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발
김왕노
지금 서귀포 쪽으로 항로를 잡은 거야.
먼 훗날 태풍이 하늘을 가득 채우기 전
유채꽃이 다 시들어버리기 전
서귀포에 가면 늙은 조랑말은 다정하고
서귀포 앞바다는 기다림으로 깊고 푸르러
최근에 서귀포를 생각해 봤어
성산일출봉에서 해를 맞이하며 가슴에 몰락한
꿈을 쓸어내고 몇 섬 햇살로 채울 서귀포
서귀포에서 문주란을 보며 한 잔 술
하늘에 무수히 뜬 소금별
어둠을 사그리 태워버리는 하얀 유자꽃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노래하며 가는 곳
지금 우리 서귀포로 가는 중이야.
바리바리 산 꿈으로
그리움의 종착지인 서귀포로 가는 거야
기다림이 다닥다닥 따개비로 붙어 눈부신 곳
해국으로 피어 고개 주억거리는 곳
얼마나 먼지 가까운지 따지지 않고 가는 중
섭섬이 보이는 곳에 소라깝질 같은 방 하나 얻어
소라게처럼 살아도 좋은 서귀포
조금 가슴이 떨리지만 견디며 가는 거야
도대체 언제 서귀포에 이를지 묻지 않고
그립다 그립다는 말을 일획의 비행운으로 남기며
발가락군으로 아내를 아고리인 이중섭이 불렀듯
나도 너를 잔잔한 파도소리 속에서
발가락군으로 부르며
은박지에 내 사랑의 맹세나 또박또박 쓰려
김왕노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아직도 그리움을 하십니까』『그리움의 파란만장』『복사꽃 아래로 가는 천년』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