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 리께서는 한국에서 가수활동을
하시다가 미국 이민을 오셔 이곳 로스엔젤스
한미 TV방송에서 주 5일 저녁 골든타임에 10년간
2시간프로그램의 MC 앵커로서 한인교표들 위해 생방송으로
인기를 받아 오시던 중 2년 전부터 건강이 나빠져 투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과는 친분이 있는지라 몇 번이고 찾아뵙고 져
했는데 그렇게 많이 편찮은지를 몰라 오늘은 제가 예고 없이 직접
집에 찾아뵈었습니다, 오랫동안 위키리를 사랑 해 주신 분들
에게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사신다면서 눈시울을 머금는
모습을 보고 돌아와 소식 전해드립니다. 사진도
촬영해서 보내드리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를 않았습니다.」
2015년 1월 26일 미주방송인협회
김정수회장님으로부터 이메일로 위키 리 소식을
전해 듣고 그에 관한 간단한 글과 노래를 올리면서
몇 편의 노래 동영상도 함께 연결했다.
위키 리 이한필 가수 MC, 배우 노래 눈물을 감추고
위키 리! 오랫동안 들어오던 이름이다.
1962년 가수가 되고 곧이어 1963년 최희준, 유주용,
박형준과 함께 네 사람이 국내 최초의 음악 동아리 포클로버스
(네잎클로버)를 결성하기도 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 서라벌예대
출신의 위키리를 포함해서 서울대 법대 출신의 최희준, 서울대 문리대 출신의
유주용, 외국어대 출신의 박형준, 당시로서는 그리 흔하지 않던 학사출신
가수들로 구성된 이들 음악동아리는 관심을 끌며 외국의 유명가수들의
내한 공연을 가질 때면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고 음반을 제작
판매하기도 했다. 그때의 노래 '저녁 한때의 목장
풍경'을 동영상으로 연결했다.

이 네 학사가수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가수들이었다. 최희준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고 유주용은 윤복희의 남편이자 그
시대의 인기 가수 모니카 유 (유인경)의 동생이다. 포클로버스
구성원 오늘의 주인공 위키리는 방송국에서 노래를 부르고 MC로
등장하면서 1960년대 중반 본인의 이름을 딴 DBS 동아방송의
'달려라 위키리'에서 DJ를 맡았는가 하면 영화에도 출연했다.
다음사진은 1960년대 월남에서 공연하던 중 파월
용사들과 함께 한 사진이다.

그 시절 연예계의 톱스타 곽규석,
구봉서, 이미자, 김부자, 조미미등과 월남공연을
마치고 돌아와 박정희대통령과 만나는 장면이다. TV보급이
많아지면서 1970년대 부터는 TV에서도 자주 얼굴이 보였다.
1978년부터 그시절 연예프로그램의 대명사로 불리던 TBC 쇼쇼쇼
MC를 맡았는가 하면 1970년대에 잠시 TV편성표에서 사라졌던
KBS “노래자랑”이 1980년 11월부터 부활하면서 MC를
맡아 5년간을 이어갔다. 지금의 노래자랑 인기
MC 송해는 위키리의 뒤를 이은 것이다.

이토록 국내에서 사랑받아오던 위키리가
미국 이민 붐을 타고 1992년 미국으로 무대를 옮겨
오랫동안 노래를 부르며 방송에 고정출연하면서 사랑을
받아왔다. 위키리의 건강악화로 바깥출입이 어려워지면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김정수회장이 위키리를 찾았을 때
서로 간의 반가움은 더 없었지만 눈시울을 머금으며
아쉬움을 더했다. 위키리는 1936년생으로 올해
80세다. 하루속히 건강회복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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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영상??
위키리 하면 눈물을감추고,,,타국생활하면서 나이80 에투병생활...반갑지못한소식이군 .쾌유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