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십 개가 넘는 맛집들이 TV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소개되고 있다. 여기에 신문과 잡지 같은 매체에 소개된 곳을 포함하면 삼시 세끼를 맛집만 찾아 다녀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방송에 나온 집이 더 맛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방송에서 소개된 맛집들이 공신력을 잃고 있다. 오죽하면 평범한 음식점이 방송을 통해 맛집으로 조작되는 세태를 풍자한 다큐멘터리가 나올 정도다. 신뢰를 잃은 TV 정보의 대안으로 몇 년 전부터 인터넷 맛집 카페와 블로그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인터넷 정보로 맛집의 옥석을 가려내는 것은 이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그러나 일부 인터넷 카페와 블로거가 자신들의 인지도를 악용해 음식점으로부터 식사 대접을 받거나 금품을 요구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블로그 추천 맛집조차도 점점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난 8년 간 공짜 식사 등의 부당한 요구 없이 순수한 맛집 동호회로서의 초심을 유지하고 있는 동호회가 있다. 바로 맛집 카페 ‘맛있는 안양’이다. 이들은 식당에 부당한 요구도 안하지만 식당으로부터 ‘글을 잘 써달라는’ 요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아예 주지도 받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카페처럼 내부 분란 없이 장기간 카페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고 있다. 스카이데일리가 맛집 정보를 공유하고 회원들 간의 친목을 다지는 동호회 ‘맛있는 안양’을 만나봤다.  |
▲ 안양을 기반으로 한 지역 친목 모임인 맛있는 안양은 전국의 맛집 정보를 공유하는 동호회다. 지난 2007년 개설된 이 카페는 다른 인터넷 카페와는 달리 오랜 기간 활동하는 회원들이 많다. 맛집 카페라고 해서 공짜 음식을 달라는 등의 부당한 요구를 하는 법이 단 한 번도 없는 순수 맛집 동호회다. ⓒ스카이데일리
맛집 찾으러 가입했다가 이웃사촌이 되는 동호회
‘맛있는 안양’은 지난 2007년 10월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맛집 정보 공유 카페다. 카페명은 ‘맛있는 안양’이지만 안양 주위의 군포, 의왕, 산본, 과천 지역을 포괄하고 있다. 카페에는 이들 지역은 물론 서울과 전국 각지의 맛집과 외국의 맛집까지 다양한 맛집 정보가 올라온다.
그야말로 ‘맛있는 안양’은 안양 맛집을 중심으로 전국의 맛집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라 할 수 있다. 지난 8년 동안 카페에 소개된 맛집은 5000개가 넘었다. 대부분 안양·평촌· 군포·의왕의 맛집이고 20% 정도는 서울을 포함한 전국의 맛집 정보다.
카페 가입 회원은 비록 8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한번 가입한 회원들은 오랫동안 활동한다는 점이 다른 인터넷 카페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실제로 정기 모임에 나오는 회원들을 보면 카페 개설 초기부터 활동한 회원들의 참석률이 가장 높을 정도로 회원들의 충성도가 높은 카페다.
인터넷포털 ‘다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블로거가 많다는 점도 ‘맛있는 안양’의 장점들이다. 닉네임 노병, 비내리, 빙고, 실버스톤은 카페 회원이자 ‘다음 우수블로그’에 선정된 바 있다.
이들은 각각 ‘노병의 맛집 기행’ ‘사랑이 밥먹여 준다’ ‘빙고의 맛과 풍경 이야기’ ‘요리하는 남푠 실버스톤의 행복한 맛여행’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다닌 맛집 정보를 소개해 카페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 ‘맛있는 안양’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1년에 세번 있는 정기모임이다. 보통 20~30명 정도의 회원들이 참석해 음식을 공유하며 친목을 도모한다. 장소 선정은 운영진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회원들이 많이 참석할 때는 50명이 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럴 때에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으며 맛있는 음식점을 선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스카이데일리 [사진=맛있는 안양]
‘맛있는 안양’의 가장 큰 장점은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모임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안양 지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마음과 시간이 맞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번개 모임이 활성화됐다.
정기 모임이 여러 사람과 어울릴 수 있다면 번개 모임은 소수의 인원이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카페에서 만나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연락하며 친구 이상의 관계를 유지하는 회원들이 많이 있다.
이 카페에는 20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동호회에 비해 회원들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일반적인 친목 동호회들은 연령 제한을 둬 비슷한 나이의 회원들로 구성되는 것에 반해 이곳 회원들의 연령대는 20대부터 60대까지 골고루 분포됐다. 음식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나이 차이가 나는 회원들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맛있는 안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맛있는 안양’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1년에 세번 있는 정기모임이다. 정모는 2월, 6월, 10월 세 차례에 걸쳐서 한다. 보통 20~30명 정도의 회원들이 참석해 음식을 공유하며 친목을 도모한다. 최근에는 안양 지역에서 실제 음식점을 운영하는 회원들이 늘어나면서 회원들 운영하는 업소에서 정모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 2월 정모에서는 맛있는 안양의 회원이자 DNC(drinks and culture) 발행인 고일영씨의 주선으로 조지아 와인의 시음 행사가 있었다. ⓒ스카이데일리
제24회 맛있는 안양 정기모임은 지난 2월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카페회원 고일영씨의 주선과 와인 수입업체 러시코의 협찬으로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아) 와인시음회가 함께 이뤄졌다. 러스코는 국내에 조지아 와인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고 했다.
조지아 와인은 국내에서 단 두 개 회사에서만 수입하는 와인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와인이 아니다. 조지아는 흑해 인근의 국가로 러시아, 터키, 아제르바이잔과 인접해 있는 국가다. 조지아 와인의 역사는 약 8000년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했다.
이날은 여러 명의 와인 애호가가 참석했지만 회원 대부분은 조지아 와인은 처음 접해봤다고 했다. 레드와인 3종과 화이트와인 1종이 제공됐고 사페라비 등의 품종은 처음 접하는 품종이어서 이색적이라는 반응이었다.
주지도 받지도 않아…순수하게 맛집 추천 가능
“맛있는 안양의 최고 장점은 인근 거리에 살면서 서로의 경조사를 챙길 정도로 친해진다는 점이에요. 워낙 오랜 기간 만나다보니 회원들끼리 어느 집 자녀가 어떤 대학교에 들어갔고, 숟가락이 몇 개가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맛있는 안양의 카페지기 장현숙(여·53)씨는 초대 카페 회장으로 지금까지 카페를 이끌어가고 있는 ‘맛있는 안양’의 산증인이다. 카페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장씨가 카페를 8년 동안 유지하는 동안 맛집, 식당에게 어떤 부당한 요구를 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글을 잘써 달라는 식당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카페지기 뿐 아니라 운영자와 카페 회원들 모두 지켜낸 ‘맛있는 안양’만의 전통이다.
하지만 회원이 많다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몇 년 전, 어느 맛집으로부터 카페 운영자에게 항의 전화가 걸려왔다. 맛있는 안양 카페 회원이라는 사람이 식당에 와서 글을 잘써줄테니 공짜로 음식을 먹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식당이라 카페 운영자들은 의심 없이 식당 주인의 말을 믿었다. 확인 결과 그 사람은 카페 회원은 맞지만 활동은 안하는 유령 회원이었다. 그 즉시 해당 회원은 탈퇴됐고 이후 두 번 다시 카페 가입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이력이 있기에 카페지기를 포함해 운영진들에게서 순수한 의미에서 전국 맛집을 추천 받을 수 있었다. 추천은 운영자 개개인의 추천으로만 받아들여달라고 운영진들은 당부했다. 카페지기 장씨는 냉면집 등을 추천했다.
“인천 ‘변가네 옹진냉면’은 맛이 있을 뿐만 아니라 두 명이 가서 전 메뉴를 시켜도 될 정도의 부담 없는 가격이 장점입니다. 군포 대야미 갈치저수지 앞 ‘주막보리밥’은 ‘털레기’라고 하는 수제비가 별미입니다. 코다리찜도 수준급이라서 언제나 손님이 많은 집입니다”
▲ 현재 맛있는 안양의 운영자는 다섯 명이다. 이들은 연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카페지기는 카페 개설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사진 왼쪽부터 운영자 김모씨·정도연씨, 카페지기 장현숙씨. ⓒ스카이데일리
카페 회원들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는 김모(남·48)씨는 카페 개설 이후 지금까지 운영자를 맡고 있는 카페 핵심 맴버 중 한명이다. 해박한 지식과 맛에 대한 혜안을 지닌 그는 전국에 있는 맛집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그는 논현역 근처에 위치한 ‘배꼽집’을 강령하게 추천했다. 돼지갈비, 목살, 한우 등을 파는 이곳 메뉴 중에서 그가 추천한 메뉴는 한우 모듬이다. 1++등급의 안심, 치맛살, 토시살, 제비추리, 허릿살을 600g에 8만9000원에 팔고 있는데, 저렴하지만 육질만큼은 최고라는 평이다. 이집은 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후식으로 곱창전골과 비슷한 배꼽전골을 파는데 이 또한 꼭 먹어보기를 권했다.
또 김씨는 만약 진주에 갈 일이 있으면 진주여고 앞에 있는 잔치국수집을 꼭 가볼 것을 당부했다. 비록 간판도 없는 곳이지만 손님은 늘 만원인 곳이라 오후 늦게 가면 재료가 다 떨어져서 음식 맛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시원한 국물 맛, 푸짐한 양,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때문에 가는 사람마다 감탄을 하게 된다며 이곳을 추천했다. 이 식당은 원래 주인 아주머니가 구멍가게를 했던 곳인데 장사가 안 돼 팔기 시작한 국수가 대박이 났다고 했다.
▲ ‘맛있는 안양’은 식당에 대해 부당한 요구를 하지도 받지도 않는다는 모토를 가졌다. 이들은 오직 그들이 정당한 대가를 치룬 음식을 맛보고 그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내렸다. 사진은 운영진이 소개한 전국 맛집.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진주 잔치국수집, 인천 변가네 옹진냉면, 석수동 지중해, 군포 주막보리밥, 역삼동 배꼽집이다. [사진=맛있는 안양]
오랫동안 운영자를 하면서 카페를 이끌어온 정도연(남·55)씨는 세대를 초월하는 친화력으로 주위의 신망을 얻고 있다. 오랜 기간 유통업계에서 종사한 그에게 맛집 카페가 탄생한 배경을 들어봤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표적인 외식 메뉴는 짜장면 아니면 돈까스였습니다. 고기집도 횟집도 지금처럼 많이 있지 않았어요. 외식산업이 급격하게 발달한 것은 1990년대였고, 200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실시된 주 5일제로 여가 생활이 늘어나면서 외식산업이 더욱 커졌습니다. 사람들이 외식을 하는 빈도가 늘면서 맛집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고 봅니다. 우리 카페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태동해 지금까지 성장했습니다”
카페 회원들의 등급 관리를 맡고 있는 그는 여전히 맛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카페에 가입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젊은 층이 가입하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았다.
“과거에 비해 카페에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펙을 쌓거나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야 살 수 있는 젊은 사람에게 맛집 카페에 가입하고 모임에 나올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안양의 맛집으로 평촌역 ‘장충로하스족발’, 석수동 참치집 ‘지중해’, 평촌역 술집 ‘흘수선’을 추천했다. 특히 흘수선은 한국의 ‘미슐랭 가이드’를 표방하는 ‘블루리본 서베이’로부터 블루리본을 받은 가게로도 유명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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