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 동방의 에페소가 되어라
에페 3,2-12; 루카 12,39-48 /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2024.10.23.
모든 민족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라는 예수님의 선교 명령은 사도 바오로에 의해서 서방으로 먼저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본산은 예루살렘에 이어 소아시아의 에페소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은 에페소에서 로마로, 다시 온 유럽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동방으로도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본산은 한국 가톨릭교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황청과 아시아 교회 주교들의 일치된 여망입니다. 한국 가톨릭이 명심해야 할 시대의 징표가 이것임을 이미 대희년 당시부터 지금까지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한국 가톨릭 선교 2백주년을 맞이하여 개최된 전국 사목회의의 의안을 비롯하여, 대희년 직전에 개최된 아시아 주교 특별 시노드의 건의안을 바탕으로 작성된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적 권고인 ‘아시아 교회’가 그 근거입니다.
오늘 미사에서 루카 복음사가가 보도하는 제12장은 일흔 두 제자를 이스라엘 방방곡곡으로 파견하시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게 하신 예수님께서 복음을 듣는 메시아적 백성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가장 강조하시는 바는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루카 12,40) 하는 말씀으로 나타나는 시대의 징표에 관한 수칙입니다. 성령께서 이 징표를 통하여 교회에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을 조심함으로써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고, 나눔을 통한 가난한 이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일은 그 징표의 초점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께서는 교회와 믿는 이들을 하느님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집사에 비유하셨습니다. 슬기로운 집사라면 그 재산을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고 처분해야 마땅합니다. 재물뿐 아니라 시간과 기회, 이 모두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랑의 자산입니다.
복음의 상황이 이스라엘 안에 흩어진 메시아적 백성을 상정하고 있다면, 오늘 독서인 에페소 편지는 이스라엘을 넘어 에페소를 비롯한 로마 제국 세력권 내로 널리 퍼져 나가고 있는 교회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남쪽에 위치한 에페소는 당시 로마 제국 내에서 식민도시에 불과했지만 항구라는 입지조건과 로마와 동방 지역 사이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로마보다도 더 로마적인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그 때문에 소아시아와 그리스 일대를 돌아다니며 선교하던 사도 바오로가 가장 시간과 노력으로 공을 들여 복음을 전한 곳이기도 합니다. 3년에 걸친 제2차 선교 여행 일정 중에 무려 2년 반 동안 머물렀습니다. 당시 에페소에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숭배하는 우상숭배가 창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축제가 열리면 로마 제국 각지에서 로마 시민들이 몰려와서 황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고 축제가 끝나면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작게 만든 모형을 선물로 사 가는 것이 풍습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이 풍습을 보고 사도 바오로는 격분하여 우상숭배 풍습을 비판했고, 그러자 은으로 이 여신상 모형을 만들어 큰 돈을 벌던 데메트리오스와 그 동료 은장이들은 바오로를 고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원형극장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하도 혼란스러워 에페소 시장은 사도 바오로를 보호하려고 감옥에 가두어 두게 됩니다. 사도행전 제19장의 기록입니다.
에페소 감옥에 2년 반 동안 갇혀 답답한 선교 활동을 하게 된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코린토 교우들에 보내는 편지 두 통을 비롯해서 필립피 교우들과 필레몬과 갈라티아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써서 보냈습니다. 옥중에서 고생하며 편지를 써 보내는 사도 바오로를 돕기 위해서 필립피 공동체가 에바프로디토스를 보내어 돌보아 준 데 대해 감사하며 그도 역시 에바프로디토스를 필립피 공동체로 돌려보내면서 자신이 데리고 있던 디모테오도 필립피 공동체의 교역자로 봉사하도록 파견한 때도 에페소 감옥에 갇혀 있던 때였습니다. 몸이 자유로왔던 시절보다 더 활발한 선교 활동을 하게 된 까닭은 그 동안 만들어 놓은 선교 네트워크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필리피 교회의 리디아가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한 노력도 숨은 공로였을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에 뿌린 복음의 씨앗은 그가 로마로 가서 순교한 이후 사도 요한에 의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도 요한은 에페소에 머물면서 그 인근 여섯 교회, 즉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디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그리고 라오디케이아 교회 신자들을 다스렸습니다. 요한 묵시록은 로마 당국의 박해로 파트모스 섬에 유배된 사도 요한이 이 일곱 교회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쓰여진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박해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묵시문학적 표현을 써서 묵시록으로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두 사도의 선교 노력을 통해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일대에 뿌리내린 복음은 후일의 역사를 거쳐서 로마를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담고 있는 계시를 시대의 징표를 통해 깨닫고 수용하는 선교적 노력은 이제 한국의 가톨릭교회와 신자들을 통하여 북녘을 비롯한 동북 아시아에로 퍼져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프란치스코, 두 교황의 한국 방문에서 한민족과 한국 가톨릭에 보낸 메시지가 이를 여실히 증명합니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활력이 밑거름 되어 동북아시아의 복음화를 바라는 교황청의 오랜 희망이 빛을 보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할 선교적 소명을 일깨워야 할 때입니다. 주어진 기회와 은총 그리고 자원을 적절히 활용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슬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를 파견하십니다. 한국 가톨릭이 동방의 에페소가 되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