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이며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 임재연습'이란 책을 많이들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저도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열심히 찾던 시절 읽어보았는데, 사실 무슨 뜻인지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 것이 영광의 소망이며 그분은 완전한 내 영을 보시며, 365일 24시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내 쪽에서 인식하는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연습"으로 번역이 된 것이 좀 아쉬운데, 원제에 쓰인 단어, practice는 연습으로도 번역될 수도 있지만 실제 그 책의 제목에서는 "실행"이란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지 않으시지만, 그런 것처럼 미리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함께하시니 그 진리를 붙잡아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전에도 한번 나눴듯, 항상 배에 힘을 주고 있으면 건강에 좋은데 힘을 주다가도 어느새 스르르 풀려버리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인식해도 어느새 그것을 잊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여기에 대해 다윗이 주는 팁이 하나 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시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저는 다윗이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약의 사람인데 너무나 많은 것을 계시로 깨달았던 사람이죠. (그러면서도 동시에 엄청난 죄를 짓기도 하고요)
다윗은 자기가, 자신의 선택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 앞에 모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8절의 뒷부분만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오른쪽에 계신 듯이 읽히기 때문에, 다윗만 특별히 선택을 받은 것 같이 보이지만 이것은 그분을 자기 앞에 모시기로 한 다윗의 선택이었습니다!!!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제 탁자에 앉아 있는데 제 앞에 왕이신 예수께서 계시록의 모습으로 앉아 계신 것을 그려봅니다.
(계 1: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제가 구글에서 아무리 검색해 봐도 이 예수님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이 없고,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할 뿐이라서 제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레고 지저스"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정말 말씀 그대로 잘 표현했습니다.
일곱 촛대, 발에 끌리는 옷, 금띠, 흰머리, 불꽃 같은 눈, 빛나는 주석 같은 발까지!! 그리고 오른손의 일곱 별, 입에서 나오는 칼, 해처럼 빛나는 얼굴.... 다만 폭포 소리(많은 물소리)와 같은 음성만 표현이 불가능 했을 뿐, 정말 너무나 잘 표현했습니다. 물론 저의 상상 속의 예수님은 이것보다 더 멋지시지만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레고 장난감이니까 어색할 수 있지만 그런 것을 떠나, 내가 상상하는 예수님이 복음서의 예수님인지 아니면 계시록의 예수님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내가 그리는 예수님의 모습이 십자가 지시기 전, 부활 승천하시기 전의 모습이라면 예수님의 과거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현재 모습은 계시록에 기록된 모습입니다.
다윗이 본 예수님의 모습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는 예수님의 모습은 이 땅에 육신으로 오셨던 그 모습이 아니라 계시록의 모습, 즉 부활 승천 하신 뒤의 모습입니다. 계시록의 이 모습을 무섭다, 어쨌다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밧모섬에서 고난 겪던 요한을 찾아오신 모습은 바로 이 모습입니다. 즉 예수님의 이 모습을 무서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마귀·사탄이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의 비밀을 하나 알게 되셨습니다. 다윗과는 정반대 성향인 저에게 그는 정말 연구 대상이지만, 그러면서도 저에겐 다윗이 참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다윗이라 할 수 있는 사도 요한은 다윗이 항상 앞에 모셨던 주님을 정말로 직면했었고 그 모습은 계시록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었으니 우리는 그 모습을 그리며 우리 앞에, 우리의 오른편에 항상 그분을 모시면 됩니다. 두 사람이 우리 대신 숙제를 다 해줬으니까요!
이 예수님을 본 자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역사의 기록에 보면 요한은 끓는 기름에 던져졌는데 하나도 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이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 역사의 기록을 믿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다니엘의 세 친구가 결박된 채 일곱 배로 뜨겁게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졌었지만, 탄내조차 나지 않았습니다(단 3:27). 그 비결이 뭘까요? 바로 이것입니다.
(단 3: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바로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하신 예수님의 임재입니다. 너무 놀랍죠!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 예수님이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들에겐 함께 하실 뿐 아니라 아예 안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골 1:27)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것이 느껴지지 않고 내게 감동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가 아닌 게 아닙니다. 제가 너무나,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사실 중 하나는 우리 한국교회 성도들은 "느껴지는 것이 실제"라고 속아 있어서 하나님을 감정적으로 만나려 하고,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말씀에 기록된 진리를 실제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즉 믿음이 아닌 느낌을, 진리가 아닌 자기 경험을 우상화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오직 말씀만이 진리고, 나의 현실이고, 나의 실제임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제 영 안에 있는 그 실재(實在, '실제'와 다름. 아래 참고)를 내 혼과 육으로 끌어낼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영광의 소망을 그려보아 그분의 임재가 실제 하는 하루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실제; 있는 사실이나 현실 그대로
실재; 실제 존재함 또는 실제 존재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