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31일 부산역 광장.
하늘로 솟구치는 분수의 물줄기와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생기로 차분히 술렁이는 곳......

분수 앞에서 꽃처럼 웃으며 사진 찍는 여행자들과 아이를 안은 채 한 때를 즐기는 사람들 보니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이 생각났다.
'행복한 가정은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부산역 한켠 공사장 차단벽 따라 걸려있는 나름나름이지도 않은 아프고 슬픈 이야기......
동시, 동화, 그림책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세월호 이야기 한뼘 그림책' 부산 전시회다.
부산진시장에 가서 검은천을 뜨서 힘들게 부착하고 1미터 크기의 작품 50여편을 걸었다.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하나하나 작품을 읽어 나가다가 선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수대 주변의 저 행복한 무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어떻게 한 순간 수심 40미터
캄캄한 바다에 갇혀버렸을까. 아이들은 목숨의 그 끝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눈물로 지울수 없는 슬픔......

안하기는 어렵고 하기는 쉽지.
자식이 죽은 까닭을 몰라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길바닥에서 밥 굶으며 생활하는 부모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는
아름다운 동시교실 작가들이 뜻을 모았다.

무슨 행사인지 말하지 않아도 환히 아는 아이들.
-힘내세요!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거예요. 조황미-
이렇게 쓰고 바다에 뜬 배 한척을 그린다.

쉽게 잊고 제 자리로 돌아간다면 다음 차례는 너희들과 나, 우리 모두가 되겠지...

연학초등학교 다닌다던가, 소영이. 내용과 글씨에 총명과 다부짐이...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간명한 글과 그림에 울컥 목이 멘다.
또래의 비극에 강물처럼 눈물 흘렸을테지...


부산역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분인듯, 술냄새는 풍겼지만 진지하게 쓴 글.
-정말 미안해.사랑해. 2014. 8.31-
그리고는 은반지를 기부하셔서 아니라며 한사코 돌려드리니 웃으며 하시는 말씀.
"3만원은 하는데."


빠듯한 기차시간임에도 발길 멈춰 마음 표현하는 시민들


부부인 듯한 이 두분은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하시며 시종 눈물 훔치셨다.
여자분은 엽서에 글을 쓰려다 도무지 못 쓰겠다며 우시고...
강기화씨도 돌아서서 같이 울고 있다.
한 작품 한 작품 눈물 닦으며 읽고, 사진 찍으시고, 오래 머물다가 가셨다.


급한 발길 멈추고 노란 엽서에 표현한 마음 한조각들





세월호에 조카를 잃었다는 분의 엽서

북콘서트 열리는 오후 여섯시가 가까워지니 낯 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역광장에 모여들었다.
부산역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연대단식 중인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짐도 맡아주시고, 엠프도 빌려주시고, 굶어서 기운도 없는데 성심껏 엠프 설치하시는 모습.
그 옆에서 동요부르는 김현수씨가 박일선생님, 이순영씨와 화음을 맞추고 있다.

이순영 작가는 오자마자 단식천막사에 가 앉아 있길래,
오리 새끼 물로 간다더니 하면서 웃었다.

동조단식중인 부산작가회 한 분이 김문홍선생님 손에 특별법 제정 촉구 펼침막을 들리고 찰칵.
김문홍선생님의 표정과 자세가 귀여운데(죄송) 도를 이뤄 경계가 없는 사람의 표정이 저러하지.

서녘하늘에 붉은 기운 퍼지는 오후 여섯시, '세월호 이야기 한뼘책 북콘서트' 문을 여는 김자미씨.
"지난여름 전국아동문학가들이 마음을 모아 세월호관련 한뼘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두번 다시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말자는 다짐입니다.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아이들 모두 환히 웃을 수 있도록 아름다운 동시교실에서 작은 힘을 모아
이 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 노래마냥 말하다가 목이 메어 눈물을 훔치고......

"저기, 하늘 한 번 보십시오...
여기 역광장에는 단식농성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는 모릅니다. 다만 죽은 시인이 아닌, 그들의 아픈가슴에 공감하는
살아있는 시인일뿐입니다."
아름다운 동시교실 박일 선생님이 뜻 있는 인삿말 뒤에 시 한편을 낭송하셨다.

지혜의 약속/정미희
"결혼기념일 아침에 꼭 전화할게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면서 지혜가 한 약속.
4월16일,
지혜의 전화는 오지 않앗다.
세월호가 서서히 바다로 가라앉을 때
팽목항의 바람은 두 뺨을 매섭게 스치고 지나갔다.
사고가 난 6일째 되는 날,
지혜가 돌아왔다.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전화하겠다는 약속도,
기념품을 사오겠다는 약속도, 조심히 다녀오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하략

테너가수 박찬 님의 절창 '대니보이'
부산역 넓은 광장과 저녁 하늘에 울려퍼지는 풍부하고 절절한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는 아이들을 부르는 호곡인듯 심금을 울렸다.

이어서 동시집 '수업 끝'의 하빈 선생님의 '어메이징 그래스'와 '섬집아기'연주.
하빈 선생님의 하모니카 연주는 더러 들었는데 오늘 연주는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
애절하고 정성이 느껴졌다.

"오늘이 세월호 참사 138일째입니다.
시인이 시를 쓰고 작가가 글을 쓰는 사회는 좋지 않은 사회입니다.
시인과 작가가 시대와 사회의 부조리와 불행에 가슴 아파하며 글쓰는 일 없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극작가이자 동화작가이신 김문홍 선생님이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고 시 한 편을 낭송하셨다.
사람은 배가 아니다/김하늘
배는 침몰할 수 있다
물건이라서
사람은 침몰할 수 없다
생명이라서
배가 침몰햇다고
사람까지 가라앉으면 안된다
배는 바다가 삼켰어도
사람은
사람이 가라앉혔다
배를 삼킨 바다는 가만 있어도
사람은 가만 있으면 안된다
배는 천천히 건져도
사람은 늦으면 안된다

유재은 어린이의 낭송, '난 꿈이 있는데'

'길고 긴 수학여행'을 낭송하는 강동혁 어린이

'플루트 비밀결사대'를 쓴 부산의 올곧은 동화작가 한정기씨가 '조마구를 이겨낸 사람들(임정자)'을
낭독하고 있다. 힘 있는 목소리로 생생하게 낭독하여 소름이 쭉 끼쳤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멈춰서 동참하고

사진을 찍고

김현수 동요작가의 기타반주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불렀다.
꽃밭에서, 나뭇잎배, 아름다운 것들...





짧은 시간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전시회.
옳은 것은 힘이 세고 ,좋은 일은 하고 보자는 사람이 많은 결과입니다.
물건과 경비와 노동, 무엇보다 말과 마음으로 지지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행사 마치고 많은 분들께 저녁밥 사주며 치하해 주신 한정기 동화작가님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첫댓글 인긴의 감정 중에서 제일 고차원적인 것이 '공감' 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같이 나눌 수 있는 분들, 멋지십니다.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덕분에 북콘서트를 멋지게 열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동시교실, 박일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는 회원님들....
시는 가장 높은차원의 문학이라지요.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그 높고 고결한 마음.
준비부터 끝마무리까지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아픈 몸으로 함께해준 소산님과 여러 후배들,
행사장의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해준 쿨맘님의 따뜻한 눈길도 감동입니다.
모두 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하루키는 "여기 단단한 벽이 있고, 거기 부딪쳐 깨지는 알이 있다면 전 늘 그 알의 편에 서겠습니다."하고
작가의 역할과 책무를 말했지만, 여러 동네의 무심함에 실망해 하던 몇몇이 메나리님 덕분에 큰힘 얻었다고
거듭 말하더라는...... 과연 행사장이 빛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