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서울살이 10년에 환멸과 권태의 절벽을 깨고 날아오르기보다, 추락의 자유를 꿈꾼 저자는 현실 안주보다 잠적, 도피, 무책임의 질타를 받더라도 늦기 전에 백척간두 진일보의 해방을 꿈꾼다. 사표를 내고 보름간 서울역 노숙자 생활의 극약처방을 한다. 서울이란 아수라장을 빨리 벗어나자! 되새김하며 구례 행 전라선 밤 기차를 탄다. 아는 스님의 섬진강 토굴의 자물쇠를 열고 지친 몸을 누려놓고 사흘 내내 잠을 잤단다. 눈앞이 캄캄했지만, 저자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 얼마나 통쾌했던가?
그는 196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죽자 십여 세에 만덕사란 절에 행자로 들어가 절대고독의 옆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집을 소유하는 대신 모터사이클을 집으로 삼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했다. 전남 구례 피아골과 전북 남원 실상사와 경남 함양의 실선 계곡 입구, 경남 하동의 화계장터 입구 마을 등에서 최소 1년 이상 7번을 이사하며, 그곳의 지수화풍을 읽고 시집이나 산문집을 발표하며, 굶어 죽지 않고 밑천도 들지 않는 멋진 장사를 했다고 자평하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자본독재의 시대, 화폐로 교환되지 않는 백해무익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시대에 도대체 詩란 무엇인가? 에 반문을 한다. 교환가치가 없는 시를 쓴다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능력한 죄인이기를 강요당하는 듯한 시절에 시 창작을 가르치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니 자꾸 주눅이 듦을 감출 수 있겠는가? 반문한다. 시작의 일념은 가난이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며 개폼을 잡고 자격지심을 숨긴 채 세상을 탓하고 좋은 시인이 되지 못함을 절망과 허송세월의 게으름으로 숨긴 채, 나눠먹기 이전투구의 한국 문단을 비판하나 이 또한 얼마나 한심한 작태인가? 유명세를 타며,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선 극소수의 이들은 행복한 기형아일 뿐이고, 대다수는 비극적인 고아 혹은 풍운아로 행복을 가장한 방외자일 뿐이다. 말이 좋아 전업 시인이지 무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문인단체 등에서 좀 나눠 줄 기대를 하는 것도 미몽일 뿐이 고, 그저 시인 대다수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시인은 주장한다. 그는 월세 4만 원의 빈 집에 살면서 한 달 용돈 20만 원을 지키려 애쓴다. 빚 없이 통장 잔액 50만 원만 있으면 배가 부르다니, 스스로 치하를 할 정도이다. 그나마 시인은 순천대 문창과 학생을 가르치며 1년에 8달, 월 50만 원과 실상사 작은 학교 아이들 가르치며 월 20만 원, 3년에 한 번 내는 시집과 산문집의 인쇄로 연 250만 원, 년 900만 원 안팎이 수입 전부다.
귀농 귀촌을 꿈꾸고 현실화하는 사람을 보면 멋진 집을 짓고 푼, 욕망에 풍수지리를 공부하여 마을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 풍광이 뛰어난 곳에 터를 잡고 집을 착공한단다. 그리고 시공비를 많이 들여서 정원과 텃밭을 갖추지만 몇 개월 지나면 심리적으로 쫓기게 된다. 귀농 후 수입은 월 몇만 원도 안 되고, 땅값도 지역민보다 더 많이 줬으니 필수도 없고, 다른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 되팔아 암묵적 사기를 치려니 죄의식에 휩싸이고 문제는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란다. 이는 지수화풍 중 단지 풍경만 봤지, 바람을 모르고, 물을 모르니 가뭄과 태풍 폭우 폭설이 생기면 왜 그곳에 마을이 없었는지를 알게 된단다.
이제 저자의 전국투어를 보자. 늦가을 단풍은 설악도 지리산도 좋지만, 백미는 황금 들녘이란다. 누렇게 익어가는 나락과 검게 그을린 농부의 얼굴과 힘줄 돋는 팔뚝이 지상 최고의 단풍이란다. 순천만 갈대밭은 생태 수도를 표방할 성공작이지만 10년 전은 다 파헤치려는 것을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막은 것이란다. 여행하면서 맛집을 고르는 것은 시골 우체국이나 면사무소 앞에서 직원들이 가는 집을 찾으면 된단다. 그는 여러 곳의 국밥집과 순댓국집 이름을 거명했다. 그중 벌교 장터의 장날에만 서는 돼지국밥의 집 2,000원짜리 아주머니 사진을 실었다.
이웃에 초등학생이 이사를 와서 처음 말을 걸면서 “아씨, 정말 시인이세요? 두 눈이 빨개, 밤새 시 쓰다 나왔어요? 그는 밤새워 너구리처럼 술을 마시고 두 눈이 빨개진 것인데 이후로 반성의 시를 썼단다. 하동 섬진강 강가의 면민 체육대회 이야기는 면민 수에 참가인원 수의 비율로 里에 참가상을 준단다. 3등을 해도 1,000만 원이라 이장이 꼭 나가야 한다고 며칠 얘기를 해서 참가했단다. 여자 씨름을 본 노인은 아니 천수 며느리 아이가?,”가랭이를 너무 마이 벌려도 안 되능기라, 쪼금 오므리면서 느닷없이 멧돼지처럼 밀어붙여야 한다카이. 그렇다고 서방한테 대들 듯하지는 말고” 남자 씨름을 본 할머니는 “쯧쯧 저 등신 같은 놈 저 혼자 주저앉네. 밤중에 지 마누라도 못 자빠트릴 놈이 뭐하로 나왔노?” 축구 골대에서 여자 공차기가 이어졌다. 여자가 차고 여자가 막는 게임이다. 식당을 하는 아주머니가 헛발질하고 “아이고 저리 큰 구멍에도 안 들어가뿌네. 우리 서방님은 대단해. 대단하다꼬. 우야다가 엉뚱한 구멍에 넣을까 봐 항상 그기 문제지.”라 실수를 응원단에게 주는 큰 웃음을 선사했단다.
지리산 벗점골 너럭바위 합수 지점의 폭포 아래 알몸으로 목욕을 하고 몸을 말리다 보니 저자가 있는 곳보다 10여 미터 위에 한 처녀가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바위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얼른 옷을 입고 나만의 비밀의 누드 계곡을 빼앗기게 생겼지만, 여인의 몸을 숨어서 훔쳐보고 30분 지나니 여인도 옷을 입고 젖은 머리를 찰랑대며 내려왔다. 장난기가 발동해 스물 댓 정도 뵈이는 여자에게 등산로에서 잘 보이는 곳인데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말을 거니 놀라기는커녕 피식 웃더니 강 펀지를 날려 왔단다. “보는지가 꼴리지 내가 꼴립니까? 그리고 노래까지 흥얼거리면 내려가더란다. 화개면 의신마을에서 절터 골, 토끼봉의 합수 지점이 ‘빨치산 총사령관 이 현상의 최후를 맞이한 폭포 근처 너럭바위란다’. 십 대 후반 저자의 삶은 행자이며 불목하니로 종일 아궁이에 불 지피고 법당과 도량 청소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단다. 음악을 들어도 산사의 종소리나 노스님의 청아한 독경 소리, 풍경소리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산해진미보다는 우선 때가 되어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물 한 모금이나 주먹밥 한 덩이가 소중한 밥이자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제아무리 좋은 향수라도 김치볶음밥이나 산채비빔밥에 넣은 산초기름 한 방울의 독특한 향기와 고소한 맛에 비견할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단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난계국악박물관 옆에 세계 최대의 북 ‘천고’를 보러 갔다. 울림통 길이 5.96m, 폭 6.4m, 지름 5, 44m 15t 트럭 4대 물량의 소나무와 소 40마리의 가죽이 재료로 쓰였단다. 6명의 악기장이 길이 1.5m, 너비 15센티. 두께 7센티의 목재 800개의 나무 조각을 1,350개의 나비장으로 끼워 맞춰야 했던 북이다. 1921년 단재 신채호 선생이 베이징에서 발행한 잡지도 <천고>였는 데 선생은 “나라의 빛을 되찾아 우리의 산하를 다시 세운다면 천고의 직분은 여기서 다하리라”라고 밝혔다. 연극에 미친 사람. 이발소를 지키는 사람, 남원의 칼을 만드는 장인. 신발을 고치는 사람 우리의 씨앗을 지키는 사람 등 이야기들이 단편으로 전개되고 영동 천태산의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시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환경을 보호하고 지키며 우리 것을 유지 발전 계승을 몸소 실천하는 환경운동가 겸 시를 쓰는 사람이다. 지구를 지키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 중, 1위에 자전거가 등장하고, 나머지는 콘돔, 천장 선풍기, 빨랫줄, 타이 국수, 공공도서관, 무당벌레다. 이 책이 쓰인 시기는 2010년으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다. 이명박 정부 들어 변질하기 시작한 한반도 대운하 자전거 탐방을 이야기하면서 이재오 특임장관이 한강을 내려다본다고, 쫄바지를 입고 폼 나게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가 걸린 것이 자동차 전용도로인 올림픽 도로였단다. ‘4대강 살리기 종합 계획’의 자전거 도로를 임시방편 시멘트 포장으로 자연을 훼손시킨 것에 분개하는 내용의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이 책은 도시에서 복작대는 삶과 시골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각자의 몫이다. 사람이 자연과 순응해 사는 모습을 찾아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줌이 아름답지만,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먼저냐, 지적 만족과 자유로운 삶이 우선이냐를 놓고는 그의 삶을 권장할 자는 극소수일 거다. 그는 주관적 자유주의자겠지만, 그는 객관적으로 소득수준 하위자다. 사람의 삶은 대를 이어가는 것이 우선이다. 아버지가 천수를 누리고 명대로 오래 살고, 자식이 아비를 바탕으로 교육받아, 정치든 기술이든 사업이든 발전을 함에 삶의 품격이 올라갔다. 운을 다하면 다시 정상에서 밀려 내려오고 다시 노력해 올라가는 삶이 우리 사람의 길이다. 종교 활동을 잘해서 무지한 사람을 깨우쳐주면 종교지도자지만, 환속해 (저자는 還 戒라 표현을 했지만) 그래서 불 수행자가 정신적으로 신선 같은 학식이 높은 큰선비가 될 리도 없다. 오십 넘어서 대를 이을 자식을 둘 수 없고, 벌어 놓은 재산일랑 그분들은 당최 없을 것이니, 곤궁해 불심을 가지려 해도 주관적 적 선이, 적 악으로 변질한 줄 모르고 염려되는 사람도 우리 주위에 더러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삶의 원천도 부모 형제, 고향, 宗財, 유산상속, 선산, 조상 位土, 묘소 등에서 얽히여, 서로 모이고 웃다, 삐졌다, 반목도 하면서 근간이 되어 연연히 이어지는 것이다. 이 연결할 줄이 이제는 희미해져 서서히 없어질 듯하여, 날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새 명문가는 생길 것이고 다시 그들의 가문 이름으로 자손이 번성할 것이니 그도 각자도생이니 우리 집안도 그리 잘하리라 믿으며, 2020년 12월 마지막 독서의 기록으로 남긴다.
2020.12.30.
멀리 나는 새는 집이 따로 없다.
이원규 지음
오픈하우스 간행
첫댓글 어릴 때 고향 떠나 객지로 돌다보니
이제는 나이도 산수(傘壽)가 넘었고
그나마 집도절도 없고 피붙이 하는 없는 신세이니
성공을 잊은 인생이 되고 말았네요.
멀리 나는 새가 집이 없다고 하니
내가 그 신세가 되었음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정성으로 댓글을 주시는 시메온님 저보다 한참 손위 형님이시군요!
사람 누구나 비슷하겠지요
지나보면 다 거기가 거길겝니다
제가 책은 몇 권 읽고 있지만
한자는 짧은데 친구들이 어려운 게 있으면 가져오니
시메온님 고견을 자꾸 여쭤야겠은니 귀찮아도 잘 지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