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오피스텔 1996년부터 일산에서 청구와 나산은 파격적인 물량으로 오피스텔을 공개 분 양했다. 특히 청구는 백석역 근처에 오딧세이라 는 최첨단 오피스텔을 분양했는데 1 차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나산도 마두역근처 업무용지에 1.2차를 성공하고 3차에서 분양이 어려웠으나 해태,현대,삼성,등 거의 모든 1군 건설사등이 이에 합세하여 오피스텔 분양 신화에 모두 동참했다.
그당시 나산이나 청구에는 오피스텔을 주도하여 분양 기획한 유능한 인재들 이 많았다. 특히 현역에서 개발 분양업자로 뛰고있는 나산 출신의 문사장 이나 청구출 신의 의 김사장 등은 이때 오피스텔의 탁월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회사가 부 도난 후 독자적으로 개발사업에 뛰어들어 새로운 사업에 성공한 케이스다.
필자의 기억으로 청구는 1980년도 후반에 서울 상계동에 아파트사업에 처녀 진출하며 거실의 대리석 시공등 탁원한 모델하우스 전략과 부동산업자들을 초청하여 사업설명회를 거치며 평가를 받았으며 업계에서 인식 좋은 회사로 소문나면서 청구 아파트 신화를 만들어 낸 일이 있다.
청구의 일산의 오딧세이도 분양 한달전에 당시 담당상무는 (현재 ㄷ-ㅅ 대 표이사 김사장) 강남에서 부동산 업자들을 초청하여 사업 설명회를 하면서 투자유도를 할수 있도록 부탁하였고 부동산 업자에게 돈을 벌수 있는 계기 를 마련해주었다.
사전에 철저한 마케팅전략으로 수천명의 부동산 분양직원에게 좋은 이미지 를 이끌어낸 결과가 분양의 대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일산에는 그당시 약 2-3천명의 부동산 분양 영업부가 근무했기에 평이 좋고 수수료가 많은 회사의 상품은 모두가 분양을 할 수가 있었다.
일부 몇 개회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분양 대행회사가 분양을 맏아서 했기 때 문이고 분양회사의 직원은 서로가 거의 알기 때문에 특정회사를 돕는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대로 나산은 분양기획이나 분양가는 상대적으로 낮았고 좋았으나 수많은 부동산 분양업자로부터 초기에 좋은 이미지를 심지 못했다. 3차분양이 실패한 원인중 에 보이지 않는 한가지도 일수도 있다.
당시 성공한 오피스텔은 투자자에게 일명 찍기로 시세차액을 남길수 있게 하였고 분양대행수수료를 많이 주어서 영업사원이 가격흥정을 할수 있는 폭 을 준 회사의 마케팅 전략은 거의 성공하였다. K건설에서 시공하고 전문 분양회사가 시행했던 M오피스텔은 토지계약한 상 태에서 청약을 3대1로 받아놓았는데 그 전략은 수수료가 많았고 100여명의 영업부가 단합하여 모델하우스도 없는 건물10층에 사무실을 차리고 분양한 사례도 있다.
일산의 오피스텔신화는 1997년 I.M.F와함께 그막을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한 수많은 건설사의 부도로 수백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현재도 일산의 오피스텔은 공급과잉으로 당시 분양가에 나와있는 매물을 흔 하게 볼 수 있다.
서울에서는 1997년경부터 강서구 와 서초동 일원동,종로 그리고 부산해운대 를 중심으로 오피스텔의 전성기를 맏이 했으며 강남에서는 대표적으로 대림 아크로텔 이 도곡동에 최고급아파트와 함께 오피스텔을 분양했다.
당시10억이 넘는 아파트는 모두 분양했지만 오피스텔은 분양이 되지 않아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1999년도까지 강남과부산등 대도시에서 분양하는 오피스텔은 거의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고
건설사들은 할인 가격의로 판매를 했으며 특히 낮은 전용율에 따른 샘플하 우스 공개는 시각적인 효과많을 제시할뿐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반응을 얻을 수가 없었다.
◁ 이전 : [기획 소설]분양기획으로 성공[9] 다음 ▷ : [기획특집]오피스텔 역사속으로[7]
첫댓글 님의글 너무 훌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