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갈등의 나라입니다. 갈등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한국의 갈등의 깊이는 너무 깊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전세계 학자들도 한국의 갈등의 원인과 그 파급에 대해 대단한 관심과 연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 가운데 통계청이 이번에 조사한 한국 사회지표가 대단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조사한 것을 보면 보수와 진보를 둘러싼 한국 사회 갈등 인식률(중복 응답)이 무려 83%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인들의 거의 대부분이 보수와 진보의 갈등 즉 보혁갈등을 한국 사회가 지닌 가장 대표적인 갈등으로 꼽았습니다. 그 다음이 빈부의 갈등 76%, 근로자와 사용자 갈등 즉 노사갈등이 69%, 개발과 환경 보존 갈등이 61%, 세대 갈등이 55%로 조사됐습니다.
평소에도 한국에서 보혁 갈등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고 판단했지만 실제로 통계치로 나타나니 더욱 마음이 착찹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이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이 듭니다. 한반도는 1917년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날 때만 해도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당시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일본에 유학을 간 인물들이 그쪽에서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 접하고 학습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한반도 즉 일제 강점기하에서 무슨 보수나 진보라는 개념이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공산 혁명이 성공을 하자 상황은 변합니다. 일제 강점기하에 있었던 조선 백성들 가운데 지식인 그룹들은 새로운 물결에 흡수되기 시작합니다. 일제의 혹독한 압박속에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이념이 그들의 뇌리를 자극한 것입니다. 일제의 통치가 끝나면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깊은 연구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대한 독립군 가운데서도 소련에서 활약한 인물들은 아무래도 공산주의적인 사고를 접할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거주했던 인사들과 중국에 거주했던 인사들 그리고 러시아에 거주했던 인사들이 해방 한국으로 밀려들어 옵니다. 그들은 각각 자신들이 배우고 익힌 그런 이념을 이땅에 뿌리내리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이 부딪히게 됩니다. 대혼란기가 일어납니다. 백주대낮에 서로 치고 받고 격한 대립을 이룹니다. 제주도와 여수 그리고 순천에서는 이념대결을 빙자해 피를 부릅니다. 대규모 집단 학살이 자행됩니다. 그리고 닥친 한국전쟁은 그야말로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의 대결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의 대리전 양상 아니였습니까.
3년간의 기나긴 전쟁후 휴전은 이뤄졌지만 전쟁의 비극만큼 짙게 이념의 상흔이 깊게 내려져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희생자 유가족들은 그야말로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정권을 잡은 세력들이 제일 먼저 반공을 국시로 내걸었습니다. 때려잡자 공산당이 온 국민의 구호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도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가르쳤습니다. 이승만 정권에 이어 박정희 정권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산당 때려잡자는 기치아래 무고한 사람들도 간첩으로 몰아 처형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북한인들을 포함한 민족이니 북한 동포니 이런 단어조차도 일반인들은 감히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실패한 서울의 봄 이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빨@@라고 하면 모든 것이 끝나버렸습니다. 정권에 반기를 들면 무조건 북한동조 세력으로 몰아 붙였었습니다.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도 무조건 북한 동조세력으로 취급했습니다. 학교에 미술시간에 때려잡자 공산당 표어를 그리면서 누가 가장 리얼하게 묘사했는지로 대상이 결정되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주민주화운동 배후에 북한 동조세력이 있다고 아직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아닙니까. 북한 동조는 이땅에 자신들의 반대세력을 몰아붙이는 전가의 보도역할을 했습니다. 뭔가 새롭게 개혁을 하자거나 불합리한 제도를 고쳐보자고 하면 저 세력은 진보이고 그래서 북한 동조세력일 것이다 그렇게 한 것 아닙니까. 물론 민주주의 보루라는 미국에서도 매카시즘이 광기를 부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1950년대 초 한국전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가 극을 이루자 미국의 상원의원인 매카시가 미국안에도 곳곳에 공산주의들이 존재한다며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벌였습니다.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세력을 공산주의로 몰아 매장시키려 한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을 지식인들을 대거 숙청하고 문화를 엉망으로 만든 미국판 문화대혁명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매카시즘이 한국에서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니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매카시즘 선봉자들이 한국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보수가 오로지 수구적인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아니듯이 진보는 공산이념이 아닙니다. 진보는 정도나 수준이 차츰 향상하여 간다는 의미이지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입니다. 조금 불편한 것은 고치고 문제가 있는 제도도 개선해 가자는 생각입니다. 새로운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자는 성향이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보수는 새로운 것을 받아드리기 보다는 재래의 풍습이나 전통을 중히 여기고 유지하려고 하는 성향을 뜻합니다.오래되고 낡아 녹물이 나오는 아파트를 재건축하자는 측과 조그만 고치고 그냥 살자는 측과 흡사합니다.양쪽 모두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보수와 진보, 진보와 보수의 장점만 택하면 아마도 이 세상 최고의 덕목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지금도 한국과 북한이 서로 미사일을 겨냥하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세계 유일한 장소입니다. 북한에서는 민주주의체제를 갖춘 한국을 원수처럼 보고 있으며 한국도 공산주의에 독재주의까지 겸비한 북한을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속이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내에서까지 민주진영 공산진영 하는 식의 편가르기는 시대착오적일 뿐아니라 세계 경제력 13위국가에 K 팝을 비롯한 한류문화의 상징인 한국에서 아직도 그런 진영논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의 밤문화가 좋아, 한국의 드라마나 음악 그리고 음식이 좋아 찾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보혁갈등의 실상을 듣고 나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아십니까. 너무도 슬픈 현실입니다. 제도와 사회 문제점을 고쳐가자는 세력이 왜 공산주의자입니까. 사실 빨@@라고 표현하고 싶지만 아마도 AI가 대단히 거부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겠습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고 공산주의 소유자라는 표현은 침소봉대도 아니고 어불성설입니다. 또한 현재를 잘 유지하고 보전하자는 세력을 수구세력이라고 비하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아주 불편하고 성숙하지 못한 논리입니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새는 우측 날개와 좌측 날개로 날 수밖에 없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이땅의 극우와 극좌 세력들은 받아드리 않는 것입니다.
이번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의 갈등상황을 보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보수 진보, 진보 보수로 나뉘어 갈등을 빚으므로써 국민들 거의 대부분을 아주 불편하게 느끼게 할지 정말 답답하고 우려스럽습니다. 지금도 언론이나 유튜브 등을 봐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언행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습니다. 정말 이 나라 한국은 언제까지 이렇게 소모적이고 비현실적인 보혁논리에 갇혀 있어야 하나요. 이런 보혁의 갈등이 싫어 이민가려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그렇게 물려줄 것이 없어 보혁 갈등을 남겨줄까요. 이제 극우 극좌세력은 제발 자중하든지 이민을 가도록 권해드립니다. 하긴 정치인들이 오히려 그런 구도를 원하고 오히려 획책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이제 정치인들은 깨닳아야 할 것입니다. 그 오래된 구시대의 유물을 지상의 최대 덕목으로 생각하지 말고 대신에 이땅에 제대로 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보도록 힘쓰면 어떨까요. 예전 어느 군사독재자들이 정의사회구현이라는 표현도 사용했지만 정말 제대로 된 정의구현 사회는 얼마나 멋지고 괜찮을까요. 이번 통계청의 한국인 갈등 구도와 관련된 통계는 이땅에 현재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참 많은 생각과 느낌을 갖게 해주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이 보혁의 지긋지긋한 갈등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번 총선때부터 실천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2024년 3월 2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