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축구 대표팀이 아디다스와 공식 파트너 관계를 맺었을 때의 일화다. 당시 지성이는 나이키로부터 축구 용품 지원을 받고 있었다. 물론 지금처럼 거액의 협찬금을 지원받는 특수 관계가 아니었지만, 지성이로선 머리맡에 축구화를 두고 잤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나이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국가 대표팀이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선수들이 모여 훈련을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대표팀에선 선수들에게 공식 파트너 관계인 아디다스의 로고가 찍힌 조끼를 나눠주면서 입으라고 했다. 대표팀의 훈련이었고, 나이키로부터 지원받는 다른 선수들 모두 아디다스 조끼를 입고 뛰었는데, 유독 지성이만 그 조끼를 뒤집어 입고 있었다.
사실 그 조끼를 입고 뛰었다고 해서 나이키 측에서 항의할 것도 아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지식한 지성이는 자신을 후원하는 스폰서 업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옷을 뒤집어 입는 것으로 로고가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박지성은 입국이나 귀국할 때 등 대표팀과 맨유 유니폼을 입지 않을때도 후원하는 스폰서 업체의 옷을 입는다. (사진=연합)
이 같은 사실은 나중에 아디다스 코리아의 이사님을 통해 전해 듣게 되었다. 그분 입장에선 자사의 로고를 거부한 지성이의 행동이 못마땅했겠지만, 그런 행동이 오히려 진짜 프로 의식을 갖고 있는 선수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찾던 모델이 박지성 같은 선수예요. 진정한 프로다움을 보이는 그런 선수가 필요한데, 재계약 시기를 놓쳐버렸어요.”
원래 지성이는 아디다스와 계약을 맺고 있었지만 금액 문제로 재계약 시기를 놓쳤고, 결국 나이키와 새로운 계약을 하게 됐다. 그런데 우리가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다면 아디다스 측에 굉장히 미안했을 텐데, 금액보다도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이 틀렸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후 지성이를 놓친 아디다스는 두고두고 아쉬워했고, 지성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자 그 아쉬움은 몇 배 더 커졌을 것이다. 더욱이 공식, 비공식 할 것 없이 자신과 인연을 맺은 회사에 대해선 철저히 그 관계를 지키려 노력하는 지성이를 보면서 아디다스 측에선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요즘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용품 지원을 받는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알 만한 회사로부터 현금 지원도 받고 물품을 공급받기도 한다. 그러나 선수들 중에는 그런 인연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항상 매스컴의 취재 대상이 되는 선수들이 자신이 지원받지 않는 다른 회사의 로고가 선명한 점퍼를 입거나 모자를 쓰는 등 깊은 생각 없이 행동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설령 그 선수가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라고 해도, 그런 모습은 진정한 프로라고 보기가 어렵다. 나는 선수가 나이키로부터 또는 아디다스, 푸마로부터 협찬을 받는다면 선수의 부모도 그 회사의 용품들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내 돈을 주고 사 입어야 한다고 해도, 선수와 부모는 함께 가야 한다. 그게 의리고 매너고 신뢰라는 게 내 지론이다.
세상에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들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아닌, 나 혼자 잘사는 세상만 추구한다면 그 인생은 굉장히 팍팍한 삶이 될 게 틀림없다. 그런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다른 사람들과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아이들한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느냐에 따라 다르게 형성될 것이다.
첫댓글 역시 정신적으로도 훌륭한 선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