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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펜더... 애증의 악기다. 나는 죽었다 깨도 다시 펜더를 쓰고 싶지 않은데, 그렇다고 내가 펜더 소리를 싫어하느냐? 꼭 그렇지도 않다. 악기를 바꾸는 양반들의 패턴 같은 게 있는데, 현재 쓰고 있던 악기와 반대 급부에 속하는 브랜드를 택하기 마련이다. 가다가다 이제 돈으로 끝장 볼라치면 포데라, MTD, 켄 스미스와 같은 하이엔드에 손을 대는데, 이러다 맨 마지막으로 택하는 악기가 바로 펜더다. 베이스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뻥은 아닐텐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하는 이유는 소리에 대한 목마름보단 실력을 감추기 위한 뽀록이 더 크지 않나 싶다. 또 하나를 들자면 바로 귀소본능 같은 거다. 오디오를 예로 들면 바꿈질의 끝까지 가다가 결국 탄노이와 메킨토시로 막을 내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보면 될 것 같다.
2.
내가 좋아하는 펜더맨들을 나열하면... 로이 부캐넌, 제프 벡, 에릭 클랩튼, 지미 헨드릭스, 야닉 거즈, 스티브 해리스 기타 등등이 있다. 몇 분 생각하면 더 많은 양반들이 나열될 듯 한데, 생각하지 않고 떠올릴 수 있는 두 뮤지션은 마커스 밀러와 잉베이 맘스틴이다. 펜더를 사용함에도 펜더 사운드를 내지 않는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는 아티스트들인데, 기기묘묘한 일탈감을 좋아하는 건 아닐지 자문하게 된다.
3.
펜더 마커스 밀러 시그니처는 그야말로 묘한 악기다. 이건 악기의 특성이 묘해서 묘한 게 아니라, 쓰는 사람들이 묘해서 묘해진 일이다. 가령 오페스 베이시스트와 전 메가데스 베이시스트가 이 악기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오페스와 메가데스 사이에 마커스 밀러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보려 해도 도통 방법이 없다. 왜 그 악기를 사용해야만 했느냐는 질문에 어떤 대답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이건 악기 제작자인 무베이스 정훈이형에게 물어봐도 그러했다. 그렇다고 저 악기가 유달리 좋은 점도 없고, 유달리 나쁜 점도 없는데, 이건 마커스 밀러 시그니처의 특징이기 이전에 펜더의 특징이기도 하다. 어느 생각없는 뮤지션처럼 악기 하나 만들어주면 톤은 내가 알아서 만든다는 식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긴 한데(이 양반은 언젠가부터 나는 가수다에 등장하고 있다), 저 두 양반들은 이 양반보다 훨씬 머리가 좋고 똑똑하고 다방면으로 재능이 있는 양반들이다. 이 양반이 저 양반과 같을 수는 없는 건데, 임진왜란 이후 돈 주고 양반된 양반이랑 태생적으로 양반이었던 양반을 같은 양반으로 묶기엔 모호한 점이 굉장히 많다. 무슨 양반들이 이렇게 많이 나오냐고 반문할 수 있을 건데, 그마만큼 다양하고 스펙타클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일단락 지으려 한다. 물론 내가 본 뮤지션 중 상당수 이상은 양반과는 거리가 먼 양반들이 천지 빼까리였다. 이야기가 갑자기 산으로 갔는데, 재즈란 음악도 어쩌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음악은 아닐까 곱씹게 된다. 생각해보면 전혀 복잡할 게 없는데, 익숙하지 않으니 어렵다거나 낯설다거나 거부감 같은 게 생기는 거다.
4.
나는 단단한 중저음을 좋아하는데, 그래서 펜더가 싫고, 그래서 워윅을 좋아한다. 얄싸하고 쪼망만하게 생겼기 때문에 저음이 부실하지 않을까 하는 편견까지 있는데, 눈으로 보면 그렇고, 귀로 들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워윅을 쓰느냐? 그것 또한 아닌데, 왜냐하면 워윅보다 몇 배는 더 좋은 악기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낙원에서 워윅 모델을 다 쳐보고 나서 든 단 하나의 생각은, 역시 무베이스였다. 텐션, 댐핑감, 밀도 면에서 워윅의 성능을 상회하고 디자인도 내 취향인데다가 바디 쉐이핑이 내 몸에 딱 맞게 세팅되고 마감은 쉘락이다.
5.
이 곡은 핑거톤, 슬랩톤, 프렛리스톤 모두를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곡이다. 마커스 밀러가 쓰는 프렛리스는 포데라인데, 베이스 중에서 가장 비싼 악기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펜더와는 전혀 다른 현재적인 악기인데, 스피커로 치면 펜더는 탄노이고 포데라는 소너스 파베르나 그리폰 쯤 되지 싶다. 그럼에도 이질감 같은 게 전혀 없는데, 베이스 톤의 7할은 손가락이 만들기 때문이고, 마커스 밀러의 펜더가 펜더 답지 않기에 그렇다.
6.
가장 펜더 다운 소리는 '바크 사운드'로 불리운다. 우리말로 멍멍함 정도로 해석이 가능한데, 그와는 조금 다른 성격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코보고 멍멍하다, 멍청하다고 하는 양반을 없기 때문이다. 산타나가 지미 헨드릭스를 처음보고 한 말이 "난 저 양반이 화성에서 온 줄 알았으요" 였다고 한다. 베이시스트 중에서 이 말이 성립될 수 있는 양반이 있다면, 베이스를 다성악기 다루듯 어루만지는 빅터 우튼이 아니라 바로 자코 파스토리우스다. 예전에 나는 엄청 우울모드로 시름시름 앓고 있다가 줄을 갈고 변화된 텐션감 때문에 엄청난 해방감과 카타르시스를 만끽한 적이 있었다. 현악기에서 줄이란 생명과도 같은 그러한 것일진데, 자코는 죽어 있는 줄로 연주하는 묘하디 묘한 양반이다. 자코 베이스로 자코처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Bass of doom이란 자코의 악기가 얼마 전 발견되어 유명 베이시스트들이 하나 둘 씩 시연했던 적이 있었다. 넥은 죽어 있고, 줄도 맛이 가서 도저히 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날 영웅이 쳤던 악기를 어루만져 보고픈 호기심이 솓아났을 뿐,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을 것 같다. 도저히 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7.
나는 빈티지 사운드란 걸 믿지 않는다. 그 이유가 아이러니 한데, 펜더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에릭 클랩튼 때문에 그러하다. 이 양반이 열심히 치던 펜더 모델 하나를 그만 손에 내려 놓았다. 이 만큼 함께 했으니 이제 쉬어도 된다는 거 였다. 펜더를 사용하는 사람 중에서 이런 도량을 배풀 수 있는 사람, 악기에 수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오리지날에 부품 하나 바뀐 것 없고, 년식이 오래된 악기면 무조건 비싸게 판매하고 구입하는 몰지각한 기타리스트들에게 날리는 경종과도 같은 행동이다. 혹자는 에릭 클랩튼은 펜더에서 악기를 받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경매로 팔아도 제 값 이상은 받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돈으로 설명할 수 없고, 에릭 클랩튼만이 아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8.
잉베이 1집은 20살때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일 것 같다. 애매하긴 한데, 이건 최효종 할배가 와도 못 정해준다. 겨울 즈음이던가? 향후 5년 안에 이 앨범을 다신 안 듣게 될 만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이런 생각을 오롯이 지킨 적이 한 번도 없다.
9.
피아노 콩쿨에서 예선에는 바흐나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을 2차에서 베토벤을 시작으로 슈만, 슈베르트, 쇼팽, 리스트 와 같은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평가한다. 첫 번째는 밸런스와 리듬감을, 두 번째는 표현력을 테스트 하는데, 잉베이로 말할 것 같으면 표면적으론 후자에 속하지만, 기본 가닥은 전자의 성격이 더 짙게 베어 있다. 특히나 바흐 음악은 한 번 삐끗하면 도통 헤어 나올 수 없는데, 잉베이의 기타솔로도 딱 그 짝이다. 그렇다고 슈만과 비슷해요~ 라고 하긴 참 애매한데, 내 생각이긴 하지만 잉베이는 슈만을 별로 좋아하진 않을 거 같다.
10.
잉베이의 기타세팅은 굉장히 독특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케리 킹이나 잭 와일드가 잉베이의 기타로 비브라토 한 번 걸어볼라 찌면 5분도 되지 않아 줄이 끊어질 것이다. 이게 단순히 줄이 얇기 때문이기도 한데, 문제는 바로 넥이다. 넥과 프렛 사이를 깎아 웅덩이 처럼 만들어 버렸다. 잉베이가 펜더를 쓰지만 전혀 펜더를 쓰지 않는 건 픽업보다도 바로 이 넥 세팅에 의한 비브라토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과장 보태서 잉베이보다 10배나 더 빨리 기타 치는 양반들이 유튜브에 천지 빼까리지만 잉베이 기타로 잉베이처럼 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손에 꼽을 것 같다.
11.
이 양반이 뻥을 잘쳐서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긴 좀 무리가 있긴 한데,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음악을 하는 양반이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건데, 그래서 이 양반 음악은 앨범을 발매할 때 마다 거기서 거기고 오십보 백보고 도찐개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내가 잉베이 잉베이 하는 건, 음악적 기반이 클래식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잉베이 보다 기타를 빨리 칠 수 있는 사람, 혹은 더 잘 치는 사람, 더 인기가 많은 사람은 종류 당 한 다스는 있을 듯 한데, 기타 하나로 장르를 개척한 양반은 이 양반 외에 없지 싶다. 물론 바로크 메탈이란 말 자체가 일본에서 만들어졌다는 걸로 흠을 잡을 양반이 있을지 모르지만, 뭐 누가 어서 만들었든 그 말 자체가 10년 이상 버텼으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말이 띠꺼우면 당신이 좋아하는 양반에게 열라 멋있는 이름 지어주면 된다. 근데 그게 10년 넘게 갈랑가?
12.
알카트라즈에서 잉베이가 나온 이후, 스티브 바이가 무대에 등장하자 관중은 일제히 분노했다고 한다. 가령 조성음악에 익숙했던 관중이 쇤베르크의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둘은 극단적으로 상이한데, 쇠퇴기 시절 뚱베이라 불릴 만큼 몸집이 비대해진 잉베이에 비해 스티브 바이는 자기관리가 철저한 베지테리안이다. 음악적으로도 잉베이가 보수라면 스티브 바이는 진보 쪽에 속할 것 같다. 이 두 기타리스트의 오케스트라 협연을 비교해서 듣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인데, 역시 잉베이 쪽이 잘 어울린다. 스티브 바이가 크로스오버라면 잉베이는 협주곡이다. 이 차이가 잉베이와 스티브 바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가장 극명한 기준이 아닐까?
13.
나는 말과 행동이 맞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난데(언행일치로만 세상이 굴러가면 자살률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스티브 바이를 대하는 태도가 그러했다. 스티브 바이는 나에게 신이었는데, 잉베이를 훨씬 더 많이 들었다. 가지 못해 한이 된 공연 중 하나가 바로 2003년 부산 락 페스티발인데, 이 때 스티브 바이가 토니 메클파인과 빌리 시한을 대리고 내한을 했다. 토니 매클파인이 백킹해주는 기타리스트, 전 세계적으로 봐도 스티브 바이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어울리지 않을 듯한 미친 조합을 내 귀로 꼭 들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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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highdeth님 클래식 이외에도 해박하신데요. 전 마커스 밀러의 베이스 음색을 좋아해서 그의 연주를 찾아 듣곤 하지만, 베이스를 다룰수 있는게 아니라 악기를 그렇게 세세히 관찰하진 않죠...그냥 듣기만 주구장창~. 모르는 아저씨들 이야기지만 재미있는데요 클래식과의 비교도 그렇고...종종 글 올려주시죠~
제가 베이스 제작자와 친분이 있거든요.^^ 그리고 수능 끝나고 할 일없이 띵가띵가 할 때 락 카페 운영자 생활도 좀 하고 이래저래 해서 아는 척 할 껀수 같은 건 좀 많아요^^;;
듣고 판단할 수 있는 귀가 있는게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