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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적 고전시대
셋 >>>
미술사에서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며 시대별로 연결고리로 이어왔습니다. 고유한 양식으로 대변되는 한 시대는 전 시대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새로운 세계관이 도래하면서 우연하게 시작됩니다. 결국 하나의 고유한 양식은 그러한 세계관에 따른 표현으로서의 연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세계관과 그에 근거하여 표현되는 예술 양식을 예술적 작품의 내밀한 표현에서 볼 수 있으며 전 시대 예술작품과의 차별을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양식으로서의 세계상(世界像)의 표현을 심층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미학적이거나 도상학적인 영역을 넘어 세계상에 대한 개념(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해 탐구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미술사에서 우리가 양식이라고 불러온 어떤 경향으로서의 사조(思潮)는 그 시대의 보편적인 세계상이 작품으로 일관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양식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과거의 예술로 남았습니다. 한 시대의 세계관이 소멸하며 양식도 구태의연해지며 함께 소멸하고 다시는 반복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전주의(古典主義 classicism)라는 미술사조(美術思潮)는 세 번씩이나 모습을 달리하며 나타났습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는 항시 고전이라는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과거라는 추억으로서의 보존가치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한 번 시대를 뛰어넘어 미술사조로 재등장했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이 모든 미술사조는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론적인 접근이었으며 매너리즘과 같은 미술사조는 수 세기가 지나서야 명칭을 얻어 그 실체가 규명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공자와 맹자의 고전들이 우리 삶에 중요한 교훈들을 이어주고 있습니다. 진시황의 근거 있는 탄압도 있었으나 그 이후 아무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할만한 근거를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그처럼 무수한 시절을 지나오며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본성적으로 동조해왔다는 증명이기도 합니다. 고전은 역시 인간 역사의 모든 시대에 영향을 미치기에 고전이라 불렸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의 지성적인 앎이 극대화되며 창조적 역량으로 표출됨으로써 일구어진 경전(經典) 들이기에 소멸되지 않도록 지키려는 논고(論考)의 결사대들이 시대마다 분포해있었기에 단절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앎을 향한 인간의 추구 노력이 본능이듯이 그것은 지워질 수 없는 것이며 고전주의라는 사조는 항시 지워질 수 없는 인간 지성의 빛나는 왕관을 차지한 영역이라 여겨집니다.
서구의 고전시대라고 할 그리스 아테네는 최초의 고전주의가 발생한 도시국가였습니다. 또 한 번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라 할 피렌체라는 전제-정(専制政)에서 일어난 르네상스라고 우리가 부르는 재탄생한 고전주의였습니다. 가장 나중에 나타난 곳은 프랑스의 파리였으며 그것은 나폴레옹 시절을 대변함으로써 정치적 욕구에 대응하는 신고전주의였습니다.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 누구나가 받아들이며 좋아할 만한 이념은 고전주의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좋음이자 인간 심성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지성을 기반으로 하는 주류로서의 사상이기도 합니다. 앎은 향한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것은 인간의 영원한 고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좋음은 과거에 있습니다. 모든 나쁜 정기들이 소멸된 것이 과거입니다. 세상의 아르카디아는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덤 속에서 발견될 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서구 지성인들의 내면에 흐르는 진정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세계관입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진정한 완성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기록에 근거한 서구의 문명은 고전(古典) 그리스에서 시작해 고대(古代) 로마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고전고대는 그처럼 두 국가의 문명에 정초(定礎) 하는 시대로 고전고대(古典古代 Classical antiquity) 혹은 안티케(古代 Antike)라고도 불러왔습니다. 헬라스-인들이 이룩한 고전적 그리스 문화권과 로마-라틴인들이 이룩한 고대의 로마 문명권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서구 문명의 직접적인 기원은 당연히 그리스에서 시작했으며 그 뒤를 이어 나타난 것이 로마의 문명입니다. 서구 최초의 양대 서사시(일리아스 오뒷세이아)에서 그들은 신에 의해 조정되고 운명되는 인간의 적나라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비극으로도 냉엄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도입해야 했을 때 인간 이성이 최초로 찾아낸 것이 자연에 근거하는 신(神)이었습니다. 그리스의 여러 분야별 신들은 그 분야에서 인간의 가장 완벽한 모습을 갖추어야 했으며 이상적인 영역의 존재자이자 죽음을 벗어난 예언자로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왔으며 동시에 인간과 함께하는 신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의 예의범절을 깔보는 신이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온 인간들의 집단에서나 일구어질 수 있는 독특하고 냉철한 세계였습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설명해나갈 교훈과 지혜를 그들은 신에게 투영해 살아왔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신 앞에서 과대평가하려는 교만으로서의 오만(傲慢 hybris/ hubris)으로 자신의 재능을 뽐내는 인간에게 신으로부터 주어지는 비극(天罰 nemesis)의 적나라함을 보여줌으로써 반성적 겸허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일으켜주었습니다.
하지만 신에 의해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던 세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으로서의 이성에 근거한 인본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원리를 지성의 범주 내로 들여오면서 신화의 역사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고전고대 문명으로서의 Greek-Roman tradition을 이룩했습니다. 전통으로서의 문명 즉 무수한 인간 중심의 정신적 가치체계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로 이루어진 문화유산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라는 터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해 삶을 지배하는 운명적인 정신적 구조로서의 ethos(정신구조로서의 性格 character) set가 그들 문명의 기저에 흐르는 그들만의 고유의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의 타고난 터전의 기질이라 할 만한 에토스 세트가 그리스 고전주의의 근원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신체와 정신으로 구분해 볼 때에 정신의 세계를 드높이 쌓아올린 곳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었으며 그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여러 인식론적 관념들을 창조하며 자연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고(思考) 체계를 형성시켜 냈습니다. 몸으로서의 로마는 지중해를 그들의 호수로 만들기 위해 숱한 노예들을 일상의 노동과 함선의 노 젓기에 동원했으며 제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수한 전쟁의 승리를 마리우스의 당나귀로 불리던 병사들의 훈련과 고초 속에서 이룩해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듯이 그들은 토목공법의 연구에도 몰두해 현실에 적용시켰으며 그 결과를 즐기기 위해 공중목욕탕에서 몸을 혹사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리스가 이상주의적이라면 로마는 실용주의적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스 문명의 초기에 최초의 존재론적 철학적 탐구의 대상은 자연이었습니다. 탈레스는 세계를 물이라고 주장했으며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존재를 영원불변의 고정성으로 파악했는가 하면(탈레스→파르메니데스→플라톤) 또 다른 철학의 세계에서는 고정성이 아니라 변화에 놓여있음을(헤라클레이토스→소피스트) 이와 같이 자연에서 근거를 가져와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자연철학자들 다음으로 등장한 철학적 세대들은 그들의 탐구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으로 바꾸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처럼 너 즉 인간으로서의 자신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지성, 감각과 인식능력 등 무수한 느낌들을 인식하고 개념화 시키려는 숱한 창조성을 발휘해가며 현재까지 연결되는 관념(觀念)의 역사를 이루어왔습니다.
대표적 철학자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들에게는 사물들이 운동에 처해있다는 성질은 스스로의 존재가 부족함에 따른 결핍을 외부로부터 보충하기 위해 끌어들여야 하는 가능태로서의 활동으로 여겼습니다. 세상에서 완벽하며 더 이상의 부족함이 없는 완전성의 존재를 고정성에서 찾았으며 가장 위대한 이상향으로서의 현실태로 인식했습니다. 존재론보다는 인식론에서 그들은 대단한 능력을 발휘한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즉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자 완벽한 실체였으며 태양은 지구 주위를 움직이는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도 완전해지기 위해서는 어둠의 동굴에서 나와 밝은 햇살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무수한 개념들을 연마해 이데아와 에이도스와 형상(形相 form)이 존재하는 천상의 세계에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들이 만들어낸 개념들이 특히 철학 분야에서 어원(語原)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원망을 줄일 수 있는 자연탐구의 원리에서 나온 합리적 판단력은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돌에 새겨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습니다. 그런 자연의 원리가 인간 이성의 합리적인 원리와 함께하며 새롭게 문명화된 곳이 그리스였으며 풍성한 경제적 번성으로 일구어진 예술적 향연이었습니다. 그들이 돈을 버는 목적은 자신의 내면에서 욕구하는 것을 현실 정치에서 실현하는 것이었으며 수많은 야외음악당이 그것이며 신전 건축물 조각상 등이 그들의 완성품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목적이 로마인들처럼 이 한 몸 편안하게 잘 살겠다는 공동체적 이기적 집단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인간 이성은 보편적인 주체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도구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펼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움이나 착함과 같은 개념을 아무리 분석해도 우리는 그 대상에 닿을 수 없으며 그 내재적 본질을 표현해 낼 수도 없습니다. 단지 그런 현실적 개별 사례들을 경험하고 인식하면서 종합할 수는 있겠으나 직시할 수는 없습니다. 느낌으로 알아가는 능력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지요. 착함의 원리를 알 수 없고, 아름다움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객관적 정신세계에서의 느낌을 우리 인간은 알량한 판단력으로 추상화시켜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을 뿐이지 원인으로는 영원히 들어갈 수 없고 알 수 없는 세계인 것입니다. 물질적인 세상은 그 형태에 의해 누구나가 인식 가능하지만 정신적인 세상의 좋음은 흐르는 물처럼 유동적인 세계로서 확고하게 규정하기도 불가능합니다. 그처럼 관념적으로만 접근이 가능하고 이해가 가능한 세계를 그들은 철학을 통해 접근하고 기하학적으로 분석해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왔습니다.
그 세계에서 사용되었던 용어들은 일반인들의 세속적인 삶에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개념들이었습니다. 돈을 벌어 자신의 능력을 실현하고자 한 그리스인들은 과외공부를 따로 돈을 들여 해야만 했습니다. 즉 플라톤이니 아리스토텔레스니 하는 고전주의자들의 상대편에 해당하는 실용주의자들이라 할 소피스트들이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념은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원칙이었습니다. 부자들일수록 비싼 과외비 즉 재능 있는 유명한 선생을 모셔와 배웠습니다. 그것이 경험을 통한 인식이 되었든 관념적인 사고 형태로 응고된 것이었든 그 모든 것은 이성을 통한 개념으로 그들의 관념의 세계를 풍요롭게 채워 갔습니다. 현실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념의 정의와 도입이 필연적이었으며 개념의 연쇄 고리가 학문이자 세계였습니다.
세계에 대한 이성의 자신감이 자연세계를 인간의 능력으로 재구성해내는 문명의 창조를 이룩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와 운동에 대해 인간 지성의 잣대로 개념화시켜온 것이 그들 학문의 근본 체계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원자(原子 atom)라는 개념을 만들어냈으며 비극으로서의 카타르시스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신화의 세계가 자연의 세계를 거쳐 인간 이성의 세계로 변모하면서 인간의 정신세계는 드디어 개념화된 형태로 발산되는 야외공연 무대를 만들어 희극과 비극의 경연을 이룩해내며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끝없는 추구 노력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자연을 극복해나가는 그들의 능력과 투지가 그리스 고전주의를 꽃피웠으며 그리스 민의(民意)로 나타났습니다.
학문 세계에서의 창조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목적 달성의 사회적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그 도구로서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자연과 함께하며 조상들이 일구어온 터전으로서의 신화와 서사를 문학과 철학과 예술의 세부적 영역들로 재-창조해 그 텃밭에 씨를 뿌렸고 인간의 노고를 투입해 그 결실로서 아름다움의 최종 성취의 단계라 할 창조적 완성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여주었습니다. 세계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인식력을 논리적인 인식론으로 바꾸었으며 존재의 세계도 실재로서의 인식론적 존재론의 세계로 바꾸어내는 체계적인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끈질기게 노력해온 체계적인 성과를 걸러내 기록한 기준과 규범과 원칙으로서의 canon의 치부책은 자연의 원리에 대응하는 인간들의 끝없는 탐구의 완벽한 논리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고전주의가 융성했던 시기는 그리 길지가 못합니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쉽게 지기에 더욱더 아쉬움이 크며 그것이 아름다움을 더욱더 돋보이게 하듯이 짧습니다. 또한 돈의 풍성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신고전주의는 공화제적 고전주의로서 정치적 이념의 풍부함이 있었음) 물질로서의 돈과 정신으로서의 이성이 서로를 더욱더 풍요롭게 가꾸면서 인간 내면에서의 추구를 더욱더 갈망하도록 열망을 몰고 왔습니다. 수학적이고 철학적인 이상 세계를 향한 열정을 현실에서 창조해내려 노력했습니다.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인간 이성의 능력으로 창조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마치 밤하늘의 폭죽 불꽃놀이가 순간의 화려함과 함께 사라지듯이 고전주의는 역사의 시간에서 본다면 한순간으로 마감했습니다. 과거와 과거의 찬란함과 과거의 인간 세상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어 하는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이룩된 에너지를 통하여 세상으로 다시 재현된 고전의 찬란한 응고물들이 거기에는 있습니다. 당연히 인간 중심의 우월적인 생각들로 가득한 지성적 흐름의 결실이었습니다. 인본주의는 지금까지의 신들을 중심으로 한 세상을 벗어나 인간 지성의 능력으로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이성에 기반-한 신념체계입니다. 거기에는 합리적 질서와 전통적 규범과 지성적 규준이 있습니다.
과거 조상들의 자연에서 탐구의 주제를 가져왔던 시절은 지나가고 자연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인본주의라고 할 때에 그것은 인간 이성의 추구로 집약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적인 세계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무한한 정신세계로 나아가는 이상적인 삶에 의미와 본질을 도입해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의 문명은 이처럼 소피스트적인 현실에 관심을 두는 자연주의와 이상 세계를 추구하는 정신적인 규준(規準 canon)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전통주의의 적절한 융합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보여주듯이 어쩌면 소피스트들이 활개 치며 활동했던 정치적 민의의 시절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입니다.
그리스는 시작부터 도시국가로서 운명 지워진 삶을 살았습니다. 토지는 척박하였으며 자연환경은 산악지대이다 보니 에게 해 주변의 수많은 섬들과 소아시아의 레판토라고 하는 연안 지역까지 진출하였으며 이탈리아의 남부지역과 시칠리아 섬까지 포함하는 넓은 지중해 지역을 그들의 삶의 현장으로 삼아 해적질과 무역을 주업으로 먹고살았던 민족이었습니다. 무역을 통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명료한 개념들을 창출해내야 했습니다. 해적으로서의 그들의 운명적인 음지의 삶은 陽地(양지)를 추구하게 되면서 결국 세상의 가장 좋음이 무엇인지를 향해 세차게 뱃머리를 돌리며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도둑의 불확실한 세상보다는 상업의 규칙성에서 그들의 부가 증가하면서 도둑들도 결국은 무역업자로 재탄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난이 도둑을 도입하지 부자가 도둑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힘이 부족해 원망이 늘어나지 힘이 넘칠 때에 세상은 멀리까지 훤히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원시 세계를 벗어난 그들에게 세상의 원리는 그들이 만들면 되는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변신을 이룩한 민족이었으니 그런 상상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생각의 세계를 개념으로서의 관념의 세계로 만들어내는 정신적 우수성이 그들의 해상 무역을 통해 얻은 창조적 본성이자 에토스 세트였습니다.
도둑이 양반이 되면 당대에는 흉이 될 수 있으나 몇 대를 거치면서 변신과 단절과 노력을 통해 훌륭한 가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해양시대에 영국은 대양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해적 두목에게 귀족의 작위를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들여오는 황금을 강탈하도록 하기 위한 좋은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신사의 나라라는 영국의 시작은 해적질이었으며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것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하고 얻은 노획물이었습니다. 이중적인 잣대야말로 인간의 가장 적나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즉 밖으로는 경쟁 상대국인 스페인에 무역선을 도둑질하고 안으로는 그 돈을 건전하게 씀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진리는 무덤 속에 있음을 그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으로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습니다. 교육만능의 세상이야말로 헛된 세상을 현실로 이어가려는 어리석은 헛걸음일 뿐입니다.
중국과의 마약전쟁도 결국은 그들 무역적자를 메우기 위한 사기극이었으나 거기에서 시작되어 중국은 서서히 침략자들의 놀이터가 되어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훌륭한 판단력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즉 대양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판단력입니다.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 이러한 판단력이 일개 시민의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영국 최고의 번성을 구가한 헨리 8세와 그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정치권에 종사하는 모두의 시각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어리석은 개념의 노예로 세상에 진리가 있다는 듯이 설침으로써 현실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그들 영국인들은 불필요한 사치이자 나약한 어리석음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들은 터전 자체가 대륙의 관념론을 벗어난 생생한 경험론 우위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생각 속에서 용광로가 끓어댈 때에 사회는 서로를 철천지원수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밖에서의 전투를 중지하고 안에서의 이권(利權)전투에 몰입합니다. 어처구니없게 외세를 들여와서라도 내 이익을 되찾으려 발광합니다. 그것이 우리 터전의 기질이었으며 어리석은 영악함의 본질이 우리의 태생이었습니다. 언 발에 오줌 누려 하고 초가삼간 태우며 시원하게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우리의 본성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투철한 반성적 노력 자체를 시작해 본 적이 전혀 없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임을 아무도 알려고 원하지 않아왔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였으며 남이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것을 오만방자함으로 본능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거 없는 자만과 오만이 팽배한 사회가 우리의 저변을 점유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모두는 그런 의미에서 선천적으로 삶의 달인이며 철학자이고 정치가이며 애국자를 자처하는 근거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한 인간들의 눈에 세상은 단죄하고 진리를 선포해야 할 어지러운 쓰레기장으로 보입니다. 자신의 눈에 냉철한 판단력이 결여되어 있음은 깨닫지 못하면서 세상을 판단하고 바꾸려 하며 있지도 않는 거창한 개혁의 에너지를 발산하자고 선전선동해댑니다. 진정한 발전은 자신의 비천한 모습을 발견하는데 있겠으나 그들은 남의 잘못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목청껏 외쳐댑니다. 우리는 말과 글로써 표현하기 이전에 이미 몸으로 느낌으로 감각으로 눈치로 다 알지만 단지 표현을 안 해왔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근거 없는 양반의 심보의 윤리도덕의 성인군자 심성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어린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은 그런 느낌을 마음에 간직하며 뒤늦게 말과 글을 배우는 동물적인 본능이 발달한 세대입니다. 그 먼 우주적 태생의 순간과 연결된 것은 어른이 아니라 성장하는 어린아이들입니다. 그런 의미를 말하면 우리 사회는 어리석은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애들이 무얼 아느냐가 어른들의 진리이자 시각이었습니다. 그런 우주적 인연의 끈이 새겨져 태어난 아이들에게 우리의 교육은 어리석게도 그 인연의 끈이 사라진 바보 어른들이 자신의 이념에 근거한 현실에 있지도 않은 추상적인 개념들을 주입시키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악랄하고 잘못된 처방전이겠으나 그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고 주장하는 꼴을 보여줍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뜻도 그들 어리석은 스승들은 모릅니다. 그러한 어리석은 개념에 물들어버린 심성들이 우리 사회의 터전에서 우러나오는 노력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의 시각인 것입니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여도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눈은 앞만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구조적으로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옆면과 뒷면에 대한 시각은 감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개념의 주장이 넘쳐날수록 앞을 바라보는 시각은 점점 좁아들며 자연스러운 시각을 좁혀가게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가 개념을 추구하는 자들의 종말이자 그들이 원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서로는 서로를 향해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이 지식사회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지식의 우월로 인간을 평가하는 원시사회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지식을 주입하기에 애쓰는 개념 없고 철없는 교육자들이 넘쳐나는 교육조합(敎育組合)의 사회입니다.
그런 온실 안 시각으로 거친 세상의 발생한 상처를 분석하고 파헤쳐 가면 갈수록 상처는 더욱더 곪아가고 결국 숙주를 파괴하게 될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릅니다. 그들은 눈앞에 금덩어리가 있다는 상상을 현실로 받아들인 인간들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이치라서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처야 할 것이라는 것을. 죄 없는 자가 그 여자를 먼저 돌로 치라는 말의 근본 이치를 그들은 거짓 이념으로 있지도 않은 추상적인 신념으로 그 여자의 천박한 죄를 물고 늘어져 현실의 고통을 더욱더 파헤침으로써 죽음을 몰고 오려 장송곡을 오늘도 목청높이 합창으로 외쳐대며 교육의 백년대교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열정을 그러한 곳에 쏟기 이전에 자신의 내면을 치열하고도 풍요하게 가꾸기 위한 열정에 쏟아야 한다는 것을.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결코 학교의 알량한 개념 공부로 이념 공부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고 운명이었으며 그것은 현대인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에 비리를 파헤치며 자신의 더러운 본성적인 활동을 덮어가고 있는 시절입니다. 내 본성의 성질을 먼저 알아가는 순수학문에의 추구가 정신의 곳간을 비워놓고 남의 곳간을 허무는 망치질에 쏟아내고 있는 시절입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합니다. 과거 망우리는 서울시민들의 무덤이 산위에까지 빽빽하게 들어차있던 공동묘지였습니다. 그 당시의 유행어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무수히 놓여있는 수많은 무덤들 중에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눈치와 핑계로 세상을 패대기치며 살아가던 산업사회의 모습이었겠으나 거기에는 분명 우리의 본성에 내재된 거친 본능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순화되지 못하는 활화산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구(警句)였다고 여겨집니다.
순수한 학문을 향한 열정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결여될 뿐입니다. 내 성질대로 내 성격대로 내 본성대로 바라보며 시비를 논하게 될 뿐입니다. 결국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까지 분노조절이 안 되는 인조인간들을 양성해나가게 될 뿐입니다. 영악한 정치인들은 그들 본성의 우월하고 동물적으로 타고난 체질 덕분에 그런 세상을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는 기질을 갖추고 있는 집단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런 혼란과 어지럼으로 일어나는 체질적으로 나약한 청년들에게서 발생하는 조현병의 증세들이야말로 자신들의 뻥 뚫린 출세 길이자 무소불위의 터전일 뿐입니다.
세상은 냉철합니다. 그 어디에서도 의미와 인정과 진리를 먼저 구하려할 때에 삶은 피폐해져갈 뿐입니다. 그리스 고전주의는 그들 조상의 죽음을 무릅쓴 거친 바닷길의 거센 항해를 거듭하며 깨달은 이치를 바탕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손쉬운 관념적인 인식으로 세상을 저울질하는 만용을 그들은 가장 경계했던 것입니다. 인문학을 배운다는 것은 그런 거친 세상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바탕을 근거로 삶을 시작해야겠으나 우리는 어리석은 지식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세상을 단죄하며 완성의 진리를 갈망합니다. 밑천 없이 장사하려는 꼴이며 그것은 사기로 내몰릴 뿐입니다. 사상누각(沙上樓閣)입니다.
목숨을 건 도전의 결과로 얻어진 돈의 풍요와 자신감이 그들을 언어의 마술사로 수없는 개념과 범주와 통찰을 지성으로 쌓아 위대한 인간 문명으로 재창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굳이 따져서 이야기한다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도전정신이 우선입니다. 그러한 실천적 조건 속에서 저절로 몸의 감각에 새겨지는 느낌을 자신만의 정신의 곡간에 채워갈 때에 그 넘쳐나는 풍부함으로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살아갈 판단력도 생겨납니다. 오로지 물질적 곳간만을 넓히려 하고 소비적 퇴폐로 가면서도 그들은 창조적 문명사회를 항해하고 있다고 앞뒤가 전도된 퇴행적 세상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라는 말을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자신의 못남을 세상의 원망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 때문에 세상의 잘못 때문에 비리 때문에 돈 때문에 모든 핑계에는 때문에 라는 말을 동반합니다. 때문에 라는 말에는 남의 따듯한 온정을 갈구하는 거지근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돈만 벌면 바로 교만함으로 나타날 언어이자 출세하면 바로 욕망으로 바뀌어 질 언어입니다. 돈만 벌려고 하던 수전노가 인생의 완성이 아니듯이 때문에로 삶을 살아가는 미숙함도 벗어나야 할 우리의 조건입니다. 자연세계의 치열한 투쟁의 순수함을 향한 깨달음의 노력 없이 안으로 일구어지는 지식적인 노력이야말로 사상누각이며 거기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은 더욱더 불가능하겠지요.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새로운 파괴를 창조를 착각하는 오판의 사회가 되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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