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호주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는 호주 시민권자로서 호주를 우습게 알고 피의자로 출국금지를 받고 있는 이종섭을 대사로 보내는 것에 대하여 기분이 나쁘다. 그러나 이 사건이 대사에 대하여 기억을 돼살리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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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시절에 호주의 장애인 제도 견학을 온 장애인 대학생들을 안내한 적이 있었다. 일정 중에 캔버라 한국 대사관을 방문하는 순서가 잡혀 있어서 장애인 문제와 대사관과는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방문은 피차에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조언을 했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에서 대사관을 통하여 섭외를 했고 대사관에서도 방문을 원한다고 해서 시간을 잡았다. 아마 대사관 사람들이 업무 보고 거리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단순히 교섭만 해준 것 보다는 장애인 대학생들의 공관방문 그림이 그럴듯해 보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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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에서 총영사를 비롯한 직원들이 나와서 일행을 맞아 주었고 중간에 대사가 와서 인사만 하고 자리를 떳다.
사실은 예산에 쪼들리는 학생들 측에서 혹시 점심시간이니 점심을 해결해 줄 수 없겠느냐는 뜻을 조심스럽게 표현했었다. 대사관은 그들이 어떤 경과를 통해서 호주에 오게 되었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의 큰 일(4대강을 암시하는) 때문에 예산은 삭감되고 환율이 높아져서 대사관의 운영이 어렵다고 했다.
아마도 대사관에서는 자기들 수준으로 생각해서 10명을 대접하자면 돈이 많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모양이지만 사실은 그 동안 10명의 식사 중에 제일 많은 액수가 180불이었다. 일생에 한 번, 수 많은 경쟁을 뚫고 호주까지 온 장애인 대학생들에게 200불을 썼다면 그 돈은 고국에서 오는 어느 고위 인사를 접대하는 것 보다 훨씬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나올 때 나는 일부로 "얘들아! 이 생수도 세금으로 산 것이니까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두 챙겨라."라고 했다.
결국 대사관 앞에서 직원들과 '김치~'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켄터키 치킨에 가서 80불을 내고 점심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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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 같은 장애인 대학생들이 점심시간이 임박해서 찾아왔는데 '예산이 없다'고 했던 그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정치학 교수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에 들어갔다가 호주대사로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참으로 명박스럽게 느껴졌다.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난 토끼는 깊은 산속 옹달샘에 가서 물만 먹고 왔지만 우리는 캔버라 한국 대사관에 가서 물만 먹고 왔었다.
그 다음은 시드니 영사관과의 악연이다. 2012년에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시드니에서 상영하기로 하고 기왕이면 제작진들을 격려하는 의미에서 힘이 들지만 그들까지 초청을 하기로 했다.
드디어 두 사람의 감독, 제작자, 유가족 대표가 시드니에 왔고 우리 집에서 여장을 풀었다. 물론 여러 명이 힘을 모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일을 시작하자고 제안한 나로서는 가장 큰 책임을 지고 표를 팔러 다니랴 손님 대접 하랴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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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교롭게도 용산참사에 재판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검사 강수산나가 시드니 영사관에 '재외 선거관리'라는 명목의 포상 파견이 되어있었다. 당연히 우리로서는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일이었다. 외국에서 기습적으로 일을 벌일 수는 없어서 평소 거래하는 안기부 파견 영사에게 사전에 알려주었다.
그런데 정작 당황을 넘어 초긴장을 해야 하는 사건은 강 검사가 아니라 나에게 벌어졌다. 며칠 후 연방경찰로부터 내가 시드니 영사관에 파견되어 있는 외교관을 위협했다는 신고를 받았으니 만나자는 연락이 와서 변호사와 함께 만났다.
경찰은 정식 기소된 바는 아니지만 사실 확인 차원에서 만나는 것이고 만일에 내가 법을 위반하면 징역 10년까지 처해진다는 내용도 알려 주었다. 한국에서 경찰과 늘 왕래가 있었는데 호주까지 와서 경찰과 거래가 있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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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연히 여론을 통해서 반격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몇 일 동안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쳤다. 가장 난감한 문제는 한국 언론들로부터 최초 대화자를 밝혀 달라고 하는 요구여서 '국정원 파견 요원 ㅇㅇㅇ 영사'라고 밝혀주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외교관례상 외국에 나와있는 정보원의 신분이 밝혀지면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호주 경찰 보다는 한국 언론으로 부터 시달림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영화는 크게 흥행을 해서 강 검사로서는 될 수 있으면 화제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 분명한 영화를 도와주는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시드니에 살았으면 이종섭 때문에 또 한 번 바쁠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