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지(神誌) 전자(篆字) 의 초기 모습이 바로 위 그림 맨 왼쪽의 낭하리 암각화이다.




『태백일사(太白逸史)』「대변설大辨設」의 주(註)에 이르기를 “남해현 낭하리에 계곡 바위 위에 신시의 고각(古刻)이 있다. 그 글에 환웅천황께서 사냥 나왔다가 제(祭)를 삼신께 드렸다고 했다.” 그 개량된 형태가 1942년에 발행한 영변지에 실려 있다.
大辨說註曰 南海縣 郎河里 之溪谷巖上有神誌古刻 其文曰 桓雄出獵致祭三神 又曰 大始傳古只憑口舌久而 後乃形以爲畵 又復畵變而爲之字盖文字之原...



고조선(단군조선)이 개국되기 훨씬 전인 신시배달 건국 때부터 우리 민족은 이미 문자생활을 영위하였고 그 종류도 다양했다.





배달국 환웅천황은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 神誌文字)을 창제하였다.
BCE 3900~ 3800년경에 창제된 이 녹도문은 이집트 상형문자(BCE 3000년경), 수메르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rm script, BCE 3000년경)보다 몇 세기 앞서는 세계최초의 문자이다.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기록에 보면 환웅천황께서 신지(神誌: 벼슬이름)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의 글로써 천부경(天符經)을 기록케 하였다고 한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녹도(사슴 발자국 모양)란 문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와 더불어 오은(五隱)중에 한사람인 농은(農隱)민안부(閔安富)의 유집에서 발견된 천부경(天符經)

농은(農隱) 민안부 선생은 본관이 여흥으로 고려말 송경(지금의 개성)에서 살면서 예의판서를 지냈다. 이때 1375∼1388년(고려 32대 우왕)에는 고려의 국운이 기울어지던 시기이다.
농은 민안부는 -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야은 길재, 수은 김충한과 더불어 6은(六隱)으로 불리었던 충신으로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신하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며 두문동(杜門同)에 은거한 72현 중의 한 사람이다.
갑골문자 ‘천부경(天符經)’발견, 단군 . 환웅 실재성 높아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에 의하면 5세 태우의 환웅천황의 막내아들 태호 복희씨가 녹도문을 개량하여 용서(龍書)를 만들고 이것을 주양(朱襄)씨가 육서(六書)로 남겼다고 한다(朱壤仍舊文字而始傳六書). 이것이 이른바 삼황오제시대의 상고금문(上古金文)이다.






한자의 뿌리가 된 세계최초의 문자 녹도문
고대문명의 중요한 조건이 문자의 사용이다. 문자는 살아있는 유물이다. 살아 꿈틀거리는 고대유물인 동시에 그 변천 과정이 역사라 할 수 있다.
동아시아지역에서 문자가 창제되기 전에는 주로 결승문자(結繩文字: 노끈문자)가 사용되고 있었다. 이것은 남미 인디언, 잉카제국에서도 통용되었다.
최근 중국 곳곳에서 은나라 갑골문 이전의 문자들이 발굴되고 있는데 이것을 집중 연구한 중국학자 낙빈기(駱賓基)는 자신의 저서 금문신고(金文新攷)에서 상고금문이 한민족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사실을 밝혀내고 그 문자들을 만들어 사용한 주체가 한족(漢族)이 아니라 동방 조선족이라고 단언하고 있다.(김대성 엮음, 금문의 비밀 참고)
상고금문은 은(殷)나라의 갑골문(甲骨文), 주(周)나라의 대전(大篆), 진(秦)나라의 소전(小篆)을 거쳐 한조(漢朝) 때 한자(漢子)로 완성되었다.
배달국에서는 숫자로서 산목(算木)이 통용되었고 14세 자오지 환웅천황 때는 화서(花書: 佃目)가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자오지 환웅천황의 동방통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전부터 개량돼오던 신지문자(녹도문)가 중원에도 전해졌는데 이것이 바로 창힐문자(倉頡文字: 鳥跡書)다.


현재 창힐의 고향 백수현 사관촌(산동반도 지역)에서는 창힐문자가 발견되고 있다. 좌측 사진의 있는 창성조적서비(倉聖鳥跡書碑)에 새겨진 글이 창힐문자다.
창힐은 황제헌원의 신하로서 새 발자국을 보고 문자(鳥跡書)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자오지 환웅천황의 제후(諸侯)로서 배달국 문자(鹿圖文)를 서방에 전하여 동서문화 통합을 시도한 동이족이었다.
창힐문자가 배달국 녹도문과 모양이 같은 것은 이 때문이다. 창힐문자는 복희 주양씨 이래 중원지역에서 사용되던 옛 문자(六書)와 뒤섞여 은나라 갑골문의 뿌리가 되었다.
갑골문자는 동이족인 은나라 사람이 만들었지만 현대 중국어의 어순과 비슷하다고 한다.
당시 중국은 화하족(중국 한족)과 동이족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한족(漢族)의 언어체계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한글의 원형은 고조선(단군조선)의 가림토문자



『단군세기檀君世紀』 3세 단군 가륵(嘉勒)조와『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을 보면, 단군 가륵 2년(BCE 2181)에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이 정음 38자(字)를 창제했다는 기록과 함께 글자의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세종실록 25년 12월조에 “이 달에 임금께서 언문 28자를 지으시니 그 글자는 고전(古典)을 모방하고 있다(其字倣古篆)”라고 하였고, 최만리의 상소문에도 “글자의 모습은 옛 전문을 모방했지만 음을 쓰는 것과 글자를 배합한 것은 다 옛것과 반대이다(字形 倣古之篆文, 用音合字 盡反於古)”라 하여 예전의 전서를 모방했음을 밝히고 있다.
가림토 문자는 고조선(단군조선)시대와 열국시대 초기에 한민족이 일본열도로 이주하면서 현해탄을 건너갔다. 일본 역사의 초창기를 일본서기에서는 신대(神代)라고 부른다. 이 무렵에 일본열도로 유입된 문자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신대문자라 부르고 있다.
일본의 수많은 신사(神社)에는 신대문자가 새겨진 명문과 비석이 많이 남아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와 더불어 일본 고대사의 귀중한 사료라 할 수 있는 고사기(古事記)는 백제인 태안만려(太安麻呂)가 완성한 것인데 원래는 신대문자로 표기된 것이었다.
가림토 문자는 기원전 21세기경 인도로까지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송호수 교수가 인도 구자라트 지방(인도 서북부지역)에서 그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문자가 한글과 거의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국내에 보고한 바 있다. 여기에 많은 학자들이 주목했다.
오늘날 구자라트주에는 주로 드라비다인(Dravidian)들이 거주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까지도 우리와 흡사하다고 한다.
가림토 문자가 인도로 건너간 계기는 무엇일까?
단군세기에 의하면 5세 단군 구을 임금 때 신독(身毒: 인도)사람이 표류하여 동쪽 바닷가에 도착했다고 한다. 당시 인도에는 게르만계 백인인 아리안족이 아닌 인더스문명의 주인공 드라비다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지중해 인종(그리스인)과 유사한 혈통과 신화를 갖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드라비다인의 프로메듀 신화와 동일하다고 한다. 아울러 거석문화도 공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에 사는 드라비다인은 최근의 연구결과 한국인과 공통의 유전자가 발견된다고 한다. 다른 드라비다인과 달리 언어까지 비슷해서 무려 6백 개가 넘는 단어가 같다.
그 실례를 든다면 ‘엄마, 아빠, 오빠, 다리, 벼, 메뚜기(드라비다어 메디), 쌀’ 등이다. 여기서 ‘쌀과 메디, 벼’라는 단어는 고조선과 인도지역간의 농경문화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서는 아낙네들이 빨래 방망이로 세탁을 하는 모습, 조랑말 같은 조그만한 말들도 보인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고조선의 풍속과 과하마(果下馬, pony)가 건너갔기 때문이다.
충청도 제천지역의 고인돌에서는 드라비다인으로 추정되는 장두형 인종의 인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인도 구자라트문자는 훗날 산스크리트 문자의 일부로 변형되었고 이것은 다시 티벳문자가 된 뒤 원나라 승려 파스파에 의해 몽골문자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시대 몇몇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범자(梵字)나 몽자(蒙字)라 착각한 것이다.
2007년 KBS 역사기행 ‘고구려 음악 대탐사’편에서는 우리 음악의 기원을 찾으러 인도를 탐험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을 통해 본 인도 남부 드라비다족은 그들이 발음하는 타밀어가 한국어와 매우 유사한 단어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영상에서 리포터는 인도 드라비다 족에게 “아버지를 뭐라고 부릅니까”라고 질문하자 ‘아빠’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를 뭐라 부릅니까”라는 질문에는 “엄마”라고 대답한다. 이어 명사 “나라, 나”뿐만 아니라 우리 말 “오다, 보다” 등 동사도 비슷한 발음이 많았다. 실제로 인도 남부 드라비다족 타밀어와 한국어는 비슷한 단어만 1300여개로 알려져 있다.
이에 김성호 박사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한국어와 드라비다어는 친족관계를 나타낸다”고 주장하며 증명 자료를 첨부해 설명했다.
출처: http://www.newspim.com/news/view/20141229000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