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성서의 권위
장신대학교 이장식 박사
제 16세기 종교개혁으로 재발견된 진리는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 의인(義認) 교리와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는 것과 성서를 최고의 권위로 삼는 것이었다. 이 세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제도와 예배와 성례전과 기타 모든 것을 성서 말씀대로 개혁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천주교보다 성서적이 되었고 초대교회처럼 단순한 교회가 되었다.
종교개혁으로 성서의 권위가 가장 큰 것이 되었지만 반면에 성서 책이 일반 신도들에게 공개되어서 누구라도 읽고 해석도 하고 설교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성서말씀을 오해하거나 잘못 적용하거나 또는 해석차이로 논쟁을 벌이면서 교회가 갈라지고 신자들 사이의 친교와 사랑이 깨트려지는 일이 많이 생겼으므로 성서의 권위가 추락하고 훼손된것이 사실이며, 여러 가지 이단신앙도 다 나름대로 성서를 근거로 삼고 있다. 즉 이러한 일이 성서 때문에 생겼다고 말할 수 있다면 성서를 최고의 권좌에 앉힌 것이 잘못된 일이었을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성서의 참된 권위를 인식하지 못하고 성서를 어떤 주장이나 사상이나 심지어 신학의 근거로 삼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서의 권위관은 종교개혁자들 이전에도 역대 교회가 견지해 온 것이었으나 잘못된 성서 권위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다.
1.지평설과 지구설
고대 바벨론과 이집트와 그밖의 곳에서도 대지는 평평한 어떤 형체이고 하늘은 대지의 천정과 둥근 뚜껑과 같고 바다가 그 대지를 받치고 있는 기둥과 같다고 생각했었다. 히브리인의 구약성서도 시편 104편 2절과 창세기 1장 7, 8절의 기록처럼 땅위에 창공이 있고 하늘은 마치 땅의 천막처럼 펼쳐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기원전 4세기에 희랍의 피타고라스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땅이 둥글다는 지구설을 말하였다. 그러나 희랍철학과 학문을 배운 초대 교부들이 구약성서의 기록대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성경적 사상일 뿐인데), 즉 성서의 권위(?)를 견지하기 위하여 지구설을 배격하였다. 2세기의 로마의 감독 클레멘트, 알렉산드리아의 오리제네스, 그리고 4세기의 성어거스틴까지도 성서의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지구설을 반대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 사상을 소개한 중세의 대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지구설이 맞을 것같이 생각했지만 성서의 기록(?) 때문에 지구설을 도입하지 않았다. 8세기에 지구설을 주장하다가 이단으로 정죄된 사람이 있었다. 종교개혁자들도 다 지구설을 인정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 것은 역시 성서의 권위 때문이며 초대교부처럼 하늘 위에 바다와 천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무렵에 독일의 한 신학자 칼릭스토스가 시편을 해석하면서 하늘 위에 바다가 있다는 말에 의혹을 표시했다가 이단으로 정죄된 일이 있었다. 성서의 권위를 옹호하려다가 천여 년 동안 과학의 발달을 저지한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콜롬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하고 지구를 돌아서 돌아와서 스페인 천주교회로부터 박해를 많이 받은 이후 1,519년에 마젤란이 지구일주의 항해를 끝낸 뒤 지구는 둥글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2. 태양중심과 지구중심
지구를 중심하여 태양과 혹성들이 돈다는 천동설은 고대에 보편적인 지식이었다. 구약성서에도 시편 19편 5, 6절과 전도서 1장 4절과 기타의 기록으로 그처럼 말하는 것 같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을 받아들여서 ‘천지론'이란 책을 쓰면서 지구중심론, 즉 천동설을 주장하였다.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들이 더러 나왔으나 토마스의 학적 권위에 대항할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이란 책을 쓴 것이 지동설의 증명이 되었으나 갈릴레오의 망원경이 그의 지동설을 뒷받침하게 되었고 로마교황청의 박해를 받았다. 종교개혁자들 중에 유독 멜랑히톤이”물리학원론”이란 책을 쓰고 태양의 회전을 주장하였다. 루터와 칼빈은 지동설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3.세계(지구)중심설
고대 강대국들이 각각 자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세계지배의 거점인 양 주장하였었다. 이집트는 자국이 세계의 심장이라고, 히랍인들은 올림푸스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그리고 차이나(지나)는 자국을 중국, 즉 세계의 중심 국가라고 자부하였다. 이스라엘인은 팔레스틴과 예루살렘(시온)이 세계 만방과 만민이 궁극적인 구원을 받게 될 본거지라고 생각하였다. 구약 이사야 31장 5절과 이사야 62장 1절 이하 또, 그밖의 기록들에서 예루살렘인을 하나님이 특별히 지키시고 보호해서 만방의 찬송을 받을 것이며 만민의 구원이 여기에서 실현될 것을 말하고 있다.
제 4세기 구약학자 제롬의 예루살렘 찬양을 이어서 중세기 여러 교황들과 수도사들과 유명한 시인 단테까지도 예루살렘은 세계의 중심인 양 생각하고 말하였다. 예루살렘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갈보리를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였다.
이처럼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다같이 유대인의 시온주의 사상을 가지고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즉 시온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지금 팔레스틴인들과 싸우고 있는 현실에서 유대인을 응원하는 기독교인들이 많고 특히 미국교회가 대표적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소위 시온주의자가 아니었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에 대하여 절망하시고 예루살렘의 파괴와 그 민족의 이산을 예언하셨다. 바울도 지상의 예루살렘의 회복이 아닌 '하늘의 예루살렘’(갈 5:26)을 소망하였다. 시편 44편 14-15절 말씀처럼 지금 팔레스틴에서 유대인들이 나라를 세웠으나 세상 여러 나라들의 이야기거리가 되었고 여러 민족의 조소거리가 된 형편이다.
맺는말: 제16세기 종교개혁 당시까지는 (구교의) 성서(해석) 권위에 눌려서 자연과학 사상과 연구가 저지를 당하여 발달할 수 없었으나 17세기부터는 자연과학이 소위 '성서의 권위'에 반격을 가하여 교회가 수세에 몰렸다. 19, 20세기는 자연과학과 교회의 싸움이 격렬하였으나 그것은 승부가 없는 싸움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지리학이나 천문학에 관련되는 새로운 학설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초대교부들과 중세교회의 주장을 논의 없이 수용하였고 또 새 과학적 학설을 의도적으로 반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카톨릭교회의 신학과 교리와 제도 등등의 교회 대내적인 문제를 가지고 개혁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이러한 태도와 입장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입장이 되어서 현대사회의 과학과 문화의 발전과 보조를 맞춰왔는데 로마 카톨릭교회의 정책은 달랐다. 그 결과 카톨릭교회와 현대 서양문화 사이에는 언제나 개입이 있어 왔다.
아무튼 현대 자연과학과 기독교와의 엔카운트(대결)을 통하여 성서의 본연의 권위와 가치가 재발견 되어서, 성서를 (일차적으로) 과학의 교본이나 지리학이나 물리학의 참고서로 간주하지 않게 되었다. 성서는 과학이 아닌 종교의 경전이어서, 우주의 신비한 만상에 대한 종교적 심미감과 영적 시각의 표현은 만물에 대한 과학적 관찰과 실험과는 다르다.
성서의 문자적 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이 성서의 본연의 권위를 훼손시키지 말고 성서에서 인생의 의미와 삶의 목적과 행위의 가치와 역사의 종말과 구원의 성취를 바로 가르치는 성전(聖典)으로서의 권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카페 섬김이의 덧붙임:
성경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구원의 책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과학적 사실들을 볼 때에도 당연히 과학 논문 보듯 보면 안 된다. 쓰인 양식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딤후 3:15-17) 『[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전 1:5,18) 『[5]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성경은 '하나님 나라로의 구원'을 위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구원의 도를 말씀한다. 그러므로 문학적 제 양식들을 따라 성경의 각 부분들을 읽어야 한다. 똑 같은 한 사상이나 진리라도 문학적 양식에 따라 표현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성경은 율법, 교리, 역사, 성전 건축, 복식 규례, 제사 규례, 음식 규례, 정결법, 족보, 시, 서간, 강론, 논설, 설명, 담화, 격언, 계시, 예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성경을 볼 때에는 전지전능하시며 자비하신 하나님의 작품임을 알고 경외하는 마음가짐으로 대해야 하다.
물론 성경도 오랜 시간 인간의 필사 과정을 거쳐 우리의 손에까지 이르렀기에 작은 실수로 인한 훼손과 변화가 발견된다. 그러나 성경은 구약 그리스어 번역인 70인역을 위시해서 초대교회 이후의 많은 언어로의 번역본이나 곳곳에 산재한 많은 고대 사본들로 인해 거의 완벽에 가까이 보존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