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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드 라 퐁텐. |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고자 했던 프랑스의 시인이자 우화작가 장 드 라 퐁텐이 1695년 4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라 퐁텐은 상파뉴 지방의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가 26세 되던 해 아버지가 결혼을 시켰으나 그는 35세 때 홀연히 가정을 버리고 단신으로 파리로 올라와버렸다. 라 퐁텐에게 명예나 지위, 이해 타산, 남의 평판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그의 어린애같은 청순한 마음과 자유로운 정신은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아, 품 파는 일 없이 일생 동안 당시의 유명한 고관과 귀부인들의 보호와 총애 밑에 살았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했던가. 그의 이름을 후세에 길이 빛나게 한 그의 작품, 즉 우화 제1집을 토해낸 것도 불혹(不惑)을 훨씬 지난 47세에 이르러서였다. 그 후 다시 10년에 걸쳐 제2집이, 그리고 그가 죽기 전 1년 전에 마지막 편인 제3집이 나왔다. 일평생 유유자적했던 그였지만, 17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의 가식, 불의, 모순을 모르는 그가 아니었다. 그는 인간성의 비굴, 허위, 간교 등을 너무나 생생히 보았고 느껴왔고 겪어왔다. 이에 '잘못됐다'고 반기를 들기에는 시대가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고 또 그럴 만한 정열도 그에겐 없었다. 이에 그는 간접적이며 우회적인 표현을 통해 그의 사상이나 인생관, 철학을 나타내려고 했다. 이 우회적인 표현 수단이 바로 '우화'였다. '전세계를 알면서도 나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라퐁텐. 그러나 그는 어쩌면 자기 자신을 너무나 잘 알았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장은 밑천과 수입을 모두 까먹고 /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갔노라…" -어느 게으름뱅이의 묘비명. 이 역시 그가 남긴 자신의 묘비명이었으니… |