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일 진사리성당으로 이동하는 날, 내 눈을 의심케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1톤 트럭을 가득 채우다 못해, 넘쳐 흐르려는 내 짐들이었다. ‘언제 저렇게 많아진 거지? 내가 워낙 키가 큰 까닭에 맞는 침대가 없어 침대도 가져가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짐이 많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너무 많네’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동하는 내내 ‘과연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을 따르는데 필요한가?’라는 자문을 했다. ‘그 많은 짐들이 주님이 아닌 내 편리함만을 위한 것은 아닌가?’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과 환전꾼들로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신다. 복음 말씀을 묵상하는 내게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의 모습이 다가왔다. 소, 양, 비둘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릴 때 봉헌하는 제물이다. 성경에서도 드러나듯이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키운 가축 중에서 그것도 가장 좋은 것을 골라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대신해서 바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정성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방해하는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과 상인들 옆에서 돈을 바꿔주는 환전꾼들이 예수님 눈에 띈 것이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하느님께 참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봉헌할 제물을 정성 다해 키우지 않더라도, 편리하게 돈만 가지고 오면 충분히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께 제사만 드리면 내 의무는 다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왜곡되고 더럽혀진 성전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열정에서 몸소 정화하신다.
이제 우리 자신을 바라보자.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느님께서 몸소 거하시는 성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을 성전답게 가꿀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하느님께 온전히 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과 맺은 관계에서 편리함만을 찾을 때가 있다. 아마도 한 번쯤은 경험했을 텐데, 우리는 기도할 때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내 바람만을 하느님께 요청할 때가 많다. 내 바람을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얼마나 편한 일인가? 마치 종에게 일을 시킨 주인처럼, 일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기도가 아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오히려 단순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듯 정성껏 키운 소와 양을 제물로 봉헌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 각자의 삶 전체를 봉헌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 삶을 봉헌하고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하느님께 드리는 참된 기도가 아닌가?
하느님 앞에서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것, 언제나 하느님의 성전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