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태극전사' 황선홍-홍명보 아듀! (2002년 11월 20일 국가대표 고별전)

황새’ 황선홍(34·전남)과 ‘흥부’ 홍명보(33·포항). 90년대 한국축구의 도전을 이끌며 21세기 첫 월드컵에서 당당히 4강신화를 열매맺는 데 앞장섰던 두 베테랑이 마침내 18·20번의 태극유니폼 등번호를 반납하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20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나란히 은퇴식을 하고 팬들에게 아듀를 고했지만 그들이 한국축구에 미친 짙은 그림자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단짝 친구로 10년을 넘게 국가대표팀에서 공수라인의 톱스타로 성가를 높여온 그들은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룬 2002년에 명예롭게 은퇴한다는 것에 가슴 뿌듯해 했다. ●우정의 그라운드 초등학교 5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것도 똑같다. 황선홍이 먼저 빛을 봤다. 건국대 2년 재학 때인 88년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해 12월 아시안컵 일본전에서 데뷔하자마자 데뷔축포를 쏘아올렸다. 홍명보는 2년 늦게 90년에 대표팀에 발탁됐다.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 막내로 출전하면서 우정이 깊어졌다. 91년 황선홍은 프로신인 드래프트를 거부한 뒤 포항에 입단해 독일에 축구유학을 떠났다. 홍명보는 상무를 거쳐 92년 역시 포항에 입단해 데뷔 첫해 MVP를 거머쥐었다. 93년 그들은 마침내 포항에서 의기투합했다. 그 뒤로 행로는 닮은꼴이었다. 97년 홍명보가 일본에 진출하자 황선홍은 이듬해 일본에 안착했다. 2000년 드디어 가시와 레이솔에서 다시 만났다. 지난해 말 홍명보가 친정팀 포항으로 복귀하자 지난 10월 황선홍도 옛 은사 이회택 감독이 있는 전남에 둥지를 틀었다. ●엇갈린 영광과 좌절 홍명보는 2002월드컵까지 한국선수로 A매치 최다 출장(134회) 기록을 세웠고 황선홍은 차범근(55골)에 이어 A매치 통산 50호골로 현역 최다골게터로 명성을 누려왔다. 하지만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두 스타의 운명은 대조적이다. 홍명보는 화려한 가도를 달렸지만 황선홍은 시련을 많이 겪었다. 90년 1월 대표팀 수비수들이 줄줄이 부상하는 바람에 대표팀에 전격 발탁되는 행운을 잡은 홍명보는 큰 역경 없이 세계올스타에 네 차례나 선정됐고 2002월드컵에서는 브론즈볼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누렸다. 반면 황선홍은 92년 십자인대 파열로 독일생활을 청산해야 했고 98월드컵에선 무릎부상으로 벤치를 지켜야 했다. 거의 2년에 한 번꼴로 악령처럼 찾아드는 무릎·발목·허리·어깨 부상과 싸워야 했다. 큰 대회를 전후로 아버지 할아버지 장인 등이 별세하는 아픔 속에 온갖 시련을 속으로 묵묵히 삭여야 했다. 2002월드컵 뒤 홍명보가 자서전을 내 베스트셀러가 되자 황선홍이 사석에서 던진 말이 이를 잘 대변한다. “명보는 한 권으로 되겠지만 제가 쓴다면 아마 몇 권은 돼야 할 거예요.” ●향후 청사진도 닮은꼴 두 스타는 90년 이후 12년 동안 모두 73차례 A매치에 동반출전하며 나중엔 태극전사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됐다. 황선홍은 2002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월드컵의 숙원인 첫 승을 예고하는 선제결승포를 터뜨렸고, 홍명보는 스페인전에서 4강위업을 달성하는 피날레 승부차기를 성공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그러나 2002월드컵 뒤 이들에게 시련이자 기회가 찾아왔다. 홍명보는 포항의 반대에도 미국 프로축구행을 관철해 내년에 새로운 곳에서 영어공부와 마지막 선수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가시와에서 전격 퇴진한 뒤 터키행을 거부한 채 전남에 입단한 황선홍도 미국행을 적극 추진 중이다. 친구따라 강남가는 것만은 아니다. 영어공부를 확실히 해 은퇴 뒤의 새로운 인생을 착실히 개척하기 위해서다. 홍명보는 국제축구연맹(FIFA) 축구위원회 멤버로 베켄바워 같은 축구행정가를 꿈꾸고 있는 반면 황선홍은 명지도자로서 포부를 키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