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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알이 살아있는 음녀
(출19,롬7 시내산에서의 결혼식)
1. 오순절에 토라를 받기 전에 스스로 성결케 하라
야훼 하나님께서 왜 토라를 받기 전에 옷을 빨고 성결하게 자신을 구별하도록 하셨을까?
옷을 빨라는 말씀은 바로 우리의 마음과 육체를 모두 정결케 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토라를 잘 듣고 지키면 거룩한 백성, 즉 성도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일까? 토라를 받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바로 토라가 거룩하기 때문이 아닐까? (출19:5~16)
2.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바울은 율법과 계명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고백한다. 그에 비해 자신의 육신은 죄의 법을 따르는 것을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속사람, 영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율법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은 바로 율법이다. (롬7:12~24)
3. 공의로 여호와 하나님과 결혼하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바알이 아니라 남편이다. 바알도 남편, 주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음란한 신의 이름 바알이 아니시다. 또한 여호와께서 공의와 정의로 우리와 결혼하셨다.
공의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이다. 그 뜻은 판결, 법령, 법 특별히 율법이다. 또한 정의는 히브리어로 쩨데크이다. 그 뜻은 올바름, 의로움, 공정함등이다. 즉, 의로움과 율법으로 우리와 결혼하셨다.(호2:16~20) 시내산에서 주신 토라(율법)로 우리와 결혼하신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은 결혼식의 절기이다.
4 옛 남편은 누구인가?
옛 남편이 아직 살아있는데 다른 남자 예슈아에게 가면 음녀이다. 여호와 하나님도 우리와 결혼하고 예슈아도 우리와 결혼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로움과 율법으로 우리와 결혼하심과 같이 예슈아께서도 의로움과 율법으로 우리과 결혼하실 수 있다. 3위 1진리 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여기서 죽어야 하는 옛 남편은 누구인가? 율법이 옛 남편인가? 4절에 보면 너희도 ... 죽임을 당하였으니 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우리가 죽는 것이다. 율법에 대해 죽는 것과 율법이 죽는 것은 다른 말이다 (롬7:1~4) 이게 무슨 뜻일까? 앞으로 살펴보자.
5. 간음하지 말라는 7번째 계명
예슈아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시면서 지옥에 대해 여러번 경고하셨다. 오른눈, 오른손이 범죄하게 하면 찍어버리고 천국에 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음행한 이유없이 아내를 버리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간음은 우리의 온 영혼을 지옥에 보낼 만큼 치명적인 죄임을 알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을 통해 간음할 수 있으며 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마5:27~32)
6. 음행과 음란은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
음행으로 쇠한 여인을 향해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공포와 약탈을 당할 것이고 칼로 죽임을 당하고 그 자녀들도 죽을 것이며 집은 불살라 질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땅에서 음란을 그치게 하고 그 행위를 본받게 못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보응을 받음으로 인하여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그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 죄를 갚게 하시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겔23:43~49) 음행과 음란은 분명 우상 숭배 죄라고 말하고 있다. 이 죄악은 내 몸을 어둠에 내어주는 것이고 성전을 온갖 가증한 것으로 더럽히는 것이다.
7. 음녀에게 영원한 심판이 있다
계시록에는 큰 음녀, 음녀들의 우두머리가 나온다. 음행은 땅을 더럽히고 그들이 받는 불의 심판으로 세세토록 연기가 올라갈 것이다. 음녀들의 머리는 가톨릭이고 그들은 진리가 없이, 거룩함이 없이 연합을 이끄는 자들이다. 그러나 음녀의 반대말은 신부이다. 신부들은 오직 옳은 행실로 옷을 입은 자들이다. (계19:2~8) 옳은 행실은 영어로는 의로움, 헬라어로는 법령이나 결정, 심판, 공의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율법과 의로움으로 옷 입은 자들이 바로 신부들이다. 다윗의 고백처럼 율법은 진리이다. (시119:142) 우리가 음행을 그치지 않는다면 이들과 함께 심판받게 될 것이다.
8 간음으로 이혼하게 되다
간음은 이혼 당할 수 있는 조건이 됨을 예슈아께서 말씀하셨다. 물론 여호와께도 간음은 죽을 수 있는 죄이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간음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이혼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냥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촉구하고 있다. 오직 죄를 시인하고 우상 숭배자인 이방인들에게서 나와 남편이신 여호와께 돌아오라 말씀하시면서 목자를 보내 지식과 명철로 양육하리라 약속하고 있다. (렘3:8~15) 이와 같이 율법은 죽이고 버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회개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간음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아주 큰 죄임을 알 수 있다.
9. 옛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예슈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럼으로써 얻는 것은 이제 더이상 죄의 종이 아닌 의의 종으로 사는 것이다. 그럼 옛 사람이 무엇일까? 이것은 옛 남편과 연결된다. 옛 남편이 죽는 것처럼 옛 사람이 죽는 것이다. 율법에 대하여 죽는 것이 우리가 죽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것이다. 여기서 율법은 죄가 아니다. 죄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세우고 우리의 죄성은 죽어야 한다. 즉, 옛 사람, 옛 남편은 우리의 죄성이고 바알이고 우상숭배인 것이다. 죄성이 죽으면 죄를 지을 수 없고 죄를 짓지 않으면 율법에서 자유해진다. (롬 6:6~18) 우리의 죄성을 죽이지 않고 불법한다면 우린 여전히 음녀이다.
10 옛 남편이 살아있으면 음녀이다.
땅에 있는 지체, 바알을 죽여야 한다. 옛 남편은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거의 모두 음행, 음란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이러한 죄들은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 여기서 생략된 구절이있다. 이러한 죄를 저지르는 불순종의 자녀, 불법한 자들에게 저주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골3:5,6) 그러므로 옛 남편이 있는 상태로 여호와께 갈 수 있고 예슈아께 갈 수 있다. 이러한 자들을 두 남편이 있는, 두 주인을 섬기는 음녀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우상 숭배자들은 눈이 어두워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마6:23)
11. 옛 사람, 옛 남편이 살아있는 사람
옛 남편이 살아있는 자는 분노하고 저주하고 악의를 가지고 비방하고 부끄러운 대화를 하게된다.
그러나 새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이 새로와져야 한다. 여기서 지식은 인식, 식별등의 뜻이다. 즉 머리가 바뀌어야 한다.(골3:7~11) 히브리적으로 마음은 가슴이 아닌 뇌에 있다. 즉, 지식과 생각이 성경적으로 바뀌어 이성적인 마음으로 정욕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거듭나는 것이다.
12 모세와 선지자들을 듣지 않는 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 완성되었다. 이 완성된 율법은 한 획도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간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바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율법과 선지자는 간음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전혀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말씀에 왜 간음에 대한 경고가 들어가 있을까? (눅16:16~31) 하나님의 법과 선지자들(예언의 영)을 거절하는 자는 영이 아닌 육신에 속한 죄의 종들이다. 이들이 곧 바알을 둔 옛 사람들이다. 즉, 영적으로 간음한 사람이고 이는 육신의 간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다시 말해 간음하는 자들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순종하지 않는다.
13 거룩함이 없이 주를 보지 못한다.
거룩함을 없이 아무도 주를 볼 수 없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정결함이 없이 셋째날을 맞이할 수 없었음과 같다. 그러므로 거룩함은 아버지 하나님께 가기 위해 너무나 중요하다. 그런데 거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쓴뿌리이다. 이로 인해 음행하는 자가 나오고 장자의 명분조차 멸시하는 자가 나온다. (히12:14~17)
14. 쓴 뿌리는 무엇일까?
쓴 뿌리는 내적 상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쓴 뿌리는 신명기 말씀에 하나님께서 하신 저주의 말씀을 듣고 비웃고 무시하는 자들을 말한다. 불순종하면 저주가 되고 순종하면 축복이 된다는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한다.
이런 자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러워지고 음행하는 자와 우상 숭배 자들이 생기는 것이다.(신29:18,19)
15. 경건한 자손을 위해 한 아내만 주셨다.
말라기에 여호와께서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 이유에 대해 나온다. 그것은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제단을 가리기 때문이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거짓되게 행함으로 아내들이 여호와께 흘리는 눈물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이혼하는 것과 아내를 폭행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왜 아담에게 한 아내를 주셨는가? 그분은 성령으로 충만한 아버지신데 말이다. 그 이유는 경건한, 거룩한 자손을 세우기 위하심이다. (말2:13~16)
16. 창조때부터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다.
예슈아께서도 동일한 증언을 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이혼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창조 때부터 남편과 한 아내를 지으셨다. 그리고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막10:2~9)
그러나 왜 아브라함이나 야곱, 많은 왕들이 여러 아내들을 두는 것을 책망하지 않으셨을까? 왜 죄로 명시하지 않으셨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룩한 자손을 위해 하나만 창조하셨다고 말씀으로 명시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17. 부부의 비밀이 크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다. 이것은 메시아께서 교회의 머리임과 같다. 그러므로 아내들은 주께 하듯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이다. 메시아께서 왜 자신을 주시면서까지 교회를 사랑하셨을까? 이유는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 위함이다. 아무 흠이 없게 세우기 위함이다. 남편도 이와같이 죽기까지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교회 거룩한 교회로 세워지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을 미워하고 낮은 자존감에서 오는 세워줌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면서 메시아처럼 아내를 양육하고 보호한다면 그렇게 세워질 것이다. 이것이 부부의 하나됨의 비밀이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한다. 자신을 세워줄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이기 때문이다. (엡5:22~33)
18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끌고왔다. 그 이유는 예슈아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 율법에 의하면 돌로 치라고 되어있는데 예슈아께서는 분명 율법대로 말씀하실 것이고 이것을 꼬투리 잡아 예슈아를 비난할 목적이었다. 그러나 예슈아는 오히려 죄가 없는 자가 그녀를 먼저 정죄하고 돌로 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녀를 정죄할 수 없었다.(요8:3~11) 이 말씀으로 아무도 죄를 꾸짓지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죄를 꾸짓는 것과 자신이 심판을 내리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예슈아께서도 다시는 죄를 짖지 말라고 권고하셨다. 율법의 목적은 심판이나 죽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다시 법도를 행하게 하는데 있다.
19.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움
사도 바울은 믿음에서 오는 의로움을 신명기 말씀으로 설명하였다. 예슈아께서 하늘에 올라 가셨고 또한 음부에도 있으셨기 때문에 누가 하나님의 명령을 하늘로 부터 가져오고 바다 밖에서 가져올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말씀이 너무 가까워 입에 있고 마음에 있으므로 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믿음에서 나오는 의로움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지킬 수 없는 언약을 주시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 여호와를 신뢰하는 것이고 믿음이기 때문이다. (롬10:6~8)(신30: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