달픈 유학 생활... 그러니까 런던에서 4년, 뉴욕에서 2년, 뭐 중간에 왔다갔다 했지만요. 어쨌든 유학 생활의 끝을 맺을 무렵 쯤에 만든 노래고요. 데뷔를 하고 매일매일이 다르게 인기가 치솟고 모든 것이 상향 그래프를 그릴 때 여러가지 생각을 했어요. 이 것은 영원하지 않다. 명성이나 인기나 이런 것들을 좇는 삶을 사는 자들을 옆에서 지켜보니 비참하더라. 하루살이나 다름 없는 그런 삶을 살더라 하는 것들이요,
솔로 가수로 한창 돈이라는 걸 만질 수 있을 때 밴드 하겠다고 나섰을 때나, 이제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게 아니라 독을
메꿨으니 지금부터 넌 집 살 생각 하라고 주변에서 말할 때 밴드 해체하고 유학갈 때나 뭐.. 그냥 그냥.... 전 그런 감에
의해서 살아 왔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적인 음악 괜찮으니까 열심히 하세요" 하고 격려하던 레코드 회사가 조금 반응이 안 좋으니까 바로
경제적인 지원을 중단해버렸던 일, "요즘 국내에서 당신 인기가 팍팍 고꾸라져가고 있는 것 같은데 심경이 어떠냐"는 질문과 함께
야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을 겪으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기도 했었어요.
이 노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만들었다기 보다는,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었던 노래에요. 항상 보면 그런 것들이 남들에게도 해당되더라구요. 그래서 공감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구요.
제가 만일 죽은 다음에, 노래 비 혹은 노래 가사를 새길 수 있을 정도의 묘비가 제 무덤에 세워지가 된다면, 저는 뭐 매장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때 제 무대, 아니 무덤. 그러고보니 무대하고 무덤은 한 글자 차이군요? 아무튼 거기에 새겨질 노래는 이 노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1위: 해에게서 소년에게
N.EX.T 4집 "Lazenca, Save Us", 1997
눈을 감으면 태양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맬로디 내게 속삭이지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봐 길을 떠나야해
니가 흘린 눈물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너의 여린 마음을 자라나게 할꺼야
남들이 뭐래도 니가 믿는 것들을
포기하려 하거나 움츠려 들지마
힘이 들땐
절대 뒤를 돌아보지마 앞만 보며 날아가야해
너의 꿈을 비웃는자는 애써 상대하지마
변명하려 입을 열지마 그저 웃어 버리는거야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너의날개는 펴질꺼야
Now we are flying to the univers
마음 이끄는 곳 높은 곳으로 날아가
더 높이 더 멀리 너의 꿈을 찾아 날아라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세상을 알게 된 두려움에 흘린 저 눈물이
이 다음에 올 사람들을 인도하고있는것이지..
Crom's comment: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었고, 제가 말 하고싶은 바를 전했고, 그런 모든 측면을 다 고려했을 때 저에게 넘버원은 결국 이 노래네요. 저도 사실 최근에 깨달았거든요. (웃음)
끝으로 오랜 세월 제 음악을 아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고요. 그리고.... 저는 현재 진행형의 뮤지션이고, 지금까지 만들었던 모든 노래를 합친 것 보다 더 괜찮은 음악을 만드는 것을 포기한 적은 없지만, 그게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의 다음 음악을 꼭 기대해주세요'라는 이야기를 하기에는 저는 너무 수줍거나 너무 비뚤어진 사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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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 당시 방송 FULL 버젼입니다
제밌게 보세요
원출처 http://www.oeker.net/bbs/board.php?bo_table=garden&wr_id=1522939
첫댓글 오...좋은자료네요... 이때...2시엔 꼭...듣고 자고 그랬었는데....
아직 다 듣지는 못했고. 순위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진 않을것 같긴하지만...
1위가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건 좀 의외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제 넘버원도 해에게서 소년에게.
이 곡들으며 울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마왕 가시던날 이곡만 줄창 들으며 계속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장례식 조문후 귀가길에 지하철 편의점 라디오에서도 때마침 흘러나오기도 해서 이동하다 말고 서서 듣다 가기도 했었죠..
정말 좋은 글이네요
보고싶어지네요ㅠㅠ
드리머...인생노래ㅜㅜ
저는 '영원히' 좋아하는데 없네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