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로 주변의 소나무 숲, 상당수는 죽었고 죽어간다
높이 솟은 벼랑은 일천 길이요 高臺一千仞
해묵은 소나무 삼백 척인데 古松三百尺
그 위에 쉼 없이 바람이 불어 上有無盡風
나그네 자취를 쓸어내누나 吹掃游人跡
나는야 백운산 나선 몸이라 我自白雲來
세속의 나그네 무리 아니니 而非世中客
나 홀로 드넓은 창공에 기대 獨立倚寥廓
목청 높여 호쾌히 노래하노라 浩歌無慚色
ⓒ 한국고전번역원 | 송기채 (역) | 2002
―― 농암 김창협, 「암자 뒤 절벽 위에 있는 송대(松臺)가 매우 높아서 앉아 있을 만하였다
(菴後絶壁上松臺 高絶可坐)」에서
▶ 산행일시 : 2018년 3월 10일(토), 맑음, 미세먼지
▶ 산행인원 : 14명( 영희언니, 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산정무한, 인치성,
두루, 향상, 구당, 해마, 가은, 메아리)
▶ 산행거리 : 도상 15.7km(1부 5.3km, 2부 10.4km)
▶ 산행시간 : 9시간 15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5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20 - 서울홍천고속도로 가평휴게소
08 : 40 ~ 08 : 45 - 수하1리 마을회관, 작은구둔치, 산행준비, 산행시작
09 : 26 - 516.2m봉, 첫 휴식
10 : 34 - △681.3m봉
11 : 26 - 소이금교, 1부 산행종료, 점심, 이동
12 : 22 - 직골 직동 마을, 2부 산행시작
12 : 50 - 480.1m봉
13 : 15 - 임도
14 : 05 - 760m봉
14 : 36 - 응봉산(鷹峰山, 매봉산, △868.0m)
16 : 30 - 715.6m봉
16 : 45 - 소나무 고사지대
17 : 12 - 암릉, 오른쪽 트래버스
17 : 27 - 임도
18 : 00 - 직골 직동 마을, 산행종료
18 : 27 - 홍천, 목욕, 저녁
21 : 52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1부 산행로
2.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2부 산행로
▶ △681.3m봉
1부 산행 들머리는 수하리 작은구둔치 마을이다. 구둔치는 양평 구둔치(九屯峙) 지명의 유
래를 그대도 인용해도 될 듯하다. ‘예전에 이 고개에 군대가 주둔하며 전투가 계속되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나는 작은구둔치의 ‘구둔’을 수하리 아랫녘에 있는 예전
에 군대가 주둔했다는 군두리(軍杜里)의 ‘군두’가 변성된 것으로 보았다.
1부 산행은 점심 후에 있을 2부 산행인 응봉산을 위한 준비운동이다. 그다지 길지 않은 산행
거리가 그렇고 시종 부드러운 산세와 이름 없는 산들의 높낮이가 그러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들머리 주변 지형을 자세히 살펴 지도와 대조하고 그중 완만한 사면을
골라 덤불숲 헤친다. 북쪽 사면이라서 낙엽 밑의 맨땅은 땡땡 얼었다.
골짜기 가득 채운 자작나무 숲을 지난다. 자작나무는 언제 보아도 그 하얀 수피로 산뜻하다.
덩달아 우리네 기분 또한 상쾌하다. 이 다음은 조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울창한 잣나무 숲을
지난다. 사실 이 잣나무야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나무다. 외국인들에게 소나무는 재퍼
니즈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 일본적송)이라고 알려졌고, 잣나무가 코리안 파인(Kore
an pine, 한국소나무)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잣나무의 학명도 파이너스 코라이엔시스(Pinus
koraiensis)이다.
능선이 가파르게 오르다 잠시 멈칫하는 데는 망자가 쉬는 무덤이 자리 잡았다. 479m봉에서
서쪽으로 방향 튼다. 고만고만한 높이의 봉우리 3개를 넘으면 516.2m봉이다. 첫 휴식한다.
동서울을 출발할 때 산정무한 님이 오늘은 홍어를 가져왔노라고 운을 떼었기에 여태 입맛을
다시며 일행에 뒤지지 않도록 애썼던 터라 홍탁의 맛이 더욱 각별하다. 탁주는 해피 님이 보
내온 덕산의 명주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즐비한 능선을 간다. 안개 혹은 미세먼지로 조망은 무망인데다 그마저도
키 큰 나무숲에 가렸다. 이런 열주의 소나무를 보는 것으로 벌충한다. 소나무에 대해서 몇 마
디 하련다. 소나무는 ‘솔’이라 부르기도 한다. 솔은 위(上)에 있는 높고(高) 으뜸(元)이란 의
미로, 나무 중에서 가장 우두머리라는 ‘수리’라는 말이 ‘술’에서 ‘솔’로 변했다고 한다.
한자 이름으로는 송(松)이다. 송(松)은 목(木)과 공(公)을 합한 형성문자로, 중국 진(秦)나
라 때 만들어졌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진시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려고
태산을 올랐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갑자기 내린 비라 피할 곳이 마땅치 않던 터에 인근의 나
무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소나기가 그치자 진시황제는 그 나무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오대부(五大夫)’ 벼슬을 내렸는데(乃遂上泰山, 立石, 封, 祠祀. 下, 風雨暴至, 休於樹下, 因封
其樹爲五大夫),
이 나무가 바로 소나무라고 한다. 오대부는 20등급의 벼슬 중 9등급이다. 1등급이 가장 낮
고, 20등급이 열후(列侯)로 가장 높다.
이 근방에 소나무가 많아서 소나무를 이름으로 딴 지명이 여럿이다. 산간고개인 작은솔치,
큰솔치, 솔재 등이 있고, 마을로는 윗솔치, 솔치, 아랫솔치 등이 있다. 고지의 북사면에는 눈
이 약간 쌓였고 더러 빙판이다. 기어오른다. 두 눈 부릅 뜬 토치카 2개 넘고 교통호 넘어 솔
재 갈림길인 △681.3m봉을 오른다. 1부 산행의 최고봉이다. 삼각점은 ‘청일 304, 2005
재설’이다.
점심때를 맞춰 하산한다. 솔재는 너무 가깝고 와둔지는 너무 멀고 소이금이 적당하다. 정작
험로는 내리막이다. 내리막길 낙엽은 눈보다 노골적인 빙판보다 더 겁이 난다. 게걸음질하며
낙엽송 숲 사면을 길게 내리고 골짜기 산판 길과 만난다. 산판 길은 진창이라 산자락으로 비
켜간다. 56번 국도 옆 논두렁 지나고 어론천 소이금교 위가 점심 명당이다.
3. 보기 좋은 소나무 숲길
4. 1부 산행 516.2m봉
5. 이처럼 늘씬한 소나무 숲길을 갈 때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6. 낙엽송 숲 내리고 지계곡 건너 산판길로 향한다
7. 진창인 산판길
8. 1부 산행종료, 소이금 주변
▶ 응봉산(鷹峰山, 매봉산, △868.0m)
응봉산의 굵직한 능선은 거의 다 가보았다. 가급적 중복을 적게 하되 개척적인 코스로는 윗
솔치 마을 뒤편의 수봉사에서 좀 더 들어간 직골의 직동 마을이 적당하다. 직골교 가기 전에
버스를 세우고 오른쪽 다리 건너 지계곡으로 들어간다. 푸른 보리밭이 나온다. 보리밭은 겨
우내 서리발로 들뜬 뿌리가 흙에 잘 활착되도록 꼭꼭 밟아주는 것이 좋다.
예전에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봄이면 전교생이 보리밭을 밟아주는 행사에 수시로 동원되기
도 했다. 지금은 보리밭 자체를 보기가 어렵다. 그런 보리밭을 뜻밖에 보게 되니 시절을 되돌
린 듯 아련히 정겹다. 가인 문정선이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간 것은 보리가 다 커서다. 우리는
어린 보리 싹을 밟아주며 걸어간다.
보리밭과 그 위의 억새숲길을 지나고 오른쪽 생사면에 붙는다. 응봉산 북릉이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을 한 피치 오르면 토치카가 나오고 오래 된 교통호 넘어 480.1m봉이다. 잠깐 올랐
다가 길게 오르기를 반복하면서 점차 고도를 높인다. 산허리 도는 임도에 올라선다. 능선 마
루금은 물론이고 임도 둘러 둘러 절개지는 높은 절벽이다.
어디를 뚫을까 샅샅이 훑어보며 임도 따라 왼쪽으로 돌고 돈다. 두 번째 산모롱이가 그중 낫
다. 수북한 낙엽 아래 잡석이 깔린 가파른 사면이다. 일보전진 이보후퇴를 반복하다 제자리
걸음하기 일쑤다. 공제선까지 불과 100여 미터 남짓이 아득하게 보인다. 이때는 확실히 봄날
이다. 비지땀 쏟는다. 왼쪽 허벅지는 바짝 힘을 주면 쥐가 날듯 꼬여온다.
어렵사리 능선마루에 기어오르고 잠시 널브러져 가쁜 숨 수습한다. 이제 응봉산 북릉의 일로
직등이다. 줄곧 오르막이다. 멀리서는 몇 겹의 잿빛 그러데이션 준봉 뒤에 응봉산이 가장 흐
릿하게 보인다. 심호흡하고 한 겹씩 벗겨낸다. 얕은 눈 혹은 빙판이 나오다가 오를수록 깊은
눈으로 발전한다. 겨울의 설릉을 간다. 메아리 대장님이 내는 발자국으로 여러 사람이 간다.
마지막 한 겹 준봉은 760m봉이다. 거대한 하얀 장벽을 앞에 두고 휴식한다. 약간 내렸다가
만년설 같은 설벽을 오른다. 이 걸음이 마침내 지난겨울의 끝물이라니 한 걸음 한 걸음을 아
껴 걷는다. 이정표가 반기는 주릉에 올라서고 곧 응봉산 정상이다. 정상 공터는 따스한 봄볕
이 가득하다. 삼각점은 청일 303, 2005 재설.
9. 직골 지계곡 주변
10. 직골 지계곡 보리밭
11. 직골 지계곡
12. 우리의 현재 위치는?
13. 응봉산 북릉 오르는 길
14. 응봉산 정상에서
15. 산행 중 전망은 고작 이 정도다
우리나라 산 이름에 매를 붙인 매봉, 매봉산 또는 응봉, 응봉산이 무척 많다. 매가 그 산에 살
았기도 했고, 그 산에서 사냥을 하려고 매를 놓기도 했다. 박성태의 「신산경표」(2004)에
의하면 남한에 113개로 제일 많다. 수리봉은 ‘수리’라는 우리말이 가장 우두머리라는 뜻도
있어 응봉산의 부류에 포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리봉은 33개나 된다. 그 다음으로 같은
이름이 많은 산은 국사봉(84개), 봉화산(79개) 순이다.
오늘은 응봉산을 제대로 대접한다. 홍탁을 마셔준다. 이제는 국립공원에 가서 탁주를 마시면
5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니 더 맛이 좋다. 응봉산을 동쪽으로 크게 원을 그리듯이 돌아
원점인 직동 마을로 내린다. 왼쪽 발은 겨울을, 오른쪽 발은 봄을 간다. 내리막은 아주 고역
이다. 낙엽 밑이 빙판이어서다. 너나없이 괴성 지르며 엉덩방아 찧어댄다.
한난고 견딘 만리 발청향을 맡느라 양지바른 오른쪽 사면을 누비며 간다. 뚝 떨어졌다가 한
피치 곧추 오르면 Y자 능선 분기봉인 853m봉이다. 왼쪽으로 간다. 오늘처럼 산에 와서 산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드물다. 미세먼지가 약해졌지만 근처의 공작산, 대학산, 발교산, 병무산
이 내내 키 큰 나무숲에 가렸다. 비슷한 표고의 봉봉을 오르고 내린다. 무릇 세상살이가 그렇
듯 산도 오르기보다는 내리기가 더 조심스럽다.
715.6m봉을 넘고 북진한다. 하늘높이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 숲길을 간다. 소나무가 병에 걸
렸는지 상당수는 죽었고 죽어간다. 소나무는 죽어가면서도 꿋꿋한 그 기품을 잃지 않는다.
687.7m봉에서 곧장 가면 솔재이고, 우리는 왼쪽(서쪽)으로 방향 튼다. 암릉과 만나고 메아
리대장님의 척후로 오른쪽 사면을 트래버스 한다. 가파른 사면을 오금저리며 한 발 한 발 옮
긴다. 이러느니 차라리 직등하는 편이 나았다.
임도가 가까웠다. 절개지는 깊은 절벽일 것이라 미리 사면을 길게 돌아 지능선을 잡고 다시
산모롱이를 겨냥하여 낙엽 수북한 사면을 직하로 쏟아져 내린다. 우리 발걸음에 사태 지는
낙엽과 함께 내린다. 임도. 산모퉁이 세 군데 돌아 완만해진 능선마루와 만나고 맥을 놓을 때
까지 내린다. 자작나무, 잣나무 숲을 지나고 농로다.
직동 마을의 농사는 주로 비닐하우스에서 짓는다. 마을에 꽉 찬 구린 계분냄새를 맡으며 한
참을 걸어 나와 아까 2부 산행을 시작했던 다리 위다. 3부 행사가 남았다. 홍천으로 간다. 러
시아에서는 민중의 의사로 첫 번째는 바냐(banya, 사우나)를, 두 번째는 보드카를, 세 번째
는 생마늘을 꼽았다. 우리와 얼추 비슷하다. 우리는 가까운 홍천에 가서 천년암반사우나를
한 후에 생더덕주를 마시며 구은 삼겹살에 생마늘을 함께 먹을 것이다.
16. 응봉산 동릉
17. 응봉산 동릉 북사면
18. 소나무 고사목지대
19. 등로 주변의 소나무
20. 등로 주변의 소나무
21. 하산 길의 자작나무 숲 앞에서
22. 하산 길의 자작나무 숲
첫댓글 건강3합이라, 그래도 등산 자체가 있어야 조합이 완성되겠지요? 함께 다닐 수 있어 더 좋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가은님과 구당님..무척 반가웠어요.
여기저기에 봄내음이..곧 꽃이 피면 산에들에 향연이 되겠다는 함박웃음을..
산불난것도 아닌듯한데 단체로 소나무가 죽었다면 병충해일듯한데...걱정이네요 홍탁에 덕산명주라...아침부터 생각나네여
오지합(더덕주+겹살+싸우나) ...죽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