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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유일한 희망
가려뽑은 기별1 - 모든 인간은 똑같이 지음을 받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의 회개하는 과정도 같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감동시키시며, 죄인은 다시 새 생애로 거듭나게 됩니다. 때때로 어떤 영혼들은 격렬한 회개, 마음을 찢고 슬퍼하는 일 또는, 양심의 가책으로 두려워하는 경험 등을 겪지 않고, 그리스도께 이끌리는 때가 있습니다.<개인적인 본성(성향)이 다름>
저들은 높이 들림을 받으신, 구세주를 바라봄으로써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영혼의 필요를 느꼈으며,[성령인도 순응] 구세주의 충만하심과 주님의 주장[사랑과 진리말씀]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저들은 일어나서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러한 회개의 과정 역시 순수(純粹:순박하고 충직)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사람의 신앙생애는 어떤 격렬(강력)한 과정의 모든 번뇌(번거롭고 괴로운 고통의 연고)를 겪은 사람들의 회개처럼, 순수하고 결정적(진리의 표적을 정확히 바르게 정함의 요인)인 것이었습니다.(1SM 177.4)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빌 2:5-10)신 다고 말하였다.(1SM 243.1)<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을 아버지와 하나 되게 하심>
[(이사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가정과 건강 - 복음(하나님의 말씀)을 순결하고 능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죄 때문에 생긴 질병을 고쳐주는 치료제가 된다. 의[義:창조주의 거룩하신 존재]의 태양[창조주 사랑의 능력과 빛의 영광]은 “치료하는 광선”(말 4:2)을 가지고 떠오르게 된다.
이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은, 상한심령을 고쳐주고, 마음에 평안을 주고, 걱정을 없애고, 질병을 [결코]없애 줄 수 없다. 명성, 천재적 재능, 능력, 그 모든 것들은 근심에 눌린 마음을 기쁘게 해주거나 허물어진 생애를 회복시켜 주는 일에 무력하다.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다.(YHH 184.1)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주님의 법도를 지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의 행실이 그가 고백하는 신앙과 일치하지 않을 때,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한 증거이다. ‘야고보’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 2:22)고 말하였다.(1SM 397.2)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신다. 그분께서는 사람의 모든 비밀을 아신다. 그분께서는 기도의 대상이 되어 있는 그 사람들이 살아나면, 그들에게 닥쳐올 시험들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 견디지 못할 것인지 아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생애가 그들 자신과 세상에게 축복이 될 것인지 저주가 될 것인지 아신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열렬하게 탄원함과 동시에,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말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라고 간구하신 후, 하나님의 지혜와 뜻에 순종하는 그 말씀을 첨가(添加:첨부添附-덧붙임)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께 합당(당연)한 것이었다면, 유한(有限:한계-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간생애人間生涯)하고 실수가 많은 인간들의 입술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 흘러나와야겠는가!(YHH 226.3)
‘사단’(마귀)은, 우리가 가장 잘 알아야 할 일들을 생각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자 무수한 간계(계략)를 고안(악한 틀)한다. 그 기만자의 괴수는, 속죄의 희생제물과 전능하신 중보자를 밝히 보여 주는 위대한 진리를 싫어한다. 그는 그에게 있어서 만사는 사람의 마음을, 예수님과 그분의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일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안다.(GC 488.1)
사람의 마음속에 사단에 대한 증오심(적개심)을 일으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혼 속에 주입시키시는 은혜이다. 이와 같이 회개케 하는 은혜와 새롭게 하는 능력이 없었으면, 인류는 계속적으로 사단에게 사로잡혀, 그의 명령에 복종하고자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 종노릇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령(心靈:마음속- 전두엽: 앞머리속의 뇌 작용)에 있는,[에덴동산의 범죄 전 완전한 인간성 회복의 창조주의 성령사역으로] 새로운 원칙이, 지금껏 평화롭던 곳에 투쟁(선악의 갈등으로 전쟁과 싸움)을 일으킨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찬탈자요, 폭군인 사단을 거절(거부-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의 선택결정)할 수 있게 된다. 누구든지 죄를 사랑하는 대신에, 미워하고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정욕을 정복한 증거를 나타내면, 전적(全的:모든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늘에서 온 원칙이 역사[성령임재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GC 506.2)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세상과 분리시키는 장벽을 무너뜨림으로써, 그들을 정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지된,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하고자 모험(冒險:타락의 위험한 불순종의 행위)함으로, 죄에 빠지도록 유혹을 받았다. 그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타락하게 된다.
“이 세상 신(神:창조주가 아닌, 대적 마귀의 잡귀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그리스도의 확고한 추종자들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사단의 종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에는 죄를 사랑하는 마음과, 죄를 간직하고 핑계하려는 정신이 있다.
그러나 거듭난 마음에는, 죄를 미워하고 그것을 확고하게 저항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경건치 않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택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를 시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사단은 자신을 숨기고, 속임수의 휘장(가리개 천)으로 감쪽같이 그들의 눈을 가리 운다. 그들은 그런 교제가 그들에게 해를 주리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끊임없이 품성과 언어와 행동에 있어서 세상과 동화됨으로, 그들은 더욱더 눈이 멀어간다.(GC 508.2)
각 시대의 대 쟁투 - 사단은 강신술(귀신이적)을 통하여, 인류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처럼 나타나서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 주고, 새롭고 더욱 고상한 종교적 신앙을 제시해 주는 것처럼 공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파괴자로서 활동하게 된다. 그의 유혹은 무수한 무리를 멸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부절제는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고, 방종과 투쟁과 유혈(피 터짐)이 따르게 된다.
사단은 전쟁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의 가장 악한 감정을 자극하며 전쟁의 희생자들을, 죄악과 유혈 속으로 영원히 쓸어 넣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라가 다른 나라를 대적하여 싸우도록 자극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날에 설 준비를 갖추는 사업에서, 떠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GC 589.1)
성경은 기도 없이 연구해서는 안 된다. 오직 성령께서만 우리를 그처럼 중요한 것들을 이해할 필요를 쉽게 느끼게 하시고, 이해하기 어려운 진리를 곡해(曲解:왜곡)하지 않도록 지도해 주실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리고, 그 말씀의 경고로 경계를 받고 그 약속으로, 새로움과 활기를 얻게 하는 것이 천사들의 직무이다.
우리는 ‘시편’ 기자의 기원(祈願:기도함)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해야 한다. “내 눈을 열어서[밝혀 주셔서] 주의 법의 기이(오묘)한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이따금 유혹을 저항(강력거절)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기도와 성경연구를 게을리 함으로 하나님의 허락을 쉽게 기억할 수 없고, 성경[말씀]을 무기[진리의 성령]로 삼아, 사단을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신령한 사물을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위에 둘러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큰 어려움을 당할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바로 그 진리[말씀]를 기억나게 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그 기운[능력하나님의 성령사역]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河水:굽이쳐 몰려오는 강물)같이 오실 것”(사 59:19)이다.(GC 599.3)
교육 - ‘아담’이 창조주의 손으로 지음을 받았을 때, 그의 육체와 지능과 영성(靈性:영적성품) 은 하나님을 매우 닮아 있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창 1:27)고, 사람이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 완전히 창조주의 형상을 나타내어, 그분의 영광을 보다 충분히, 반영(反映:창조주의 영광을 그대로 반사)하게 하려고 목적하신 것이다.
사람의 모든 재능은 발달 가능성이 있었으며, 그 능력과 활력은 끊임없이 증진하게 되어 있었다. 재능의 활용범위는 광대하였고, 연구를 위해 펼쳐진 분야는 놀라웠다. 눈에 보이는 우주의 신비, 곧 “지혜가 온전하신 자의 기묘한 일”(욥 37:16)들은 사람의 연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창조주와 대면[직접교류]하여 마음을 열어 놓고 교제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큰 특권이었다.
만일,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변치 아니하였더라면, 그 모든 특권이 영구히 사람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무궁한 시대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새로운 지식의 보화를 얻고, 행복의 새 샘을 찾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힘에 대하여, 더욱 더 밝은 개념(槪念:영원무궁한 높은 이상)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창조함을 받은 목적을 보다 완전히 성취함으로써, 창조주의 영광을 더욱 잘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Ed 15.1)
창조와 구속의 기초인 사랑은, 또한 참된 교육의 기초가 된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생활의 지침으로 주신, 율법 가운데 명백히 나타나 있다. 크고 첫째가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눅 10:27)라는 것이다.
힘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무한하신 자 전능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의 모든 능력을 최대한 계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곧 지·덕·체[지혜, 덕성, 육체]를 균형지게 발달시켜 하나님의 형상이 전인적(완전함)으로, 회복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Ed 16.1)
그리스도께서 하늘을 사람에게 열어 놓으시는 때에, 그분께서 나눠 주시는 생명은 사람으로 그 마음을 하늘을 향해 열게 한다. 죄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부터 떠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심령으로부터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희망과 또, 그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다 소멸(제거)시켜 버린다.
이 모든 악의 역사(役事:대적행위)를, 허사[멸망의 길]로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로 마비된 영혼의 능력, 어두워진 마음, 그리고 변질된 의지를 활기 있게 하고 회복시키는 능력을 가지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우주의 보고(寶庫:보물창고-영광진리)를 열어 놓으시며, 그 보물을 분별하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Ed 28.3)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때는, 인간성이 밑바닥에까지 다다르려는 순간이었다. 사회의 기반이 위태롭게 되었고, 생활은 허위와 허식에 빠져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마음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파멸시키는 관습과 공론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신령과 진정으로”(요 4:23, 24)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가, 사람이 만들어 낸 의식(儀式:전통유래의 허례허식虛禮虛飾)의 반복적인 진행(제사집행)으로 인해, 결국 자신들(제사주관자의 주체들)을 영화롭게(우상숭배 의례)하는 것이 되고 있었다.
전 세계에 걸쳐 모든 종교제도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이끄는 힘을 상실(잃어버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설과 거짓말에 싫증이 난 나머지,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 불신(믿지 않음)과 유물론(눈으로 보이는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등)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영생을 염두(念頭:첫째목표의 생각)에 두지 않고, 오로지 현세만(현재쾌락과 이익만)을 위하여 살고 있었다.(Ed 74.4)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원칙이, 사람의 마음을 개심(마음고침)시키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 줌으로써, 그 가치를 실제로 증거 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은 또한 이 원칙들을, 전개(펼침)시키고 적용(適用:진리를 따르고 행함)시키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오셨다.(Ed 77.1)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인간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동정, 신앙,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만, 감동을 받고 향상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크신 교사로서의 자격을, 구비(具備:온전히 갖춤)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찍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인간의 심령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Ed 78.3)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 말씀 또는, 그 하신 일에 관한 인간의 학설을 연구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그분이 하신 일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섭리에 나타나 계신 그분을, 바라보도록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접촉(接觸:사랑의 감동으로 직접적인 교류를)하도록 하셨다.(Ed 81.2)
그리스도의 입술을 통하여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힘과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피조물들을 새로운 빛 앞에 서게 했다. 천연계(자연계)에, 죄로 인하여 잃었던 빛의 광채가 다시 한 번 비치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인생의 모든 현실과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교훈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가능성(사랑)이 나타났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셨으니, 이 세상은 그분의 사랑에 둘러싸였으며, 사람의 마음은 그분의 임재하심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늘이 사람들에게 내려왔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영원한 지식을 보여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았다.(Ed 82.6)
성경연구에 있어서 지적(知的)인 활동[성경말씀탐구 노력]은, 진리를 찾아 모으는 일뿐만 아니라, 제시(提示:들어 보이게)된 주제(주된 분제)를 파악하는 노력도 포함한다. 일상의 평범한 일에만 마음을 쓰게 되면, 지능이 계발되지 못하고 떨어진다. 숭고하고 원대한 진리[존재가치와 생사의 초월과 영생진리]를 터득하기 위하여 지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결국 그 지능은 성장력을 상실하고 만다.
지능의 퇴화를 막고 그 발달을 촉진하는 일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성경은 지적훈련의 자료로서 그 어떤 책, 아니 다른 모든 책들을 합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것이 가지는 주제의 위대성과, 단순하나 위엄 있는 말씀, 그리고 비유의 아름다움은, 다른 것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 즉 사람의 사상을 일깨우고 향상시키는 일을 한다.
<성경은 역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best seller - 일정기간 동안 같은 종류가운데, 가장 많이 구독 출판되어 최고로 많이 팔린 책>
다른 어떤 연구도, 성경의 훌륭한 진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터득(攄得:펼쳐 이득을 챙김)하려고 하는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지적능력은 가져다 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더불어 접촉될 때, 우리의 지능은 비로소 신장(神將:정신성장)되고 높아진다.(Ed 124.2)
성경은 광범위한 문체와 논제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끌며 각 사람의 심금(心琴:영적마음의 거문고 음률)을 울린다. 성경의 페이지들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 가장 진실한 생애를 산 사람들의 전기, 그리고 국가를 통치하고 가족을 다스리는 원칙들, 곧 사람의 지혜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탁월(卓越:월등越等)한 원칙들을 볼 수 있다.
성경에는 가장 심오(오묘)한 철학, 가장 아름답고 숭고(높은 존경심)하고 감격적이며, 참으로 감상적인 시가 담겨 있다. 이것만 생각해도 성경의 내용들이, 어떤 인간의 저서보다도 탁월한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숭고한 중심사상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성경은 더 넓고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의 모든 주제들은 새로운 의미를 제시해 준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여진 진리 가운데, 하늘처럼 높고 영원한 사물(창조주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만물의 존재가치 위대함)을 깨닫게 하는 진리(창조진리와 영원성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Ed 125.1)
구속의 과학은 과학 중의 과학이다. 이 과학은 천사들과 타락하지 아니한, 다른 세계의 백성들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서, 구주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영세(창세) 전부터 감취었”(롬 16:25)던 목적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하나님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무궁(영원)한 세월을 두고 연구해야 할 학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한 번 해볼 만한, 최고의 학문[진리추구]인 것이다. 이 학문은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소생(疏生:거듭나게 성장)케 하고 심령을 고상(高尙:높은 숭고함-거룩하신 하나님의 품성으로 변화)하게 한다.(Ed 126.2)
목적(目的:구속의 영생)을 이룰 수 있는 수단(手段:방법-창조주를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이 신기(神奇:기이奇異)하게 들어맞고, 필요를 채울 수 있는 공급(일용할 양식과 진리의 성령인도하심)이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하신 분은, 곧 만물의 창조주(여호와 하나님)이셨다.
물질세계에 있어서, 마음에 심기 워 진 모든 갈망(渴望:간절한 소망)이 충족(만사형통萬事亨通)되도록 준비(예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는 능력[깨달음]과 사랑하는 능력[그리스도 정신]을 갖도록, 사람의 심령(心靈:성품性品)을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심령의 요구(要求: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않은 채 버려두는 분이 아니시다. 이 세상에서 죄와 슬픔과 괴로움으로 고생할 때, 실체가 없는 원칙이나, 개성이 없는 실체, 혹은 한갖 추상적 개념들로는, 사람의 필요와 열망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
동정심도 없고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음을, 들을 수도 없는 법칙이나 힘, 사물들을 신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를 붙들어 주실 전능(전지전능 全知全能)한 손,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영원하신 친구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분의 따뜻한 손을 붙잡고, 사랑으로 가득한 그분의 마음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셨다.(Ed 133.2)
성경은 가장 교양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매혹시켜 온, 그런 단순(간결)하면서도 인간의 욕구에 적합하게 들어맞는 방법으로 진리를 나타내는 한편, 비천(천박)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에게는 인생의 행로를 명백하게 밝혀 준다. “이 길의 행인[사람들]은 우매(愚昧:어리석음)하나 실로(失路:길을 잃어버림)치 아니할 것이며,(난외 주-별도 주석)”(사 35:8). 그러므로 어린 아이라도 그 길을 잘못 들 이유가 없다.
떨면서 조심스럽게 길을 찾는 사람 중 한 사람도 그 깨끗하고 거룩한 빛 가운데로 걸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가장 단순하게 진술(陳述:자세히 펼쳐 설명)된 진리의 말씀은, 인간의 이해력을 무한히 초월(뛰어나게)한 고귀[거룩함]하고 원대[영원]한 주제[존재가치]들, 하나님의 영광이 감추어져 있는 오묘들, 그것을 탐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압도(압박)하지만,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자들에게 경외심(敬畏心:숭배와 두려움의 마음)과 공경과 믿음을 고무[북돋움]시키는, 오묘들을 포함하고 있다.
성경을 상고(詳考:상세히 탐구)하면 할수록, 그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깊어지고, 사람의 이성은 하나님의 장엄(莊嚴:위대하고 엄숙)한 계시(啓示:예언豫言)에 머리를 숙인[굴복하여 경배할 수밖에 없게 된]다.(Ed 170.3)
성경은 예절을 명(命:명령)하고, 참된 예절의 특성인 무아(無我:자신을 잊음)의 정신과, 유순한 미덕[부드러운 덕성]과 사람의 마음을 끄는 성품에 대한, 많은 실례(사례)를 보여 준다. 이런 특성들은 다만 그리스도의 품성의 반영(反影:밝은 빛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참된 유화(柔和:부드러운 화목)와 예절은, 비록 그것이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일일지라도, 그 근원(根源:근본뿌리원천)은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유화(宥和:용서와 자비의 화목)는 사랑의 은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특성들이, 그분의 자녀들에게서 완전히 반영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아름다움을 보게 되기를 원하신다.(Ed 241.5)
사람의 마음을 만드시고 그 법칙(法則:십계명十誡命)을 제정[선포]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요구를 완전히 이해하고 발달을 유도(誘導:성령을 통하여 이끌어 인도)하실 수 있다. 그분께서 주신 교육의 원칙은, 유일(唯一:오로지)하고 안전한 지침이다. 이 원칙들을 깨닫고 받아들여서 자신의 일생을 주관하게 하는 것이, 모든 교사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인 것이다.(Ed 276.5)
규칙(規則:규범원칙)은 수효(數爻:항목 수)를 적게 하고, 심사숙고(深思熟考:깊이 논의하여 결정)한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한번 결정된 것은, 그대로 이행(履行:실제행동實行)하여야 한다.
변경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 사람의 마음은 이를 승인(인정)하고 순응(순종)하게 되지만, 자행자지(自行自止:마음대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 지면, 요구하고 희망하고 반신반의(의심)하는마음을 품어, 불온(不穩:불경)과 조급성(성급함)과 불복종(불순종)의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Ed 290.3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선물로써 그분의 백성들을 새롭게 하시며, 그분의 사랑으로 새로이 저들에게 침례(浸禮:성령침례) 주시기를 원하신다. 교회 안에 성령이 부족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기다리면서 기도하고 믿었던 제자들에게 각 사람의 마음을 채우고 능력을 주신 성령께서 임하셨다.
미구(未久:오래지 않은 시간)에, 지구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히 비치게 된다. 진리로 거룩함을 입은 자들로부터, 거룩한 감화가 세상에 나갈 것이다. 지구는 은혜의 분위기로 둘러싸일 것이다.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사, 하나님의 사물을 취하여 사람들에게 보이실 것이다.—9T,40.(CCh 66.2)
받아들여진 성경의 진리는, 사람의 마음을 세속[죄악세상]과 타락(죄악)에서부터 돌이켜 고양(高揚:높은 은혜의 단계로 양육)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본연(본래)의 모습대로 인식(믿음원칙을 간직)한다면, 노유(老幼:늙은이와 어린이)를 막론(관계없이)하고 유혹에 대항(대항)할 수 있게 하는, 내적인 청렴함과 원칙에 대한 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8T,319.(CCh 87.1)
복음을 순결하고 능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것은 죄 때문에 생긴 질병을 고쳐주는 치료제가 된다. 의의 태양은, “치료하는 광선”(말 4:2)을 가지고 떠오르게 된다. 이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은 상한심령을 고쳐주고, 마음에 평안을 주고, 걱정을 없애고 질병을 없애 줄 수 없다.
명성, 천재적 재능, 능력, 그 모든 것들은 근심에 눌린 마음을 기쁘게 해주거나, 허물어진[죄악에 찌그러진] 생애를 회복시켜 주는 일에 무력(無力:아무소용 없이 허망)하다.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사람의 유일(유일무이唯一無二)한 희망(希望;소망所望)이다.(CCh 216.5)
안식일(安息日)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사람의 마음을 세속적인 사무에서 떠나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영광을 명상하게 함으로써, 사람에게 축복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얘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들에 대한 사상과 생각을 교환하며, 시간의 일부[7일중 하루]를 기도하는 일에 바치기 위하여 모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는 비록 안식일에라도, 너무 길게 하거나 흥미 없이 함으로써 싫증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2T,583.(CCh 265.5)
오늘날 우리는 [지구의 마지막 시대의]大 贖罪日(대 속죄일)에 살고 있다. 표상적(表象的:실제모방)의식에서,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의 봉사를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태도로써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자복하고 완전한 회개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떨어져 멸망당할]것이었다.
그와 같이, 자기 이름이 [하늘]“생명책”에서, 도말(塗抹:완전히 지워져버림-영원멸망)되기를 원치 아니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의 은혜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아니한 오늘날, 죄를 슬퍼하고 진정(마음과 혼신의 힘과 정성)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한다. 그들은 심각(深刻:매우 깊고 완전함으로 회개)하고 철저(徹底:부르짖고 처절悽絶)하게 마음을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公言:자타가 인정)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허(浮虛:가볍고 허망)하고, 경박(輕薄:가볍고 천박)한 정신은 반드시 버려져야 한다. 지배권(支配權:우주의 통치권)을 장악(掌握:탈취奪取)하고자 일어나는, 악한 경향(傾向:악으로 기울진 성향)들을 이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 앞에는, 반드시 격렬(激烈:치열熾烈)한 투쟁(鬪爭:전쟁)이 있다.
준비(準備:늦은비 성령침례)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할 일이다. 우리는 단체적으로 구원을 얻지 않는다. 사람의 순결과 헌신이, 다른 사람의 그런 특성(성령침례)의 결함을 보충해 줄 수 없다. 비록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사건을 조사하시기를, 마치 세상에 그 한 사람밖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밀히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조사를 받되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야 한다.
속죄의 봉사가 마칠 무렵의 광경은 실로 엄숙하다. 거기에 관련된 관심은 참으로 심각하다. 심판은 오늘날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은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신속히 얼마나 신속히, 오늘날 살아 있는 자들의 사건이 취급될지 아무도 모른다. 엄위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온 생애가 드러날 것이다. 이 시점[마지막 주님의 재림과 심판]에서, 각 사람이 구주의 권고에 유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요긴(긴요)하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막 13:33).... 한 구주의 권고를 주의(注意:유의留意)함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나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경계하고, 사단의 암시와 책략을 끈덕지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보았다. 그는 스스로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사로잡아 이끌고 있다. 인간의 마음을 파악함으로, 그가 얻는 이점(利點:이익)은 엄청나게 많다. 이 점을 이용하여, 그는 뱀처럼 하나님의 사업을 훼손(파괴)시키기 위하여 들어온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적과 업적(業績:공생애의 능력)을, 인간의 기량(技倆:속임과 재주들)과 능력처럼 나타내고자 한다. 만일 그가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그리스도인을 공격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번민(번뇌)가운데, 그의 구속주의 발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강하고 능력 많은 구원자께서는, 그 대담한 원수(사탄마귀)를 쫓아 버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고 유일하고 안전하고 바른 길에서, 떠나도록 유혹한다. 골상학, 심리학, 최면술 등은 그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접근하여, 은혜의 시기의 끝에 그의 활동의 특징이 되는 능력을, 발휘(發揮:휘두르게)하는 매개체(媒介體:유혹의 자료들)이다.(1T 290.1)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분의 백성들을 시험하여, 결과를 입증(立證:확정증명)하고 계신다. 품성은 계발되고 있다. 천사들은 도덕적 가치를 저울질하고,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시험을 받아, 결과를 입증(지옥 불 심판을)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흔히 가장 의심을 적게 받은 곳에서, 흑암에 묻힌 것들을 빛 가운데로 드러내시고, 진리의 진로를 가로막은 장벽이 제거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율례(律例:율법과 규례)와 명령을 선포할 정결하고, 거룩한 한 백성을 소유(所有:선택選擇)하시게 된다.(1T 332.3)
많은 사람들은, 위의 성경과 정반대의 길을 간다. 그들은 궤휼가운데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한다. 그들은 진리를, 생활가운데서 드러내지 않는다. 그들은 성화에 대하여, 특별한 일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뒤로 던져 버린다. [그러나]그들은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성화를 노래하고, 성화를 부르짖는다.
타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순결한 체하고 헌신을 공언한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이 올바르다는 증거는 아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입증해 준다. 그들의 양심은 화인(火印:불도장) 맞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므로, 각 사람의 업적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다. 각 사람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응(報應:심판)을 받을 것이다.(1T 338.1)
하나님께서 매우 적은 사람들, 바로 흩어져 있는 자들과만 함께 계신다고 믿는, 적은 무리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소수의 반역자들이 각 곳에서 거짓 진리로 유혹하고 미혹한다]. 그런데 그 무리들의 영향은, 하나님의 종들이 세워 놓은 것을 무너뜨리고 흩어 버리는 것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보고 믿기를 원하는, 들뜬 마음을 가진 자들이 어떤 자들은 이 곳에서, 어떤 자들은 저 곳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원수를 위하여 특별한 일을 하면서도, 진리를 가지고 있노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번영케 하시고 그 사람들을 통하여, 그분의 위대한 사업을 하고 계시는 백성들과 분리되어 서 있다. 그들은 안식일 준수자들의 단체가, 세상과 같이 되어 가고 있다는 염려를 끊임없이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두 사람의 의견도 일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은 흩어지고 혼란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들과 함께 계신다고 생각할 만큼 스스로 속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 사이에 은사(恩赦:은혜의 속죄)를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은사의 영향과 가르침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의 특별한 짐을 지워 주신 자들을 의심하고,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조직에서 떠나게 하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 되게 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이며, 셋째천사의 기별 안에 굳게 서 있는 백성들은, 활동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영혼들을 진리 안으로, 모아들이고 있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께서 지상에서 특별하고 위대한 사업을 여전히 해주시고, 사람들을 불러내어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시켜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증거 하기 때문에, 그들을 세속적이라고 간주한다.(1T 417.3)
나는 현대진리의 사업(세 천사의기별- 승리의 복음)이, 모든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을 보았다. 진리의 출판은 조용하고 소리 없는 기별 전달자에게로, 주의를 돌리는 모든 사람들을 경고하고 위로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고 깨닫게 해주는 수단으로서, 하나님이 정하신 계획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출판된 진리를 통하여, 거룩하게 되도록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에 한 몫을 담당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앞에 있는, 엄숙한 사건을 위하여 준비하게 한다. 그 사무실에 있는 어떤 사람도, 진리의 출판과 관련된 문제를 분별 있게 취급하는 중요한 사업에 충분하지 못하다. 천사들이 인도하고 권면하고 제지하기 위하여, 그들 가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대리인들의 지혜와 어리석음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1T 590.3)
우리는 악한시대에 살고 있다. 마지막 때의 위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다. 불법이 관영(貫盈:차고 넘침)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진다.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삼백년을 동행하였다. 지금은 시간이 짧기 때문에, 우리로 의를 구하게 하는 동기가 유발(誘發:촉진)된다. 우리가 의로운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날의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할까?
‘에녹’의 경험이 우리 앞에 있다. 수백 년 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그는 타락한 시대에 살았다. 도덕적인 부패가 만연한 세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마음을, 헌신과 사랑의 순결을 위하여 훈련하였다. 그의 대화의 주제는, 하늘의 사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런 길로 흐르도록 스스로 교육하였으며,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띠었다.
그의 얼굴은, 예수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을 머금고 있었다. ‘에녹’은 우리가 당하는 시험을 당하였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보다 더 나을 바 없는, 의에 대해 친밀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았다. 그가 호흡한 대기는, 우리의 것과 마찬가지로 죄와 부패로 얼룩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경건하게 살았다. 그는 당시의 편만(만연)한 죄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부패하지 않고 순결해질 수 있다. 그는 말세에 위험과 부패 속에서 사는 성도들의 표본이었다. 이는 그가 충실히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승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살아남아서 충성된 자들도 승천할 것이다. 그들은 죄악과 부패의 세상을 떠나서 순결과 기쁨의 하늘로 옮겨지게 될 것이다.(2T 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