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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鷄肋)
닭의 갈빗대라는 뜻으로,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을 비유한 말이다.
鷄 : 닭 계(鳥/10)
肋 : 갈비 륵(月/2)
(유의어)
양수집병(兩手執餠)
출전 : 후한서(後漢書)의 양수전(楊修傳)
이 성어는 닭의 갈비뼈는 먹을 것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부위이다. 어떤 것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위(魏)나라 조조(曹操)가 촉(蜀)나라 유비(劉備)를 치기 위해 한중(漢中)으로 진격했다.
操收兵於斜谷界口扎住.
조조는 사곡(斜谷)의 입구에 주둔했다.
操屯兵日久, 欲要進兵, 又被馬超拒守, 欲收兵回, 又恐被蜀兵耻笑, 心中猶豫不決.
그런데 둔병을 한 지 오래되자 군사들을 진격시키자니 마초(馬超)가 굳게 지키고 있고, 군사들을 거두어 돌아가자니 촉나라 병사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마음속으로 망설이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適庖官進鷄湯. 操見碗中有鷄肋, 因而有感於懷.
그런데 마침 취사병이 닭국을 들여왔다. 조조는 그릇에 있는 닭갈비를 보고 마음속에 어떤 느낌을 받았다.
正沉吟間, 夏侯惇入帳, 禀請夜間口號.
조조가 머뭇거리고 있는데 마침 하후돈(夏侯惇)이 군막에 들어와 야간 군호(軍號)를 물었다.
操隨口曰, 鷄肋, 鷄肋.
조조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계륵이라고 해, 계륵.”
夏侯惇傳令衆官, 都稱鷄肋.
하후돈이 모든 군관들에게 계륵이라고 명령을 전달했다.
行軍主簿楊修, 見傳鷄肋二字, 便敎隨行軍士, 各收拾行裝, 準備歸程.
행군주부(行軍主簿) 양수(楊修)가 전달된 계륵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 수하 군사들에게 짐을 꾸려 철수를 준비하게 했다.
有人報知夏侯惇, 惇大驚, 遂請楊修至帳中間曰, 公何收拾行裝.
어떤 사람이 하후돈에게 이를 보고하자 하후돈이 크게 놀라 양수를 군막에 불러 물었다. “공은 어찌하여 짐을 꾸렸소?”
修曰, 以今夜號令, 便知魏王不日將退兵歸也.
양수가 대답했다. “오늘 저녁의 군호를 보고 위왕께서 불일간에 군대를 물려 돌아가시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鷄肋者, 食之無肉, 棄之有味.
계륵이란 것이 먹자니 살점이 없고, 버리기에는 맛이 있는 것입니다.
今進不能勝, 退恐人笑, 在此無益. 不如早歸.
지금 진격하자니 이길 수가 없고 물러가자니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 두렵고, 그렇다고 여기 그대로 있자니 이익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일찌감치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來日魏王必班師矣.
故先收拾行裝, 免得臨行慌亂.
아마 내일 위왕은 분명 군사를 되돌릴 것입니다. 그래서 떠날 때 허둥대지 않기 위해 먼저 짐을 꾸린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삼국연의(三國演義) 제72회에 나오는데, 이의 전고가 되는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무제기(武帝紀)의 배송지(裵松之) 주(注)에서는 구주춘추(九州春秋)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時王欲還, 出令曰, 鷄肋.
官屬不知所謂. 主簿楊修便自嚴裝.
이때 왕이 돌아갈 생각을 하고 계륵이라는 영을 내렸다. 관속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몰랐으나, 주부 양수는 즉시 행장을 꾸렸다.
人驚問修, 何以知之.
사람들이 놀라 양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알았소?”
修曰, 夫鷄肋, 棄之如可惜, 食之無所得. 以比漢中, 知王欲還也.
양수가 대답했다. “닭의 갈비는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게 없는 것으로, 한중 땅에 비유할 수 있어 왕께서 되돌아 가려고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과연 조조는 며칠 뒤 철수 명령을 내렸다.(▶ 노우지독(老牛舐犢) 참조)
이처럼 닭의 갈비는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이라는 말에서 계륵이 유래했다.
마치 닭 갈비를 씹는 것 같다는 뜻의 여작계륵(如嚼鷄肋)이라고도 한다.
흔히 삼국지에 나오는 말로 잘못 알고 있는 이 말의 출전은 후한서의 양수전이다.
계륵(鷄肋)에는 두 가지 고사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후한서(後漢書) 양수전(楊脩傳)의 것이다.
한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양수는 재능을 믿고 오만한 인물로 묘사되며, 조조의 심기를 여러 차례 건드린 끝에 계륵 사건을 계기로 군심을 소요하게 한 죄목으로 참수되었다.
또 다른 정사(政史)에서는 조조가 한중에서 철수한 지 몇 달 뒤에 양수가 군기를 누설하였다는 이유로 처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하나는 晉(진)나라 초기의 죽림칠현(竹林七賢)가운데 한 사람인 유령(劉伶)이 술에 취하여 행인과 말다툼을 벌인 데서 유래한 것이다.
만취한 유령이 행인과 시비를 벌이던 중 상대가 주먹을 치켜들고 달려들자 유령은 점잖게 말했다. '나는 닭갈비처럼 연약한 몸이라서 그대의 주먹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소.'
이에 사내는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계륵(鷄肋)은 별로 쓸모는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것과 닭갈비처럼 몸이 허약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계륵(鷄肋)
버리기도 취하기도 아까운 것들
삶은 늘 선택이다. 어제의 선택으로 오늘의 내가 있고, 오늘의 선택으로 내일의 내가 있다.
현자는 중한 걸 취하고 사소한 걸 버린다. 어리석은 자는 반대다. 우자(愚者)는 이익을 위해 몸을 버리고, 권력을 위해 ‘나’를 버린다. 사소한 걸 취하고 중한 것을 버린다.
한데 살다보면 취함과 버림의 선택이 수시로 애매하다. 버리자니 아깝고 취하자니 이익이 손톱만한 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인을 쳐다본다. 나를 어쩔거냐고.
계륵(鷄肋)은 누구나 아는 고사성어다. 말 그대로 닭(鷄)의 갈비(肋)니,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왠지 좀 아까운 거다.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그렇다고 팽개치기는 아까운 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난처한 상황이다.
중국 후한시대가 저물어 가고 삼국시대에 접어들 무렵, 한중(漢中)은 위나라 조조와 촉나라 유비의 각축장이었다. 토지가 비옥하고 생산물이 풍부해 향후 ‘땅 싸움’을 가늠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유비가 한중을 공략해 조조가 아끼던 장수 하후연을 죽이고 성을 차지했다. 격노한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한중 수복작전에 나섰다. 한데 유비측 방어는 철벽이었다. 식량은 줄어가고, 병사를 마냥 한중에만 배치할 수도 없고, 조조의 고민은 깊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조조의 저녁으로 닭국이 올라왔다. 조조는 먹자니 먹을 게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닭 갈비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때 하후연의 형 하후돈이 그날 밤 암호를 물으러 왔다. “계륵으로 하게.” 조조가 툭 던졌다.
군의 행정 실무를 맡은 양수(楊修)가 그 말을 전해 듣고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챘다. “조만간 한중에서 철수할 터이니 미리 짐들을 챙겨놔라.”
병사들이 그 까닭을 물었다. “닭 갈비는 먹을 게 없지만 버리기도 아깝다. 주군께서는 돌아가기로 결심하신 것이다(及操自平漢中,欲因討劉備而不得進,欲守之又難為功,護軍不知進止何依。操於是出教,唯曰「雞肋」而已。外曹莫能曉,修獨曰:「夫雞肋,食之則無所得,□之則如可惜,公歸計決矣。」.”
조조는 자신의 심중을 귀신처럼 꿴 양수를 ‘군심 교란죄’로 처형하고 태연히 철수했다. 후한서(後漢書) 卷54 ‘양수전’에 나오는 얘기다.
계륵은 몸이 마르고 허약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명인 유영(劉伶)이 술에 취해 시비를 걸었다.
화가 난 상대가 주먹을 휘두르자 유영이 천연덕스레 말했다. “워낙 닭갈비처럼 연약한 몸이라 당신 주먹을 받아낼지 모르겠소.”
맥이 빠진 상대는 그만 웃고 말았다. 둘 중 하나만 웃어도 싸움은 거기서 끝난 거다(嘗醉與俗人相忤,其人攘袂奮拳而往。伶徐曰:「雞肋不足以安尊拳。」其人笑而止).
진서(晉書) 卷049에 전해오는 얘기다.
취함과 버림에 정석은 없다. 동일한 중량도 처지에 따라 느끼는 무게가 다르다. 나눌까 독식할까 갈등할 때는 나누고, 참을까 욱할까의 순간에는 참고, 손 잡아줄까 그냥 지나칠까 고민될 때는 손 잡아주고, 그만 먹을까 한 수저 더 먹을까 망설일 때는 그만 먹어라.
그게 행복하고 가치 있고 건강한 삶을 사는 선택의 지혜다. 남의 속을 들여다 보려고 애쓰지 마라. 깊은 연못의 물고기까지 들여다보는 눈은 독이 되기 쉽다.
눈이 너무 밝아 스스로의 몸을 해친 자들은 역사에 무수하다. 어디서든 계륵은 되지 마라. 이왕이면 누구나 선호하는 닭다리, 닭 가슴살이 되어라.
계륵(鷄肋)
계륵은 닭갈비를 뜻한다. 닭갈비는 살이 별로 없고 갈비뼈만 많아 뜯어 먹을 것이 별로 없어, 먹지 않고 버리려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것이 없다. 그래서 대충 뜯어 먹고 버린다. 이 말은 어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대충 정리하고 마무리하자는 의미로 쓰인다. 또 보잘 것 없는 자가 함부로 덤벼든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1. 지도자의 언행
예나 지금이나 최고통치자(군주, 대통령, 전장에서의 장군, 등)의 말과 행동은 그 하나하나 모두가 정치적 의미를 담는다. 최고통치자가 설령 사적인 대화에서 농담조로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이나 행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듣고 보는 국민과 주변 인사들은 정치적 의미로 해석하게 된다. 따라서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늘 신중해야 하며 그 파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국가 1호 영업사원’임을 자처하면서 나라 경제를 살리고 미래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외교에 심혈을 기울이며 소연하였던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노력하고 미국과의 동맹관계의 확고한 구축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국정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있으며 여당의 지지율 또한 오르지 않고 있다. 그뿐 아니라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 대하여 논란이 많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대통령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 그리고 국민의 다양한 반응을 생각하지 않는 직선적인 의사결정과 외교 정책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진심을 국민이 알고 이해하며 지지해줄 날이 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정치에 있어서 지도자의 말과 의사결정, 명령은 직설이 좋을까? 비유가 좋을까? 직유가 좋을까? 은유가 좋을까? 정치에서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정치적인 입장이 전혀 다른 정당과 지지자들에 의해서는 그들의 구미에 딱 맞는 말을 하지 않는 한 이래도 탈이 되고 저래도 탈이 된다. 반대편의 정치인과 지지자들은 어쨌든 문제 삼는다. 특히 지금의 한국 정치처럼 철저하게 진영으로 나뉘어져서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만약 그 반대편의 구미에 맞는 말을 하였다면 그것을 가지고 정치적 줏대 등을 운운하며 또 가십거리로 삼을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정치에서 정치 지도자인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항상 정치적 진영 논리에 의해 달리 해석되고 무대가 어디냐에 따라서 달리 춤을 추고 달리 해석된다.
정치인들과 극렬 지지자 혹은 극렬 반대자들은 대통령의 말을 왜곡되기도 하고 과대 해석하기도 하며, 때로는 날개를 달아 엉뚱한 의미로 퍼 나르기도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 시대에도 그랬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두고도 진영에 따라 말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아크부대를 방문하여 격려하는 가운데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란 발언을 두고 말이 많았다. 이때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은 직설이었다. 이 말은 상당한 파장이 일었다.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되었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앞두고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대만과의 관계를 두고 한 말인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 문제만이 아니고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서서 전 세계적인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한다.”는 말을 두고 중국의 심한 반발을 샀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세계에는 오직 하나의 중국만 있다. ... 대만은 중국 영토의 일부이다. ... 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국 자신의 일이다. 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할 수 없다. 부용치훼 (不容置喙)”고 반발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입에 담을 수 없는 발언을 했다. .. 중국의 국격을 의심케 하는 외교적 결례”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 같은 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관련 질문에 대해서 “대규모 민간인 공격이나 학살, 심각한 전쟁법 위반 상황이 있다면 인도적, 재정적 지원만 고집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발언에 대하여 일각에선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에서는 “전쟁 개입”이라며 반발하였다. 이에 대통령실은 “우리가 어떻게 할지는 러시아에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러시아 외교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어떠한 무기 제공도 반(反)러시아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며 반발 수위를 높였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대답”을 했을 뿐이라고 응수를 했다. 이를 두고 국익에 도움이 되느니 되지 않느니 하는 반응이 엇갈리며 다양한 해석과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야당 일부에서는 ‘참전하려는 의도냐’며 왜곡 비판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출국 전에 워싱턴포스터(WP) 기자의 인터뷰에서 말한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한 파장은 아직 식지 않고 반정부 투쟁의 빌미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주어가 없다”고 하면서 “주어를 일본으로 봐야 한다.” “영문 번역 과정에서 주어가 빠진 것인데 야당이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4월 24일 WP 미셰 예희 리 기자가 25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오역 논란과 관련 녹음을 확인했다”면서 윤 대통령이 “100년 전에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으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하여 야당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 “국민을 상대로 독해력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옳지 않다”는 등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러한 일련의 설화(舌禍)는 야당과 재야 진보 단체들이 현 정부를 더욱 압박하게 만드는 씨앗을 뿌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것들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상당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어느나라 지도자가 정신 나가지 않은 이상 국민이 버젓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익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에 고개를 숙일 수 있을까? 특히 한국의 경우 일본에 대하여.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 최고통치자의 말과 행동은 어떤 뜻으로 어디서 했건 모두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고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특히 야당과 비판적 국민에게 빌미를 주는 것은 삼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을 무시하면 엉뚱한 저항을 받아 국정 운영에 상당한 차질을 초래할 수 있으며 지지율 하락과 정권 교체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지도자의 말과 행동에는 정치적 비유와 은유, 유머가 매우 필요하다. 아무리 언변이 좋고 자신이 있어도 준비되고 다듬어지지 않은 말과 행동은 실수를 저지르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현실과 같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까지 진영 논리에 빠져 상대 진영에게는 옳고 좋은 일도 폄하하고 가차 없이 비판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조조가 한중을 버리고 철수하려고 할 때 남긴 말인 계륵(鷄肋)이라는 말을 새겨보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2. 계륵(鷄肋)에 얽힌 역사적 사연
계륵(鷄肋)이라는 말은 그 유래가 중국에서 십상시의 득세로 망국의 길을 걸었던 한나라 말기 조조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 후로도 여러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조조에 얽힌 이야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의미가 크다.
중국의 한나라는 십상시들의 득세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각 곳에서 황건적을 토벌하겠다고 군웅들이 득세하여 일어났다. 그 군웅들은 초기에는 황건적을 토벌하고 나라와 백성들의 안정된 삶을 이룩하겠다는 대의로 출발하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각기 대의를 표방하면서도 스스로 패자가 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패자가 촉(촉한)을 세운 유비, 위(조위)를 세운 조조, 오(손오 혹은 동오)를 세운 손권이었다. 여기서 조조와 유비는 흥미진진한 대결 상대였다.
유비, 조조, 손권의 삼국이 정립되기 직전 이를테면 후한의 헌제 24년이었다. 유비는 익주(益州)를 점령하자 전세에 날개를 달았다. 유비는 여세를 몰아 황충과 조운에게 한중(漢中)을 향해 진격하도록 했다. 유비는 드디어 한수(漢水)에 이르렀다. 이에 조조는 서황과 왕평을 보내 대적하도록 했다. 유비 또한 황충과 조운을 보냈다. 황충과 조운은 협공하여 서황을 무찔러 대패시켰다. 서황은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
서황은 왕평에게 ‘왜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왕편은 서황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패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격분한 서황은 왕평을 죽이려고 했다. 위기에 처한 왕평은 그날 밤에 군영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 한수를 건너 유비의 장수 조운에게 투항해 버렸다. 싸움에 패한 서황은 돌아와 조조에게 ‘왕평이 도망쳐서 유비에게 항복했다.’고 전했다.
조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유비를 잡는 자에게는 서천 땅을 몽땅 주겠노라’고 까지 하면서 군사들의 사기를 진작했다. 하지만 유비의 유능한 책사인 제갈량이 쓰는 의병계(疑兵計)에 속아 요충지인 남정마저 빼앗기고 양평관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에 제갈량은 여세를 몰아 장비와 위연으로 하여금 조조의 군량 보급로를 차단하도록 하였으며, 황충과 조운에게 산에 불을 질러 모두 태우도록 했다. 특히 조조는 허저에게 군량과 말먹이를 지키도록 했으나 술이 취해 있는 상태에서 장비의 습격을 받아 이를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조조의 군대는 군기가 문란해 있었고, 서로 화합되지 않았으며, 사기가 떨어지고 도망병이 속출하기에 이르렀다. 조조는 극도의 외로움에 빠졌다. 그러나 유비의 군대는 제갈량의 용의주도한 계책과 장수들의 협공으로 사기가 날로 높아갔다.
퇴각을 거듭한 조조는 몇 번의 전투를 더 치렀으나 모두 패하여 양평관을 버리고 야곡 어귀까지 도망쳤다. 다행히 조창이 군사를 이끌고 마중을 나오는 바람에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조조는 고뇌에 빠졌다. 그러나 장수들은 모두 조조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조조는 고뇌끝에 저녁을 먹다가 한마디 툭 던졌다. “계륵(鷄肋)이로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을 헤아리는 장수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양수만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행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장수들이 양수에게 묻자 양수가 이렇게 대답했다. “계륵(鷄肋)이라. 닭 갈비는 먹으려고 하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깝습니다. 지금 전투에 나아가도 승리할 수 없고 물러나도 비웃음거리만 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여기 더 있어 봐야 이득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돌아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내일 왕께서는 틀림없이 철수 명령을 내리실 것입니다.”
양수가 짐을 꾸리자 장수들도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조조는 드디어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조조는 매번 자신의 계획이 양수에 의해 미리 들통이 나는 것이 몹시 불쾌하게 여겼다.
원래 양수는 홍농(弘農) 사람으로 고겸(考兼)에 의해 조조에게 천거되어 낭중(郎中)을 거쳐 주부(主簿)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는 상당히 영특하고 재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조조의 측근에서 수수께끼의 명수로 알려진 사람이었다. 학문도 어지간하였으며 꾀가 많은 것으로 유명했다. 강남(江南)에 갔을 때 조조와 비(碑)에 얽힌 은어를 풀이할 때였다. 그때 양수는 막힘 없이 글자를 풀어냈다. 그러나 조조는 쩔쩔매다가 풀어냈다. 그때 조조가 양수에게 “나의 재주는 너보다 삼십리는 뒤떨어지는구나”하고 탄식했다.
양수는 전에 관도의 전투에서 크게 패하여 하북(河北)의 실권을 조조에게 빼앗긴 원소(袁紹)의 아우인 원술(袁術)의 생질이었다. 그러니 조조에게는 그리 탐탁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뒷날 조조의 둘째 아들을 위나라 왕자로 옹립하기 위해 왕래하였던 일로 모함을 받았다. 이에 조조는 지난날의 불쾌함도 있고 하여 양수를 처형해 버렸다.
여기서 세 가지 의문을 가져본다.
첫째 조조가 유비에게 한중 전투에서 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조의 군대는 늘 유비의 군대보다 강했다. 삼국지에서 나관중 등은 유비를 덕치자(德治者)로 조조를 간사한 자로 묘사하지만, 조조는 지략이 뛰어나고 임기응변에 능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조조는 한동안 오만해졌으며 자기의 분노와 서운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을 지녔다. 그런 과정에서 조조의 군대는 군기가 문란해지고 이탈자가 생겼다. 어떤 나라든 아무리 강성하여도 내분이 일어나고 이탈자가 생기면 전쟁에서 패하고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조조는 한중을 유비에게 빼앗긴 후 계속 밀려 북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둘째 조조가 양수를 죽인 데 대하여 어떤 이는 조조의 잔인함을 논하지만 대체로 양수의 사람됨을 두고 말한다. 양수는 똑똑하였지만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기가 잘 아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을 지녔다. 양수의 그런 성품은 주군인 조조 앞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비(碑文)에 얽힌 수수께끼 풀이에서도 그랬고 계륵(鷄肋)이라는 말에서도 그랬듯이 주군을 곤란 상황에 빠뜨렸다. 그래서 조조는 양수를 죽일 때 계륵을 먼저 해석하여 철수 준비를 한 것을 두고 군기를 어지럽게 하였다는 죄목까지 씌웠다. 그래서 삼국지의 다른 저자 모종강은 조조를 간악한 자로 말하지 않고 양수를 정직하지 못한 약은 처세가로 취급하였다. 이를테면 양수는 죽을 짓을 하였다는 것이 된다.
셋째, 유비는 왜 한중을 손에 넣고자 총공격을 가했을까? 한중은 어떤 곳일까? 사실 한중을 손에 넣은 유비는 그 후로 전세가 날로 확장되어 갔다. 한중(漢中) 땅은 말 그대로 한나라의 중심이란 의미를 지닌다. 항우와 싸워 세운 유비 현덕의 한나라 이후 많은 인물이 이곳에서 배출되었다. 특히 유방이 항우와의 전투에서 지고 감금된 곳도 한주이었으며 최종적으로 항우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세운 곳도 한중 땅이었다. 따라서 한나라 황실의 직계 후손임을 내세운 유비에게 한중은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조조에게 있어서 한중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나아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또 한중은 관중 지방과 중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교두보였다. 거기다가 한중은 지리적으로 사방이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로 가운데 한수(漢水)가 흘러 농업 등 물자의 생산이 풍부한 곳이었다. 조조는 한중을 잃었기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유비는 한중을 얻었기에 전세가 매우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전략적 요충지 확보는 항상 중요하다.
어쨌든 조조가 한중을 포기하고 철수하기 전에 계륵(鷄肋)이라고 한 말에는 양수의 해석처럼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명분을 얻고 전열을 재정비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 외에도 계륵(鷄肋)이라는 말은 신체가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을 비꼬아 하는 말로 통하였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대표로 알려진 유령(劉伶)이란 사람이 술에 잔뜩 취해서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다가 어떤 남자와 부딪쳤다. 남자는 술에 취한 유령을 노려보면서 시비를 걸었다. 유령이 건들거리자 남자는 팔을 걷어 올리고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유령은 정신을 차리고 뒤로 한참을 물러서다가 한마디 했다. “그대는 몸꼴을 보니 닭의 늑골과 같이 초라한 것 같은데 주먹을 휘두르니 내 그대의 주먹은 사양하겠습니다.”하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자 민망했는지 그 남자는 한바탕 웃고 난 후 주먹을 거두었다(진서晉書 유령전劉伶傳)
3. 계륵(鷄肋)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
지도자의 직설적인 발언은 정책과 방향의 명확성을 보여주지만 때로는 상황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최고통치자의 발언에는 은유와 유머가 깃들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정치적 언어는 유머’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위대한 지도자의 언어에는 항상 은유와 유머가 깃들어 있다. 은유와 유머가 뛰어난 정치가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은 자주 언급된다. 지도자의 정치적 언어에 은유와 유머가 깃들 수 있음에는 여유와 겸허의 지혜가 묻어나기 때문에 아름다워진다. 그러나 직설의 언어에는 언어 습관도 있지만 지나친 자신감의 발로에 의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후에 조카와 부하들이 장군을 칭송하자 이순신 장군은 “천운(天運)이니라”라는 한 마디로 일갈하였다. 그 말속에는 명량해전의 승리가 자신의 뛰어난 지휘력과 전략 때문이 아니라 하늘이 도와준 덕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장군의 겸허함과 신중함과 은유가 담겨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장군이 올곧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하늘이 도운 것이다. 이 말속에는 장군을 포함한 병사와 백성들까지 모든 사람이 합심하여 전투에 임했기에 하늘이 도운 것이라는 공동노력의 결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최고통치자인 왕이나 대통령의 언어는 모두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그의 말과 행동은 모두 신중하여야 한다. 그래서 지도자는 수사법을 익혀야 한다. 그리고 국민과 주변인들 또한 그것을 두고 입빠른 소리로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곤란하다. 모든 정치적인 언행의 결과는 뒤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입빠른 칭찬과 비판이 뒷날 맞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당시 야당 지도자들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면 나라 재정이 고갈되어 망한다고 드러눕기까지 했다. 그러나 뒷날 경부고속도로는 우리나라 발전의 동맥이 되었다. 옛날 인천공항을 건설할 때 전문가라는 환경학자 등은 영종도 앞바다에는 새들이 너무 많아 그들이 서식처를 잃을 것이며 새들로 인해 비행기가 수없이 추락할 것이라고 극구 반대했지만 지금 인천공항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허브공항이 되었다.
조조의 말처럼 세상 많은 것들이 “계륵(鷄肋)이로다” 계륵(鷄肋)에 담긴 글자의 의미만 따질 일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사연과 교훈도 새겨볼 일이다.
▶ 鷄(닭 계)는 ❶형성문자로 鶏(계)는 통자(通字), 鸡(계)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조(鳥;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奚(해, 계)로 이루어졌다. 새벽을 알리는 새(鳥)의 뜻이 합하였으며 닭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鷄자는 ‘닭’을 뜻하는 글자이다. 鷄자는 奚(어찌 해)자와 鳥(새 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奚자는 상투를 손으로 잡은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닭 볏으로 응용되었다. 사실 갑골문에 나온 鷄자는 좀 더 직관적이었다. 닭 볏과 다리, 꽁지까지 그대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도 이것이 닭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소전으로 넘어오면서 닭의 볏은 奚자가 대신하게 되었고 隹(새 추)자가 더해지면서 볏이 있는 새를 뜻하는 雞(닭 계)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해서에서는 隹자가 鳥자가 바뀌면서 지금은 鷄자가 ‘닭’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鷄(계)는 ①닭(꿩과의 새) ②화계(花鷄: 되새. 되샛과의 겨울 철새) ③폐백(幣帛)의 하나 ④성(姓)의 하나 ⑤현(縣)의 이름 ⑥산(山)의 이름 ⑦물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닭의 알 달걀을 계란(鷄卵), 닭의 울음을 계명(鷄鳴), 닭고기를 계육(鷄肉), 닭을 가두어 두는 장을 계사(鷄舍), 닭과 개를 계구(鷄狗),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의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의 계구(鷄口), 사내끼리 성교하듯이 하는 짓을 계간(鷄姦), 밤눈이 어두워 밤에 사물을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을 계맹(鷄盲), 닭을 잡아서 그 뼈나 눈을 보고 치는 점을 계복(鷄卜), 닭이 새벽을 알림을 계신(鷄晨), 닭고기를 넣고 끓인 국을 계탕(鷄湯), 닭의 갈빗대라는 뜻으로 먹기에는 너무 양이 적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을 계륵(鷄肋), 닭의 주둥이라는 뜻으로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를 이르는 말을 계구(鷄口), 닭의 무리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의 무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계군(鷄群), 독서하는 방을 계창(鷄窓), 닭을 기르는 일을 양계(養鷄), 집에서 기르는 닭을 가계(家鷄), 닭을 잡아서 죽임을 도계(屠鷄), 싸움 닭을 투계(鬪鷄), 썩지 아니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장을 빼고 털을 뽑고 얼린 닭을 동계(凍鷄), 묵은 닭을 노계(老鷄), 때 아니게 낮에 우는 닭을 오계(午鷄), 어미 닭을 모계(母鷄), 털이 흰 닭을 백계(白鷄),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으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뛰어난 한 사람을 계군일학(鷄群一鶴), 닭의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인물을 계군고학(鷄群孤鶴),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으로 복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만나도 덕을 못 본다는 말을 계란유골(鷄卵有骨), 동쪽 닭과 서쪽 개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뜻으로 닭 우는 소리와 개가 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하여 인가가 잇대어 있음을 계견상문(鷄犬相聞), 닭이 울고 개가 짖는다는 뜻으로 인가나 촌락이 잇대어 있다는 계명구폐(鷄鳴狗吠),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의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으로 천한 재주를 가진 사람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계명구도(鷄鳴狗盜), 닭 울음소리를 묘하게 잘 흉내 내는 식객을 계명지객(鷄鳴之客),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뜻으로 큰 단체의 말석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말을 계구우후(鷄口牛後), 닭 울음의 도움이란 뜻으로 어진 아내의 내조를 계명지조(鷄鳴之助), 살갗은 닭의 가죽처럼 야위고 머리칼은 학의 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늙은 사람을 계피학발(鷄皮鶴髮), 닭과 돼지가 한데 어울린다는 뜻으로 같은 고향 사람끼리 서로 친목을 도모함을 계돈동사(鷄豚同社), 닭과 집오리가 먹이를 서로 먼저 먹으려고 다툰다는 뜻으로 여염의 사람들이 서로 다툼을 계목쟁식(鷄鶩爭食), 닭 대가리는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남의 위에 서야지 남의 꽁무니에 따라 다녀서는 안됨을 계시우종(鷄尸牛從), 몸이 쇠약해서 침상에 기대어 몸을 지탱함을 계골지상(鷄骨之床), 다른 사람의 권세에 빌붙어 승진하는 것을 계견승천(鷄犬昇天), 맨드라미 열매의 과육이라는 뜻으로 여성의 젖가슴을 계두지육(鷄頭之肉) 등에 쓰인다.
▶ 肋(갈빗대 륵/늑, 힘줄 근)은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육달월(月=肉; 살, 몸)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力(력; 륵)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肋(륵)은 갈빗대, 늑골(肋骨; 흉곽을 구성하는 뼈), 힘줄(근)을 말한다. 용례로는 흉곽의 내면과 폐의 표면 및 횡격막의 윗면을 덮고 있는 얇은 막을 늑막(肋膜), 체조에 쓰는 기구의 하나로 늑목(肋木), 등뼈와 가슴뼈에 붙어 흉곽을 형성하는 활 모양의 뼈를 늑골(肋骨), 갈빗대의 사이를 늑간(肋間), 갈비뼈가 부러짐을 절륵(折肋), 소 갈비를 우륵(牛肋), 외상이나 결핵균의 감염으로 늑막에 생기는 염증을 늑막염(肋膜炎)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