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아침이다. 드디어 수요만남과 첫만남을 하는날.
그런데 어젯밤 큰형님 내외 술마중하느라 속이 불편합니다.
'형수님도 하필이면 오늘 산행인데 어제 회가 먹고싶다고 갑자기 부산엘 오남...'
옷가지 여벌과 물통, 스틱, 장갑등 준비물을 하나하나 챙겨넣습니다.
# 2.
아파트를 나와 백양로에 접어들자 막힐줄 알았던 차가 생각보다 잘빠집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달리는데, 모라사거리에서 차츰 밀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구남역 부근에서 아예 스톱.
시계를 보니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흐뭇하게 담배 한대 피워뭅니다.
# 3.
밀려서 꼼짝못하는데 바로 앞 골목에서 하얀색 아반떼가 하나 나올려고 합니다.
얼핏 운전석 창사이로 하얀토시가 보입니다. 아줌마 운전자입니다.
난 사실 버스기사보다 아줌마운전자를 더 무서워합니다.
아아, 도로위의 절대강자.
물론 여성운전자라고 다 그런건 아니지만, 난 본능적으로 무서워합니다.
# 4.
신호가 바뀌었는지 앞차가 전진하고, 나도 조금 앞으로 나갔는데...
아반떼는 좀처럼 신호만 넣을 뿐 도로로 접어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하얀 아반떼를 지나고 나서 차가 잠시 멈춘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피워문 담배에서 재가 폴폴 날립니다.
# 5.
'일타 이피', '완빤치 투다이'란 표현을 아시는지요?
그 아반떼가 만든 작품 하나.
내차의 뒷범버와 나를 뒤따르던 택시의 앞 휀다와 범버에 가한 타격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이궁, 바빠 죽겠는데...'
하얀토시 아줌마, 브레이크 밟고있다 갑자가 엑셀을 밟아버렸답니다.
# 6.
삼성화재 댕긴답니다. 내차도 삼성화재 들었는데...
자기가 다알아서 해준답니다. 난 흐뭇합니다.
현대해상 하이카만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는데, 우리 삼성 애니카도 다 알아서 해준다니...
차를 도로옆 주유소 공터에 대고 연락처 주고받고,
아줌마는 연신 전화하고, 택시 기사 아저씨는 별반 충격도 없는거 같은데,
목이 아픈지 헤드뱅뱅만 하고있습니다. 사람 부를테니 난 바빠서 간다고 하였습니다.
삼성화재 아줌마는 자기가 물어드릴테니 신경쓰지 말라 합니다.
# 7.
시간이 얼마없었습니다. 거의 여덟시 삼십분인데...
택시를 타고 총무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여차해서 이러허니 안되면 택시타고 고속도로에서라도
버스를 따라 잡을려고 했습니다.
택시기사 아저씨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갑자기 비장한 얼굴로 걱정말라 하십니다.
꼭 만덕에서 버스를 타게 해 주겠답니다. 아아, 서로서로 돕고사는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 8.
있는 신호 반쯤 무시하고, 말도 한마디 없이 입술을 꼭 깨물고 죽어라 밟아대던 영남택시
장홍영기사님...고맙습니다.
투철한 님의 직업정신에 전 그저 탄복할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덟시 삼십오분경에 만덕육교에 도착하였습니다.
건너쪽에서 몇분이 보입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반가움에 눈물이 나올뻔 했습니다.
# 9.
우리 수요만남에서 제가 맨처음 본 회원님이 바로 고문님이셨습니다.
같이계시던 아줌마 두분은 알고보니 수요산들이란 모임 소속이셨습니다.
고문님이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 기다리시는 모습에 저도 안정을 찾았고 조금더 기다리니깐
주황색도 선명한 우리의 강남고속관광 버스가 눈에 보였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반갑게 인사하시는 총무님과 회장님. 전 두분을 알아보겠더군요.
카페 메인화면 오른쪽에 회장님과 총무님 등 몇분 사진이 오르락 거리지 않습니까?
바로 광고의 효과입니다.
# 10.
차에 오르니 많이들 앉아 계셨고 쭈뼛거리며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맨뒷자리로 갔습니다.
세분이 계셨는데, 천성산님, 정이사님, 수풀님 이셨습니다.
그래도 천성산님이 저랑 크게 연배도 나지 않는거 같고 해서 이런저런 말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천성산님이 저번에 대둔산인가를 처음가셨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들 챙겨주지도 않고
휭허니 다들 곧장 산행하시더라며 은근히 겁을 주는게아닙니까? 같이 밥먹자는소리도 않더랍니다.
# 11.
버스에서 회장님이 이번 산행의 의미와 간단한 설명을 하셨고, 총무님이 연방 떡이며,
요쿠르트, 사탕, 선물등을 나눠주시더군요.
제가 뭐 사실 선물에 탐이나서 부득부득 나온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뭘 주니깐 좋더군요.
돈이 맞질 않는지 몇번이나 총무님은 사람숫자를 헤아리고...
그렇게해서 문산휴게소에 도착하였습니다.
# 12.
담배 한대 피워물고, 커피 생각 나길래 자판기에 가서 천원 넣고 잔돈반환 누르니
오백원만 나옵니다. 자세히보니 자판기에 '맥심커피 오백원'이 적혀 있더이다.
비싼 커피 홀짝거리며 오다보니 총무님과 몇분이 보입니다.
아까 차에서 천성산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서 은근히 몇마디 인사를 건냅니다.
총무님이면 어디모임에서도 실세니깐, 잘보여야지요.
첫산행이자 맨 신입인데 줄이라도 잘대놔야 천성산님처럼 서러움을 받질않죠.
어디나 사람사는 모습은 같은가 봅니다.
# 13.
버스가 대진고속도로로 접어들고 속도를 올릴즈음 옆자리의 정이사님과 수풀님은
젊은 사람 놀리려고 작정을 하신 듯, 화기애매한 분위기만 만들고 있고...
그런데 차창으로 빗방울이 하나 둘 씩 보입니다.
지리산에만 가면비가 온다고 말씀들을 하시더군요.
내가 다닌 초등학교도 소풍 날자만 잡으면 비가 왔는데...그래서 선배들은
그게 우리학교 전통이라고 하는데... 이래저래 전통은 지켜져야 하나 봅니다.
# 14.
여기서 중요한 일이 발생합니다.
저는 사실 산악회에서 점심도 주는 줄 알았습니다.^^
점심준비를 못해왔는데 바람소리님이 차안에서 밥을 주십니다.
정말이지 달랑 밥만 주셨습니다.
그래도 그 밥 덕분에 저는 삼정산에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지리산 빨치산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밥이 깜장색 이었습니다. 집에서 딸래미들과 그토록 그리워하던
하얀 쌀밥이 아닌, 깜장색이었습니다. 처음에 형님이 몸에 좋다고 하시면서 80키로
한가마니 깜장쌀을 보내왔었는데, 당시 흔치않았던 관계로다가 무식한 우리 부부
깜장쌀 원액으로 한 석달 밥을 해먹었습니다. 아예 깜장쌀로 밥해드신분 계시면
제 마음 알겁니다. 몸에 좋은건 고사하고라도, 그 깜장쌀로 제가 좋아하는 비빔밥을
해놓으면 색깔이 가관입니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색깔...
바람소리님, 다음에 행여 제밥 챙겨주실일이 있거들랑 꼭 하얀밥 부탁드립니다.^^
# 15.
마천이라고 강을 옆에두고 난 길로 버스는 한참을 달려 들어갔습니다.
초입길에 내리니 빗방울이 조금 더 굵어집니다.
사진을 찍는데 부산일보에 내겠답니다. 가문의 경사가 될만한 일입니다.
엠비시에도 낸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유명인사가 되는거 아닌가 모를일입니다.
결국 지금에야 안 사실이지만, 뻥이었습니다.
# 16.
형형색색의 우비와 판쵸우의까지 등장.
전 필요없습니다. 거금을 들인 고아테꾸스 잠바만 믿고 우산도 누구 빌려드렸습니다.
이글 혹시 저에게 우산 빌려가신 회원님이 보시면 좀 돌려주십시요.
사실 그거 울 마누라 우산입니다. 다음 산행때 돌려주지 않으면 제목숨이 위태해 집니다.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 17.
삼불사 가는길.
그래도 아직은 참을만 합니다.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산죽잎에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몇몇 분은 우의도 벗으시고
저는 앞만보며 잘따라 갑니다.
가는길에 총무님께 시원한 물한바가지 떠드렸습니다. 아부는 아닙니다.
삼정산총각수라고 얘기해 드렸는데, 사실 거짓말 이었습니다.
제 옷이 빠알간색이었기에 결국 샛빨간 거짓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삼불사의 원추리밭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았습니다.
# 18.
문수암에 도착.
여기서 저에게 도움을 주신 분이 또 등장합니다.
송이님.
제가 태어나서 가장 맛있게 상추쌈 먹었습니다.
젓가락도 주선해 빌려주시고, 반찬도 같이 먹게해 주시고...
에코호박님.(맞는지 모르겠습니다)
5년된 복분자주 넘 맛있었습니다.
종종 부탁 드립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맛있게 먹은 삼정산에서의 점심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바람소리님은 삼불사에서 점심드셨다더군요.
배신감이 지리산 골골마다 사무치는줄 알았습니다.
# 19.
상무주암 도착.
스님들 채마밭과 풍경 몇장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는데 등짐 하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한껏 옷가지에 신경을 쓴 저와는반대로 힘줄이 돋아나고 정말이지 편하게 입으신
그분을 보며 잠시 숙연함 마저 느꼈습니다.
절밑의 가파른 계단.
내려오는것도 힘든데, 절을 찾아 오르는 분들은 더 힘들겠지요.
부처님 만나는 것이 조금은 어려워야 합니다.
부처님 계신 절로 올때 쯤엔, 가파른 계단을 기어서 오르듯 바짝 자신을 숙이고
와야 하는가 보다...이런 생각을 하며 저도 내려왔답니다.
# 20.
바위비트와 산죽비트 안내문 그림의 엉성함에 혼자 배실거리며 웃고 오는데
휴대폰이 울립니다. 큰딸입니다.
소로에서 벗어나 옆의 바위에 재래식 화장실 폼으로 쪼그리고 앉아 전화를 받는데
회원님 한분이 오시다가 옆에서 서계십니다.
안가시고 계속 지키고 계시길래, 핸드폰 빌리려고 그런지 처음엔 알았습니다.
대충 전화를 끝내고 다시 내려오니 뒤에서 따라 내려 오십니다.
처음엔 별 이상한 분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혹 처음온 제가 길이라도 잃을까,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을까, 옆에서 지켜봐 주신 겁니다.
참, 제가 아직 그분의 닉도 모릅니다. 후미대장님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정말이지 그때 저를 챙겨주신 것, 고맙습니다.
# 21.
산에서 내려와 이쁜 전원주택도 지나고 마을을 지나 백소령모텔로 향합니다.
샤워도 할 수있고, 흑돼지도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이 들뜨기 시작합니다.
한참 앞에서 가시던 회원님 뒤에서 몰래 사진도 찍어대며 기대를 하고 모텔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모텔안에서 찬물이 나오는 겁니다.
물이라도 시원하게 나오면 한방에 비누칠해서 씻으면 덜추운데
나오는 물이라곤 병아리 오줌처럼 나옵니다.
고문이 따로 없습니다. ㅎㅎㅎ
# 22.
그럭저럭 샤워 마치고 식당에 도착.
입이 즐거워 집니다.
돼지고기도 맛있고, 무엇보다 집행부 님들의 수고가 많았다는 것을 한번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묵묵히 모임을위해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지난 5년을 있게한 힘이고, 음식맛을 더욱 맛있게 한것이 아닐까 합니다.
# 23.
초승달님 덕에 양주도 먹어보고, 중국술도 맛보고, 저의 은인인 바람소리님, 송이님과
인사와 많은 얘기도 하고, 회장님과 살로님, 고문님들과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첫산행의 일들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게됩니다.
# 24.
돌아오는 차안에서 부회장님 덕분에 마가목주의 향에 취해보고, 앞자리에 앉으신
이름을 모르는 회원님으로부터 시원한 맥주와 소주도 얻어 마셨습니다.
진영휴게소.
시원하게 오줌누고 차에 오르니 마눌이 전화가 옵니다.
회식한다 하더니만, 전화기 안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2차 노래방 같습니다. 나도 부산 오고 있는 중이니, 애들이나 챙겨보라 했습니다.
'서방은 산으로, 마누라는 노래방으로...' 바로 이 맨트의 발상입니다.
# 25.
이렇게 저의 첫 수요만남 산행은 막을 내립니다.
덕천쪽에서 염치불구하고 먼저 내리게 되었습니다. 1호차에서는 저만 내렸는데,
2호차에서도 몇분이 내리시더군요.
제가 화명동 간다하니 같은 방향이라 하셨습니다.
세분이셨는데, 닉을 여쭤보니 회원은 아니라 합니다.
그분들 덕분에 택시 공짜로 얹혀서 화명동으로 갔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차에서 내리기 전 오늘 좋은산행하게 해주신 다른 회원님들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후기도 제가 꼬옥 올린다 했는데, 이제사 올리게 된 점 사과 드립니다.
-------------------------------------------------------------------
정말이지 저의 첫 산행, 기억에 오래오래 남겨지지 싶습니다.
다른 회원님들도 계셨으나, 제가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 않아 일일이
글에 올리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산악회 활동 열심히 하겠습니다.
5주년 산행 행사를 멋지게 준비하신 임원진님들과,
초보인 저를 챙겨주셨던 분들, 그리고 같이 산행하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재미있지도 않고, 길기만 한 저의 후기를 읽어주신것 또한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2006. 4. 마지막날 새벽. 조훈종(술가람별) 적었습니다.
첫댓글 산행을 한번 더한 것 같군요..수고 많았습니다.담 산행때 뵙겠습니다.~~~~~
수고하셨고....산행후기 잘읽었습니다....수요만남을 위하여 조금 시간을 할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첨 오셔도.. 스스럼없이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 보이신 님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울 205?호 도 찬물고문 당했심더 ㅋㅋ 거의 동태수준..선물에다 흑돼야지..잊지못할 산행이였지요.환상적인 글솜씨에 감탄을~~出版[출판] 함 해보심이..정말 잘읽고 갑니다~~~
후기를 길고긴 장문으로 올리셨네요..스스럼 없는 후기 잼있게 읽고갑니다...자주참여해주시고 수고많으셨습니다.
ㅎㅎㅎ 인정이 넘치고 재미난 후기글 잘보았습니다 긴 장문 중에 20번 글이 정겹네요 언제나 수고하시는 후미대장이 계시기에 저 같은 후미는 든든 합니다
후기 잼있게 즐감했습니다..수요와의 첫산행에 즐거웠다니 다행입니다.. 이제 매주오셔서 함께 즐산합시다..수고많았습니다..
잘보고 갑니다..수고하셨읍니다.........
술가람별님 후기 잘읽었습니다. 닉이 재미있네요. 술병을 들고 강가로 가 강물에 비추인 별을 헤며 인생과 흥을 논한다? 제나름대로 한 번 풀어봤습니다. 괜히 누가 되지는 않았는지??? 다음에 뵈면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해조음님의 해석이 더 멋지십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제미 있는 후기글 즐감하고 갑니다.... 님도, 오늘은 어제보다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푸하하하 ... 너무 재미있게 잘 쓰셨다... 내 닉네임도 등장하니 기분도 좋고 ... 5년된 복분자술은 공뇽알님이 갖고 오신걸 밝혀 둡니다. 나는 작년에 고문을 당해 봐서 샤워를 안했습니다. 하하하 기분좋게 읽고 갑니다...
기억다 하시느라 수고하셨네요 다음 산행도 기다려 지시나요??
그의!논문 수준이네요!!후기글 잘 쓰는 분이 제일 부럽더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