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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백과] ①중국고전무(中國古典舞)
신이 내린 문화(神傳文化)로 알려진 중국전통문화. 무용도 신전문화의 한 부분이다. 중국전통무용은 크게 고전(古典)무용과 민족·민속무용 두 갈래로 나뉘어 발전했다.
션윈(神韻)예술단은 중국 역사상 가장 진귀하게 여겨진 중국고전무를 위주로 민족·민속무용을 함께 무대에 올린다. 프로그램들을 매년 모두 새로 창작해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도 유명한 션윈예술단. 중국의 5000년 문명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이들에게 끊임없는 창조의 원천을 제공해왔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고전무. 때로는 격조 높은 궁정무용으로, 때로는 고대극장에서 상연된 연극이나 저잣거리에서 민초들이 즐기는 공연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왔다. 다양한 왕조와 시대의 심오한 지혜를 흡수하면서 독특한 동작과 운치, 내재적 의미로 발전해온 중국고전무는 전통미학(傳統美學)을 품은 주류 무용이다.
무용은 인류문화의 한 부분이다. 5000년의 중국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중국고전무는 그만큼 방대하고 풍부한 표현력을 갖게 됐다. 전통미학의 원칙 속에서 체계 또한 완벽하게 발전했다. 정신적인 요소인 ‘신운(身韻)’과 신체적인 요소인 ‘신법(身法)’을 통해 내면의 감정과 사상, 정신세계를 우아한 무용동작에 실었다. 또 인성(人性)이란 무엇이며, 도덕이란 어떤 것인지, 사유체계와 가치관까지 담아낼 수 있었다. 션윈예술단은 이러한 바탕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중국문명의 기준을 제시하고 특유의 민족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중국고전무는 크게 신운(身韻), 신법(身法), 기교(技巧)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체계적인 신운· 신법, 고난도의 점프와 회전, 텀블링 훈련 같은 기교를 연마해야 하는 중국고전무는 서양의 발레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체계를 갖춘 무용이다.
기교(技巧)
NTD 전 세계 중국무 무용대회의 한 장면. 중국고전무의 기교를 잘 보여준다. (大紀元 DB)
중국고전무의 고난도 동작으로 도약(跳), 방향전환(轉), 수평회전, 그리고 공중제비 같은 텀블링(翻)을 포함한다. 신운·신법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다.
중국고전무의 기교는 남다른 역사적 배경에서 발전했다. 고래로 중국전통문화는 문무(文武)가 조화를 이뤘다. 무술에는 때리고 막는 동작 외에 두 손을 땅에 짚고 두 다리를 들어서 반대 방향으로 넘는 텀블링이 있는데 고대 전쟁터에서 육박전 때 썼다. 힘을 운용하는 가장 중국적인 방식인 무술은 궁정에서 예술 공연을 할 때도 썼다. 처음에는 무(武)를 위주로 했지만 갈수록 문(文)이 커져서 중국고전무의 ‘기교’로 자리잡았다.
회전은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허리를 축으로 도는 수평회전(翻身)이다. 무용수는 회전을 하면서 옆으로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다른 하나는 탄쯔궁(毯子功)이라는 공중회전(翻騰)인데 중국고전무 기교 중에 가장 어려운 기술이다.
신법(身法)
NTD 전 세계 중국무 무용대회의 한 장면. 중국고전무의 신법 부문이 잘
드러나는 동작이다. (大紀元 DB)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이는 방법’이다. 원 하나를 그려도 손이 어디에서부터 올라가고 어디에서부터 원을 그리는지, 그 다음에는 어디로 내려가는지. 몸은 어떻게 움직이고 머리는 어떻게 움직이며 손을 어떻게 움직이고, 그 때 눈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호흡은 어떻게 하며 어디에서 멈췄다가 어디에서 느슨히 하는지 등이 규정돼 있다. 몇 백 가지의 독특한 움직임과 자세를 포함하기 때문에 간단해 보이는 동작도 신체 각 부분이 이런 식으로 완벽히 조화돼야 표현이 가능하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몸짓, 눈짓, 손짓, 품, 발걸음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중국고전무에서 몸을 움직이는 방식은 서양의 발레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중국고전무는 몸을 비틀고 기울이고 둥글게 하고 구부리는 것 또한 중요하게 본다.
션윈예술단 무용단장 천융자(陳永佳)는 “중국인은 원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며 “동양철학에서는 ‘둥근 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고전무에도 둥그런 맛이 있다. 세부 동작에서 전체 무용까지 둥글고 유연해 발레와 다르다. 발레는 직선적이기에 원을 중시하지 않는다. 바로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무용에는 각 민족과 지역 고유의 문화가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신운(身韻)
NTD 전 세계 중국무 무용대회의 한 장면. 중국고전무의 신운을 표현하고
있다. (大紀元 DB)
중국고전무를 높은 경지로 승화시키는 힘. 정신적·내면적 요소다. 운(韻)은 중국인이 중국고전무를 출 때 드러나는 특유의 정취다. 사람마다 자국의 문화를 표현하는 선천적인 기질이 있어서 같은 동작이라도 동양인이 추는 것과 서양인이 추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중국고전무는 특히 내재적 기운을 중시하기 때문에 동작 하나를 할 때도 호흡법이 들어간다. 체조에 고난도 동작이 있음에도 체조를 무용으로 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운치 때문이다. 체조에서 원을 그린다면 그저 원을 그릴 뿐이지 어떤 풍미가 없지만, 무용에서 원을 그리는 것은 하나의 어휘이고 풍부한 의미가 있다.
많은 왕조를 거치면서 중국고전무의 어휘는 방대해졌고, 체계 또한 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도록 형성됐다. 무용극은 한 가지 동작이 한 가지 의미로 정형화되지만 중국고전무에서는 한 가지 동작이 여러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일 수 있다. 뮬란을 예로 들면 전쟁터에서 뮬란의 춤은 여장군의 위풍을 나타내지만 똑같은 춤 동작을 뮬란의 집에서 할 때는 가난한 집안의 아리따운 아가씨를 표현한다. 표정, 내면, 동작과 리듬, 거기에 음악적 조화까지 더하면 하나의 동작으로 완전히 다른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고전무는 신운, 신법, 기교가 조화를 이뤄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고 강한 표현력을 지닌 동시에 가장 어려운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션윈백과] ②중국민족·민속무용(民族民間舞)
민족무용은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전통무용을 가리킨다. 중국에는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는데, 언어뿐만 아니라 문자, 복식, 음악적 성향도 제각각이다. 소수민족들은 서로 다른 기후환경 조건에서 저마다 독특한 생활양식을 발전시켜 왔으며, 고대 인류사회가 지녔던 원초적인 모습들도 잘 간직하고 있다. 산악민족, 유목민족, 농경민족의 무용은 저마다의 개성과 특징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민속(民間)무용은 중국의 주류인 한족(漢族) 지역의 무용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면 수확의 기쁨을 나타낸 앙가무(秧歌舞)나 리본춤, 손수건춤 등이다.
민족·민속무용은 비교적 체계적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서 민족·민속무용도 점차적으로 오늘날 무용이라는 예술장르에 편입될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중국무용에서는 민족·민속무용을 같은 분야로 묶는데, 이는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과 기술을 갖춘 중국고전무용과 좀 더 명확히 구분 짓기 위한 것이다.
민족·민속무용의 독특한 개성은 전통문화에서 비롯한다. 전통은 그 민족이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은 것으로 쉽사리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민족·민속무용을 창작하려면 반드시 그 민족의 정신과 문화적 전통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이는 대표적인 동작 몇 가지를 고수하는 것과는 다르다. 창작 중에서는 정신적 계승을 쫓으면서 민족·민속무용의 본질적 특징을 놓쳐서는 안 된다.
션윈예술단은 중국고전무용과 함께 중국의 다채로운 민족·민속무용을 펼쳐 보인다. 윈난성 대설산 깊은 곳에 사는 홍하이족(紅河彝族),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고원의 티베트족, 오랜 역사를 지닌 묘족(苗族),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과 유목민족인 몽골족의 춤 등이 그 예다. 이외에도 앙가무와 손수건춤 같은 민속무용까지 무대 위에 선보였다.
이족 무용(彝族舞蹈)
이족(彛族)은 3000년의 역사를 지녀 중국 내 여러 소수민족 중에서도 유서 깊은 민족의 하나로 꼽힌다. 중국 남부의 윈난(雲南), 쓰촨(四川), 귀저우(貴州)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족은 춤과 노래를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일상생활에서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어도 곧잘 춤으로 표현하곤 한다.
이족 무용은 쾌활하고 절도가 있어서, 발랄하고 열정적인 민족성을 잘 드러낸다. 동작들은 일상생활에서 유래된 것들이 대부분인데, 대표적인 동작인 ‘차이차오부(踩蕎步)’ ‘녠댜오부(攆調步)’도 메밀을 수확해 발로 밟는 모습에서 따 온 동작이다. 차이차오부는 시계나 반시계 방향으로 돌며 세 걸음 나아가고 한 걸음 물러나는(進三步退一步) 동작인데, 사뿐사뿐 움직이면서 앉았다가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한다.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동안 상체는 발걸음에 맞춰 좌우로 흔드는데, 독특한 운치가 있다.
묘족 무용(苗族舞蹈)
묘족은 중국의 5대 소수민족 중 하나로 역사가 가장 깊은 민족이다. 선진(先秦)시대부터 중국 중부와 남서부 양쯔강 유역에 살아온 묘족은 수세기에 걸쳐 100여 개의 지파로 분열됐으며, 모두 저마다 독특한 복식과 생활양식을 계승하고 있다. 의상과 장식도 100여 가지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무용도 마찬가지다. 북춤만 해도 지역에 따라 10여 종의 서로 다른 북춤이 전해진다.
묘족 무용에서는 화려하게 수놓은 의상과 은장신구가 눈길을 끈다. 묘족에게 은장신구는 사회적 신분과 재산, 행복을 상징하며,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묘족 여성들은 머리장식, 목걸이, 가슴장신구를 즐기는데,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은장신구로 치장한다. 은장신구에는 작은 방울과 종이 달려 있어서 무용수들이 움직일 때마다 찰랑찰랑소리를 낸다. 묘족 무용은 북소리에 장단을 맞추는데, 북소리가 고조되면서 무용수의 몸짓도 빨라지고 강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춤과 북, 은장신구의 빛과 소리가 한 데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흥겨움이 백미다.
묘족은 크고 무거운 보석으로 가문의 경제력과 힘을 과시하는데, 무용에서도 장신구들이 부딪히면서 나는 경쾌한 소리를 이용하는 동작들이 발달했다.
팔과 허리를 끈에 매달린 추처럼 힘을 빼고 흔들며, 걸음을 옮길 때는 먼저 무릎을 치켜든 뒤 발을 내딛는 식이다. 손과 발을 교차하거나 손뼉을 치고, 돌며, 머리와 엉덩이를 사뿐사뿐 흔들며, 살짝 뛰기도 한다.
전형적인 묘족 무용은 이러한 동작의 반복으로 구성되는데, 속도와 리듬이 점차 빨라짐에 따라 여성 무용수들의 은세공된 치마가 번쩍거리며 장관을 이룬다. 톡톡 튀는 활력으로 가득한 무용이다.
조선족 무용
한국에도 전통무용이 계승되고 있지만,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도 한반도에서 유래된 전통무용을 계승하고 있다. 한반도의 한국무용과는 또 다른 멋과 흥이 있다.
조선족 무용은 섬세하고 절제돼 있으며, 아름답고 우아하다. 호흡과 동작의 조화를 특히 강조하는데, 호흡은 조선족 무용의 핵심이다. 무용수는 내면의 감성을 호흡과 절제된 음악리듬(장단)의 조화를 통해 밖으로 이끌어 낸다.
조선족 무용은 팔뿐만 아니라 몸의 움직임에서 원형의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본다. 팔부터 손목에서 손가락끝까지 원을 그리는 화위안서우(劃圓手), 두 손을 머리 위로 교차하면서 넘기는 판탄캉서우(翻攤扛手) 같은 동작에서 이러한 미학이 잘 드러난다. 조선족 무용은 세속을 벗어난 듯 장중하고 중후한 아름다움을 지닌다.
몽골 무용
션윈의 작품 중에서도 역동적이면서 관객 반응이 뜨거운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높고 푸른 하늘과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을 배경으로, 큰 팔 동작과 어깨, 손목을 이용한 동작들이 특징이다.
몽골족은 기마민족이다. 몽골 무용에도 말의 움직임을 연상케 하는 동작들이 있는데, 잰 발걸음은 경쾌한 말발굽에서 유래됐다. 유목민족 특유의 거침없는 정서도 무용에서 드러난다. 또한 쭉 뻗은 두 팔과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의 날갯짓과 웅혼한 기상을 상징한다.
몽골족은 손님접대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무용에도 이러한 풍습이 담겨 있다. 몽골 무용은 술잔이나 그릇, 젓가락을 소도구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밝고 열정적이면서 힘 있고 소박한 정서가 잘 드러난다.
만주족 무용
중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청나라(淸, 1644~1911)는 중국 내에서 한족 다음으로 큰 북방의 만주족이 중국을 다스렸던 시기다.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의 자금성에는 ‘거거(格格)’라고 불리는 젊은 여인들이 살았는데, 거거는 아가씨를 뜻하는 만주어를 중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공주나 높은 가문의 여식을 뜻했다.
청나라의 여인들을 그린 무용 거거무(格格舞)는 청나라의 전성기인 건륭(乾隆 1736-1795)황제 시절 황실 여인들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들은 우아하고 감각적인 스타일과 도도한 자태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거거들은 머리에 크고 화려한 장식을 올리고, 팔과 어깨에 술을 둘렀다. 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굽이 높은 ‘화분신발(花盆鞋)’을 신고 다녔다.
청나라 여인들은 전족을 하지 않은 대신 화분신발을 신었는데, 높이가 10cm정도 되는 이 신발을 신으면 자연히 느리고 우아하게 걷게 된다. 화분신발이라는 이름은 발자국에서 유래됐는데, 지나간 자리에는 화분모양 혹은 말발굽 같은 자국이 남아 ‘말발굽자국신발(馬蹄底鞋)’이라는 우아하지 못한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거거무를 출 때는 종종걸음으로 걸으며 손은 느릿하면서도 우아하게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화분신발을 신고 무용을 하기 때문에 균형감각이 특히 중요하다.
티베트 무용
티베트인들의 전통 생활양식이 그대로 배어 있는 티베트 무용은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이며 무릎 반동을 이용해 쉴 새 없이 발을 놀리는 모습이 가장 두드러진다. 이러한 리듬감은 그들의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계곡으로부터 매일 물을 길어 날라야 했던 티베트의 생활환경에서 비롯됐다.
티베트 무용에는 ‘일순변(一順邊 이순볜)’이라는 또 다른 독특한 표현이 있는데 같은 쪽 팔과 다리를 동시에 내미는 동작이다. 보통 사람들이 걸을 때 왼발과 오른손, 오른발과 왼손을 내밀게 되는 움직임과는 반대인데, 이런 동작의 유래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가파른 산길을 걸어야 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티베트인들은 체력을 아끼기 위해 짐을 한쪽으로만 메면서 신체의 한쪽만 사용하는 습성이 생겨났다.
특히 티베트 남성무용은 힘이 넘치는 춤으로 유명한데,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역동적인 점프와 회전을 능숙하게 해낸다.
[션윈백과] ③션윈음악
동양과 서양의 위대한 음악적 전통을 하나로 융합할 수 있을까. 평가는 듣는 이들의 몫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신통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 음악계의 중론이다.
션윈예술단의 오케스트라는 동서양의 음악체계를 조화롭게 융합해 독특하고 조화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양의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기초로 얼후, 비파, 피리 같은 중국전통악기가 합주 혹은 독주로 합세한다. 이로써 서양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5000년 중화문명의 독특한 예술성이 더해졌다.
중국악기의 분류법은 서양과 다르다. 서양악기는 연주법에 따라 현악, 관악, 타악으로 나뉜다. 그러나 중국 고대악기는 음색과 악기를 만든 재료에 따라 금(金·금속), 석(石·돌), 토(土·흙), 혁(革·가죽), 사(絲·실), 목(木·나무), 포(匏·박), 죽(竹·대나무) 8가지로 구별하는데 ‘팔음(八音)’이라고 부른다. 금음(金音)에는 편종(編鐘) 같은 종으로 된 악기가 포함된다. 혁음(革音)에는 북이, 사음(絲音)에는 고금(古琴) 같은 현악기가, 죽음에는 퉁소(簫)나 피리(笛), 관(管) 등이 포함된다. 악기제작에 쓰이는 재료는 자연에서 유래됐다. 천연재료의 특성이 고스란히 악기의 특성을 만들었다.
션윈예술단 오케스트라는 중국전통악기를 가미해 다채롭고 풍부한 선율을 들려준다. 고유의 아름다운 소리를 지닌 개성 있는 악기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의 복잡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고 생생하게, 그리고 기분 좋게 그려낸다.
비파(琵琶)
비파는 중국에서 ‘민속악기의 왕’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중국회화에도 비파를 타는 선녀가 자주 등장한다. 비파에는 중국의 고대사상도 담겨 있다. 전체길이는 삼척오촌인데 삼척은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오촌은 금·목·수·화·토의 오행(五行)을, 4개의 줄은 춘하추동의 사계(四季)를 표현한다. 연주법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비파는 중국전통악기 중에서도 표현력이 가장 풍부하다.
얼후(二胡)
얼후는 4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전통악기로, 활로 켜는 찰현(擦弦)악기에 속한다. 줄은 두 개인데, 각각 외현과 내현으로 불리며 굵기가 다르다. 활을 두 줄 사이에 끼워 연주하고 외현과 내현이 활과 마찰을 일으켜 소리를 낸다. 아랫부분의 둥그런 부분을 금통(琴筒)이라고 하는데 현의 진동을 확대하고 증폭하는 공명상자 역할이다. 얼후 역시 배우기가 무척 어려운 악기다. 처음에는 손으로 현을 누르는 강약으로 음의 기준을 익히고, 점차 저음에서 고음으로 올라가는데 음을 정확히 내기까지 길고도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전체적인 음역대는 중음과 고음에 속한다. 줄이 두 개뿐이지만 새의 지저귐에서 말의 울음소리까지 다양한 소리를 표현해낼 수 있다. 또 음색이 부드럽고 은은하며 장중하고 비장하기 때문에 중국의 오랜 역사와 민족정서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악기로 꼽힌다.
대피리(竹笛)
대피리는 중국전통음악에 항상 등장하는 목관악기이다. 보통 하나의 대나무 관으로 만드는데 입김을 불어넣는 취공(吹孔) 상단을 부드러운 나무로 막는다. 대피리는 취공 바로 아래에 갈대의 부드러운 피막을 붙인 막공(膜孔)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 막공 아래에는 손가락으로 막으며 연주하는 6개의 구멍이 일정한 간격으로 뚫려 있다.
피리의 역사는 유구하며 그 표현력도 아주 풍부하다. 연결된 음, 단절된 음, 떨리는 음, 미끄러지는 음 등 다양한 소리를 연주할 수 있고 다양한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선율은 물론 빠르게 도약하는 선율도 연주하는데 듣는 사람에게 즐거우면서도 세상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준다.
피리는 대자연의 소리를 표현하는데도 뛰어나 청중들은 피리 소리를 들으며 새가 지저귀고 꽃이 만발한 숲의 정경을 떠올릴 수 있다. 연주자가 부는 기류의 강약, 완급에 따라 음의 높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감동적인 연주를 하려면 연주자는 반드시 음량을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에 피리가 있지만 중국 피리는 막공(膜孔)이 있어서 기류가 진동하며 소리를 내기 때문에 더욱 맑고 밝은 소리가 나며 음량도 크다. 대나무로 만든 또 다른 악기로 퉁소가 있는데 모양이 비슷하지만 구분하기는 쉽다. 세워서 부는 것은 퉁소이고 옆으로 부는 게 피리다. 둘 다 대나무로 만들지만 성질과 음색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또, 대피리는 피리의 막이 있어 소리가 맑고 또렷하지만 퉁소는 막공이 없어서 보다 부드러운 음색이다.
수르나이(嗩吶 태평소)
수르나이는 음색이 밝고 음량이 상당히 크다. 몸체는 나무로 만들고 위에 구멍이 있다. 좌우 손가락으로 압력을 조절해 음의 높이를 조절하는데 위에는 혀(哨子)가 달린 동관이 있고 아래에는 동으로 만든 나팔이 달려 있다. 입으로 혀를 조절해 음량, 높이, 음색의 변화를 내는데다, 다양한 기교도 있어 음을 정확히 통제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음색과 음량의 변화가 커서 중국전통악기 중에 표현력이 매우 강하다. 수르나이를 잘 연주하려면 혀를 잘 조절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수르나이는 일부 지방에서는 연극 공연에서 자주 연주되며, 민간 혼례나 장례, 명절, 추수 등 각종 실외활동에도 두루 쓰인다.
공(大鑼 대라)
라(鑼·징)의 일종. 동으로 만들며 직경이 30~60cm 가량 되는 편평한 원형이다. 테두리에 작은 구멍이 있어서 끈으로 묶는다. 연주할 때는 나무망치로 치는데 크고 맑으면서도 호방한 소리가 난다. 여음이 상당히 길어서 빠른 음을 연주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션윈 무용극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대라를 울려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리듬감을 강화하고, 장엄하고 신성한 장면을 표현한다.
펑링(碰铃)
팽종(碰鐘), 쌍경(雙磬), 영발(鈴鈸)로도 불린다. 잔처럼 생긴 작은 종 모양이고, 종체는 향동(響銅 정련된 구리)이나 황동(黃銅)으로 만든다. 두 개가 짝을 이뤄 끈으로 연결되는데 서로 부딪혀 소리를 낸다. 고정적인 음높이가 없으며 소리가 맑고 소리 변화 폭이 크다. 일찍이 북위(北魏)시대 돈황 벽화와 조각에서 이 악기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쌍방울은 중국민간에서 가무나 연극 반주에 쓰였고 중국전통악기 합주에서 주로 사용됐다.
경(磬)
동으로 주조한 발우 모양의 악기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직경은 보통 30~60cm가량 되는데 소리가 크면서도 질박하고 고풍스럽다. 나무봉으로 발체(缽體)를 치며 연주하는데 소리가 맑고 여운이 길다. 불교음악에서 많이 사용된다. 사원에서는 승려나 대중을 모으거나 예불을 올릴 때 경을 울렸다. 이외에도 승려들이 평소 경문을 읽을 때 경을 쳐서 문단을 바꾸거나 속도를 조절하기도 했다. 션윈 오케스트라는 신성한 분위기를 낼 때 이 악기를 사용한다.
[션윈백과] ④션윈의상
션윈 공연에서는 무대의상 하나하나가 화려한 볼거리다. 신선이 입었다는 당나라 때의 예상우의(霓裳羽衣)에서, 황제의 정복인 곤룡포(袞龍袍)와 황후가 특별한 날에 입던 봉관하피(鳳冠霞帔), 문관이 입던 복두(帕頭)와 포삼(袍衫)에서 늠름한 장수의 투구와 갑옷까지, 오른쪽으로 여미어 입는 것이 특징인 중국 한복(漢服)에서 만주족, 티베트족, 다이족, 몽골족, 위구르족 복식까지. 모두 한 무대에 오른다.
션윈의 무대의상 아티스트들은 역대 제왕과 장수, 재상의 정교한 복식에서 저잣거리 백성들의 간소한 옷차림까지 수많은 전통복식 디자인을 수집했다. 그리고 매 시즌 밝고 화려한 색감을 덧입혀 수백 벌의 무대의상으로 재창작해낸다. 하나하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제작된 의상은 그 자체로 예술적 영감과 꼼꼼한 수작업의 산물이다. 신(神)이 내린 중국의 전통문화와 그 전통문화가 오롯이 담긴 전통복식. 션윈의 무대의상 디자이너들은 중국 전통복식의 진수를 펼쳐 보이는 한편, 무대의상으로서도 완벽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의상의 조화와 균형, 색의 대비에도 중점을 둔다.
한족 복식
중국 인구의 대부분은 한족(漢族)이다. 중국 본토에서는 중국어를 한어(漢語)라고 하고, 한족의 옷을 한복(漢服)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한복은 한(漢)나라의 복식이 아니라, 삼황오제(三皇五帝) 시절부터 명나라 말(17세기 중엽)까지 중국의 주류민족이 입어온 수천 년 역사의 전통복식을 가리킨다.
한복은 시대와 왕조의 변천을 거쳐, 오늘날 수백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품이 넉넉하고 소매가 넓고 길며, 오른쪽으로 여미어 입고, 단추 대신 끈으로 매듭을 묶는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한복은 입기 쉽고 활동하기에도 편하다.
중국의 전통복식은 그저 옷을 잘 입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적절한 복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고상한 품성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했다. 한복을 입으면 행동은 차분해지고 마음은 온화해진다. 중국문명은 수천 년 동안 한복을 입은 채 이뤄졌고,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됐다.
‘주역’에서는 황제(黃帝)와 요(堯), 순(舜)이 “의상(衣裳)을 드리우고 천하를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의(衣)’는 소매가 큰 웃옷을, ‘상(裳)’은 치마를 가리킨다. 상의와 하의를 따로 입는 복식은 이때부터 전해졌는데, 하늘, 땅과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춘추전국시대, 제후 간의 갈등으로 대륙이 분열위기를 맞자, 제나라의 환공은 평화 회합을 개최하고 위엄 있는 복식으로 참석해 제후들을 설득했고, 대륙을 다시 통일하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의상지회(衣裳之會·의상의 모임)로 불리는 이 모임은 훗날 국가 간의 평화로운 회합을 뜻하는 말로 남게 됐다. 한복에는 무력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처럼 상고시대부터 이어진 한복의 역사는 이후 중국의 3천년 복식문화를 결정지었다. 이후 한복의 가짓수는 수백 종으로 늘어났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적 가치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천상의 복식
중국의 전통문화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반신(半神)문화다. 중국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예술작품에는 끊임없이 신(神)이 등장한다. 중국 전통문화를 모티브로 하는 션윈 공연에서 천상세계와 부처·도(道)·신선에 대한 묘사가 빠질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신성한 존재의 복식도 공연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중국에는 “한 왕조의 천자(天子)에, 한 왕조의 신하”라는 말이 있다.
천상의 신들은 지상에 내려와 하나의 왕조를 이루고, 황제와 관리로 환생해 인류문명의 휘황한 시대를 이끌었다. 한 왕조씩 번갈아 가며, 신들은 천상의 문화를 인류에게 전해주었는데, 그 중에는 복식문화도 있었다.
삼황오제 시절에서 명나라 말까지, 한복은 왕조와 시대별로 독특한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서로 다른 천상세계의 복식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천상세계의 복식은 둔황 막고굴 벽화와 같은 고대 예술작품에 나타나 있다. 역대로 사람들은 천상의 복식을 최대한 모방하고자 했으나, 여전히 인간의 옷은 천상세계의 복식에 필적하지 못했다.
소수민족 복식
소수민족 복식은 중국문화만큼이나 다채롭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은 광활한 중국 영토에 나뉘어 살고 있는데, 지리환경과 기후조건에 따라 생활양식과 민족성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소수민족 복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수민족 복식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수민족의 삶이 잘 담겨있다. 남자들의 복식은 단순하면서도 품이 넉넉해 육체노동에 적합하지만, 흥겨운 일이 있을 때는 일하던 차림새 그대로 춤을 추기에도 손색없을 만큼 멋스럽다. 여성들의 복식은 색상과 장식이 화려하면서, 그 민족이 주로 재배하는 작물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과 원초적인 색감. 소수민족의 짙은 토속적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는 의상도 션윈 공연을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공연을 즐기다 보면 관객들은 어느새 광활한 중국 대륙을 여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션윈백과] ⑤디지털영상
션윈의 디지털 영상팀은 최첨단 컴퓨터그래픽 기술을 이용하여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무대배경을 연출해낸다. 디지털 영상은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뛰어넘어 관객들에게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세계를 보여준다.
션윈의 무대배경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마법의 창과 같다. 디지털 영상은 광활한 초원에서 장엄하고 우아한 건축물을 자랑하는 당나라 시대로, 흙먼지 날리는 전장에서 열대지방의 해안가로, 히말라야의 준봉에서 황하 삼각주의 그림 같은 풍광으로 무한히 무대를 확장하고 변모시킨다.
5000년 역사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장대한 경관은 다양한 중국의 지리, 사회, 지역,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 세상을 초월한 장면도 연출된다. 선녀들이 신비한 구름 위에서 춤추는 천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부처가 사는 극락세계의 장엄함이 펼쳐지기도 한다.
디지털 영상은 공연의 모든 요소, 즉 작품 속 인물, 의상의 색, 무용동작, 무대소품, 조명, 스토리, 오케스트라의 음악, 음향효과와 조화롭게 일체를 이루도록 디자인된다.
무대배경은 웅대하고 정교할 뿐 아니라 너무도 실제 같아서 관객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잊은 채, 다른 시공으로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들게 된다.
묘우(廟宇)와 전당
중국 역대의 건축은 모두 각기 다른 특징이 있다. 가령 당조(唐朝) 시기 건축물은 모두 초가지붕에 곧은 처마가 있다. 명청(明淸)시대의 건축조각에서는 색 규정에 따라 주황이나 황색을 가장 존귀한 색으로 여겼다.
묘우(廟宇 사당)는 고대인이 신과 부처에게 예배를 드리거나 천지와 산천, 성현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한 건축물이며, 승려들이 수행하는 도량이기도 하다. 전(殿)은 통상 묘우나 황실 원림(정원)에서 주축선에 위치하는 건축물로, 그 모습이 장엄하다. 예를 들면 사묘(寺廟)의 산문(山門) 북쪽 축선에 천왕전, 대웅보전이 위치하는 것이다.
당(堂)은 일반적으로 관사나 저택의 주건축물로 전(殿)에 비해 공간이 작고 구조나 장식도 비교적 소박하며 지역적인 특색을 더 많이 지닌다.
고대 봉화대
고대 중국 군사들은 불과 연기신호로 아주 먼 거리를 통과하여 군사적 신호를 전달했다. 이런 봉화대는 ‘만리장성’과 같이 대개 근접하기 어렵도록 전략적으로 세워졌다.
봉화대는 침입자에 대비한 경보시스템이었다. 만약 적군을 낮에 발견하면 늑대의 배설물을 태웠다. 냄새는 분산제 없이 높은 고도로 올라갈 수 있고 수백 마일 밖에서도 연기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늑대 연기’라 부르기도 한다.
만약 야간에 적군을 발견했다면 봉화대에서는 전쟁에 대비해 이 사실을 재빨리 불빛으로 전달할 것이다.
원림(園林)
고대 중국의 정원은 마치 은둔한 듯 한적한 곳에 위치해 고요하다. 정원을 거니노라면 속세를 벗어난 목가적인 풍경을 만나게 된다. 화려한 장식을 한 아름다운 건물, 진기한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있다. 이 자연 속에서 사람들은 평온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정원의 배치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따르고 있다. 물의 흐름, 식물의 주기, 정자, 석교(돌다리), 시를 새겨 넣은 비석 등 정원이 지닌 서로 다른 요소와 기하학적 형태가 각각의 의미에 맞춰 완벽하게 배치돼 있다. 고대 정원 속에서 사람들은 사색에 잠기고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듯하다. 누구라도 결코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강남 풍경
양쯔강 삼각주에 위치한 강남은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강남의 정원은 아름답고, 호젓하며 사색에 잠기게 하는 신비함을 지녔다. 실제로 강남은 역사적으로 문화와 문학의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다. 마치 수묵화에서 갓 나온 듯 굽이치는 강을 따라 늘어선 작은 집들은 소박한 강촌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강변 정경과 션윈의 여성적인 강남 무용이 어우러지면서 부드럽고 우아한 장면이 연출된다.
서남 중국의 풍경
중국 서남부는 계곡과 험준한 바위, 산, 평야가 어우러진 곳이다.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 기름진 평야와 동남아의 아열대숲과 같이 다양한 지형이 펼쳐지는 지역으로,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윈난(雲南), 쓰촨(四川), 구이저우(貴州), 광시(廣西)성의 일부가 중국 서남부에 해당된다.
이 지역에는 또 이족(彞族), 다이족(傣族), 먀오족(苗族), 바이족(白族), 티베트족과 같이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다. 이 민족들은 모두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노래와 춤을 가지고 있다.
천상 세계
유럽의 예술가들이 대성당과 궁전에 천국세계를 그려 넣었던 것처럼 고대 중국인들도 동굴과 사원에 천상의 모습을 벽화로 그렸다. 전통적으로 불가는 황금색을, 도가는 자주색을 중시했다. 불가와 도가의 신들은 그들이 존재하는 장엄한 세계와 마찬가지로 각기 분명한 특성과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션윈의 디지털 영상은 휘황하게 빛나는 천상 세계를 보여준다. 연화대 위에 앉은 부처는 신성한 손 모양, 즉 수인(手印)으로 그 뜻을 나타낸다. 불국세계의 중생들은 부처의 자비 속에서 평화와 기쁨을 느끼며, 경외감을 갖는다.
몽고 초원
“하늘은 푸르고 푸르며 초원은 드넓네.
바람이 초원 위를 스치면 소와 양이 보이네”
1500년 전 중국 한시에서 몽골 초원을 묘사한 구절이다. 드넓은 초원에 사는 몽골족은 자연을 가까이하며 생동감 있는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으로, 활쏘기와 말타기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몽골족은 전통적으로 미국원주민의 티피(teepee)와 유사한 이동식 천막집, 유르트(또는 게르)에서 산다. 광활한 평야에서 유목과 사냥으로 살아가는 몽골족의 유목생활과 어울리는 가옥이다.
매년 여름에는 이 초원에서 몽골 최대의 전통축제 나담이 열린다. 사람들은 씨름, 말타기, 활쏘기 시합을 하고, 춤과 노래를 즐기며 부족 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번영을 기원한다.
[션윈백과]⑥션윈 소도구
2006년 중화권 위성방송 NTDTV가 주최한 신년 갈라의 한 장면. 소도구로 연출한 무용으로
여성 장군 뮬란을 연기하고 있다. ⓒThe Epoch Times
소도구는 무용의 어휘를 풍부하게 하고 무용의 표현력을 강화해준다. 이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고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예술적 감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션윈 무용의 안무가와 제작자들은 부채, 모자, 면사포 등 전통적으로 쓰이는 소도구를 독창적으로 활용해,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션윈 작품에서는 부채·우산·손수건·보자기·등불 같은 공예품, 북·징(鑼) 같은 악기류, 칼·창·방패 같은 병기류를 소도구로 썼다. 무용수들은 오색의 긴 천[五彩長綢]을 이용해 돈황 벽화 속의 비천(飛天)과 천상 궁궐에 산다는 선아(仙娥)를 재현했으며,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부채를 활용해 꽃이 활짝 피는 순간을 보여줬고, 무기를 이용해 호방하고 늠름한 기상을 표현했으며, 위풍당당한 전고(戰鼓)로 전성기 당나라의 강성한 국력과 백성들의 단결을 상징했다. 이처럼 소도구를 적재적소에 활용한 예는 역대 션윈 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호리병 葫蘆
중국 전설에서 신의 경지에 도달한 의사는 호리병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 또 여덟 신선[八仙]의 하나인 이철괴는 황금색 호리병을 어깨에 메고 다녔고, 송나라 때 살아있는 부처로 추앙 받은 제공화상도 몸에서 술 담은 호리병이 떠나지 않았다.
션윈 공연에서는 2011년 ‘수호전’의 노지심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에서 노지심이 허리춤에 호리병을 달고 다녔고, 2007년 무용극 ‘항아분월’에서 항아가 호리병에 든 불사의 약을 먹고 월궁으로 날아갔다.
호리병을 만드는 데 쓰이는 호리병박은 박과에 속하는 한해살이 식물이다. 호리병박은 얇은 녹색을 띠다가 익으면 황금색을 띠는데, 옛날에는 이를 그릇으로 만들어 물이나 술, 단약을 보관하는데 사용했다. 또 꽃병 같은 공예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호리병박에 술을 저장하면 오래 저장해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중국 의서에서는 호리병박에 저장한 술은 화기(火氣)를 없애고 눈을 밝게 하며 소화를 돕는 약효를 지닌다고 기록했다. 풍수학에서는 호리병박에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본다. 또 호리병박[葫芦]의 중국어 발음이 부귀와 장수를 뜻하는 ‘호록(護祿)’ ‘복록(福祿)’과 같아,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호리병을 문 앞에 걸어놓거나 몸에 휴대하고 다니면서 사악을 몰아내고 복을 불러오게 했다.
불진 拂塵
션윈 공연에서는 종종 흰 머리에 긴 수염을 늘어뜨린 도사가 등장한다. 도사는 제자에게 무공을 전수하거나 사악한 것을 제압할 때, 끝에 긴 털 묶음이 달린 나무막대 같은 도구를 사용하는데 먼지떨이 또는 총채로 알려져 있는 ‘불진(拂塵)’이다.
불진은 짐승의 털이나 마(麻)를 나무로 만든 긴 자루에 한데 묶어 만든다. 도사나 승려가 세상을 떠돌 때 몸에 지니는데, 도가(道家)에서는 속세의 인연을 털어낸다는 의미가 있다. 도가에서 요괴나 마귀를 속세의 먼지로 보기 때문에 불진을 들고 다닌다는 설명도 있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의 스승으로 나오는 보리조사, 여덟 신선의 하나인 여동빈, 도가의 태상노군도 불진을 들었다. 이들은 세속을 초월한 고아한 풍채를 느끼게 한다. 선종(禪宗)의 주지스님도 역시 늘 손에 불진을 들고 대중에게 설법하고 경을 강의하는데, 이때는 법의 위엄을 상징한다.
한편, 불진은 도가를 특징짓는 무기이기도 하다. 불진은 운용법이 무척 독특해서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펼쳐낼 수 있고 변화무쌍하다. 불진을 연마하려면 뜻[意]과 기(氣)를 하나로 합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경지에 도달하려면 정신수양이 필수적이다.
전차 戰車
중국 역사에서 전차에 대한 기록은 하(夏)나라 때(기원전 21~16세기)부터 발견되는데,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였던 진(秦)나라 때(기원전 3세기)까지 중요한 전술병기로 사용됐다.
전차는 앞에 말 2마리 혹은 4마리가 달렸고, 보통 3명이 탑승했는데 지휘관이 왼쪽, 무기를 들고 싸우는 사람이 오른쪽, 전차를 모는 사람이 가운데 위치했다. 전차를 몰기 위해서는 훈련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유가(儒家)에서는 전차 모는 기술을 ‘어(御)’라고 부르며 선비가 익혀야 할 여섯 가지 기예[六藝]의 하나로 꼽았다.
전차에 탄 사람들은 가죽갑옷을 입고 방패로 방어하면서 창으로 상대편을 공격했는데, 두 전차가 지나쳐 갈 때 서로 공격하는 식이었다. 먼 거리에서는 화살을 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기원전 8~3세기)에는 전차의 수량이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춘추시대에 전차 1대에 탑승자 3명, 보병 72명, 지원병 25명을 합해 총 100명이 한 부대를 이뤘다. 역사기록에 나오는 ‘천승(千乘)의 나라’라는 표현은 전차를 1000대 보유했다는 것으로 약 10만의 병력을 거느린 큰 나라를 뜻한다.
전차로 작전을 펼칠 때는 진형이 중요했다. 그래서 깃발과 북을 싣고 다니며 서로 연락하거나 지휘하는 수단으로 이용했다. 중국의 전차는 덩치가 컸기 때문에 좁은 지역보다는 평야지대 전투에 주로 투입됐다.
중국 최초의 왕조였던 진나라가 끝나고 한나라(기원전 3세기)에 접어들면서 전차는 점차 기동성이 뛰어난 기병과 보병으로 대체되면서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북 鼓
고대 중국에서 북[鼓-고]은 하늘과 통하는 신기(神器)였다. 북은 처음 전고(戰鼓)의 형식으로 전쟁터에서 사용됐다. 북소리는 아주 멀리까지 전파되면서 웅장하고 격렬하기 때문에 전투 중에 북을 쳐서 군대의 사기를 올리는 일이 많았다.
주(周)나라 때(기원전 11~3세기)에는 악기를 재료에 따라 여덟 가지로 분류해 8음(八音)이라고 했는데, 이때부터 북은 가장 널리 연주되는 악기로 자리 잡았다. 특히 제사나 궁정연회에서 북이 빠지는 일이 없었다.
북은 가죽과 몸통 두 부분으로 돼 있다. 가죽은 소리를 내는 부분으로 동물의 가죽으로 제작하는데 두드리거나 치면 진동을 일으켜 소리를 낸다. 몸통은 나무로 제작하는데 직경이 클수록 저음을 낸다.
중국의 북은 분류가 복잡하지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요고(腰鼓), 전고, 대고(大鼓), 태평고(太平鼓), 팔각고(八角鼓) 등이다.
―요고 腰鼓
요고는 모래시계모양으로 길이가 40~45cm정도다. 중간음과 높은음을 내며 움직임이 편하도록 비단리본으로 허리에 묶고 친다. 요고는 중국 산베이(陝北-섬북)지방 황토고원지대에서 유행했으며 나중에 중국의 인기 민속무용인 앙가무(秧歌舞)에도 등장하게 됐다. 요고는 여럿이 함께 추면서 진형을 변화하거나 점프나 발차기 같은 동작과 함께 출 수 있다. 소리와 리듬이 경쾌해 중국 중부지방 민간공연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전고 戰鼓
전고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터에서 치던 북이다. 병사들을 지휘하거나 사기를 높이는 용도로 쓰였다. 병사들은 북소리의 횟수와 리듬변화에 따라 좌우로 움직이거나 진격하거나 후퇴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더는 전쟁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대신 민간공연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전장에서의 느낌은 그대로 남아 있어 정신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고를 칠 때는 한 번은 강하게 한 번은 약하게 때려 강약을 분명하게 한다. 전고는 중화민족의 민족정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북이다.
―팔각고 八角鼓
팔각고는 팔각형의 작은 북으로 8개의 각은 만주족의 8기(八旗)를 상징한다. 청나라 때 북경, 천진, 동북, 산동 지역에서 유행했다. 무용에서는 왼손에 쥐고 오른손으로 치거나 왼손으로 살짝 두드리기도 한다. 팔각고 연주 기법에는 북을 가볍게 치거나, 소리를 내지 않거나, 북을 돌리는 기교 등이 있다.
병기(兵器)
중국의 전설에 따르면, 병기가 전쟁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황제(黃帝)시대 부락 간의 전투에서라고 한다. 출토된 고대 초상화나 석제 조각에서 고대병기의 초기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신화나 전설, 고대문학작품에서도 병기에 관한 묘사가 나온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여의봉은 요괴를 굴복시키는 보물이고 ‘삼국연의(三國演義)’에서도 조조(曹操)가 사용한 의천검(倚天劍)이나 관우의 청룡언월도(青龍偃月刀)가 있다.
병기의 종류는 무척 다양한데, 중국에서는 크게 9종의 긴 병기와 9종의 짧은 병기로 나누어 9장(長)9단(短)의 18반 병기로 구분한다.
긴 병기는 창(槍), 극(戟-끝이 2개로 갈라진 창), 곤(棍), 월(鉞-큰 도끼), 차(叉), 당(钂), 구(鉤), 삭(槊), 환(環)이 있고, 짧은 무기에는 도(刀), 검(劍), 괴(拐), 부(斧), 편(鞭), 간(鐧), 추(錘), 봉(棒), 저(杵)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