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한해서 영화를 크게 이분법적으로 나눠보자. 감상을 쓰고 싶은영화와 안쓰고 싶은영화.
매우 주관적인 시각차이가 편가르기의 정점에 선다는건 어찌할바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이렇게 뻔한 나누기를 하는 이유는, 드물지만 감상을 꼭써야 한다는 사명감이 드는 영화가 더러존재하기 때문이다. 꼭 이것이 영화사적 가치판별이나 작품론적인 입장이 아니더라도, 단지 영화볼때 느낀 센세이션널리즘sensationism이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때 극장좌석에서 곱씹을 여운을 남기고 싶다는, 일종의 기록적본능의 발현..정도로 어렵고 애둘러서 말해본다. 요컨데 나는 이영화를 보고 감상을 남긴다. 라는 한마디문장을 뷔페음식을 잔뜩먹게해 포화상태로 이르게한 것이 바로 여러분이 읽고있는 이 문단이다.
자책은 있다 시간남을때 천천히 하기로하자. 일단 제목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기본내용에 입각하여 충실하게 축약된 모습을 엿볼수있다. 말죽거리잔혹사. 실질형태소별로 끊어해석하면 말죽/거리/잔혹/사. 말그대로 말죽거리라는 고유지명에서 일어난 잔혹적인 과거.. 정도. 여기에 예고편의 1978년학원액션로망 이란 문구과 권상우의 이소룡흉내장면을 첨가하면, 이영화의 성격이 대충나온다. 과거향수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코가마비될 정도로 듬뿍뿌린 복고풍 학원 영화다.
이 영화성격상, 한국 최대관객동원기록을 지니고 있는[친구]와 비교될 수 밖에 없다. 그런 복고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70년대학교라는 시.공간적 배경을 소재로 일어난 에피소드가 겹치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친구]는 어디까지나 그런 과정이 친구- 라는 명칭이 주는 [우정]을 뒷받침해주기 위한 하나의 절차로 인식되지만, 말죽거리잔혹사(이하 말죽거리)는 그 자체가 영화전체를 관통한다. 우정을 부각한 친구와 달리, 악명높은 정문고에 전학간 한 학생의 잊지못할 기억을 따라간다는 면에서 좀더 포괄적인 것을 담는다. 우정을 비롯한 사랑, 향수어린 사건들.
이 영화의 기본적 컨셉은 재현이다. 그당시를 재현하자. 라는 모토아래 각고의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런 재현을 기저로, 그위에 학생들의 판타지인 싸움과 사랑을 접목시키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 두가지에 충실하게 녹아흐른다. 군화를 입고있는 교련티처와 오라이를 외치는 버스누나, 각잡힌 교복과 모자, 그리고 학교짱과 선도부. 여러 개성있는 친구들 이하등등. 이미 영화 품행제로나 친구 에서 맛배기로 보여준 소소한 에피소드를 더욱 본격적으로 발설하는 것이다. 감독의 의도를, 무리없는 영상과 적절한 음악, 오버하지않은 배우들이 알고있다는데 더 의의가 있다. 의도는 관객에게 손을 내밀고, 관객은 그런 손짓을 진저리치지않는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한체 감상을 이끌어보자면, 후반의 이소룡을 연상케하는 결투신을 오버라 치부하지 않는다면 이영화는 무리없는 영상을 보여준다. 전개또한 그영상을 배반하지 않는다. 단지 영화중반을 넘어설때 이정진의 가출이 주는 의미를 영화내에서 너무희석시킨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정도. 권상우와 한가인의 아스라한 감정에 중점을 둔 나머지 초반 카리스마를 앞세운 학교짱 케릭을 죠커로써 활용하다 그냥 쓰고 버린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이점에서 탄식하는데, 허나 이렇게 영화에서 퇴장시키는 것이 오히려 학교짱이라는 역활의 화려한 엔딩이 아닐까.생각해본다. 만약 그렇게 가출해서 다시돌아온다- 그리고 권상우와 손잡고 재기를 노린다...식의 열혈전개를 뺴놓더라도, 한번패배를 당한 일인자의 이런식의 말로는 굳이 학교라는 장소에 국한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야인시대에서 나온 구마적 이하 케릭들로 종로를 뜨는것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감하지않는가. 이것은 일반적으로 일인자에서 물러났으니 이인자다..식의 단순논리가 아니라, 일인자가 갖고있는 모든 자존심이 단 한번의 패배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새삼일꺠워주는것에 불과하다. 극중 이정진이 열연한 학교짱의 역활은 초반에 보여준 카리스마와 극단적으로 비교되는 퇴장신을 엮어, 한번쯤 꿈꿔봤을 일인자라는 학생들의 판타지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모습으로 대변된다. 그러나 역시 어디까지나 전학생(주인공)의 변신을 가능케하는 소도구로 전락한 면도 없지않아있다. 그 소도구의 비중이 초반에 너무 강렬해서, 영화중반이상을 관람하던 관객들의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었다는데 문제점을 지적할수 있다. 선도부장이 비겁하게 학교짱을 쓰러트린다--라는 설정은 그나마 학교짱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인공의 모범생스타일은 이미 전학간 학교가 악명높은 정문고라는 사실하나로 충분히 바뀔여지가 있었다. 또 짱의 친구가 됨으로써 경험하지못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삼각관계의 한복판에 서있게 되면서 우정이냐 사랑이냐..라는 다소 진부적물음을 던지고, 폭력과 폭언 가진자와 못가진자, 힘센자와 그렇지 않은자의 모습을 학교라는 곳에서 보여줌으로써 주인공의 가치관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런 요소들이 영화적과장이 아니라, 현실적인 인물과 배경으로 제시됐기때문에 나이지긋하신 관객분들의 기억을 매만지고, 그렇지 않은 관객에겐 새롭지만 너무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신선한 재미를 느끼게한다. 신세대 배우들의 기용은 그래서 더욱 호기롭게 작용한다. 권상우는 자연스럽게 배역에 녹아들었고, 이정진은 카리스마를 발산했으며, 한가인은 극중 올리비아핫세를 닮았다-라는 대사를 더욱 자연스럽게 했다.
결국 일인자 싸움에서 진 친구와 자신이 좋아했던 여자의 동반 가출은, 주인공의 변화를 정점으로 치닫게 하는 결정적 사건이 된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이소룡이다. 그당시 남학생들의 우상을 권상우의 몸을 빌려 환생시킨 것이다. 바로 이부분이 이영화의 가장 큰 판타지적 요소이다. 순간 악의 무리가 된 선도부 및 기타 조연들을 처절하게 복수와 응징을 당하게된다. 그리고 나서 외친 한마디는, 자신이 전학온 이래로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집약시킨 결과물이다. 대한민국 학교 !@#%$하라그래! 관객입장에서는 이대사가 좀 생뚱맞긴할수도 있다. 그당시 교육문제에 고뇌한 학생의 마지막 발로가 아니라, 자신의 친구를 무너뜨린 선도부에게 치켜든 복수의 칼날, 아니 쌍절곤이었는데 말이다.
여기까지의 전개와 맞물려 주인공의 사랑이야기 또한 비중있게 표현한다. 자신이 어렵게 얻으려했던 그녀의 마음을, 학교짱인 자신의 친구는 너무 쉽게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 그러나 주인공은 이런 불합리한 처사에 한탄하면서도 친구의 사랑을 인정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지금의 사랑관과 달라서 진부할수도 있지만 오히려 더 새롭게 보인다. 첫사랑이 안타까운건 짝사랑이기 떄문이라는, 어느 명언을 들먹거리지않더라도 그런 순수한 사랑이 주위의 거칠고 투박적인 소재들과 명암을 달리하면서 더욱 빛나보인다. 라디오 사연의 에피소드도 그런면에서 더욱 부각된다. 바로 주인공과 그 여학생을 이어주는 유일한매개체로 등장하기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있다. 이 움직임의 원동력은 바로 영화가 보여주는 메세지이다. 감독은 기본컨셉인 1978년 학교생활 재현과, 동시에 아름다웠던 기억은 아니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자신을 달궈준 그 일년을 무리없이 표현했다. 이것은 관객들에게 미화되거나 가려지지 않은 채 보여진다. 메세지는 바로 그곳에 숨어있다. 폭력과 억압에 사로잡혔던 학교에서 그나마 꽃피웠던 우정, 사랑, 그리고 새로운 자신의 발견을 통해 어찌됐던 부정할수없는 기억이자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승화됐다. 영화의 스타일러쉬하면서도 비약하지않은 모습은 바로 추억의 진실은 추악하거나 아름답지않은, 바로 그자체라는데 중점을 두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잔혹이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붙일수있는 잔혹이란말에서 이제는 여유가 느껴졌다고할까. 말죽거리 잔혹사는 그런의미에서 잔혹사가 되지않는다는 역설적내용을 내포한다.
영화자체에서 딱부러지는 이야기를 들을순없다. 결말도 밋밋하다고 느껴질법도 하다. 그러나 원래 한 개인이 가질법한 추억은 늘 결말이 극적이지 않았다는데 주목해야한다. 혹시나 몇년후..라는 자막과 동시에 훌쩍 성숙해진 이들의 재조명하는 결말이었다면 오히려 영화를 망치는 결과였을것이다. 늘 그렇듯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그런 잔혹사도 여기까지가 잔혹사였다..라고 꼭 단정지을수 없는 추억의 일부이기 떄문일련지도 모른다. 그리고 극중 전반에 흐르는 이소룡은 일종의 오마쥬이자, 주인공을 대변하는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성룡이 그 계보를 잇는다 하더라도, 학교생활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시켜준 이소룡이야말로 영원할테니 말이다.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유쾌하다.
적설적인것 같지만, 그렇다고 과장되지는 않은 그시대의 학원액션로망. 이 부제가 무리없어보인다. ..제목은 모르겠지만 부제는 늘 관객을 배반했다는점에서 이영화는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