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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서울-춘천 고속도로 개통
▲서울-춘천 고속도로 개통식.
서울-춘천을 연결하는 민자고속도로가 2009년 7월 15일 밤 10시 개통됐다.
서울-양양고속도로 중 시작 구간인 서울-춘천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춘천과 서울이 40분대에 연결되는 시대가 열렸다.
고속도로 개통으로 강원도에 기업이 유치
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신성장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는 반면, 거
꾸로 지역상권이 위축되고 대학가가 공동
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개통의 가장 큰 효과는 오지로 여겨지던 춘천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사라지면서 수도권으로 부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46번 경춘국도 이용시 평일 1시
간20분, 주말 2~3시간가량 걸리던 것이 고속도로 개통으로 40분대로 줄어들게 됐고, 춘천은 수도권에서 외출하듯 다가갈 수 있는 곳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또 춘천과 인근 화천, 양구, 홍천은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에 한층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고, 땅값 상승과 생산용
지 부족으로 고민하던 수도권 기업에도
춘천은 매력적인 투자지로 떠올랐다.
반면에
사회 기반이 취약한 지방 중소도시의
기능이 수도권에 흡수되는 ’빨대 효과
(Straw Effect)’에 의해 지역경제가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강원대 산학협력단이 춘천시의 의뢰
를 받아 연구한 ’고속접근망 확충이 춘천
에 미치는 영향 및 대응방안’에 따르면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연간 춘천시 도
소매 총 수요의 7.9%인 177억원 가량이
수도권 등으로 유출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춘천 지역의 많은 학생들이 주말과 방학에 서울 강남의 유명 학원으로 ’원정 수업’을 받으러 가는 추세여서 강원도 대학가, 학원가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됐다. 비싼 고속도로 통행료와 불편한 접근 도로망도 문제로 제기됐다.
➡️2015년 북한 태권도인 장웅·배능만, 미국 ‘태권도 명예의 전당’에 추대
👉🏿 북한의 장웅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와 배능만 조선태권도위원회 부위원장이 미국의 ‘태권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15일 “북한 태권도인이 추대된 것은 처음”이라며 소식을 전했다.
태권도 공인 9단인 제라드 로빈스가 설립한 ‘태권도 명예의 전당’은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태권도 발전과 확산에 기여한 태권도인을 2007년부터 추대해왔다.
전당 측은 “남북이 그동안 서로 다른 태권도 조직을 운영하면서 갈등을 빚다가 근래 10년 화해와 협력으로 성과를 낸 점을 평가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전당 측은 지난 5월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가 열린 러시아 첼랴빈스크에서 한국이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F) 조정원 총재를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장 총재 등도 선정했다.
배 부위원장은 태권도 선양에 앞장선 인물이다. 태권도 8단인 그는 1980년대부터 동유럽 등에서 사범으로 활동했고, 2007년과 2011년에는 북한 태권도 시범단장으로 미국 주요 도시를 방문했다. 특히 지난 5월 세계태권도선수권 대회에선 사상 최초로 북한 선수를 주축으로 한 시범단을 이끌고 개막식 무대에 올랐다.
➡️2015년 ‘중국판 농업혁명’ 이끈 완리(萬里) 별세
➡️2015년 ‘만추’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 별세
👉🏿 영화 '만추'의 시나리오 작가인 김지헌(87)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15일 별세했다.
평남 진남포에서 태어나 경동공립고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일하다 1955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했다. ‘자유결혼’(1958) ‘구름은 흘러도’(1959) ‘서울의 지붕 밑’(1961) ‘용서받기 싫다’(1964) ‘약속’(1971) 등 시나리오 40편을 썼다.
대표작은 1966년 이만희 감독이 연출하고 신성일·문정숙·김정철이 출연한 멜로 드라마 ‘만추’. 이 작품으로 부일영화상 각본상,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대종상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장, 미주 한국영화인협회장을 지냈다. 보관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조희나씨와 아들 김정상(씨그널엔터테인먼트그룹 회장)씨, 딸 김정아(전 CJ엔터테인먼트 대표)씨가 있다.
➡️2014년 러시아 모스크바 지하철 아르바트스코 파크롭스카야 노선에서 전동차 탈선 사고가 일어나 5명이 사망하고 12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2014년 노량진 배수지 수몰 사고가 일어나 7명이 사망하였다.
➡️2014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013년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이장희
➡️2012년 싸이의 6갑 발매, 강남스타일 공개
➡️2009년✦이란 여객기 추락… 168명 숨져
➡️2009년 이란 카스피안 항공소속 F7908 여객기가 추락, 168명이 사망.
➡️2009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강일 나들목 ~ 춘천 분기점 구간 개통.
➡️ 2006년 국제연합 안보리, 만장일치로 대북 결의 채택.
➡️2006년 세계에서 가장 큰 소셜 미디어 플랫폼 중 하나인 트위터가 시작되다.
➡️2004년 한국교회 이단사이비 규정기준과 용어 통일
➡️2004년 일본 소설작가 요시다 스나오
➡️2003년 산악인 한왕용씨, 세계 11번째-한국인으로서 3번째 히말라야 14개봉 정복
👉🏿 7월 15일 오전 11시30분(파키스탄 현지시각) 산악인 한왕용(韓王龍·37·에델바이스 소속)씨가 히말라야의 난봉 브로드피크봉(8047m)을 등정, ‘8000m급 봉우리 14좌 완등’이라는 대기록 달성에 성공했다.
이는 세계적으로는 11번째이며, 한국인으로서는 2000년 엄홍길(嚴弘吉), 2001년 박영석(朴英碩)씨에 이어 세 번째다. 이로써 한국은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인을 3명 배출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한씨의 완등 소식을 전해 들은 산악인들은 “정치·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인이 얼마든지 역경을 헤쳐나갈 저력을 갖고 있음을 안팎으로 일깨워준 쾌거”라고 기뻐했다.
작년까지 12개 봉 등정을 마친 한씨는 올해 남은 2개 봉인 가셔브룸2봉과 브로드피크봉 동시 등정을 노리고 5명 대원과 함께 출국, 먼저 지난 6월 26일 가셔브룸2봉(8035m) 등정을 무난히 마친 데 이어 곧바로 브로드피크로 옮겨 갔다.
한씨는 김웅식·나관주 대원, 셰르파 2명과 더불어 지난 12일 1차 시도에서 정상 밑까지 갔다가 악천후로 후퇴했고, 15일 오전 1시쯤 재차 도전해 10시간30분에 걸친 분투 끝에 감격의 14좌 고봉의 완등을 이뤄냈다.
한씨는 전주 개척산악회원으로서 1994년 초오유봉(8201m)을 오른 이후 매년 한두 개씩 8000m급 고봉을 등정, 남다른 고산 체질을 과시했다.
그는 등반 과정에서 여러 희생적 일화로도 유명한 산악인이다. 1995년 10월 14일 오후 2시30분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그는 촬영을 마치고 동료 대원, 셰르파와 서로 연결한 로프를 풀었다. 모든 산악인들이 늘 그랬듯 한 명의 실수가 전원 추락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각자 살기’로 하산을 시작한 것이다.
얼마 후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뒤를 이어 하산하고 있던 한 대학산악부원이 8750m지점에서 탈진해 주저앉았다는 전갈이었다. 그는 동행한 셰르파와 더불어 그 대원을 앞뒤로 로프 연결을 한 뒤 20여 시간에 걸친 탈출을 감행했다. 주저앉으면 달래기도 하고 피켈로 엉덩이를 후려치기도 하며 다음날 오전 3시가 넘어서야 그 자신도 초주검이 된 상태로 캠프까지 하산할 수 있었다.
2000년 K2봉(8611m) 등정 때는 ‘나이 든 선배가 언제 또 이런 고산 등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겠나 싶어서’ 선배에게 산소마스크를 벗어준 일이 있다. 그는 산소마스크를 넘기고도 세계 제2위 고봉이자 ‘마(魔)의 산’이란 별명을 가진 K2봉 정상을 오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하산 중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탈진, 눈밭에 주저앉았다. 결국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나, 귀국 직후 네 차례에 걸친 뇌혈관 수술을 받아야 했다.
8000m급 14좌 완등자들은 그 과정에서 누구든 여러 명의 동료와 세르파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한왕용씨는 놀랍게도 등반 도중 동료가 목숨을 잃은 경우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정상을 코앞에 두었더라도 날씨가 나빠지면 단호히 되돌아서는 뛰어난 자제력 덕분이었다.
지구상에는 8000m가 넘는 거대한 산봉이 모두 14개 있으며, 1986년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최초로 14좌 고봉의 완등에 성공했다. 그 뒤로 수많은 산악인들이 도전했으나 거의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혹은 죽음으로 끝났다. 일본은 야마다 노보루, 오자키 타카시 등이 14좌 고봉의 완등 레이스에 뛰어들었으나 10개 봉을 넘기지 못했다.
➡️2001년 현대자동차 쏘나타 수출 13년 50만대 돌파
➡️1998년 고려대 천준 교수, 새 암치료법 미국 특허 획득
➡️1997년 패션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 피살
➡️[1997년] 울산시, 울산광역시로 승격
👉🏿 경남 울산시가 15일 광역시로 승격, 전국 7대도시 대열에 들게 됐다.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과 함께 전국 7대도시로서의 위치를 당당히 차지하게 된 것이다. 지난 62년 울산군이 시로 승격한 지 35년만이다.
승격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울산을 관통하는 태화강 일대에서는 다채로운 행사와 전야제가 펼쳐졌다. 2만명의 시민은 태화교와 울산교 사이둔치에서 광역시 승격을 축하하는 인간띠 잇기 행사를 가졌다.
오후7시부터 시작된 전야제는 합창단과 성악가, 대중가수 등 2백여명이 출연해 강변을 메운 시민들에게 축하공연을 선사했다. 중구 성남동 코리아나호텔 앞에서는 2백여발의 폭죽이 발사돼 밤하늘을 수놓았다. 울산시는 15일 오전 11시 남구 달동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강당에서 김혁규 경남도지사, 심완구 시장 등 2천여명의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개청식을 열고, 오후 6시부터는 남구 신정동 종합체육관에서 6백여명의 인사가 참석, 광역시 승격 기념 경축리셉션을 가졌다.
울산광역시의 행정체제는 4구-1군. 기존의 중-남-동구에 북구가 신설되고 울주구는 울주군으로 환원되었다. 작고 효율적인 지방정부를 구현한다는 중앙의 방침에 따라 기구와 인원이 조직됐다. 시본청 기구는10실-국-본부, 32과, 1백3계이며 전체 공무원 정원은 4천6백22명. 울산시는 “규모가 비슷한 대전-광주광역시에 비하면 70%수준으로 인건비만 연간 6백억원 가량 절감된다”고 밝혔다.
울산의 광역시 승격으로 광역교육청 산하에 강남-강북 지역교육청 2개가 신설되었으며, 1998년 3월 법원과 검찰도 울산지법, 울산지검으로 승격됐다.
초대 광역시장을 맡게 된 심완구 시장은 “광역시 승격은 울산발전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며 “모든 시민이 힘을 합쳐 울산을 전국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키우자”고 말했다.
➡️1994년 자크 상테르 EU 집행위원장으로 선출
➡️1987년 대만, 38년 만에 계엄령 해제
➡️1983년 목포에 해양박물관 건립
➡️1982년 인도 대통령에 자일 싱 당선
➡️[1982년]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 준공
👉🏿 1982년 7월 15일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이 준공됐다. 종합운동장 남쪽어귀 1만3천8백여평에 세워진 이 야구장은 1982년 9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대비, 서울시가 지난 1980년 4월에 착공한 것으로 1백26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됐다.
야구장의 외형은 우리나라의 전통악기인 장구의 본을 땄으며 내외야 4천2백평에 자연잔디를 심었다. 필드의 규모는 국제규격대로 중앙길이 125m, 파울라인쪽이 100m에 내야 2천룩스, 외야 1천5백룩스를 유지할 수 있는 6개 타워의 나이터시설을 갖추었다. 5만관중을 수용할 스탠드는 내야의 개별형의자 2만8천석과 외야의 7천석벤치로 짜여있어 70%의 관객이 내야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좌석색상은 선수와 관객의 시력보호와 안정감을 위해 녹색으로 통일했다.
컴퓨터로 조작되는 대형전광판은 한글과 영문글자를 겸용해 화면에 나타낼 수 있도록 했다. 4개의 실내연습실이 마련돼 있어 각 팀이 실내에서 투구와 타격연습을 할 수 있고 샤워실, 라커룸, 의무실 등 선수를 위한 부대시설과 완벽한 통신 시설을 갖춘 중계실, 보도실을 갖췄다. 이밖에 관람객을 위한 식당, 다방, 매점 등의 편의시설도 갖췄다.
한편, 서울시는 올해 6월 21일 그동안 야구장 외에 시민 활용도가 저조하던 잠실 종합운동장을 내부 개조해 2005년 6월까지 유스호스텔과 각종 공연장, 스포츠클리닉, 노천카페 등을 설치하고, 이르면 2007년까지 서울 잠실주경기장 옆에 국내 첫 야구 전용 돔 구장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잃어버린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1981년 중국, 인민공사 전면철폐
➡️1980년 솔라즈 하원의원, 미국의원 최초로 평양 방문
➡️1980년 임진왜란때 영남동부지방 의병기록인 동계실기 원본 발견
➡️1979년 멕시코의 대통령(1964-70) 디아스 오르다스 사망
➡️[1976년] 잠수교 개통
👉🏿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잇는 잠수교가 1976년 7월 15일 오전 박정희 대통령이 준공테이프를 끊음으로써 개통됐다.
한강에 놓인 9번째 다리인 잠수교는 총공사비 22억4천만원을 들여 1975년 9월에 착공한 것으로 너비 18m, 길이 1,225m의 4차선 교량이다. 한강에 놓인 기존 교량이 수면위 16∼20m에 위치한데 비해 이 다리는 수면의 2.7m위에 놓여있어
마치 물위를 걷는듯한 느낌을 주는데, 장마때 10∼20일간 물속에 잠긴다고하여 잠수교로 명명한 것이다.
이 다리는 2층으로 설계돼 있으며 이날 완공된 것은 아래층에 해당되는데 한강의 뱃길이 막히지 않게하기 위해 14번과 15번교각 사이로 들어올수 있도록
승개(昇開) 장치도 해놓았다.
잠수교가 개통됨에 따라 제1, 제3한강교의 교통량 분산에 큰 도움을 주게 되었으며 남북간의 교통시간도 단축됐다. 이 다리의 2층은 1982년 6월에 준공되었는데 이것이 반포대교이다.
➡️1974년 그리스계 키프로스군 쿠데타. 마카리오스 탈출
➡️1968년 동독, 서백림(西伯林) 통행제한조치 발효
➡️[1968년] 중학입시제 폐지- 중학교 평준화
👉🏿 1968년 7월 15일, 정부가 중학교 입시 철폐안(案)을 발표했다. 성장발육에 지장을 줄 정도로 극심한 입시지옥으로부터 어린 아이들을 구해내자는 것이 취지였지만, 막 궤도에 오른 산업화에 투입할 일정 수준의 균질한 인력 확보도 감안한 결정이었다.
1969년 서울을 시작으로 1970년부터는 부산·대구·광주·대전·인천·전주, 1971년부터는 전국의 모든 중학교 입시제를 폐지하고, 학생들은 추첨을 통해 무시험으로 진학하며, 세칭 일류 중학교는 단계적으로 3년 안에 학생모집을 중단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에 따라 경기중·서울중·경복중·경기여중·이화여중 등 5개교는 1969년도부터 신입생을 뽑지 않고 학교를 폐쇄했다.
개혁안이 발표되자 당연히 학부모를 포함한 각계의 지지와 환영이 이어졌지만 막상 시행하고 보니 엄청난 실력차, 교원·교실 부족, 소속감 결여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시행 첫해 51%였던 진학률은 62.6%(1970년), 68.7%(1971년)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1964년 극단 ‘토월회’ 조직한 박승희씨 별세
👉🏿 극작가 춘강 박승희 선생이 1964년 7월 15일 별세했다. 춘강은 3·1운동 이후인 1923년 ‘토월회’를 조직, 20여년 간 운영하며 우리나라 근대연극의 토대확립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조선조 말 초대 주미공사와 총리대신을 역임한 박정양의 셋째아들인 춘강은 메이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토월회 조직 이후 20여년의 연극생활동안 연출 1백80여회, 번역-번안-창작-각색 작품만 2백여편에 이를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 그의 창작희곡 가운데 ‘이 대감 망할 대감’ ‘혈육’ ‘홀아비형제’ ‘고향’ 등 4편이 전하고 있다.
춘강은 연극운동가로 우리나라 근대연극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선구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문화체육부는 1994년 9월의 문화인물로 춘강
박승희 선생을 선정했다.
➡️1958년 미국, 레바논 파병
➡️1958년 이라크 신정권, 아랍연맹 해체를 선언
➡️1957년 미국, 주한미군에 핵무장화 착수 발표
➡️1953년 창경원 일반 공개
➡️1950년 국군, 제2군단 창설
➡️1949년 병역법 국회 통과
➡️1939년 일본,국민징용령 시행
➡️1939년 알리 하메네이 이란 대통령 출생
➡️1933년 서울-동경 직통전화 개통
➡️1921년 조선노동공제회 소비조합 개설
➡️1915년 조선은행 ‘하얼빈지점’ 개점
➡️1913년 안악회사건 판결공판에서 윤치호-양기택-이승만-안국태-옥관빈에 6년 선고, 기타는 무죄
➡️1912년 중국, 손문 등 제2혁명 발발
➡️1906년 중국 여성혁명가 추진(秋瑾) 처형
➡️1904년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 사망
➡️1902년 한국-덴마크 수호조약 체결
➡️1900년 경인간 최초로 전화 개통
https://youtu.be/ytPfnxYtJ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