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그러니까.. 이걸 이쪽으로 밀어넣고..."
현중은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었다.
스승으로 모시겠다던 로이드 정비공 김상욱의 잔심부름을 하며 오늘도 로봇구조의 기초를 다지고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인거 같군. 꾸준히 연구하다보면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되...그나저나 이것좀 봐줄래?"
상욱은 작업에 몰두하는 현중의 뒤쪽을 가로질러 창고문을 열었다.
"하루 하루 조금씩 네것으로 만들다 보면 언젠가는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흠..."
가방이 내려지는 묵직한 소리에 현중을 고개를 돌렸다.
"그게 뭐야?"
"흐흐흐. 나의 비밀 프로젝트이지."
그는 가방속의 물건을 들어 올려 작업 테이블 위에 앉혔다.
"너도 언젠가는 이런걸 만들 수 있게되."
"크헛!? 사람!? 여자!?"
현중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탁자위의 그녀앞에 섰다.
십대소녀의 모습을 한 이 안드로이드는 잠을 자고 있는듯 편안한 표정에 윤기나는 매끄러운 피부를 갖고 있었다.
"오~ 꿀꺽. 나체라니... 정교한데...너무나 예뻐. 이런 소녀의 모습이 형의 취향이란건가...? 로리타증후군이로군."
상욱은 조심스레 그녀를 품에 안았다.
"크헛! 뭐 뭐하는거야? 여기서."
"케이블 연결."
그는 로이드를 안은채로 그녀의 뒷목에 위치한 허브에 R-45커넥터를 꼽았다.
상욱에게 안긴 로이드는 아직 반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상욱의 세심한 작업에 약간씩 흔들리고 있었고
현중은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침이나 닦아라. 민감한 물건이니 나 없을때 손대지 마라."
"이거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거야?"
"이거라니. '희진'이라고 불러. 기대하시라!"
오퍼 보드에서 실행 명령을 내렸다.
그녀는 살짝 꿈들 하더니 눈을 떠 주변 상황을 인식하려는듯 보였다.
너무나 순수한 표정에 맑은 눈동자는 두 남자의 영혼을 사로잡는데 충분했다.
"희진아 사랑한다!"
현중은 희진을 품으려고 그녀에게 뛰어들었지만 상욱의 손이 그의 얼굴을 막았다.
"감히 내 창조물에 고사리 손때를 묻히려 하다니. 참아야 하느니라."
"사랑한단 말이야. 형, 내 눈을봐 난 진심이라고!"
"스읍. 맞아야 정신차릴래?"
"사랑하는 희진씨 난 현중이라고 해 오현중!"
아둥바둥한 둘의 다툼에 희진은 살짝 미소짓는듯 보였다.
"웃었어! 날 보고 웃었다고! 웃었어!"
"저는 남자들을위한 로봇이군요."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슬슬 프로그램된 자신의 인격을 읽고 있어. 어때. 이정도면 최고 상품으로 손색이 없다. 때부자가 될 수 있겠지!? 하하하."
"끝내줘 최고야."
"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잘 될꺼야."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네 주인이 원하는 만큼, 사람들이 널 원하는 만큼 넌 살 수 있어."
희진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곧 울어버렸다.
"아. 아. 그렇게 슬퍼할 필요 없어. 오래 산다고 해서 네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진 않아. 안심하라고."
현중은 희진에게 일일이 대답해 주었지만 조금은 난감해 했다.
마치 갖태어난 아기가 세상과 자신의 유대를 감지하고 어떤 결론에 도달하여 슬픔을 느끼고 울음을 터뜨리는듯 보였다.
"세상사는게 뭐 다 그렇고 그런거라서 주변에 조금씩 맞춰주면서 네가 얻고 싶고 얻을 수 있는걸 얻으면서...
그래...행복하다고 믿고 살면 되는거지...캬...그래 행복 좋은거다 그거."
현중은 희진을 위로한답시고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상욱 역시 이같은 반응은 정상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음...버그인가!? 이런 느낌의 코딩은 아니었는데..."
상욱은 오퍼 보드로 다가가 손을 옮겼다. 종료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였다.
그러자 희진의 손이 상욱의 손을 뿌리치며 그를 멀리 날려버렸다.
"쿠오!"
"크헉. 뭐 뭐지!?"
현중과 상욱은 깜짝 놀랐다. 상욱은 팽개쳐 졌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은것 같았다.
그녀는 눈물을 멈추고 몸을 추스리더니 현중의 곁으로 다가갔다.
현중이 뒤로 조금씩 물러서자 희진의 커넥터가 뽑혔다.
- 젠장! 종료명령을 줄수 없게 됬어!
최근에 출시되는 안드로이드는 의체에 따로 전원을 설치 하지 않는다. 이런 작은 변화로 신형과 구형을 구분지었다.
"현중씨, 그렇게 저를 사랑해 줄 수 있다면...저와 결혼해 줘요."
"뭐. 뭐!? 헤헤. 뭐 나야 널 좋아하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넌 너무 힘이 쎈거 같아서 헤헤.
나는 아직 열 일곱이고 원래 청소년기에는 고민도 많고 조금은 난폭해 지는거래. 넌 아주 정상적이란 거지.헤헤헤."
현중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고."
그녀는 조금씩 주변의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다.
"결혼해. 당장! 하지 않겠다면...자폭해 버리겠다!"
"그래 현중아. 둘이 잘 어울리는거 같은데. 잘 된거 같다."
희진을 진정시키려는듯 상욱이 희진의 의중을 거들었다. 일단 안심시킨 후 기회를 봐서 그녀를 종료시킬 심산이었다.
"형! 형의 창조물이 지금 타락의 길을 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너는 이상황에... 자기주인을 내팽게치는 창조물인데."
"시끄럽다! 창조자고 주인이고 필요없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사랑이라고 내 메모리에 프로그램 되어있다.
거기다 내게 처음 고백한 현중은 사랑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첫사랑인 것이다!"
"고백...!?첫 사랑...!?그런것도 프로그램했어?"
"멍청아! 그런게 프로그램 될리가 없잔아!"
"그나저나 아까의 청순함은 어디간거야!? 청소년기의 다중인격을 경험하고 있는걸로 해석해야 하나...그래 알았어. 결혼할테니 그만 좀 부숴!"
"맹세하는거지?"
"맹 세!"
"야호! 결혼이다!"
결혼이란 인간의 번식활동중 예상되는 충돌을 막기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이다.
태초의 유전자는 보다 효율적인 자기 복제와 번식을 위해 인간이란 남여한쌍의 유기구조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쪽의 일방적인 번식시도는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발정기가 된다거나 특별한 물리화학적 현상만으로 번식활동을 하지 않는다.
아름다움 이랄까 끌림 이런 비과학적 조건을 통해 각유전자의 번식허용이 결정된다.
사람마다 자신의 이상형이 각각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를를 수 있듯이 결혼의 조건이란 순수과학의 영역에서 벗어난 비합리적 현상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조건과 현상들은 결국 개인적 만족에서 나오는 보잘껏 없는 가치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아주 하찮은 것일지라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저 현자의 지혜일런지도 모른다.
"에휴~도대체 너는 결혼이란게 뭔지나 알고 좋아하는거냐?"
"결혼? 음...사랑하는 사람들 끼리 하는거라고 나에게 프로그램 되어있어."
"끄으으으...내가 못살어... 그래... 언제나 단순논리에 폭력이 세상을 지배해 왔지."
희진은 즐거워 했지만 반대로 현중은 고개를 떨구었다.
"음...계산을 해보자. 현중이 희진을 갖게 되었으니 대금을 지불해야지..."
상욱은 계산기를 두들겨 보더니 손가락 다섯개를 폈다.
"그래! 반값에 줄께! 부품값도 안나오는거야...오천!"
"오천원이라..."
상욱은 고개를 저었다.
"오천만원."
"뭐야! 학생을 상대로 사기를 쳐! 학생이 오천만원이 어디있어!"
"안그러면 우리집은 파산이야! 이대로는 어디에도 팔 수 없어!"
"형도 반의 책임은 있다고!"
"그거 빼고 계산한거야!"
"뭐야! 도둑놈 같으니!"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둘은 다투고 있었지만 희진의 눈에는 여전히 행복하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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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 F
아이러브로이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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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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