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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로 가는 길 “차라리 감옥에 가겠어.” 왼쪽 아래 어금니가 욱신거린다는 나의 하소연에 친구는 마치 자신 의 고통인 양 괴로워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치과란 얼마나 대단 한 곳인가.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이게 하지 않는가.’ 치과 란 정말 끔찍한 곳이 아닐 수 없다. ‘왱’과 ‘잉’ 중간쯤인 소리로 돌아 가는 드릴 소리, 이가 갈리며 나는 탄내, 소스라치게 만드는 예리한 통증. 그중 으뜸은 그 모든 것들이 불러오는 공포다. 치과 문을 들어 서기 전 몸과 마음을 사로 잡는 그 기분 나쁜 상태를 어떻게 형언해 야 할까. 어른이 되면 의연해질 줄 알았다. 치과에 가기 싫어 떼를 쓰는 나를 어르고 달래고 때론 겁박하는 부모님은 치과 치료 따위 겁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그런 척하는 거였다. ‘치과’라 는 두 글자 앞에선 모두 어린이 인 것이다. 떠올린 김에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금니에 문제가 생겨서 치과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저런. 아프겠다. ㅋㅋ’ 키읔키읔? 나는 육성으로 분통을 터뜨렸다. 이 문자는 양육의 책임에서 벗어난 부모 입장에서 방관의 마음으로 보낸 문자임이 분명하다. 사실 내겐 화낼 자격이 없긴 하다. 거울을 향해 ‘아’ 활짝 입을 벌려보면, 씌우고 덧댄 치아뿐 성한 이가 하나도 없다. 모두 어렸을 적의 조치이며 치료에 들어간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머니께서 그런 것을 생각할 분은 결코 아니시며 그 저 ‘어금니 하나 아프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괜찮다’ 그런 의미의 장 난일 것이었다. 치과에 전화를 걸어 가장 가까운 시간으로 예약을 잡고 문득 나는 옛 생각을 한다. 몇 살쯤이었을까. 초등학생 시절인 건 분명한데. 흔들리 는 이를 숨기고 싶었다. 치과에 가기 싫었으니까. 모른 척하면 없는 일이지 않을까. 엄마도 아빠도 모르니 결국 나도 모를 일이며 없던 일처럼 통증이 가시지 않을까. 애당초 허무맹랑한 기대였고 바람이 었다. 이빨이 점점 더 흔들리고 걱정은 커져만 가던 어느 날 저녁, 밥 을 먹던 중에 우둑 소리와 함께 이가 반쯤 뽑혔다. 밥을 먹다 말고 사색이 된 아들의 표정을 알아채지 못할 어머니가 아 니었다. “너 왜 그래?” 나는 대답 대신 가만히 입을 벌렸다. 어머니는 화가 났다. 흔들릴 때 즉각 뽑지 않으면 덧니가 되기 때문이랬다. “너 아랫집 아무개처럼 교정기 낄 거야?” 일단 거의 뽑힌 이를 처리해야 했다. 그간 온갖 경험이 있었다. 이에 실을 묶어 이마를 탁 때려 뽑는 전통적인 방법에서부터 치과에 찾아가 마취하고 뽑는 치료에 이르기 까지. 하지만 이번 경우는 너무 애매하지 않은가. 사실상 뽑힌 셈인 데 뽑히지 않은 것이니 실을 걸기도 치과에 가기도 애매하여 어머니 는 펜치를 들고 방에 들어오셨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어린 나는 겁에 질려 괴성을 지르고 울며불며 침대에서 책상 아래로 안방으로 화장실로 도망 다녔다. 마침내 붙잡 혀서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도 보았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 었다. 엉엉 우는 입으로 들어온 펜치와 간단히 뽑혀 나간 유치. 이제 와 생각해보면 어머니 또한 무서웠으리라. 부모된 도리로 어떻게 하 기는 해야겠는데,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 자칫 해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든 아들에 대한 원망과 어디서 솟아나는 지 알 수 없는 용기. 그리하여 손에 쥐게 된 펜치로 무사히 이를 뽑아 냈을 때 스스로는 얼마나 우스웠을 것인가. 울상인 아이 앞에선 차마 웃지 못했을 것이나 늦은 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앞에서는 하하 웃 었으리라. 어쩌면 자신이 펜치로 뽑아낸 이를 보여주며 자랑스러워 했을지도 모른다. 치과 의사 말에 따르면 나는 무른 이를 가지고 있단다. 상하기 쉬우 니 이 닦기도 열심히 해야 하며 꾸준히 치과 검진을 받아야 한댔다. 그러나 나의 치과 공포증은 가실 줄 몰랐고 갈수록 더해져만 갔다. 마침내, 돌이킬 수 없게 사달이 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듬해였 다. 이를 앙다물 일이 많았기 때문일까. 어릴 적 제때 이를 뽑지 않아 삐뚤빼뚤 자라난 이들 사이의 간섭이 원인이었다. 커다란 앞 윗니가 잘못 자란 앞 아랫니를 눌러 염증이 생겼고 염증이 뼈를 녹였고 그리하여 아랫니 넷을 모두 발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치통으로 끙끙대며 주말을 보낸 다음 날이었다. 피로 얼룩 진 솜뭉치를 입에 물고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아파서도, 이가 넷이나 없어져서도 아니었고 어떤 섭섭함 때문이었 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처럼 나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 들과 하나씩 작별하리라. 그렇게 영영 지워지고 말리라. 하여간 나는 치아를 네 개나 잃었고 그것은 영영 복구되지 않는다. 그런 사실은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그러니까 나름 어른이 된 것 아닐까. 이제 나는 치과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큰 수술을 해본 이후로 어지간 한 치료는 그에 따른 통증조차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목돈과 시간 이 들고 몇 주 불편한 것은 사실이나 그보다 괴로운 일은 쌔고 쌨는 걸. 치과를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타거나, 치과 근처를 어정거리며 예약 시간이 다 되기를 기다리거나, 대기용 소파에 앉아 잡지를 넘겨 볼 때도 나는 손이 차가워지거나 심장박동이 급해지지 않는다. 더러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길게 하품을 하기도 한다. 환자분 들어 오세요, 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거나 치과 의자에 길게 누워 발을 맞부딪히는 법도 없고 양손을 힘주어 마주잡지도 않는다. 정말이다. 정말이고 말고. 오늘 나는 온전한 씩씩함을 입증하리라. 그러면서 예약 시간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글·사진 유희경(시인) |
Lindsey Stirling - River Flows In You (Official Music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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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근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다녀가신 고운 걸음
공감주심 감사합니다~
일교차 큰 요즘
항상 건강하시고
기쁨과 미소 가득,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동트는아침 님 ~ !
아픈 것 다 참아도
치아가 아픈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ㅎ
아파도 병원 근무할 때 아프면,
고생을 덜 할텐데 꼭, 주말 때
아프면 며칠을 고생해서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치과가 없는 옛날에는
우리 선조들께서는 얼마나
고생을 하셨을까 생각 해 봅니다~
반갑습니다
공감가는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일교차 큰 요즘
항상 건강하시고
기쁨과 미소 가득,
행복한 휴일보내세요
정읍 ↑ 신사 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