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제주도 꿈에 본 한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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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16:21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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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본 한라산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제주에 살면서도 한라산을 바라만 보고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마음으로만 오르고 항상 그리워만 하는 한라산을 꿈에 오르면서 만났던 여인에 대한 글을 남긴 사람이 조선 선조 때의 문신인 조성립(趙誠立)이다.
그는 1604년에 제주구황어사로 제주에 와서 수많은 굶주린 사람들을 구했으며 『제주객사동헌기』를 지은 사람이다. 조성립의 글은 몽환적이면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제주문화원』이 펴낸 『증보탐라지』에 실려 있다.
샛별오름
제주시 서남쪽에 위치한 샛별오름. 멀리서 보면 작은 산처럼 둥그렇게 오름이 형성되어 있다.
꿈에 내가 한라산 정상에 가서 도착했는데, 갑자기 몸이 가볍게 들려지는 느낌이 들고 나는 듯 걸음걸이로 휘청거리니 종들이 따라오지 못했다. 나 혼자서 혈봉(穴峰, 한라산 정상의 솥오름) 위를 돌아다니는데 잠깐 사이에 흰 구름이 바위 밑에서 일어나면서 앞뒤를 휘감아 돌아갈 길을 잃고 말았다. 정신이 피로하고 기운이 나른하여 바위에 기대어 앉았는데, 갑자기 화관을 쓰고 보석 띠를 찬 어떤 아름다운 여인이 사뿐하게 앞에 와서 환한 모습으로 절을 하며 말하기를, “옛님께서는 별고 없으셨습니까” 했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 답례를 하고는, “반평생 속세의 나그네로서 요행히 선구(先驅, 신선이 사는 세계)를 밟아 구경을 하면서도 은근히 두려웠는데, 지금 옛날의 임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매우 의심이 듭니다. 원컨대, 한 말씀 해 주시어 풀어 주십시오” 했다.
그 여인이 웃으며 말하기를, “번뇌가 이미 고질이 되어 전생의 인연도 알아보지 못하는군요. 지금 여러 말씀 마시고 당장 부용성안에서 옛날처럼 구경이나 하시지요. 상청군(上淸君)께서 그대가 수만 명의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들으시고 첩(妾)을 보내어 감사를 드리고, 향소반과 구슬 몇 개를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고 했다.
드디어 소매 속에서 맑은 구슬을 찾아 꺼내는데, 붉은 배와 같은 것 9개와 백옥 같은 것이 3개였다. 그걸 주면서 “그대로 하여금 이 복을 다 누린 후에 옛집으로 돌아가시도록 하였습니다”고 했다.
주고받을 때 그녀의 손톱을 보니 옥과 같은데 길이가 한 치가 남짓했다. 나는 평소 등에 부스럼을 앓았다. 내가 꼭 한 번 긁어달라고 했더니 여인은 기꺼이 따라주었다. 깊었던 병이 완전히 나았고, 갑자기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된 것 같아 함께 어울려 한가롭게 지내다가 잠깐 사이에 손을 들어 작별을 고하고 떠나가니 구름과 안개가 따라 펼쳐졌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고 다만 검은 학이 보이는데 ‘까르륵’ 길게 울면서 서쪽으로 날아갔다. 급히 소매 속의 구슬을 더듬어 보았으나 사라졌고, 등 위에 긁힌 자국만 지금도 어제와 같으니, 아! 이상하도다. 그래서 한 절구를 읊어 산을 구경한 자취를 남기노라.
부용성(芙蓉城) 속 꽃밭에서 헤어지니
상전(桑田)이 동해(東海) 되도록 몇 번이나 물결이 뒤집혔나
이번에 선녀를 영주(瀛洲) 길에서 만나
등에는 선녀의 손톱에 긁힌 자국만 남았네
들꽃과 한라산
창천리 쪽에서 바라본 한라산. 옆으로 길게 늘어선 한라산 백록담이 모자가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꿈에 본 한라산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7 : 제주도, 2012. 10. 5., 신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